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극의 서사는 그려내기 참 힘든 부분입니다. 그것도 무려 2개의 타이틀에 걸쳐 오롯이 같은 인물들의 서사를 그려내는 건 더욱 어렵죠. 특히나 일단 조작 요소가 꾸준히 들어가야 하는 액션 게임은 그 특성상 서사에 몰입하기가 더더욱 어렵습니다.

하지만, 이 남매의 이야기는 정말 강렬하고 진하게 다가옵니다. 아니 파고든다고 할까요. 전작 이노센스가 비극으로 시작해 그래도 희미한 희망으로 끝났다면, 레퀴엠은 '레퀴엠'이라는 부제 그대로 좀 더 어두운 비극을 다루고 있습니다. 끝을 향하는 남매의 이야기가, 그리고 그 마지막은 과연 무엇을 담고 있을까요.

게임명: 플래그 테일: 레퀴엠
장르명: 액션 어드벤처
출시일: 2022. 10. 18.
리뷰판: 출시 버전
개발사: ASOBO STUDIO
서비스: Focus Entertainment
플랫폼: PC, PS5, XSX|S
플레이: PS5

◆ 리뷰에 스토리와 관련된 일부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깊은 몰입을 위해서는 반드시 전작을


일단 확실히 하고 가야 할 건, 플래그 테일: 레퀴엠은 게임 플레이적인 측면에선 별개의 게임이라고 볼 수 있지만, 서사적 측면에선 완벽히 후속작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는 겁니다.

전작을 플레이하지 않는다고 해서 게임 플레이에 그 어떤 제약이 있는 건 아닙니다. 물론 기본적인 규칙이나 시스템 뼈대가 전작과 동일하기에 좀 더 빠르고 쉽게 게임에 적응할 수는 있죠. 긴 풀을 보면 자연스레 숨는다거나, 저 멀리 화로나 가로등이 보이면 일단 불부터 붙이고 보는 그런 것 말이에요.

그외에도 연금과 잠입, 새총 등으로 이루어진 기본적인 플레이 방식, 무시할 수 없는 퍼즐 요소, 재료를 모아 업그레이드하는 도구들, 게임 내내 쏟아져 나오는 어마어마한 쥐 떼 등 전작을 플레이했다면 튜토리얼 없이도 충분히 레퀴엠에 적응할 수 있죠.

다만 이는 그저 추가적인 이득 정도에 그칩니다. 전작과 틀은 비슷하지만 또 생각보다 변경 및 업그레이드된 부분이 많거든요. 그리고 튜토리얼이 매번 친절하게 나오는 편이라 레퀴엠으로 처음 시리즈를 접하더라도 아무런 문제 없이 게임을 즐길 수 있습니다.

▲ 기옌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전작을 플레이해야 알 수 있다

하지만 이 게임의 핵심이라고 볼 수 있는 스토리는 아닙니다. 전작과 완전히 떨어진 이야기가 아닌, 전작에서부터 이어지는 서사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죠.

핵심 등장인물들을 비롯해 상황, 주요 설정 등 모든 것이 이노센스와 연결됩니다. 좀 더 깊게 보자면, 이노센스의 시작부터 레퀴엠의 엔딩까지가 하나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노센스의 엔딩이 어딘가 살짝 찝찝했던 건 레퀴엠을 위한 것이었던 건가 싶을 정도로요.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노센스의 전체 이야기를 완벽히 알고 있을 필요까진 없습니다. 간단히 배경적인 지식, 휴고의 병에 대해서, 그리고 남매에게 어떤 시련이 있었는지에 대해서 정도만 알고 있어도 배경 이야기의 일부는 이해할 수 있죠.

▲ 전작에서 그대로 등장하는 주요 인물들

하지만 이건 조금은 아쉽게 느껴지는 부분입니다. 아무리 후속작이라고 하더라도, 도입부에서 전작의 이야기를 짧게라도 풀어줬다면 훨씬 좋았을 테니까요. 전작의 그래픽을 쓰기 힘들었다면 아미시아나 루카스 등 주요 인물의 입을 통해 전달하는 방향도 있었죠.

플래그 테일 시리즈 자체가 마치 한 편의 영화를 직접 경험하는듯한 강렬한 몰입감을 자랑하기에 이런 서사적인 단절은 확실히 아쉽게 다가옵니다. 물론 이는 아쉬운 점일 뿐, 단점이라고 할 순 없습니다. 당장 서사가 메인인 영상미디어들, 영화나 드라마 등만 해도 시리즈 전체를 보지 않으면 이해할 수 없는 전개가 이루어지곤 하니까요.




강렬한 긴장감, 강렬한 몰입

레퀴엠을 플레이하며 가장 놀란 점은 바로 그래픽입니다. 전작의 그래픽 역시 나쁘지 않았으나, 확실히 이번 작품에서는 그 완성도가 한 단계 업그레이드되었거든요. 그저 단일 게임으로 두고 보기에도 충분히 좋은 그래픽임은 확실합니다.

넓게 펼쳐진 초원, 해변가, 바다, 라 쿠나 섬, 프로방스 등 게임의 전체적인 배경은 말할 것도 없고, 캐릭터의 감정을 세밀하게 그려내는 표정 등 크고 작은 그래픽이 모두 뛰어난 편입니다. 특히 밝고 화사하며 아름다운 꽃으로 가득한 라쿠나 섬의 경우,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딘가 섬뜩한 분위기를 잘 살려냈습니다. 마치 영화 미드소마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한 그런 섬뜩함 말이죠.

또한 이번 작품에서 매우 중요하게 다루고 있는 아미시아와 휴고의 감정이 게임을 플레이하는 내내 확연히 다가오는 데에는 찡그림 하나, 눈물 한 방울까지 섬세히 표현한 인물 그래픽이 큰 몫을 하고 있습니다.



비록 그래픽으로 화제가 되었던 게임들에 비한다면 살짝 아쉬울 수 있지만, 플래그 테일 시리즈만의 음습하고 때로는 차가운 긴장감을 살려내는 데는 충분한 정도를 보여줍니다. 무너지는 프로방스를 탈출하는 과정이나, 시체로 가득한 경기장 내부, 어딘가 사람을 불안하게 만드는 동굴 등은 숨을 참게 할 만큼 시각적 만족감이 높은 편이죠.

그리고 이는 자연스러운 장면 연출과 역동적인 카메라 워크, 그리고 잠입 액션 및 어디서 몰려들지 모르는 쥐떼에 대한 공포가 한데 엮이며 쫄깃하면서도 눈을 뗄 수 없는 몰입감을 가져왔습니다. 물론 스토리의 높은 완성도도 한몫하고 있죠.


여기서 집중해야 할 건 바로 '분위기'입니다. 플래그 테일 시리즈는 식인 쥐떼와 감시자들이라는 요소만으로 그 어떤 잠입 게임에도 부족하지 않은 긴장감을 끌어왔습니다. 그리고 이 쫄깃한 긴장감은 액션성이 강해진 레퀴엠에서도 여전하죠.

석궁과 나이프, 근접 전투 등 적을 직접적으로 타격할 수 있는 요소가 생겼지만, 활용이 매우 제한적이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투구를 쓰고 있는 적을 새총만으로는 제압할 수 없기에 '들키면 안 된다'는 전제 요소가 주는 두려움과 긴장은 한층 강렬해졌습니다.

그리고 그 긴장감의 또 다른 한 축을 담당하는 쥐떼는 좋아진 그래픽 덕분에 더욱 그 존재감을 강렬하게 표현합니다. 바글거리다 못해 징그럽게 느껴질 정도의 쥐떼는 그 공포스러운 소리와 번뜩이는 눈, 끊임없이 울리는 듀얼센스의 진동 덕분에 꿈에서 나오지는 않을까 싶을 정도로 아주 징글징글하게 다가오죠.

뿐만 아닙니다. 휴고와 쥐들의 연계가 더욱 깊고 강렬해지면서 쥐떼를 활용하는 방법 또한 좀 더 복잡해졌습니다. 그저 위치를 이동시킬 수 있었던 정도에서 벗어나 쥐들을 통해 적의 위치를 파악하거나 완전히 쥐와 동화되어 직접적으로 인간을 해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이 역시 마음껏 활용하는 건 불가능합니다. 휴고의 스트레스 수치를 관리해줘야 하기 때문이죠.


분명 레퀴엠의 액션성은 강해졌고, 그래픽도 좋아졌으며, 스킬 요소도 추가되는 등 전작에 비해 소소하면서도 많은 부분이 변화했습니다. 다듬어졌다고도, 업그레이드되었다고도 볼 수 있죠. 기나긴 위험 지역을 지나 안전 지대의 문을 닫는 장면만 하더라도, 극적인 카메라워크 덕에 훨씬 안심되는 그 마음이 커진다거나 하는 식으로요.

직접적인 공격이 가능하기에 반격을 통해 적을 죽이거나 잠시 무력하게 만드는 것도 가능합니다. 반드시 투구를 벗은 '맨' 머리를 겨냥해야 하는 새총에 비해 살상 제한이 없는 석궁은 확실히 강력한 무기임이 확실하고요. 단지와 조합해 불을 지르면 적을 손쉽게 태워버릴 수 있는 타르라는 새로운 요소도 있죠.


다만 액션이 추가되었다고 해서 시원시원한 게임 플레이를 할 수 있는 건 아닙니다. 아미시아에게서 여전사의 모습을 볼 수는 있지만, 그녀는 완벽한 전투를 펼치는 그런 사람이 아닌 것처럼요.

석궁은 업그레이드를 완료하기 전까지는 화살의 갯수제한으로 활용 자체가 제한적이며, 단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여기에 석궁이나 단지보다 좀 더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연금술 탄들이나 새총으로는 처리하기 어려운 적들이 다수 등장하곤 하죠.

근접 공격의 경우, 매우 큰 소리가 나기에 적이 많이 몰려있는 곳에서는 무용지물이 되기도 합니다. 또한 특정 미션들은 아예 적을 공격할 수 없고요. 즉, 게임의 진행 방식 자체는 전과 동일하게 '숨는 것'이 기본이 됩니다.

지도가 존재하지 않기에 적당히 캐릭터들의 대사를 통해서 목적지를 찾아내야 하거나, 어렵진 않지만 다양한 방식의 퍼즐 요소가 활용되는 것도 이런 점과 합쳐져 '신중한' 게임 플레이를 요구하게 됩니다 . 좋게 말하면 신중하게, 그리고 조금 나쁘게 말하자면 지루하다고도 볼 수 있겠네요.





서글픈, 비극적인 아이들의 이야기

레퀴엠은 전작에 비해 좀 더 어둡고, 또 혼란스러워진 아미시아와 휴고의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남매는 한층 더 서로를 의지하고, 깊어진 관계성을 보여주죠.

당연한 이야기일 수 있습니다. 아미시아와 휴고 남매는 이미 지옥이라고도 할 수 있는 시간을 보내고, 견뎌서 겨우 잠깐의 평화를 손에 쥐었으니까요.


레퀴엠은 그렇게 지옥을 건너온 아미시아와 휴고, 특히 아미시아의 정신적 괴로움과 불안함에 집중합니다. 이번 작품에서 강력해진 액션, 즉 공격적인 측면은 실제 아미시아의 이런 성격적 변화와도 관계가 있죠.

휴고에 비해 성숙할 뿐이지, 아미시아 역시 아직 누군가의 조언이 필요하고, 울타리가 필요했을 겁니다. 하지만 그 시기에 동생을 지키기 위해, 그리고 되찾기 위해 그녀는 끊임없이 누군가로부터 도망치고, 또 견뎌내야 했죠.

그런 모든 고통의 시간이 쌓여 결국 아미시아의 분노는 폭발하고 맙니다. 게임은 그 폭발의 순간을 강렬한 연출을 통해 표현하죠. 웃는지, 우는지, 혹은 화를 내는 건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쏟아져나오는 아미시아의 목소리, 엄청난 폭력성 등 플레이어조차 지금 뭔가 잘못되어 감을 직감적으로 깨달을 수 있을 정도로요.


아미시아의 이런 폭주하는 장면이 반복되고, 지속될수록 누나의 그런 모습을 바라보는 휴고의 심리도 점점 불안정하게 변해갑니다. 중반이 지나고부터는 저도 모르게 안된다는 혼잣말을 하면서 게임을 플레이하게 되더군요.

휴고의 감정이나 정신상태 역시 게임의 플레이적인 요소와 스토리가 결합되어 표현됩니다. 바로 쥐떼를 통해서죠. 적절한 컷신과 성우의 연기, 직접 쥐의 시야와 동화되는 연출을 통해 몰입감 있게 잘 그려냈습니다. 특히 쥐들을 통해 사람을 하나하나 죽이며 안도하는 휴고의 모습은 한편으론 참 섬뜩하게 다가오기도 합니다.

다만 위에서도 언급했다시피, 이러한 게임의 감정선을 확실하고 오롯하게 따라가려면 반드시 이노센스를 플레이하는 것이 좋습니다. 왜 아미시아의 분노가 터져 나왔는지, 그리고 그들에게 비극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는지 등에 대해 이해하기 위해서 말이죠.




플래그 테일: 레퀴엠은 아미시아와 휴고의 이야기를 깨끗하게 잘 끝냈습니다. 한편으로는 서글프게, 또 한편으로는 안타깝게, 또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이해할 수 있을 정도의 마무리였죠.

이노센스부터 레퀴엠까지, 두 작품은 남매의 기승전결을 몰입감 있게 그려냈습니다. 그 과정에서 크게 변경되는 부분 없이 게임의 특징을 꽤 괜찮게 살려냈고요. 특히 레퀴엠은 전작의 시스템에서 단지 멈춰있는 게 아니라, 조금 더 게임의 깊이를 즐길 수 있도록 업그레이드됐습니다.

당장 플레이타임만 해도 전작에 비해 확실히 늘어났으며, 그래픽은 말할 것도 없죠. 게임 초반 펼쳐지는 탁 트인 너른 초원과 가득한 꽃은 자신도 모르게 스크린샷 버튼을 누르게 할 정도로 아름답습니다. 특히 광원, 빛 효과를 통해 시간대에 따른 따스하고 차가운 분위기를 너무나 잘 표현해냈어요.

그리고 그렇게 멋들어지고도 섬세한 그래픽은 아름다운 서사와 함께 강렬한 몰입을 이끌어 냅니다. 남매의 이야기가 펼쳐지는 20시간이 언제 지나가는 지 모를 정도로 말이죠. 이노센스를 플레이했었다면 반드시 레퀴엠까지 해보는 걸 추천합니다. 아미시아와 휴고, 이 안타까운 아이들의 이야기가, 그리고 모험이 어떻게 마무리되는지 확인할 수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