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까지만 해도, '기후 이변'은 환경 문제에 딱히 관심을 가지지 않은 이들에겐 다소 와닿지 않는 이야기였다. 전세계적 위기라는 말을 들어도 그런가보다 하고 넘기는 이들이 많았고, 북극곰의 터전을 지켜달라는 그린피스의 광고에도 시큰둥한 이들이 더 많았다.

하지만, 요 근래 기후이변은 거의 모든 이들이 느낄 정도로 거세게 현실로 밀어닥쳤다. 평년보다 훨씬 더운 더위와 혹독한 추위는 기본에 수십년만의 폭우가 내리는가 하면, 세계 어딘가에선 호숫물이 말라붙어 물이 잠겨 있던 고대 유적들이 줄줄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세계 모두가 공유하는 지구인 만큼, 남의 일로 생각할 때가 아닌 시기가 온 것이다.

다만, 이를 위해 '게임업계가 나선다'라고 하면 다시 고개를 갸웃하게 된다. 게임 산업을 포함한 소프트웨어 산업은 실제 공해 물질을 발생하는 제조업과는 다소 다른 영역에 놓인 만큼, 실제로 환경 보전에 힘을 쏟는다 해도 영향력이 있을지 가늠하기 어렵다.

그리고 이에 대한 해답이 게임스컴 2022의 사전 행사로 진행된 '데브컴 2022'에 자리한 UN의 'Playing for the Planer'프로젝트 팀이다.

▲ UN의 'Playing for the Planer'프로젝트 팀



◈ 어째서 '게임'인가?


가장 먼저 드는 의문은 '왜 하필 게임인가?'이다. 플라스틱을 활용하는 제조업이나 에너지 분야 코스트를 쏟으면 보다 직접적인 효과를 볼 수 있을 텐데, 어째서 '게임'을 환경 문제와 연결해 활용하기로 한 걸까? 물론 환경에 직접적 영향을 주는 산업은 이미 관련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기도 하지만, UN의 프로젝트 팀은 게임이 지닌 접근성에 주목했다.

게임은 현재 세대를 가리지 않고 플레이되는 미디어이며, 영상 이상으로 강력한 메시징이 가능한 도구이기도 하다. 나아가 앞으로 인류의 주축이 될 알파 세대(2010년대 초반 ~ 2020년대에 태어난 세대)가 가장 흔히 즐기는 여가 활동 또한 게임이다.

▲ 세대를 가리지 않고 즐긴다는 것이 게임이 지닌 메시지 수단으로서의 장점

또한, 이제 단순히 게임은 '즐기는' 단계에서 끝나는 미디어가 아니다. 게이밍 생태계는 점점 가상의 세계를 향해 나아가고 있으며, 이 세계 속에서 게임 플레이 뿐만 아니라 시청, 소셜 기능, 방송 등 다양한 개인 이벤트들이 벌어진다. 실제로 75% 이상의 게이머들이 게임을 '즐기는 것 이상'으로 향유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게임이 지닌 영향력이 단순한 여가 활동 이상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한 사람이라도 더 참여해야 가능할 정도로 손이 급한 상황이다. 기후 변화 양상을 그나마 '버틸 만한' 수준으로 유지하려면 현재의 탄소 배출량을 2030년까지 절반으로 줄여야 하는 상황이며, 모두가 이와 같은 현주소를 각성해야 하는 상황이다. 환경 보전은 우리가 아니면, 누구도 해 줄 수 없는 인류만의 과업이기에, 고사리 손이라도 빌려야 하는 상황에서 넓은 접근성과 영향력을 지닌 게임은 퍽 매력적인 미디어인 셈이다.


◈ '그린 게임 잼'을 통한 노력


이들이 진행하는 '그린 게임 잼'은 새로운 게임, 혹은 기존의 게임을 통해 환경 보전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게임을 만들어내는 프로젝트로, 다수의 게임사와 협업해 진행하고있는 행사이다. 그린 게임 잼은 2020년에 처음 시작해 올해로 3년차를 맞이했으며, 첫 해 11개의 모바일 게임이 참여했지만, 2년차엔 27개의 모바일, 콘솔, PC게임이 참여했고, 올해는 42개의 게임이 참여하는 등 꾸준히 참여도가 늘어나고 있는 행사이다.

참가 업체는 유럽과 북미 개발사를 포함해 다양한 국가의 개발사들이며 프랑스와 독일, 영국, 미국의 개발사들이 다수 참여했다. 특히 유비소프트의 경우 10개 이상의 스튜디오가 모두 이 그린 게임 잼에 참여하고 있다. 프로젝트 팀은 이 '그린 게임 잼'과 다른 환경 회복 단체와의 협업을 통해 올 한 해 74만 그루의 나무를 심었다.

▲ 올 한 해 74만 그루의 나무를 심은 그린 게임 잼

'그린 게임 잼'의 출품작 예시로는 유비소프트의 게임인 '아노 1800'을 기반으로 한 모드가 있다. '아노 1800'은 대항해시대의 도시를 운영하면서 무역과 개발로 도시를 성장시키는 시뮬레이션 게임인데, 참여 팀은 이 '아노 1800'을 기반으로 '불타는 에덴'이라는 시나리오를 만들었다.

이 모드는 정규 게임과 분리된 모드로 플레이 방향에 따라 환경 변화가 보다 민감해지며, 환경 보전과 관련된 다양한 정책이 더해진다. 나아가 게임을 클리어할 경우 본 게임에서 활용할 수 있는 보상이 주어지며, 플레이어가 어떻게 도시를 발전시키냐에 따라 도시의 외관이 눈에 띄게 달라진다.

▲ 플레이에 따라 달라지는 도시의 모습


◈ '게임'도 환경을 보호할 수 있다

재미있는 부분은, 많은 게이머가 개발사에 불만을 터뜨리는 부분이자, 개발 실력의 척도라 할 수 있는 '최적화'도 직, 간접적으로 환경 보전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프로젝트 팀은 '탄소 중립(Net Zero)'에 대한 이야기로 화제를 옮기면서 탄소 중립의 관건은 결국 에너지 소모를 줄이는 것이란 이야기를 했는데, 여기서 에너지 소모란 단순히 자동차 운행을 줄이는 등의 화석 연료 소모 외에 '전기'도 포함하는 개념이다.

예를 들어 고사양 게이밍 데스크탑이 경우 입문자용 게이밍 PC보다 많게는 네 배 이상의 전기를 소모하며, 클라우드 게이밍 또한 데이터 전송에 필요한 에너지가 필요하기에 자체 구동만큼이나 많은 전기를 소모하는데, 게임 자체를 저사양 PC에서도 구동 가능한 수준으로 개발되면 고사양 PC에 대한 니즈가 적어짐에 따라 전체적인 에너지 소모량이 유의미하게 줄어든다는 뜻이다.

▲ PC 사양에 따른 에너지 소모량

이와 같은 부분은 환경에 끼치는 영향의 비중에서는 매우 적은 비율이겠지만, 앞서 말했듯 모두의 과업이자 한시가 급한 상황인 만큼 좋은 최적화도 에너지 절약과 환경 보전에 영향을 주는 건 사실이다.

UN 프로젝트 팀의 이번 강연은 절대로 급변하는 기후 변화를 막을 만한 게임 체인저가 될 수는 없다. 그보다는 플라스틱 재활용을 위해 상표 스티커를 떼고, 내리막길에서 기어를 중립으로 바꾸는 정도의 '일상에서의 노력'에 더 가까운 차원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현 상황을 제대로 보아야 한다. 많은 과학자들이 '이제 돌이킬 수 없다'라며 늦었다고 말하고 있는 상황. 실제로 늦었다 할 지라도 조금이나마 더 오래 지구에서 살아가고자 한다면, 이와 같은 '일상에서의 노력'도 충분히 가치가 있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