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용 코드를 전달받은 게 게임 출시 전이었으니 이미 한 달 전쯤이다. 이 말인즉슨 '라이즈 오브 툼레이더'가 출시된 지 한 달이 됐다는 말이다. 통상 미디어에서 말하는 '리뷰'는 출시 전 혹은 출시 후 어느 정도 플레이한 후에 나오는 게 일반적이다.

그렇다면 '라이즈 오브 툼레이더' 리뷰를 왜 이제서야 쓰는 걸까. 몰입감 넘치게 게임을 즐겼으나 뭔가 찝찔한 뒷맛의 이유를 찾지 못해서였다. '툼레이더' 프랜차이즈를 20년 가까이 지켜봐 온 팬으로서 허투루 쓰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많았다. 그리고 그 이유를 이제서야 찾을 수 있었다.

▣ 전작 업그레이드, 영화적 체험을 기반으로한 강력한 오락 요소

▲ 표정이 더 풍부해졌다.

우선 '라이즈 오브 툼레이더'는 전작 '툼레이더'의 그래픽에서 한 단계 나아갔다. 더욱 아름답고 세밀해졌다. 게임 도중 아무 곳에서 멈춰서 경치를 바라봐도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전작에서부터 풍성한 다이너마이트 바디는 사라졌지만, 대신 색감과 라이팅(조명, 질감, 연출)은 더욱 풍성하고 풍부해졌다. 아무 곳에나 세워두고 스크린샷을 찍어도 아름답다.

컷신은 흠잡을 곳이 없다. 넋 놓고 바라보고 있다가 플레이 장면으로 전환됐는지도 모르고 죽은 경우도 몇 번이나 있을 정도니까. 데드씬 역시 전작만큼 다양하다. 분명 크리스탈다이나믹스에는 라라의 죽는 모습을 보면서 쾌감을 느끼는 사람이 있는 게 확실하다.

음향 측면에서는 '툼레이더: 엔젤 오브 다크니스' 이후로 처음으로 한국어 더빙을 적용했다. 플레이 초반에는 한국어 성우의 음성과 '아!', '으', '아아아' 같은 오리지널 성우의 신음(?)소리와 이질감이 느껴져 오히려 몰입감이 떨어지기도 했지만…. 좋은 시도라 생각한다.

게임플레이 측면에서도 전작의 장점을 유지한 채 개선 작업이 이뤄졌다. 다소 불편했던 조준 시스템을 좀 더 속도감 있고 안정적으로 변화했고 제작 트리에서도 변화가 있었다. 적들의 인공지능도 일취월장했다. "저 여자가 우리를 죽이려 해!!"라고 소리만 꽥꽥 지르던 형편없는 모습도 개선됐다. 피켈 액션이나 근접전도 좀 더 직관적이고 파괴적으로 변화했다.

가장 주목할 부분은 개발사가 의도한 바를 충실하게 경험할 수 있는 '영화적 체험'이 전작보다 크게 향상됐다는 점이다. 선형 이야기 구조의 장점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전작 소녀에서 전사로 변한 그녀의 지적이면서도 세련된 섹시 야성미가 더욱 도드라진다. 평면적인 주변 인물들 덕분에 더욱 그러하다. 고고학자와 도굴꾼 경계에 서 있는 라라는 더 이상 거대한 가슴과 미치게 하는 골반, 그리고 아크로바틱한 모션이 없어도 충분히 섹시하다.

긴장과 이완을 반복하는 연출 방법은 효과적이다. 코지마의 이전 작품이나 너티독의 작품들에서 볼 수 있듯 컷신은 사용자의 집중을 극단적으로 뽑아낸다. 절정에서는 아드레날린이 뿜어져 나온다. 옆에서 여자친구가 게임을 그만하라고 잔소리해도 들리지도 않는다. 물론 라라의 차진 둔부 움직임이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고는 말 못한다. 게임의 흥행 요소 중에 하나니까.

▲ 인게임이다.

개발사 크리스탈다이나믹스는 전작의 단점을 보완하고, 그래픽, 게임플레이, 연출, 영상, 사운드, 내러티브 등등 게임을 구성하고 있는 각 요소의 퀄리티를 최대한 끌어올리는 것에 신경을 많이 썼던 것 같다.

처음 시작할 때 설산의 발자국을 보면 어느 하나 허투루 찍힌 게 없을 정도로 디테일과 퀄리티를 끔찍하게 신경 썼다. 크리스탈다이나믹스는 어쩌면 '영화적 체험'이 아니라 '상호 작용하는 영화'를 만들려고 했는지도 모르겠다. 사용자는 자신이 라라인지, 라라가 자신인지 심각한 착각에 빠지게 된다. 거울을 보기 전 까지 말이다.

덕분에 사용자는 플레이 내내 말초 세포 하나하나가 찌릿한 흥분 상태에 빠져들고 뻔한 진행에도 불구하고 '라이즈 오브 툼레이더'의 달콤하고 관능적인 맛에 중독될 수밖에 없다.

전작 '툼레이더'의 손쉬운 퍼즐과 호쾌한 액션으로 새롭게 유입된 사용자들에게 매우 효과적인 전략이다. 생뚱맞은 QTE 조차 상대적으로 나태한 요즘 사용자들에게 더욱더 매력적으로 다가간다.

'상업적이고 대중적인 성공을 거두고 프렌차이즈의 중흥을 이끈'이라는 수식어가 아깝지 않은 전작의 핵심요소들을 공고히 다지며 발전시킨 '라이즈 오브 툼레이더'는 단품으로써는 훌륭한 게임이다.


▣ 크리스탈 다이나믹스, 정녕 이게 최선 입니까?

▲ 좀 더 깊은 이야기를 해보자.

하지만 프랜차이즈 전체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말을 조금 수정해야 한다. 이야기 몰입력 자체는 리부트되기 전 원작은 물론이고 전작보다 떨어지는 편이다. 전작에서 히미코 사건을 겪으면서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성장한 '라라'는 이번 작에서도 인간적인 고뇌를 이어간다. 아버지에 대한 죄책감과 불멸에 대한 호기심으로 탐험에 나선 '라라'는 여전히 진지하다. 가끔은 먹먹할 정도로.

원작에서 엘렉트라 콤플렉스를 지닌 라라가 죽을 위기를 넘기고 얻는 희열과 흥분과 쾌락. 오르가즘에 가까운 이러한 감정은 유물 페티시로 이어진다. 유물이 곧 자극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작 '툼레이더'는 유물에 대한 패티시적인 집착을 제거하고 좀 더 인간적인 면모를 부각하는 데 집중했다. 라라의 성격이 어떻게 형성되는지 그린 프리퀄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유물과 신화를 믿는 아버지를 등한시한 라라는 일련의 사건을 경험하고 재탄생한다. '라이즈 오브 툼레이더'는 이러한 설정을 기반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명확히 드러나지는 않지만, 기저에 깔린 엘렉트라 콤플렉스는 그녀가 '라이즈 오브 툼레이더'에서 모험을 다시 떠나게 되는 동기이자 목적이 된다. 라라의 성격을 구성하는 가장 기초적인 틀이자 툼레이더의 정체성을 완성하는 부분이다.

여기까지는 아주 훌륭했다. 하지만 그 이후의 내러티브는 다시금 전작과 같은 이야기를 곱씹는 데 그친다. '라이즈 오브 툼레이더'는 한 걸음 더 나아가야만 했다. 변화 없는 시스템과 맞물려 더욱 그러하다. 여기서 찝집한 기분의 정체를 찾을 수 있었다. 바로 '답습'에 대한 답답함이었다. 강력한 오락성에 감춰져 있던 '답습'.

▲ '툼레이더'와 '라이즈 오브 툼레이더'는 굉장히 많은 부분에서 비슷하다.

게임 '툼레이더'가 영화화됐을 때 많은 팬은 영화가 라라의 육체적인 면, 다시 말해 시각적인 면에 너무 집착한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라이즈 오브 툼레이더'도 그러하다. '액션 어드벤처'가 응당 가져야 할 요소인 퍼즐과 탐험이 너무 가벼워졌다. 제작 콘텐츠가 추가됐지만, 큰 의미는 없었다. 다른 게임도 아닌 장르의 선구자 격인 '툼레이더'에겐 치명적인 단점이다.

이를 연출로 가렸고 액션으로 가렸다. 덕분에 유적을 탐험하고 길을 찾는 '툼레이더' 고유의 쾌감은 완전히 사라졌다. 솔직히 말해서 언차티드를 너무 염두에 둔 것 아니냐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라라의 고뇌와 성장을 통한 재탄생을 보여주기 위해 길 찾기와 어려운 퍼즐을 제거할 수밖에 없었다는 전작의 당위성도 '라이즈 오브 툼레이더'에서는 없다.

인간적인 면모를 전면에 내세운 이야기는 전작으로 충분했다고 본다. 좀 더 다른 이야기를 풀었어야 했다. 시스템적인 발전이 없다면 더더욱 말이다. 이번 작은 아무리 좋게 봐줘도 대중적인 흥행에 성공한 전작을 답습했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스케일이 커진 '작은'활극으로밖에 느껴지지 않는 이유다. '툼레이더'는 어디 갔는지 사라졌다. 그저 종국엔 혼자 살아남는 헝거 게임만 남았다.

원작 '툼레이더' 시리즈의 라라는 시리즈를 거듭하면서 외형적으로나 내면적으로나 점점 더 매력적으로 진화해 갔지만, 라라라는 캐릭터가 굳어지면서 심한 부침을 겪어야만 했다. 더불어 게임 시스템적 발전은 거의 없었다. 최초의 형태에서 변화하지 못했다.

▲ 프랜차이즈 반등을 이끈 '툼레이드: 레전드'는 레퍼런스가 되었다.

사용자들은 더는 '툼레이더' 프랜차이즈에서 신선함을 못 느끼고 퍼즐에 지쳐, 좋은 그래픽과 화려한 액션, 화려한 연출을 자랑하는 게임들로 이동했다. 이때 새롭게 '툼레이더' 프랜차이즈의 개발을 맡은 크리스탈다이나믹스는 '툼레이더: 레전드'로 반등에 성공한다. 쉬운 퍼즐과 스피디한 진행을 내세웠다. 성공을 맛본 크리스탈다이나믹스는 리부트 '툼레이더'를 같은 방법으로 프랜차이즈 중흥기로 이끄는 데 성공한다.

문제는 '라이즈 오브 툼레이더'에도 성공을 맛본 방법을 그대로 시도했다는 점이다. 세 번째다. 그러면서 퍼즐은 점점 가벼워졌다. 영화를 감상하는 듯한 스토리와 연출 그리고 말초를 자극하는 액션이 남았다. 프랜차이즈 정체성이라고 할 수 있는 모험과 액션이 사라졌다. 물론 너무 많은 퍼즐은 게임의 흐름을 지나치게 느리게 만들지만, '라이즈 오브 툼레이더'는 퍼즐이 좀 더 필요했다. '툼레이더'스러운 이야기 전달 구조가 필요했기 때문에 말이다. '기어스 오브 워'같은 방식이 아니라.

역설적으로 크리스탈다이나믹스는 라라 내면에 집중하면서 인간적인 모습을 잃었다. 둘러싼 상황으로 '라라크로프트'를 표현할 뿐 인간 '라라 크로프트'의 매력을 살리는 데 실패했다. 그만큼 이야기 전달에 설득력이 부족했다. 섹시 다이너마이트 바디로 인해 생기는 매력보다 인간적인 면모에 매력을 느끼던 사람들에겐 큰 실망이다.

오랜 프랜차이즈 팬으로서 "내 몸이야말로 최고의 오락거리지!"라고 말하는 듯한 '라라'의 자신감 넘치는, 어떻게 보면 오만에 가까운 표정이 자아내는 분위기가 그립다. 유물에 대한 페티시적인 집착을 보여주는 동시에 아크로바틱한 동작을 펼치며 끝없이 영국식 유머를 던지던, 대놓고 섹스 어필하던, 지금보다 몇 배는 귀찮고 어려웠던 퍼즐을 풀고 난 뒤 쌍권총을 쏘며 달리는 모습이 말이다.

▲ 수집가인지 탐험가인지 돌격대인지 모호하다.

재료 조달의 지루함과 수집품의 존재 역시 단점이다. 단순한 반복에 불과한 재료 조달은 지루하다. 수집 아이템의 존재는 주의를 크게 분산시켜 몰입을 방해한다. 수집 요소는 강박증을 불러오고 강박증이 개입하는 순간 게임은 산만해진다.

정신없이 도망쳐야 하는 상황에서도 잠시 멈춰 수집품이 떨어져 있나 확인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조차 끔찍하다. 어떤 지역을 떠날 때 수집품을 살펴보지 않은 상태라면 불편함을 느끼게 된다. 스스로 게임의 장점인 연출과 몰입을 깎아 먹는 행위다.

고질적인 장르 문제지만 점수나 업적 같은 외적 보상은 당위를 뒤집어쓴 악이다. 다회차 요소로서는 좋을지 모르겠지만, 현실에서 벗어나 간접 경험을 추구하는 장르 특성상 특히나 슬프고 아쉬운 대목이다.


▣ 오래된 프랜차이즈 팬으로서 좀 더 '툼레이더'스러운 변화를 원한다

과거의 흥행 공식을 답습하다가 침체기에 빠졌던 '툼레이더' 프랜차이즈. 정체성을 한 번 접음으로써 중흥기를 맞아 신규 팬층을 만드는 데 성공했고, 기존 팬들에게서도 납득 가능할 만한 평가를 받았다. 그랬기에 '라이즈 오브 툼레이더'는 좀 더 발전해야만 했다. 시스템적으로든 이야기적으로든. 신규팬과 기존팬을 아우를 수 있는 '툼레이더'의 '무엇'을 보여줘야만 했다.

성장과 재탄생의 산통은 1편으로 충분했다. 때리고 부수고 도망치는 과정을 '라이즈 오브 툼레이더'에서 다시 한 번 답습할 필요는 없었다. 탐험과 퍼즐 그리고 적절한 액션으로 꾸며졌다면 전작에서 만들어놓은 훌륭한 이야기 기반을 더욱 흥미롭게 사용할 수 있지 않았을까. 게임 시스템이 전작에서 그다지 변화가 없었다면 더더욱 말이다.

'툼레이더'는 '라라 크로프트'라는 캐릭터에서 절대로 자유로울 수 없는 게임이다. 15년 넘게 기대오던 '라라 크로프트'를 리부트했다. 리부트를 함으로써 내러티브에 당위성을 부여했다. 그러나 '라이즈 오브 툼레이더'는 당위성을 발전시키지 못한 채 답습하고 있다. 어쩌면 '라이즈 오브 툼레이더'는 '라라 크로프트'를 내세우고 리부트란 이름표를 단 새로운 프랜차이즈가 아니겠느냐는 생각마저 든다.

스퀘어는 절대 '툼레이더' 프랜차이즈를 놓을 생각이 없을 거다. 적어도 당분간은. 그렇다면 다음 작품은 좀 더 '툼레이더'스러운 작품이길 기대한다. 프랜차이즈의 지속을 위해서 말이다. '툼레이더'스러운 이야기 전개, '툼레이더'스러운 보물과 탐험, 그리고 '라라'스러운 매력. 다음 작품은 여자판 '언차티드'를 꿈꾸는 작품이 아니라 96년 툼레이더가 그랬던 것처럼 장르 요소를 갖출 것이라 믿고 싶다. 나의 걱정이 오래된 팬의 기우이길 바라면서….

PS 독점작으로 나온 '언차티드2'를 해외의 한 웹진에서 "PS3를 훔쳐서라도 하라."라고 평했다. 마찬가지로 기간 독점이기는 하지만 XBOX 독점작인 '라이즈 오브 툼레이더'를 이렇게 평가하고 싶다. "XBOX가 있다면 나쁘지 않은 선택. 하지만 '라이즈 오브 툼레이더'를 위해서 XBOX를 살 필요는 없어 보인다. 훔칠 필요는 더더욱 없고."라고.

▲ 오랜 팬의 쓸데없는 노파심이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