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률'

사실 게이머에게는 그리 낯선 단어가 아니다. 게이머로 살아가다 보면 수없이 많은 순간에 확률에 기대기 마련이니까. 단순히 아이템을 만들 때도, 확률에 따라 성패가 갈리곤 하니 말이다. 굳이 대한민국만의 일이 아니다. 해외에서 개발한 게임에서도 확률에 기대는 콘텐츠는 흔히 존재하고, 대부분 게이머는 수긍한 채 게임을 즐기고 있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확률에 의존한 게임 내 경제 시스템은 유저의 파워 인플레이션을 조절하고, 게임 내에서 소비와 생산의 순환을 만들어내기 위해 필수적으로 이용되는 요소다. 누구나 쉽게 좋은 장비를 얻을 수 있다면, 게임 내 장비가 모두 평준화되고 말 테니까.

하지만 '현금'과 결부될 경우, 이 논리의 허점은 극명하게 드러난다. '소비'는 그로 인해 얻을 수 있는 무언가를 기대하기 때문에 성립되는 행동이다. 상품의 가치만큼의 재화를 지불하고, 상품을 얻는 것. 그것이 소비다. 그러나 무엇을 얻을지 알 수 없다는 것. 알더라도 얼마나 투자해야 얻을 수 있는지 모른다는 점 때문에, 현금 결제와 확률의 결부는 항상 논란의 여지를 만들어 왔다.

어떤 아이템을 일정 확률로 주는 박스가 존재할 때, 그것이 몇 퍼센트의 확률로 해당 아이템을 주는지 알 수 없는 경우 게이머가 과연 합리적인 소비를 할 수 있느냐는 의문에서 온 논란이다. 이런 논란에 게임업계는 지금까지 '자율 규제'라는 수단을 통해 대응해 왔다. 각 개발사가 나름의 기준을 세우고, 이에 맞춰 정보를 공개하는 것. 하지만 게이머는 이에 만족하지 못했다.

'확률형 아이템'의 정보 공개에 대한 법제적 규제의 움직임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2015년, 새누리당의 정우택 의원을 포함한 10인은 '게임의 사행성을 줄이고, 과소비를 억제하기 위해서'라는 명분으로 '확률형 아이템 규제 법안'을 발의했다. 하지만 이 법안은 현실적인 게임 시장의 구조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발의되었고, 결국 갑론을박을 이어간 끝에 2016년 5월 29일, 19대 국회가 마무리되면서 폐기되었다.

두 번째 걸음이다. 더불어민주당의 노웅래 의원이 발의한 '확률형 아이템 게임 내 확률 표시법'. 진짜 게이머의 '알권리'를 보호하기 위함인가? 혹은 게임업계에 대한 부드러운 경고인가. 2016년 8월 30일, 국회의원회관 제8 간담회실에서 '게임이용자의 알권리 보호를 위한 토론회'라는 이름으로 이에 대한 토론회가 진행되었다.


앞서 말했듯 지난 7월, 노웅래 의원은 '확률형 아이템 게임 내 확률 표시법'의 발의한 바 있다. 해당 법안의 상세 내용은 다음과 같다.


토론회는 경희대학교 행정학과 윤지웅 교수가 좌장을 맡아 진행하였으며, 경희대학교 문화콘텐츠학과의 유창석 교수와 서울대학교 경영전문대학원 유병준 교수가 발제를 맡았다. 토론자로는 한양대학교 법학전문대의 황성기 교수를 비롯해 녹색소비자연대의 윤문용 정책국장, 그리고 문체부 게임컨텐츠사업과의 최성희 과장이 참여했다.


토론회에 앞서, 더불어민주당 노웅래 의원과 국민의당 이동섭 의원이 토론회에 참석한 토론자 및 관객들에게 인사의 말을 전했다.

노웅래 의원은 "확률형 아이템의 무분별한 남용이 사행성을 조장할 수 있는 것 아니냐?"하는 의견이 존재하며, 이 때문에 업계에 대한 불신이 깊어지고 있다고 말하며, 확률을 공개하는 법안을 입법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노웅래 의원은 "법안을 입법한 취지가 게임업계에 대한 게이머들의 신뢰를 높이고, 상생하기 위해서이지만, 이 법안 자체를 게임업계에 대한 규제로 이어질 것이라는 의견도 적지 않다"며, 오늘의 토론회를 통해 입법 과정에 고려할 수 있는 더 나은 견해를 듣길 바란다고 말했다.

▲ 더불어민주당 노웅래 의원

이어 인사를 전한 이동섭 의원은 "오늘 토론회에서 각계의 전문가 분들을 통해 이 법의 장, 단점과 실효성, 부작용 및 향후 대책에 대한 다양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며 토론회에 참석한 모든 참가자에게 감사의 말을 전했다.




서울대학교 유병준 교수 : '확률형 아이템' 게임의 일면, 확률 공개는 의미가 없다

▲ 발제 중인 서울대학교 유병준 교수

서울대학교 유병준 교수의 발제와 함께 본격적인 토론이 시작되었다. 유병준 교수는 '확률형 아이템의 게임사용자 효용 변화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분석 연구'라는 화두를 던졌다. 유병준 교수는 "7월 발의된 게임산업 진흥법 일부 개정 법률안에 대해 게임업계는 'K-iDEA'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확률형 아이템의 자율 규제로 충분하다고 주장하고 있다"라고 말하며, 게임의 부분 유료화 모델을 경제학적으로 해석해 게임의 수익모델 변화를 그리고, 이에 따른 게임의 효용 변화를 정리해 보여주었다.

유병준 교수는 "부분유료화 모형은 구조적인 문제가 있었다"라며, 과금의 양에 따라 게임 밸런스가 결정되는 것에 유저들이 심한 불만을 느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확률형 아이템은 과금 유저와 무료 유저 모두가 피해의식을 느끼지 않으면서, 게임의 재미를 느낄 수 있도록 밸런스를 조절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라고 역설하며, 확률형 아이템의 등장은 자연스럽게 이뤄질 수밖에 없었던 일이라 주장했다.

이어 그는 '부정적 캐스케이드 효과'와 '완전 경쟁 시장의 원리'등에 입각해 경제학적 시선에서 확률형 아이템을 조망했고, "아이템의 상세 확률 공개가 구매를 줄인다는 근거가 없으며, 효용이 검증되지 않은 상황에서 소수의 유저에게 그렇지 않은 대다수의 사람이 부화뇌동하는 비합리적 무리 행동이 발생할 우려가 크다"라고 말하며, 확률의 상세 공개가 효과적이지 못하다고 주장했다.


경희대학교 유창석 교수 : 법제적 움직임에 앞서 확률형 아이템에 대한 연구가 선행되어야 한다

▲ 유창석 교수는 정우택 의원(사진)의 발안 때보다 더 심도 있는 연구의 필요를 주장했다.

이어 경희대학교 유창석 교수의 발제가 이어졌다. 유창석 교수는 '확률형 아이템의 의의 및 변천사, 그리고 시사점'이라는 주제로 발제를 시작했다. 먼저 확률형 아이템이 어떤 환경에서 만들어졌고, 어떤 구조를 가졌는지를 먼저 파악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의견이었다.

유창석 교수는 보안이나 불법 복제 등의 문제 때문에 디지털 콘텐츠의 한계 비용이 0원이 된 상황에서, 이 틀을 깨고 수익을 창출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확률형 아이템이라고 말하며, 첫 확률형 아이템은 2004년, 넥슨 재팬이 서비스하는 '메이플스토리'에서 만들어졌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일본의 '컴플리트 가챠'를 예로 들며 확률형 아이템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줄여서 '콤프 가챠'라고도 불리는 형태의 비즈니스 모델은 랜덤으로 들어 있는 몇몇 부분을 모아 모든 부분을 모을 경우, 상당한 가치의 보상을 하는 형태를 말한다. 그는 이러한 '컴플리트 가챠'의 경우 과도한 금액을 지출할 수 있는 구조적 특징을 가지고 있어 일본에서도 금지되었던 형태라고 지적했다.

마지막으로 유창석 교수는 '확률형 아이템' 그 자체에 집중하는 것보다 확률형 아이템의 변형이나 악용 등에서 오는 부작용을 방지하고, 이성적인 소비를 위한 밑바탕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하며, 이러한 사회적 문제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양대학교 황성기 교수 : 법률적 시점에서 확률 공개 강제는 '직업수행의 자유'를 제한한다

유창석 교수의 발제가 끝난 이후, 본격적으로 토론자들의 발언이 시작되었다. 한양대학교의 황성기 교수는 이 입법안이 '과소비의 억제', '사행성의 억제', '알권리 보장'이라는 세 가지 목적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하며, 이를 법리적인 입장에서 살펴보았다고 말했다.

황성기 교수는 현재의 시스템이 직업수행의 자유에 의해 보호받고 있는 것이며, 게임물과 관련된 영업의 내용이나 방법 등에 대한 규제는 직업수행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제한이 '과잉금지 원칙', '명확성 원칙', '본질적 내용 침해금지 원칙' 등 기본권 제한의 한계원리 내에서 이뤄져야 할 일이라는 뜻이었다.

이어 그는 "게임 콘텐츠 소비자인 게이머에게 게임 이용과 관련된 상품이나 서비스를 어떠한 방식을 통해서 제공하고, 게임상품이나 서비스 제공에 대한 대가로 얼마를 받을 것인지는 전적으로 게임 사업자의 직업수행 자유를 보호하는 영역에 해당한다"며, "확률형 아이템에 대한 법적 규제는 게임사업자의 직업수행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이 분명하다"고 역설했다.

여기까지 말한 황성기 교수는 핵심적인 내용을 말하기 시작했다. 그는 소비자의 '알권리 보장'에 대해 "알권리와 영업의 자유가 서로 상충하는 부분은 균형의 조정이 필요하며, 그렇다고 해도 '알권리'를 주장하기 위해 사업자의 영업 비밀을 공개하라 요구할 수는 없다"라고 말했다. 예컨대 시중에서 판매하는 음료수나 다과류의 경우 일정한 범위에서 성분이나 원재료 공개를 하나, 원재료의 구매 가격이나 마진 등 가격 체계에 대해서는 영업 비밀이므로 공개를 강제할 수 없는 것과 같은 맥락이었다.

마지막으로 황성기 교수는 비슷한 상황에서 진행된 몇 가지 사건의 판례를 들며, KBS와 같은 공익 법인이라 해도 정당한 기본권 보호의 필요성이 있는 경우 정보의 비공개를 인정한다고 주장했다. 하물며 사기업인 게임 개발사는 어떻겠냐는 것이었다.

▲ 판례에 의하면 강제적 확률 공개는 기본권 제한이 될 수 있다.


녹색소비자연대 윤문용 정책국장 : 게임업계와 게이머 간 불신이 심각... 확률 공개해 신뢰 회복해야 한다

▲ 녹색소비자연대 윤문용 정책과장

이어진 순서는 녹색소비자연대의 윤문용 정책국장의 발언이었다. 윤문용 국장은 "앞서 나온 발제와 발언들이 모두 이 법안에 대한 반대 의견이기에 멘탈이 흔들렸다"라고 말하며, 게이머와 전문가, 국회 상임위가 가진 확률형 아이템에 대한 인식 조사 결과를 기준으로 발언하겠다고 말했다.

윤문용 국장은 현재 한국 게임 시장이 상당한 위기 상황에 있다고 말하며, 최근 10여 년 간 한국에서 개발된 게임 중 PC방 인기순위 상위권에 존재하는 게임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왜 이런 상황이 되었는지에 대한 깊이 있는 접근이 필요하며, 어째서 게이머와 국내 게임업계간의 신뢰가 깨졌는지에 대해 알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윤문용 국장은 이 '신뢰의 손실'이 굉장히 큰 문제라고 말했다. 게임 내 재화로는 사행성이 인정되지 않는다는 의견에는 게임 내 아이템은 이미 현금 가치로도 환산이 되어 있다고 말하며 충분히 사행성으로 연결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기업의 입장, 경제학적 논리보다 '게임업계와 게이머 간의 신뢰도 회복'을 무엇보다 먼저 해결해야 할 선결과제라 주장했으며, 이를 해결하지 않는 한 게임업계의 지속적인 발전은 요원한 일이라고 말했다. 게이머와 게임사 간의 건전한 관계 구축을 위해서라도 확률의 공개는 필요하다는 것이 그의 논지였다.

마지막으로 윤문용 국장은 전문가들과 일반 게임 이용자들을 대상으로 펼친 설문 조사 결과 대다수의 인원이 확률형 아이템의 법제화를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으므로 최소한의 법제적 움직임은 있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문화체육부 최성희 과장 : 확실히 문제는 존재, 하지만 강제보다는 자율 규제 강화를 우선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문체부의 최성희 과장이 발언에 나섰다. 최성희 과장은 "2000년대 중반 이후로 확률형 아이템과 부분유료화 모델이 업계의 성장을 만들어낸 모델이며, 대체 모델이 현재 없다는 것은 맞지만, 이로 인한 사회적 문제나 반론 등은 꾸준히 들어서 알고 있다. 조심히 접근해야 할 영역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확률형 아이템 체제를 하라 마라의 문제가 아닌, 그에 대한 정보를 제대로 공개해야 하는지 아닌지에 대한 생각을 주로 해야 하며, 소비자와 게임사 간에서 어떤 스탠스를 취해야 할지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라고 말한 최성희 과장은 "현재 자율 규제 체제에서 이용자 불만이 많은 것은 사실인 것 같지만, 이를 법이라는 강제적 방향으로 가야 할지, 혹은 자율 규제를 강화해 신뢰성을 회복하는 방향으로 갈지는 고민해 봐야 할 문제"라고 말했다.

최성희 과장은 "지난 1년간 업계에서 자율 규제를 해왔는데, 확률형 아이템에 관한 민원을 살펴보면 사실 좋진 않았다"라고 말하며, 먼저 어떻게 해야 소비자의 불만족에 대응하고,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지를 먼저 고민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결론적으로 최성희 과장은 '법제적 움직임'은 보다 신중하게 결정해야 할 사항이 맞지만, 소비자들의 불만족이나 현재의 자율 규제 체제에 대한 불만은 엄연한 사실이므로, 이로 인해 빚어진 불신을 회복하는 것이 먼저라고 주장했다.

▲ 작년 4월, 정우택 의원의 개정안 발의에 대해 이야기하는 K-iDEA 강신철 대표


토론은 뜨거웠다.

발제자와 토론자 모두 현 사태에 대해 뚜렷한 시선을 가지고 있었으며, 각각의 의견이 겹치거나, 충분한 연구 없이 날림으로 이뤄진 논리가 없었다. 몇몇 발언은 '확률형 아이템의 확률 공개'에 부정적인 입장을 표했다. 법률적인 문제로 확률의 공개가 성립될 수 없다고 주장한 황성기 교수나 경제학적 관점에서 확률 공개는 불필요하다는 유병준 교수의 발언이 대표적인 반대 입장이었다.

두 교수와 달리, 한 걸음 물러선, 다소 소극적인 반대 입장도 있었다. 경희대학교 유창석 교수는 확률형 아이템의 유래와 현실, 그리고 현 상황에 대해 말하며, 현 상황에서 '확률형 아이템'을 법제적으로 강제하는 것은 시기가 아니며, 먼저 확률형 아이템에 대한 연구와 올바른 상황 파악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녹색소비자연대 윤문용 국장은 법안과 법제적 움직임에 찬성하는 의견을 보여주었다. 그는 단순히 수익의 계산과 법률적인 문제를 넘어 게이머와 게임사 간의 불신이 상당히 심각한 상황에 이르렀다고 경고하며, 이를 불식하기 위해서라도 확률형 아이템의 확률 공개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기업 입장에서도 이는 손해가 아닌, 신뢰를 쌓을 기회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문체부의 최성희 과장은 중립적인 스탠스를 보여주었다. 그녀는 현재 문체부나 게임물관리위원회에 들어오는 민원이나 주변의 의견을 들어볼 때 '확률형 아이템'과 관련된 이슈가 문제가 있는 것은 사실이며, 시행 중인 자율 규제에 대한 만족도도 낮다고 말했다. 하지만 법제적 움직임은 아직 조금 더 논의해야 할 방안이며, 자율 규제를 더욱 강화해 게이머들의 신뢰를 얻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발제자와 토론자. 다섯 인물의 견해는 모두 달랐지만, 그들의 의견은 모두 일리가 있었다. '확률형 아이템'이라는 주제가 게임업계 전반에서 관심을 가진 뜨거운 감자라는 것이 증명된 것이라 보아도 무방하리라. 노웅래 의원과 이동섭 의원이 발의한 법안이 실제로 개정안에 포함될지는 아직 알수 없는 일이다. 그들 또한 법안에 필요한 의견을 묻고, 보다 다양한 견해를 얻고 싶어서 이런 토론회를 준비했을 테니 말이다. '확률형 아이템의 확률 공개', 새로운 개정안으로 포함될 것인지, 혹은 작년 발의되었던 법안처럼 폐기될 것인지. 충분히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