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진행된 TGA(The Game Awards) 시상식은 웬만한 게임쇼 못지 않은 풍부한 발표 볼륨과 함께 진행되었습니다. 기존의 게임쇼가 대거 취소되면서 게임을 내세울 만한 쇼케이스가 마땅치 않았기 때문인지, 수많은 신작들의 게임 플레이 영상들이 TGA 2021을 통해 공개되었죠.

그리고 이날 처음 공개된 엠바크 스튜디오의 '아크 레이더스(ARC Raiders)'는 굉장한 의미를 지닌 작품입니다. 이쪽에 관심 있으신 분들이라면 한 번쯤 들어 보았을 넥슨 산하의 개발사인 '엠바크 스튜디오'의 첫 작품이 최초로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죠.

이번 발표 이전의 아크 레이더스는 그야말로 소문만 무성했습니다. 거진 1년 전인 지난 1월 3일, 넥슨의 오웬 마호니 대표는 2021년을 앞둔 신년사에서 던파 모바일과 카트라이더 드리프트, 그리고 엠바크 스튜디오의 신작을 묶어 2021년 출시 예정인 세 종의 작품이라 발표했던 바 있습니다. 엠바크 스튜디오의 신기술을 통해 개발 파이프라인과 게임 플레이를 완전히 바꾼 AAA급 작품을 준비 중이라 덧붙였죠. 1년이 미뤄지긴 했지만, 그 마지막 작품이 처음 공개된 것입니다.

아크 레이더스는 새로운 시대(Era)를 맞아 넥슨이 던지는 출사표입니다. 2010년대 중반 이후, 대한민국 게임시장에 도래한 모바일 강점기도 어느덧 황혼기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여전히 모바일 게임은 강력한 위력을 뽐내고 있지만, 플랫폼 교류가 쉬워지고 전체적인 하드웨어 성능이 상향된 지금은 국내 게임 산업의 초점도 콘솔과 PC 게임으로 다시 맞춰지고 있습니다. 아크 레이더스는 넥슨의 자체 개발작은 아니지만, 어쨌거나 넥슨의 자본이 투자되어 넥슨 산하의 개발사가 만드는 PC, 콘솔 베이스의 AAA급 게임이죠.

물론 이번에 공개된 영상은 매우 단편적이며, 게임에 대한 디테일한 정보를 얻기엔 퍽 짧은 길이입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공개된 정보와 영상 속에서 엿볼 수 있는 모습들을 추려 '아크 레이더스'가 어떤 게임일지를 조금이나마 유추해볼까 합니다.




예상 장르: 루트슈터 + RPG

먼저, 이미 공개된 게임의 정보를 살펴봅시다. 아크 레이더스의 '아크'는 게임 속 적대 세력인 기계 군단을 일컫는 말입니다. 영상에서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육 기계들'이라 표현했고, 실제로 영상 내에서 상대하는 적들도 모두 기계들입니다. 그리고 '아크 레이더스'는 이들에 맞서는 저항군을 말하죠.

게임의 장르는 쉽게 유추 가능한데, 퍽 흔한 루트슈터 + RPG 게임이 거의 확실합니다. 로비 공간이 별도로 분리되어 있고, 파티를 꾸리거나 매칭을 통해 전투에 나서 아이템이나 소재를 파밍하는 구조로 비슷한 디자인의 게임으로는 '데스티니' 시리즈나 '더 디비전' 등을 꼽을 수 있습니다. 여기서 로비 공간이 분리되는 건 많은 슈터 + RPG 장르의 공통적인 특징인데, 영상에서는 딱 이 역할을 할 만한 장소가 이미 공개되었습니다. 영상 32초경에 나오는 Bastion of Resistance(저항의 보루)가 그것이죠.

▲ 로비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되는 '저항의 보루'

파티 플레이는 기본적으로 3-4인 단위로 이뤄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매우 일반적인 사이즈의 분대 규모이며, 역할 분배가 이뤄지면서도 구성이 쉬운 적절한 인원 수죠. 보다 정확히는, 3인 단위가 유력합니다. 영상 중 3인이 노출되는 장면이 꽤 많고, 마지막 장면 또한 거대 보스의 앞에 서 있는 세 명의 저항군을 볼 수 있습니다. 별개로, 지난 11월 진행된 넥슨의 3분기 실적발표 당시 아크 레이더스(당시는 프로젝트 파이오니어)를 언급할 때도 3인이 등장하는 이미지를 활용했던 바 있습니다.

▲ 기본적으로는 3인 분대 체제가 유력

다만 일반적인 분대 규모 이상, 즉 2-3개 분대가 함께 플레이하는 콘텐츠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습니다. 영상에서는 최대 9인이 함께 전투에 나서는 모습이 공개되었는데, 9인은 일반적인 스쿼드 규모로 적절한 인원은 아닙니다. 2-3개 규모의 분대가 함께 나서거나, 세션 단위로 진행되는 글로벌 이벤트가 존재하리라 예측이 가능하죠. 실제로 많은 게임에서 분대 규모의 인스턴스 외에도 세션 단위 글로벌 이벤트나 대인원 콘텐츠가 존재합니다.

▲ 최대 9인이 함께 나서는 장면 포착

RPG 요소가 가미되리란 점도 영상 내에서 살펴볼 수 있습니다. 먼저, 등장하는 인물들 모두 딱히 이렇다 할 특색이 없습니다. 모두 매우 흔한 옷차림을 하고 있으며, 투구 등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죠. 캐릭터 베이스 게임이라면 캐릭터의 개성을 해칠 수 있기에 절대 저런 식의 캐릭터 디자인은 하지 않을 테지만, 캐릭터 커스터마이징을 통해 자신의 캐릭터를 만드는 구조라면 납득이 되는 부분입니다.

또한, 영상에서는 도구, 혹은 능력이라 부를 만한 요소로 볼 수 있는 두 가지 요소(로프 그랩, 로켓 점프)가 등장하며, 자동화기와 점사 화기, 중화기가 모두 등장합니다. 다양한 무기 체계와 특수 능력들이 등장한다는 뜻이며, 이는 곧 각각의 멤버들이 자신에게 맞는 역할군을 담당해 게임을 진행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 캐릭터 베이스라기엔 딱히 특색 없는 외형

또한, 기본적으로 아크 레이더스는 F2P게임이며, F2P게임은 유료 게임에 비해 유저 리텐션(잔존율)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이는 곧 단발성 플레이가 아닌 꾸준히 게이머를 잡아 두어야 할 게임 디자인이 요구된다는 뜻이며, 이런 게임의 경우 거의 대부분 캐릭터 성장 요소를 어떻게든 집어 넣습니다. 장비 등급의 유무나 장비 강화 등을 넣는다거나, 캐릭터 레벨에 따른 기술, 파츠 해금 등 조금만 생각해도 많은 성장 요소가 가미될 수 있습니다.



예상 사양: 평균 이상 사양의 컴퓨터

시스템 요구 사양에 대해서는 아직 베일에 쌓여 있기에 예측만 해보자면, 만만한 사양은 아니리라 예상됩니다. 아크 레이더스는 PC외에 콘솔 출시 계획도 함께 밝혔는데, 8세대 하이브리드가 아닌 9세대 콘솔로만 실행 가능하다 알려졌습니다. PS5, Xbox 시리즈 X,S에서만 실행 가능하다는 뜻입니다. 최근 출시된 '배틀필드 2042'의 경우 8세대 콘솔에서도 실행 가능하나 하드웨어 사양의 문제로 8세대 콘솔 버전은 상당 부분 축소된 형태의 게임이 된 걸 고려하면, 아크 레이더스의 요구 PC 사양은 평균 이상으로 책정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는 개발사인 '엠바크 스튜디오'의 특징에서도 유추할 수 있습니다. 엠바크 스튜디오의 창립자이자, 넥슨 이사회의 일원인 '패트릭 쇠더룬드(Patrick Söderlund)'는 배틀필드 시리즈의 개발사인 EA 다이스의 CEO이자 배틀필드 시리즈의 최고 책임자로 활동했던 바 있습니다. 엠바크 스튜디오 내에도 다이스 출신의 개발자들이 폭넓게 포진해 있으며, 이들이 만들던 배틀필드 시리즈는 대대로 멋진 그래픽과 이에 걸맞는 높은 요구 사양으로 유명합니다.


▲ 애초에 이 정도 퀄리티가 만만할 리 없다.

물론, 프로스트바이트 엔진을 활용한 배틀필드 시리즈와 달리 아크 레이더스는 언리얼 엔진 4를 사용하기 때문에 완전히 확신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프로스트바이트 엔진은 기본적으로 버그는 많아도 최적화는 꽤 뛰어난 엔진이었기에 아무래도 최적화 측면에서는 다소 불리하지 않을까 예상됩니다.

다만, 이 부분은 개발 과정에서 충분히 조절이 가능한 부분인데, 실제로 영상 내 캐릭터들의 움직임을 보면 배틀필드 시리즈의 움직임과 굉장히 닮아 있으면서도 비교적 경직되어 있다는 걸 확인할 수 있습니다. 퀄리티보다 퍼포먼스에 초점을 맞출 경우 어떻게든 보급형 PC 수준으로 낮출 수야 있을 겁니다. 이런 조치는 프로덕션 막바지, 혹은 포스트 프로덕션 초기 단계에서 충분히 보완 가능한 부분이긴 하겠지만, 당장 예상하기로 최초 출시 기준으로는 초 고사양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느정도는 성능이 받쳐 주는 컴퓨터들이 유리하리라 짐작됩니다.


▲ 배틀필드의 애니메이션과 유사하지만 살짝 경직된 모습



불안 사항: P2W? 랜덤 박스?

전체적으로 평하자면, 아크 레이더스의 첫 영상은 꽤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늘 그렇듯 트레일러의 과장 광고 논란은 이번에도 존재하고, 아크 레이더스 또한 이를 피해갈 수는 없었지만, 일단 영상이 사기가 아니라는 전제하에 아크 레이더스는 충분히 기대할 만한 작품으로 꼽기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스타워즈와 신스 음악으로 대표되는 80년대의 레트로-퓨처 컨셉도 꽤 깔끔하게 맞아 떨어집니다. 영상 속 인물들의 옷차림과 방어구, 총기 디자인은 스타워즈의 느낌이 여러모로 묻어나고, 신스웨이브 사운드 트랙은 호불호가 갈리긴 하지만, 80년대 감성을 드러내기 위한 장치로서 충분히 좋아 보입니다. 아크 레이더스가 아니라 아타리 게임 콘솔의 2022년 리부트 광고라 해도 믿을 정도였죠.

▲ 호불호의 여지는 있어도 애매하지 않고 확실한 컨셉의 아트 스타일

다만, F2P라는 요금제는 어쩔수 없는 불안 요소로 작용합니다. 영상의 댓글에서도 많은 이들이 비즈니스 모델이 정확히 어떻게 되는지를 궁금해 하고 있죠. 그만큼 지금까지 게임 산업에서 F2P는 유행만큼이나 많은 폐해를 남겼습니다.

과금을 해야만 넘어가기 용이한 콘텐츠 허들이라든지, 과한 수준의 루트 박스가 도입될 경우 차후 게임에 대한 여론은 급격히 안좋아질 가능성이 있죠. 실제로 이런 BM 모델 때문에 잘 만들어놓고도 논란에 휩쌓인 게임이 적지 않았고, 이 중에는 현 개발진이 다수 참여했던 EA 다이스가 개발했던 '스타워즈: 배틀프론트2'도 존재합니다. BM은 개발사보다 퍼블리셔의 의견이 크게 개입되는 부분이지만, 분명 전적은 있다는 뜻입니다.

▲ 게임 퀄리티와 별개로 명확하지 못한 BM은 불안 요소

차라리 정찰제로 등장하는 게임이라면 뚜렷한 BM이 존재하기 때문에 이에 대한 염려가 드물겠지만, F2P 출시를 발표한 상황에서 이런 불안감은 어쩔수 없이 따라오는 일일 겁니다. 넥슨의 과거와 현재에 대해서는 가타부타 따로 말하지 않겠지만, 게임 내 결제 요소를 발표할 때 그들이 정한 정책이 게이머들의 보편적 정서에 타당하게 맞아 들어가는지를 한 번쯤은 재고할 필요가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 2022년 기대작 리스트에 올리기 충분한 게임임은 부정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