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이머 중에서 그 누가 기대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 이 기기를 말이다.

'오큘러스 리프트'의 한국 1차 출시가 무산됐다. 한국시간 어제(7일) 새벽 1시부터 시작된 '오큘러스 리프트'의 예약구매 대상국에서 한국이 제외되었고, 현재는 언제 정식으로 출시될지도 미지수다. 미국이 아닌 해외 시장 중에서 한국에 최초로 지사를 세우기까지 했던 것을 볼 때, 이는 다소 당혹스러운 일이다.

▲ 오큘러스VR CEO 팔머 럭키의 트윗

이런 사태에 대해 오큘러스VR의 CEO 팔머 럭키는 "정부 규제(Government Regulation)"때문이라고 그 이유를 일축했다. 하지만 그 단어 하나만으로 모든걸 이해하기엔 전파인증, 게임 심의, 관세, 보다 근본적으로는 게임 산업에 대한 규제책들까지 의심 가는 부분이 너무나 많다. 이를 하나씩 점검해보기로 했다.


■ 가능성 1. 전파인증을 통과하지 못했다?

전자기기의 전파인증이란, 특정 전파의 주파수들은 많은 이들이 공유하여 사용하는 공공재의 성격을 띄기 때문에 각 기기가 주파수 간섭을 일으켜 작동에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하기 위해 만들어진 제도이다. 무선기기가 아니더라도 타 무선기기의 주파수에 영향을 받거나 간섭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국가에는 비슷한 제도가 존재하며, 비록 우리나라의 전파인증 제도가 지나치게 폐쇄적이라는 비판을 받고는 있지만, 그렇다고 없어져서는 안되는 안전장치이다.

우선 가장 유력한 설 중 하나인 전파인증 통과 여부 확인을 위해 국립전파연구원 홈페이지의 고시를 확인했다. 하지만 최근 1년간 '오큘러스 리프트(Oculus Rift)' 혹은 '오큘러스(Oculus)'와 관련된 상호나 상품명으로 인증을 신청한 제품은 없었다.

일단 기존의 오큘러스VR의 기기들이 모두 전파인증을 받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실제로 기존의 오큘러스VR 제품들 중에서 DK2의 전파인증 통과 건은 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오큘러스 리프트'는 한국의 전파인증을 통과한 사실이 없었다. 그렇다면 현재 전파인증을 진행중이지만 모종의 이유로 지연되고 있거나, 혹은 오큘러스 측이 아예 전파인증을 신청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

▲ DK2 버전의 전파인증 정보


■ 가능성 2. 게임심의 때문에 출시를 못한다?

그렇다면 다음 문제는 바로 '오큘러스 리프트'에 탑재되는 게임의 심의 문제다. 게임을 위한 기기인 만큼, 탑재되는 게임의 출시에 문제가 생긴다면 기기 판매에도 문제가 생길 수 밖에 없다. 비록 현재의 심의 제도는 진통이 많고 제도상의 문제가 많지만, 현행 법률 상 지켜야만 한다. 국내에 유통되고 있는 PC, 온라인 게임들은 게임물관리위원회(게임위)의 심의를 거쳐야 하고, 오큘러스VR도 예외는 아니다.

그러나 지난해 5월, 오큘러스 VR과 게임물관리위원회(게임위)의 MOU 체결로 인해 VR 플랫폼 모바일 오픈마켓 게임들은 모두 자체심의를 거쳐 보다 간소화된 과정으로 게임을 출시할 수 있다. 현재 오큘러스VR 오픈마켓에 등록된 약 100여종의 게임, 앱의 경우 이런 자율심의를 거쳐 등록된 것들이다. VR 플랫폼 뿐만 아니라 기존의 모바일 오픈마켓에 등록되는 게임들도 '게임진흥법' 예외조항을 적용 받아 자율심의를 거치고 있다.

▲ 게임위-오큘러스VR MOU 자료

물론 PC, 온라인 게임의 경우 현행 규정대로 게임위의 심의를 거쳐야 한다. 이는 비단 오큘러스VR 뿐만 아니라 모든 플랫폼의 수입 게임들에게 동일하게 적용되는 사항이다. 그러나 게임위와의 통화에서 "현재 게임위에 VR 플랫폼으로 심의를 신청한 PC, 온라인 게임은 한 건도 없다"는 답변을 들을 수 있었다. 실제로 '오큘러스 리프트'에 번들로 제공되는 '이브: 발키리'와 '럭키스 테일' 역시 한국의 게임심의를 받은 정보가 없었다.


■ 가능성 3. 관세 및 세금 장벽의 문제다?

마지막 가능성은 바로 해외 물품을 국내로 들어오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관세의 문제다. 현행법 상, 개인이 미국에서 구매하는 물품들을 개인 우편물로 국내에 들여오는 경우 서적 등 일부 품목을 제외하면 상품액 200달러 초과분(목록 통관)에 대해서는 일정 비율의 통관세를 물리게 되어있다. 때문에 이를 현재 '오큘러스 리프트'에 적용하면 배송비 및 관세 문제로 최소 100달러에서 약 200달러 사이의 추가 비용이 발생해 최대 800달러(한화 약 95만원) 이상의 비용이 들 수 있다.

하지만 이 부분은 오큘러스 한국지사나 페이스북 코리아가 정식으로 유통하게 된다면 전 상품 품목의 수입세 감면을 보장하는 한미 FTA에 따라 면제 혹은 감면 받을 수 있다. 그리고, 혹여 개인 우편물에 붙는 관세를 감안한다 하더라도 이미 타국에 판매되고 있는 '오큘러스 리프트'의 비용을 고려하면 결코 한국만이 유독 비싼 케이스가 되지는 않을 것 같다.

▲ 세금을 적용하지 않은 상품가+배송비의 일본 판매가는 94,600엔이다

'오큘러스 리프트'는 현재 각국마다 판매 가격이 다르며, 별도의 배송비와 세금을 계산토록 하고있기 때문에, 현재 일본에서도 '오큘러스 리프트'를 구입하려면 기본가격 83,800엔(한화 약 84만원)에 세금과 배송비를 포함해 10만엔 이상의 비용이 든다. 유럽 역시 마찬가지로, 제품 가격만 해도 499파운드(영국, 한화 약 87만원) 699유로(유로존 국가, 한화 약 91만원)으로 굉장한 고가를 자랑한다. 그러니 다른 나라의 케이스로 볼 때 관세나 세금, 배송료로 인해 비싸지는 가격이 장애물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 페이스북 코리아, 오큘러스 한국 지사는?

각종 추측성 기사와 확인 안 된 소문이 난무해, 이를 정확하게 확인하기 위해 현재 관련 업무를 맡고 있는 페이스북 코리아의 담당자와 과거 오큘러스VR 한국 지사 관련 인물까지 직접 통화를 시도했지만 연락이 닿지 않았다. 지난해 페이스북이 오큘러스VR을 인수한 이후, 이전 오큘러스VR 한국 지사의 인력 중 소수가 페이스북 코리아에서 관련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때문에 인벤에서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 위치한 '페이스북 코리아'를 직접 찾았다. 하지만 사전 약속이 없으면 취재가 불가능하다는 통보와 함께, 담당자를 만나 정확한 이유를 듣는 데는 실패했다.


결국 현재로서는 그 이유를 명확히 단정짓기 어려운 상황이다. 전파인증, 게임 심의, 관세라는 세가지 문제는 비록 한국의 특수성 때문에 보다 까다로운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어느 나라에나 있는 개념이고 제도이다. '오큘러스 리프트', 그리고 한국이라고 해서 유독 넘기 힘든 장벽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미 한국 지사가 있었던, 또 개발자 킷과 다양한 게임, 앱을 이미 출시한 바 있는 오큘러스VR과 페이스북이 사전에 인지하지 못할 문제가 아니며, 또 충분히 대처가 가능한 문제다. 실제로 DK2와 '기어VR' 용 게임 출시 당시에 이미 해결해보았던 문제들이다.

때문에 여기서 갑작스럽게 남겨진 팔머 럭키의 "정부 규제(Government Regulation)"라는 답변은 그 이유를 명쾌하게 만들기 보다는 더 많은 의문점을 남기고 있다.

앞서 언급했듯, 한국은 오큘러스VR의 외국 지사가 처음으로 세워진 곳이다. 이는 그만큼 수많은 게이머, 게임 개발자들이 오큘러스VR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우리가 왜 '오큘러스 리프트'를 제때 만나볼 수 없는지 그 이유를 궁금해 하고 있다.

전파인증, 제공하는 게임의 심의 문제, 관세 등, 그 원인은 다양한 추측이 가능하지만, 결국 확실한 원인을 파악할 수 있는 방법은 당사자인 페이스북과 오큘러스VR의 해명이다. 하루라도 빨리 그 이유에 대한 답을 들을 수 있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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