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를 어깨에 차고 프레스 명찰을 목에 맸다. 어느 위치든 어느 각도든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촬영할 수 있는 권력을 얻은 셈. 하지만 평소와는 다르게 셔터가 쉬이 움직이지 않는다. 어색함일까, 불편함일까.


여기는 제7회 전국 장애학생 e스포츠 대회가 열리고 있는 서울교육문화회관. 6월부터 열린 전국 대회의 결승전이라 할 수 있는 본 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장애학생, 교사, 학부모, 일반학생 등 총 1,500명이 참여했다.






비단 e스포츠 대회뿐 아니라 전국 특수학교 정보경진 대회를 비롯해 특수교육 산업 홍보전, 전국특수교육 정보화 세미나 등 다양한 행사가 함께 열린다. 오늘 저녁에는 가수 걸스데이와 천상지희 등이 출연하는 KBS 라디오 특집공연까지 펼쳐질 예정이라 참석한 학생과 학부모들 모두에게 현장학습을 넘어 최고의 선물이나 다름이 없다.


개막식이 끝나자마자 서둘러 찾은 e스포츠 대회장. 장애학생, 학부모, 교사가 함께 모여 머리를 맞대고 상대팀에게 승리를 따내기 위한 전략을 짜낸다. 때로는 심각한 분위기지만, 시종일관 하하 호호 웃음이 끊이지 않는다.



[ ▲ 가족과 교사가 함께 참석해 응원하는 팀들이 다수였다. ]




문득, 선수들의 실력이 궁금해졌다. 행사장 뒤에 크게 마련된 닌텐도 Wii 스포츠 볼링 대회장으로 눈을 돌렸다. 선수들이 공을 굴릴 때마다 잇달아 터지는 '스트라이크.' 단순히 게임 좀 한다고 해서 참가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님을 대번에 알 수 있었다. 비록 몸이 불편한 장애학생일지라도 실력만큼은 세계 최고라는 각오가 보였다.



[ ▲ 스트라이크 아니면 스패어. 프로 볼링선수를 긴장하게 하는 실력. ]




오델로 대회장에는 특별히 시각장애인이 참가했다. 선수들이 앉은 자리에는 모니터가 없다. 키보드만 있을뿐. 오로지 이어폰을 통해 들여오는 소리만으로 게임을 플레이하는 선수들. 그 경기를 관람하는 학부모와 교사 모두 선수들이 최상의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숨을 죽인 채로 화면만 응시했다. 이번 대회에서는 시각장애인들은 오델로를, 청각장애인들은 피파온라인 2을 참가할 수 있도록 하는 등 주최 측이 종목 구성에도 많은 신경을 썼다는 이야기를 전해들었다.



[ ▲ 오직 소리만 듣고 게임을 플레이하는 학생들. 관람객 또한 선수를 위해 침묵한다. ]


[ ▲ 기자의 질문에 선수로 참가한 학생들을 응원하기 위해 제주도에서 올라오셨다는 한 선생님.
학생들을 바라보는 그윽한(?) 눈빛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




특히, 장애학생과 일반학생이 한데 팀을 꾸려 승부를 가리는 '마구마구'와 '에어라이더' 경기는 장애학생이 우리와는 다른 특별한 누군가가 아니라 게임을 함께 플레이하고 그 감동과 즐거움을 공유하는 같은 게이머임을 현장에 참석한 수많은 관람객에게 멋지게 증명해 보이는 자리가 되기도 했다. 그리고 이 장면은 기자가 지금까지 경험한 어떤 공익 캠페인보다도 강한 인상을 남겼다.



[ ▲ 장애학생과 일반학생이 함께 팀이 되어... ]


[ ▲ '우리는 다르지 않다.' 모두 같은 게이머라는 공감대가 자연스럽게 형성됐다. ]




어느 순간 카메라를 잠시 놓은 채 경기를 보며 선수들과 함께 웃고 함께 아쉬워하는 기자. 어느덧 불편한 시선은 사라지고 우리 게이머 동지의 축제에 함께하고 있다는 뿌듯함이 느껴졌다.


이번 대회는 국립특수교육원과 한국콘텐츠진흥원 및 CJ E&M이 공동으로 주최한다. 대회에 참가한 1,500명의 1박 2일 숙박비, 식비는 모두 CJ E&M이 책임진다는 설명. 물어보니 3년째 이 대회를 지원하고 있었다.


[기자수첩] 우리는 장애인, 그리고 게임을 한다


아무래도 아이들이 많다 보니 경기 중간마다 승패 때문에 투정부리는 때도 있고, 가족이 함께해서 그런지 일반 대회보다 통제도 그리 원활하지도 않았지만, 진행 요원들은 친절함을 잃지 않았다. 대회 진행 요원 대부분이 현직 교사들과 CJ E&M 직원 중에 자원봉사를 신청한 사람들로 구성됐기 때문이다. 주최 측의 세심한 배려를 다시 한번 느낄 수 있는 부분이었다.




[ ▲ 아무래도 장애학생이 있다 보니 동반한 가족, 친지, 교사, 친구 등 인원이 상당했다.
'게임회사'가 할 수 있는 역할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볼 기회. ]




아버지와 아들이, 어머니와 딸이 함께 팀을 이뤄 경기를 진행하는 사천성 게임 경기장에 멈춰 섰다. 아옹다옹하다 머리를 맞대곤 하는 그들의 행복한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게임회사가 할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사회공헌 중의 하나가 이번 대회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자가 어릴 적 그때 저 자리에 앉아 부모님과 함께 게임을 즐길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만약 그랬다면 아직도 우리 사회에 팽배해 있는 게임 업계를 둘러싼 어두컴컴한 오락실 이미지는 조금은 걷힐 수 있지 않았을까. 여전히 게임을 惡 내지는 유해매체로 보는 주변의 시선에는 그동안 게임업계의 책임도 적지 않다. 그리고 안타깝다.



'게임'을 통해 학부모와 교사, 그리고 학생이 다 같이 모여 웃음꽃을 피울 수 있는 축제.

이번 전국 장애학생 e스포츠 대회를 후원하고 있는 CJ E&M에 큰 박수를 보내며 이 대회가 생산하는 긍정적 에너지가 일반 대중뿐 아니라 다른 게임업체들에도 널리 알려졌으면 하는 바람을 해본다. 으레 하는, 틀에 박힌 사회공헌 활동에서 이제 그만 벗어났으면 하는 마음도 간절하다.

오늘 이 자리만큼은 '게임'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행복 전도사였기에.



[ ▲ 우리가 어린 시절 저 자리에 앉아 아버지와 함께
게임을 즐길 수 있었다면 세상은 조금 더 달라지지 않았을지. ]




P.S. 마지막으로 이번 대회 개막식에서 특별 공연을 펼친 한국 선진학교의 타악 합주부 연주 영상을 붙인다. 듣는 순간 사진 대신 영상을 담을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