최근 리그오브레전드가 이스포츠의 새로운 동력으로 떠오르고 있다. 그동안 이스포츠를 이끌어온 스타크래프트가 출시된 지도 어느새 10년이 훌쩍 넘었고 그 바통을 이어받으려던 스타크래프트2가 예상외의 부진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리그오브레전드의 흥행은 반길만한 일이다.

이러한 이유로 이스포츠 업계도 리그오브레전드에 많은 힘을 쏟아붓고 있다. MBC게임이 없어진 후 국내 이스포츠를 혼자 짊어지고 있는 온게임넷도 마찬가지다. 1월에 열렸던 LOL 인비테이셔널이 유저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으며 인기를 확인한 후에는 더욱 가속 페달을 밟고 있는 모습이다. 방송 해설진에 온게임넷의 간판 해설진인 전용준 캐스터, 엄재경 해설위원을 선정한 것만으로도 이를 알 수 있다.

이들 해설위원은 과거 스타크래프트 때부터 특유의 입담과 컨셉으로 많은 팬을 만들어왔다. 이스포츠가 국내에 자리 잡고 인기를 얻는 과정에서 이들의 공헌도 분명히 존재했다. 그 때문에 이들이 LOL 중계에 참여한다는 것만으로도 많은 이들의 관심이 쏠렸다.

하지만 스타크래프트와 리그오브레전드는 그 특성이 분명히 다르다. 또한, AOS장르 자체의 역사가 그리 길지 않아 대중들에게 그것을 인식시켜야 한다는 부담도 존재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온게임넷 리그오브레전드 해설을 맡게 된 엄재경 해설위원은 어떠한 생각을 하고 있을까?

"까꿍, 마이러브" 등 그가 만화책을 만들었을 때부터 전권을 소장하고 있을 만큼 열혈팬(!)이었던 기자는 약간 흥분된 마음으로 59년 만의 추위와 한파 주의보를 뚫고 양평에 있는 그의 집으로 찾아가 리그오브레전드에 대한 견해와 이스포츠로서의 성공 가능성에 대해 물어보았다.



- 자택에서 만난 엄재경 해설, 팬이라고 이야기하니 더욱 반갑게 맞아주었다. -


Q. 만나서 반갑다. 게임 해설자로서 다양한 게임을 한다고 들었는데 어떤 게임들을 플레이했나?

스타크래프트 해설자이기에 스타크래프트는 물론 즐겨왔고 다른 게임으로는 월드오브워크래프트를 플레이했다. 85레벨 캐릭터는 10개를 보유 중이고 이 중 현자 업적을 달성한 캐릭터는 2개이다. 리치왕 중반까지는 레이드도 상당히 열심히 참여했는데 이후에는 힘들어서 퀘스트와 레벨업 위주로 플레이했다.

최근에는 당연히 리그오브레전드를 플레이중이다. 처음에는 모든 챔피언을 다 플레이해보는 것을 목표로 시작해서 모두 플레이해봤다. 아무래도 게임 파악이 우선이다 보니 20레벨 후반까지 AI전투를 위주로 했다.



Q. 다른 해설위원들도 리그오브레전드를 플레이하고 있나? 주로 하는 챔피언은 누구인가?

온게임넷 해설위원 중에서는 김정민 해설을 제외하고는 방송인 대부분이 리그오브레전드를 플레이하고 있다. 정인호, 성승헌, 오성균, 손대영 등이 모두 하고 있고 자주 모여서 같이 플레이한다. 김태형 해설과도 같이 플레이했었는데 서로 실수를 많이 해서 멘탈이 붕괴한 적이 있었다.(웃음)

챔피언은 타릭으로 서포트 역할을 많이 했다. 이외에도 나서스, 말파이트, 알리스타를 주로 많이 플레이한다. 갱플랭크와 말파이트는 스킨까지 사서 애정을 가지고 플레이했다. 미드 라인을 갈 때는 모르가나를 많이 선택한다. 한 번은 정글을 갈 기회가 생겨 람머스로 플레이했는데 그 판에서 엄청나게 실수를 많이 하여 트라우마가 생겼다. 스마트키 적응이 잘 안 되었는데 이제는 많이 적응해서 무난히 사용할 수 있는 수준이다.

요즘에는 해설자로서 다양한 챔피언들의 특성을 알아보기 위해 거의 모든 챔피언을 돌아가면서 플레이하는 중인데, 최근에 모든 챔피언 플레이를 마치게 되었다. 이블린, 딩거 같은 챔피언은 정말 진땀 나더라!(웃음)



Q. 온게임넷 LOL 인비테이션 첫날 대단히 많은 관중이 몰렸었다. 기분이 어떠했나?

굉장히 좋은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이제 이스포츠의 역량이 리그오브레전드에 집중되고 있다고 보인다. 리그오브레전드의 개발사인 라이엇 게임즈의 마인드도 적극적이고 이스포츠 관련 선수나 관계자들도 의지가 있다. 리그오브레전드를 중심으로 인재풀이 형성되고 있어 앞으로의 발전이 대단히 기대된다.


- 인비테이셔널 첫날의 모습, 정말 많은 사람들이 용산을 방문했다 -


Q. 현재 리그오브레전드 경기를 보러 오는 팬들은 다른 이스포츠 경기와 비교해 어떤 느낌인지?

굳이 비교하자면 초창기의 스타1 팬들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겠다. 어떤 선수나 팀을 좋아해서 경기를 보러 오는것 보다는 실제로 게임을 즐기는 게이머들이 직접 경기를 보러 오는 경우가 훨씬 많은 것 같다. 물론 스킨의 영향도 컸지만, 경기에 대한 팬들의 열정이 대단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Q. 현재 눈여겨보고 있는 팀이나 선수가 있는가?

EDG팀의 모쿠자 선수와 막눈 선수, MiG팀의 로코도코 선수와 매드라이프 선수가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이런 선수들에게 스타성을 만들어 주는 것이 방송의 역할이 아닐까?

로코도코 선수와는 WCG 때 여러 가지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요즘은 팀들의 특징이나 상황적인 면에서 많은 부분을 배우고 있는데 그런 점들을 알아갈 때마다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방송을 보는 팬들이 그런 부분에 대해 알아갈수록 리그오브레전드가 세계적으로 점차 커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리그오브레전드의 숨겨진 잠재력이 아닐까?



Q. 함께 스타크래프트를 해설했던 김태형 해설이 온게임넷에서 리그오브레전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새로운 시도의 프로그램이라 상당히 좋게 생각하고 있다. 프로그램 반응도 좋고 무엇보다 방송이 재미있다.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주인이 챙긴다고 일도 하면서 자기가 재밌어하는 게임까지 하다니 정말!(웃음)



- "언젠가는 저도 출연할 겁니다!!" 라고 웃음을 터트리기도... -



Q. 앞으로 어떤 방법으로 해설할 계획인지?

우선 리그오브레전드 커뮤니티 사이트를 비교하면서 각 챔피언들간의 특성과 상성에 대해 공부를 하고 있다. 그런 지식이 있어야 선수들의 플레이에 따라 가설과 계산을 할 수 있지 않겠나?

요즘엔 사정거리 궤적에는 들어가지 않지만 미묘하게 판정이 들어가는 글로벌 궁극기라던가, 공격 모션의 차이를 연구하고 있는데, 정말 흥미롭게 실험을 하고 있다.



Q. 리그오브레전드 해설의 어떤 점이 가장 어려운가?

용어가 가장 어렵다. 이미 북미에서 서비스해온 게임이기에 많은 유저들이 그 용어에 익숙해져 있다. 처음엔 이를 방송에서는 어떻게든 한글로 쉽게 풀어서 개선해주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여. 해설하면서 외래용어는 아예 쓰지 않으려고 했는데, 요즘은 이러한 행동이 게임을 잘 아는 유저들에게는 거부감이 들 수도 있다고 느끼고 어느 정도는 혼용해서 쓰려고 하고 있다. 사실 따지자면 스타1의 빌드 오더나 업그레이드 같은 용어를 억지로 바꾸려고 한다면 당장 기존 용어에 익숙해져 있던 시청자들이 경기에 집중하는 것이 더욱 힘들어 질 테니 말이다.

그래서 지금은 게임의 아주 깊고 디테일한 부분은 김동준 해설이 맡고 나는 챔피언이 가지고 있는 매력과 재미있는 부분을 시청자들에게 소개하려고 하고 있다. "이 챔피언은 이게 매력이다" 라고 소개하면 리그오브레전드를 처음 접하는 시청자들에게는 큰 도움이 될 태니까.

상황을 정확하게 짚어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시청자들에게 '어? 들어보니 재미있네?'라는 느낌이 들어서 더욱 경기와 게임을 즐기면서 볼 수 있게 해주는 것이 해설을 잘하는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Q. 스타크래프트 해설 때도 경기 중에 많은 가설을 세우는 것이 특징이었다.

해설자들이 캐릭터를 잘 잡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런 점에서 해설하면서 틀리는 것을 그렇게 크게 두려워하지 않으려고 한다. 방송이라는 틀 안에서 결국 중요한 것은 재미가 아닐까? 시청자가 게임 방송을 일차적으로 찾게 되는 이유는 역시 "재미있어서" 이기 때문이다. 게임 방송이 생각해야 하는 것은 게임과 방송, 두 가지인데, 무엇을 하더라도 재미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 내 지론이며 그래서 재미를 가장 우선시한다.

친한 지인 중에 좌백이라는 소설가가 '소설가는 재미없는 소설을 쓰면 천벌을 받는다.'라는 말을 했는데 지금까지 해설하면서 가장 마음에 담고 있는 말이기도 하다. 이스포츠를 스포츠 쪽에 무게를 두는 사람이 많은데 대중들은 재미를 얻으려고 방송을 보기 때문에 나는 엔터테인먼트라고 생각한다. 다만 밸런스는 맞춰야 한다고 생각하기에 게임의 핵심을 짚는 김동준 해설과 서로 조율하고 있다.




- 내용만큼 중요한 것은 시청자들이 얼마나 "재미있게" 경기를 볼 수 있느냐가 아닐까? -



Q. 마지막으로 리그오브레전드가 이스포츠로서 더욱 활성화되기 위해 개선해야 할 점이 있다면?

물론 지금도 많은 도움을 주고 있지만 약간 더 바라는 것이 있다면 대회 클라이언트 문제 정도이다. 대회서버도 조금 늦은 감이 있고 리그오브레전드 자체가 업데이트 주기가 짧다 보니 버그가 생길 때가 있다. 조금 더 게임 안정화에 신경 써줬으면 하는 생각이 여러 번 들었다.

이 밖에 방송적인 부분에서도 HD방송 지원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다만 이는 중계소와 장비가 많이 필요해 현재로서는 감당이 안 된다고 한다. 전체적으로 방송 인프라가 구축 안 된 것이 아쉽다.

마지막으로 기업에서 정식 후원이나 스폰서를 해줄 수 있는 시스템이 형성되어야 한다. 지금은 인기는 있더라도 이합집산 상태인데, 이 판이 더 커지려면 협회나 프로팀 같은 시스템이 필요하다. 만약 그렇게 돼서 정말 시스템이 갖춰지면 조금 먼 미래의 이야기지만 스타크래프트처럼 공군팀도 창설할 수 있게 될 테니 말이다.



"경기의 내용을 설명하기보다는 큰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 많은 게이머들이 관심이 있는 만큼 더욱 많은 시청자들이 더욱 즐겁게 게임과 경기를 즐길 수 있도록 이야기를 만들어 보겠다는 그의 포부는, 리그가 막 시작하고 팀과 선수 간의 커다란 스토리라인이 약한 현재 상황에서 지금까지 보여주었던, 그리고 앞으로도 보여줄 그의 설계능력(?)에 더욱 큰 기대를 하게 되는 것은 당연지사.

앞으로 이스포츠에 새로운 활력소가 될 리그오브레전드. 기자이기 앞서서 한 사람의 이스포츠 팬으로서 이제 시작하는 첫 정규리그부터 이전 스타리그에서 그랬던 것처럼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나갈 그의 맛깔나는 해설을 들을 수 있길 기원해본다.



Inven Sett
(Sett@inv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