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초 전 국민의 관심이 쏠렸던 것은 다름 아닌 AI였다. 지난 3월 9일부터 15일까지 진행된 '구글 딥마인드 챌린지 매치'에서 벌어진 '이세돌 VS 알파고'의 대결은 전 세계의 관심이 집중될 정도로 많은 이슈를 모았다.

결과야 '인간의 패배. 허나 갚진 1승' 정도로 마무리 되었으나, 'AI'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일깨운 사건이라 하겠다. 인공지능이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을 직접 체험했고, 생각보다 가까이에 있다는 사실을 느꼈다고나 할까? 여러모로 AI에 대한 연구와 관심들이 집중되기 시작했다.

▲ 'Where is Se-Dol conner?'

세기의 대결로부터 1개월이 지난 4월 12일. 포켓몬으로 인공지능과 싸우는 전략 배틀, '포켓몬 코마스터'가 조용히 서비스를 시작을 알렸다. 그것도 '일본 장기기사를 이겼다'는 AI의 우수성을 앞세워서 말이다. 참으로 시기적절한 자기 어필이 아닐 수 없다.

해당 게임의 AI는 적이 아닌 일종의 동반자로 설정되어 있다. 개발사는 "게임을 진행하거나 버전이 업그레이드 될수록 AI는 점차 성장하고, 유저의 생각과 고민을 돕는다."고 친절한 설명까지 달아뒀다. 전략과 자동(AI)이라는 두 키워드를 앞세운 '포켓몬 코마스터'는 거대 IP의 외전치고는 독특한 축에 속했다.

▲ 포켓몬 코마스터의 프로모션 영상



게임 방식은 '고누'와 흡사하다. 정사각형 안에서 말들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상대방 진영에 도착하면 승리를 따내는 단순하고 직관적인 룰을 가지고 있다. 상대방의 말을 자신의 말로 포위하면 제거할 수 있다던가, 시작할 수 있는 위치가 지정되어 있는 등 고누의 룰을 기반으로 만든 흔적들이 눈에 띈다.

단순하고 직관적인 룰은 어린 시절 고누를 해봤던 사람이 아닐지라도 게임에 쉽게 적응할 수 있다. 하지만 깊이가 없는 것은 아니다. 스테이지 하나를 클리어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지만, 움직임 하나하나를 신중히 선택하는 과정이 요구된다. 게임의 핵심이 되는 요소와 깊이는 과거 사람이 하던 놀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

▲ 고누의 규칙과 특징을 따온 셈. (출처 : 하동 어린이 군청 홈페이지)

차이가 있다면 '말(일반적으로 바둑알)'을 포켓몬 피규어가 대체한다는 것과 각각 고유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말마다 사용할 수 있는 기술과 특징이 있으므로 덱 구성에서 전략을 고민해 볼 수 있고, 실제 게임을 운용하는 방법이 달라지기도 한다.

자폭 스킬을 가진 피규어로 공격과 방어를 겸하다가 빈틈을 찾아 돌입한다든가, 방어 위주 스킬을 가진 피규어로 중요 거점을 방어하는 등 다양한 덱들을 구성해볼 수 있다. 여기에 일종의 버프 카드인 '플레이트'를 적재적소에 사용하는 수싸움이 게임 내내 반복된다.

▲ 피규어(말)와 함정카드(플레이트)의 조합이랄까?



게임 내에서 일반적으로 진화 후의 포켓몬 피규어들은 높은 등급이 매겨져 있다. 심지어 '뮤츠'같은 전설의 포켓몬들은 특수한 능력을 갖추고 있기까지 하다. 뭐, 원작에서도 진화 전후로 능력차이가 있었으니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다. 레벨이 높은 포켓몬일수록 강한 것은 사실이니 말이다.

문제는 획득처가 한정되어 있다는 점이다. 포켓몬 피규어마다 가지고 있는 스킬이 다른 만큼, 다양한 종류의 피규어를 모으는 과정이 요구된다. 하지만 게임 내에서 다양한 피규어를 얻는 데에는 수많은 애로사항이 따른다.

▲ 실제 미니 피규어 만큼의 가격이기도 하고...

때문에 뽑기가 강제되는 구조를 보일 수밖에 없다. 뽑기를 통하지 않으면 등급이 높은 포켓몬을 수집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과금하지 않는 유저들은 스테이지를 클리어한 뒤, 보상 룰렛에서 나오는 것을 획득하면 된다. 하지만 이를 통해서는 높은 등급의 피규어를 얻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피규어마다 성능차이가 있으니 등급이 낮은 피규어만으로는 다양한 전략을 시도조차 해볼 수 없다.

매일 게임에 접속할 때마다 10 ~ 50개의 유료재화를 지급함으로써 해결해 나가려는 모습을 보여주기는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구조적인 단점이 메워지는 것은 아니다. 스테이지를 클리어할 때 '무작위'로 얻을 수 있도록 한 것도 확률이 많은 영향을 미치니 아무래도 불만족스럽다. 전략을 시도하기 위해서 뽑기가 강제되는 모순이 발생하는 셈이다.

▲ 아놔... 왜 계속 코인만 주는건데!!!



코마스터를 진행하다 보면 뽑기 외에도 몇 가지 불합리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뛰어난 인공지능을 갖췄더라도 승부를 결정짓는 것은 '확률' 그리고 '운'이기 때문이다. 게임 곳곳에 확률이 미칠 수 있는 시스템들을 찾아볼 수 있고, 이런 것들이 플레이에 변수를 부여한다. 전략을 표방하는 게임에서 운이 미치는 요소가 큰 것은 의아하긴 하지만, 일단은 일장일단이 있는 시스템이라 할 수 있다.

위와 같은 결론을 내린 것은 포켓몬 피규어 (말)의 획득부터 전투까지 모든 것에 확률이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이는 앞서 언급했던 피규어 간의 등급과 스킬 차이를 '전투 시에 룰렛'을 이용하는 것으로 균형을 맞추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 등급이 높다고 '반드시 좋은' 편은 아니긴 하지만...

전투에 돌입하면 피규어의 공격 스킬이 적힌 룰렛을 돌려서 나온 결과 값을 비교해 승패를 가르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공격이 빗나가는 미스부터 100이 넘는 공격 스킬, 상대방의 위치를 1칸 미루거나 상대방과 자신의 위치를 바꾸는 등 피규어에 따라 보유한 스킬과 효과가 달라진다.

피규어 등급에 따라 능력과 공격력이 차이 나는 불합리함은 룰렛의 존재 덕분에 희석되기 시작한다. 아무리 등급이 높은 피규어라고 할지라도, '미스'는 일정 영역을 가지고 있으니 말이다. 실제 게임에서는 '등급이 높은 피규어라도 운 없이 미스가 나오면 저등급 피규어에게 패배하는 상황'이 생각보다 많이 발생한다.

▲ 솔직히 운이라 AI 할아버지가 와도 어떻게 안된다.

따라서 다양한 전략을 구상했을지라도 '운이 큰 상황을 좌지우지할 때'가 많은 편. 같은 스테이지라도 3턴만에 승리하는가 하면, 반대로 어이없게 패배하기도 한다. 전략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플레이트나 덱 세팅은 이런 '운빨'을 최소화 시키는 역할을 할 뿐이다.



고누의 룰을 간소화하면서도 나름대로 깊이를 부여한 것은 확실히 칭찬할 만하다. 단순 AI 대전뿐만 아니라 유저 간 대결모드도 지원하고 있다. 사람 사이의 대전에서는 오직 자신의 실력으로 승부를 내야만 한다.

확률을 통제하려는 전략과 플레이트. 그에 따른 AI의 다양한 반응 등은 단순함에서도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요소로 꾸려졌다. '굳이 포켓몬이 아니었더라도 괜찮게 느껴지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한 수마다 집중해서 플레이할 수 있는 요소들을 갖춰뒀다.

▲ 랭킹, 유저 간 대결 등 콘텐츠도 꽤 준비한 티가 났다.

다만, 보드 전략 게임이라는 거창한 타이틀을 앞세운 것과는 달리 게임 내에서 전략이 차지하는 비중이 적다는 것은 아쉽다. 전략은 덱과 플레이트를 구성할 때에 고민할 뿐이며 실제 경기에는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피규어의 획득처를 한정시켰다면, 다양한 시도를 해볼 수 있도록 허들을 낮춰주는 편이 나았을 것 같다.

그럼에도 '간단하게 집중해서 즐기기'는 좋은 모바일 게임이라 평하고 싶다. 포켓몬스터 팬들에게는 수려한 모델링으로 소소한 재미를 줄 수 있도록 했으며, 포켓몬을 잘 모르더라도 게임을 즐길 수 있는 기본 시스템은 충분히 갖췄다.

조금은 독특한 게임을 찾고 있는 유저 또는 포켓몬 팬이라면 AI와 함께 코마스터에 입문해 보는 것은 어떨까? 아직 국내에 서비스를 시작할 기미는 없으나, 다른 국가의 마켓을 뒤져볼 가치는 있을 것이다.

▲ 깊게 그리고 꾸준히 즐기면 매력적인 게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