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2012년 WCG 현장 ]

내세우긴 부끄러운 경력이지만 기자는 도타 2 프로게이머를 잠깐 한 적이 있다. 작년 WCG 2012에 한국 대표로 선발되어 중국 쿤산에서 전 세계 대표들과 경기를 가졌었다.

한국 대표팀은 예선 첫 경기에서 몽골 대표팀엔 승리했지만 두 번째 경기인 벨라루스 대표팀과의 대결에서 패배해 다음 경기의 승패에 따라 8강 진출이 결정되는 상황이었다. 세 번째 경기의 상대는 세계적인 강팀인 중국의 IG였다.

IG는 인터내셔널 2012의 우승팀이었고 당시 경기력 또한 최고인 상태여서 우리는 걱정 반, 기대 반으로 경기를 시작했었다. 결과는 압도적인 패배. 영웅 픽밴부터 지고 들어갔을 뿐만 아니라 우리가 생각하는 조합을 상대방은 이미 알고 완벽한 카운터를 준비하고 있었다. 더군다나 팀 내에서 좋지 않다고 평가했던 영웅이 IG에 의해 선택되고, 우리를 완전히 박살 낼 때 나는 말로만 듣던 "세계의 벽"을 느낄 수 있었다.

예선에서 탈락하고 나서 스타크래프트2 경기의 결승을 지켜봤다. 한국 대표인 원이삭 선수가 프랑스 대표를 압도적으로 제압하며 2 대 0으로 승리했다. 원이삭 선수와 프랑스 대표와의 실력 격차를 보면서, 내가 느꼈던 "세계의 벽"을 외국 스타크래프트2 게이머들도 느끼겠구나 생각했다.

[ ▲ WCG 스타크래프트 2회 연속 우승. 원이삭 선수 ]

스타크래프트, 워크래프트 등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에서 우리나라는 언제나 상위권에 있었다. 아마추어 시절부터 한국 게이머들은 세계에서 높은 곳에 위치해 있었고, 아마추어 게이머들이 프로가 되어 게임에만 집중하기 시작했을 땐 해외 게이머와의 격차는 더욱 벌어졌다. 결국, 국제 대회 결승전에서 한국인끼리의 대결을 펼치는 진풍경을 여러번 보여주기도 했다.

그리고 외국 게이머들이 자주 말하던 "한국인은 1대1 게임만 잘해. 팀 게임을 잘하지 못해. '카운터 스트라이크' 같은 팀 게임은 한국이 강하지 않잖아?"라는 말은 리그 오브 레전드가 등장하고 난 이후엔 과거의 말이 돼버렸다.

리그 오브 레전드는 팀 게임이다. 개인 기량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팀워크가 중요하다. 혼자 아무리 잘해도 다섯 명을 이길 수 없는 게임이다. 최소 두 명, 세 명 이상이 펼칠 수 있는 전략도 무궁무진하고, 스스로 게임 메타를 창조할 수 있다는 점에서 '카운터 스트라이크'와 매우 닮아있다.

[ ▲ 팀 게임 "카운터 스트라이크", "리그 오브 레전드" ]

우리나라 게이머들이 리그 오브 레전드를 시작할 땐, 북미에서만 서비스되었기 때문에 높은 핑 때문에 다소 제약이 있긴 했다. 하지만 리그 오브 레전드의 재미가 입소문을 타면서 타 게임의 '고수'들이 LOL을 시작하게 됐다.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최상위권 랭커들의 이름에서 우리나라 아마추어 선수들을 자주 볼 수 있게 됐다. 게다가 한국 서버가 나오기 직전인 시즌 1 막바지에는 10위권 안에 절반 이상이 우리나라 게이머들일 정도로 잘 나갔다. 지금은 예전부터 잘 나갔던 선수는 물론이거니와 뒤늦게 한국 서비스부터 시작한 선수들도 세계 정상급의 기량에 도달했다.

[ ▲ AOS 게임인 "카오스", "아발론", "가디언 스피리츠"의 고수들이 LOL로 많이 이동했다 ]

그러면 비슷한 장르의 같은 팀 게임인 도타 2의 경우를 살펴보자. 클로즈 베타를 서비스한 지 2년, 세계 최정상급의 선수들이 하나 둘 정도는 있지 않겠는가? 기대하셨던 분들께는 죄송하지만, 우리나라에서 가장 잘한다고 평가받는 선수들조차 스스로 세계적인 수준엔 크게 못 미친다고 얘기한다.

도타 2는 그 원류인 워크래프트3 유즈맵 "도타 올스타즈" 이래 1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도타 2는 워크래프트 3 플랫폼을 벗어나 독자적인 엔진을 사용하고 있지만 도타 올스타즈와 상당부분 흡사한 게임이다. 따라서 도타 1부터 시작한 경력 10년 차의 해외 선수를 이제 도타 2를 갓 시작한 한국 게이머가 따라 잡기란 쉽지 않다.


[ ▲ 10년차 고전게임 도타 ]

그렇다면 우리나라 게이머들이 도타 2 세계 최고의 자리에 오르는 것은 영영 불가능한 것인가. 당연히 그렇지는 않다. 우리나라 게이머들이 왜 게임을 잘하는지를 생각해보면 알 수 있다.

바로 '피지컬' 측면에서 외국 게이머와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뛰어나기 때문이다. 피지컬은 손의 빠르기, 순간 집중력, 마이크로 컨트롤 등 머리에서 생각하는 그림을 마우스와 키보드로 옮기는 것을 말하는 것인데, 외국인들이 우스갯소리로 말하던 "한국인의 APM 400 미포"가 실제로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그리고 실제로 NSL에서 일어났습니다!)

[ ▲ 4개의 영웅을 각자 따로 컨트롤 해야 되는 도타 2 영웅 '미포' ]

도타 2 또한 '피지컬'을 이용한 세밀한 컨트롤이 매우 필요한 게임 중 하나다. 특히 자신들이 짜는 전략의 난이도가 높으면 높을 수록 이 피지컬도 많이 필요하게 된다. 그렇다는 것은 피지컬이 뛰어난 한국 게이머들은 시작부터 난이도가 높은 전략을 별다른 어려움 없이 사용할 수 있다는 소리다.

예로, 다수 유닛을 컨트롤 해야 되기 때문에 매우 어렵다고 평가받는 영웅인 '비사지'의 경우에도 우리나라 최초의 도타 2 대회인 NSL에서 아주 많이 등장했으며, TP팀의 '프루시안테' 신희성 선수는 30대임에도 자신의 수족처럼 비사지를 잘 다루는 모습을 보여줬다.

컨트롤에서 유리한 면이 있다고 하면, 이제 전략적인 부분을 생각해 봐야 된다. 그것에 대한 해답은 리그 오브 레전드의 경우를 따라가면 될 것 같다. 시즌 1의 마무리를 하는 자리였던 LOL 월드 챔피언쉽에서 우승한 'Fnatic'은 자신만의 스타일인 EU스타일을 창시했다. 이 EU스타일은 이제 리그 오브 레전드의 정석과도 같은 전략으로 자리 잡았고, 그 스타일을 더욱 발전시킨 형태가 우리나라의 스타일이다.

도타 2도 지금 대세인 전략이 서포터 두 명이 한 명의 하드 캐리를 키워주는 3-1-1 스타일이다. 리그 오브 레전드의 EU스타일과 매우 흡사한 면이 있다. 3-1-1 스타일은 도타 올스타즈부터 있었던 전략었지만, 최근 1년 사이에 해외 팀들이 더이상 발전시킬 수 없을 정도로 완성도 있는 모습을 보여주며 대세로 떠올랐다.

우리나라 게이머들 또한 3-1-1 스타일을 빠르게 따라가는 중이다. NSL에서 한, 두 경기를 제외하고 모든 경기가 3-1-1 스타일을 보여줬으며, 경기 양상에 따라 변칙적인 3-1-1 전략을 하나둘씩 선보이며 전략적인 부분에서도 빠르게 따라잡고 있다.

[ ▲ LOL의 EU스타일은 이제 정석이다. (사진 출처 : 리그오브레전드 인벤) ]

피지컬은 거의 다 따라잡았다. 전략은 열심히 따라가는 중이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이 하나 남아 있다. 바로 '경험'이다. 아무리 컨트롤이 좋아도, 머리가 비상해 상대방의 전략을 모두 꿰고 있어도 경험이 없다면 돌발상황이 발생했을 때 대처할 수 없다. 경험은 단지 게임의 수가 많은 것에 비례하는 것이 아니고, '대회'를 많이 참가 해봐야 느는 것이다.

[ ▲ 2012년 TI2 현장 (사진출처 : 위키디피아) ]

NSL 우승팀인 FXOpen의 '마치' 박태원 선수는 "한국 팀이 참가할 수 있는 대회가 얼마나 많이 있는지와 그 대회에 해외 강팀이 참가하는지가 중요하다. 한국 안에서 우물안의 개구리마냥 한국 선수끼리만 경기하면 해외 팀들을 따라잡는 데 오래 걸리지만, 잘하는 외국팀이랑 계속 경기를 할 기회가 있으면 예상보다 더 빨리 따라잡을 수 있을 것 같다."라고 '경험'의 중요함을 강조했다.

다행히 올해 넥슨에서는 20억 원을 투자, 크고 작은 리그를 지속적으로 개최하겠노라 밝힌 바 있다. 마치 작년 LOL 리그에 해외의 강팀인 CLG NA, EU, Fnatic 등이 참가했던 것 처럼, 국내 도타 2 대회의 상금이 크면 당연히 해외의 강팀들이 참가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국내 팀들이 해외의 강팀과 자연스럽게 경기를 가질 수도 있게 된다.

[ ▲ 곧 열릴 도타 2 축제, TI3 ]

8월 3일부터 TI3(The International 2013)가 열린다. 세계 대회 중 가장 규모가 크고 모든 도타 2 게이머들이 기다리고 있는 대회다. 이번 TI3에는 아쉽게도 우리나라 팀은 초청받지 못했다. 하지만 내년 TI4는 기대해봐도 좋을 것 같다. 올해 한국에서 많은 대회가 열릴 예정이며, 도타 2를 즐기는 게이머의 수도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그리고 여러 기업, 구단에서 도타 2의 팀을 준비하고 있다.

앞서 말한 세계적인 수준을 따라가기 위한 세 가지 요소인 '피지컬, 전략, 경험'은 빠르게 따라잡을 수 있다고 본다. 지금 도타 2 프로 선수들은 의욕에 가득 차있고 언제든지 도전할 수 있는 자세가 되어 있다. 이러다 보면, 의외로 빠른 시간 내에 "세계의 벽"을 두드려 볼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