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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쪽, 그러니까 잉그빌에 인접한 마녀의 탑에 설치된 마법진에서 찬란한 빛이 쏟아지며,

애나와 넬, 마리가 다른 마녀들과 함께 마녀의 탑에 도착했다.


「우, 우으으으...」


생전 처음 타 본 마법진의 차원이동 멀미는 심각한 수준이었다.

애나가 비틀거렸고, 고통을 잘 참아내던 넬조차 창백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도착했어. 멀미가 심하지? 오늘은 푹 쉬어. 내일 탑의 주인과 만나게 해 줄게」


저녁 즈음이었기에 이미 밖은 어둑어둑해졌고,

마리가 그런 말을 하며 탑 내부의 객실과 저녁식사를 마련해 주었다.

객실에서 하루를 편안하게 보낸 애나와 넬은, 다음 날 아침 마리와 만나 새 옷을 받았다.


「언제까지고 그러고 다닐 거야? 어서 입어」


한사코 거절하는 넬과 애나에게 보란 듯이 마리가 한 마디를 던졌고, 어쩔 수 없이 둘은 마련해 준 옷을 입었다.

그런 둘을 데리고 마리는 탑의 가운데에 설치되어 있는 원판으로 안내하고는, 시동어를 외쳤다.


「떠올라라. 목적지는 최상층」


원판이 천천히 가속하다 빠른 속도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래도 어제의 차원이동보단 훨씬 나은 승차감에 둘은 안도했다.

차원이동은 마치 어딘가 깊은 나락으로 자유낙하하는 기분이 들었다.

떠올렸더니 또 애나의 속이 울렁거리기 시작했다. 생각하지 말자, 생각하지 말자...

원반이 천천히 감속하며 멈추고, 곧 마녀의 탑 최상층의 커다란 문 앞에 도착했다.

마리가 문을 두드리며 말했다.


「할멈. 데려왔어」

「마리냐? 들어오거라」


마리도 할멈이라고 말했고, 어투도 늙은 사람의 그것이었지만, 또랑또랑한 목소리였다.

문이 자동으로 열리고, 셋은 넓은 회랑을 걸었다.

회랑 끝에는 단상이 있고, 단상에 작은 체구의 사람이 앉아있는 것이 보였다.

가까이 가면 갈 수록 그 실체가 보였는데, 아무리 봐도 애나보다 한 두살쯤 많아 보이는 어린 소녀였다.

단지 그 눈빛만은, 혜안(慧眼)이라고 불러도 될 만큼 풍부한 지식과 경험을 쌓은 자의 그것처럼 보였다.


「왜 이렇게 늦었느냐? 못난 것」


말은 이렇게 하면서도 자비로운 눈으로 마리를 보고 있다.


「그 못난 것이 간다고 했을 때 펑펑 울 뻔했던 게 누구였더라?」


마리도 그걸 아는지 농담으로 화답했다.

애나와 넬은 그저 마리의 옆에서 쭈뼛쭈뼛 서 있을 뿐이었고, 그걸 눈치챈 마리가 앞의 소녀를 소개했다.


「인사해. 저 다 늙은 할망구가 너희 할머니야. 겉모습에 속으면 안 돼. 이미 70이 넘었다고?」

「저희...할머니요?」

「그래. 할멈, 풀 네임이 뭐였지?」

「네년도 슬슬 치매가 오는가 보구나. 침상에 똥 바르지 않도록 주의하는 게 좋을 것이다. 카캇」


들어본 적 없는 웃음소리를 흘리는 저 분이 애나의 할머니가 맞다면,

언제나 어머니가 말씀해주셨던 애나의 이름, 즉 애너벨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계실 것이다. 

접사는, 애나가 3세라는 뜻의 트로아(trois)이므로 아마 2세의 두(doux)겠지.


「어서들 오거라. 내가 애너벨 두 그리모아르, 애나, 니 할미다. 니브라고 부르려무나」


정확했다. 그 이름으로 그 애칭도 나올 수 있구나...

애나가 천천히 다가가 할머니 앞에 섰다.


「정말 할머니예요? 아무리 봐도 넬 언니보다 어린 것 같은데...」

「아, 이거 말이냐? 이건 현신화(現神化)의 부작용이다. 신경 쓰지 말거라」

「네...그렇다고 신경 끄진 못할 것 같지만요. 그리고 여긴...」


애나가 넬을 소개하려 하자, 니브가 말을 끊었다.


「네르티시아지? 이미 보고를 받고, 뒷조사까지 끝낸 참이다. 하이랜더의 이단아라고?」

「그냥 쫓겨난 몸일 뿐입니다. 네르티시아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넬의 위 아래를 훑어보던 니브가 눈을 빛내며 말했다.


「제법 몸이 잘 잡혀 있구나. 하이랜더 하면 검술이지. 너도 배웠느냐?」

「부족 내에선 경원시하던 쌍검술을 조금 배웠습니다. 4살 때부터 쫓겨나기 직전까지요」

「그렇지. 하이랜더 하면 양손 대검을 주로 쓰는 민족이라고 널리 알려졌으니까」

「네. 하지만, 여자의 몸이라 어쩔 수 없었습니다」

「현명한 선택을 했군그래. 좋다. 앞으로도 애나를 잘 부탁하마」


넬이 니브에게 허리를 굽혀 인사한 후 마리의 옆으로 갔고, 니브가 애나를 돌아보았다.


「꽤 많이 각성했구나. 머리카락을 보면 알 수 있지. 각성의 열쇠는 무엇이었느냐?」

「각성의 열쇠요? 그건 잘 모르겠어요. 단지 노래를 부르면 머리카락이 점점 빨갛게 변했어요」

「호오. 노래, 좋아하느냐?」

「네! 엄청 좋아해요!」

「여기서 한 곡, 불러보겠느냐?」


애나가 고개를 끄덕 하고, 몇 발 물러나 마리와 넬이 서 있는 자리와 니브가 앉아 있는 단상의 중간쯤에 자리하고는

손을 모으고 눈을 감으며, 천천히 노래를 시작했다.




Interlude #4


한낮에 잠시 창틀에 기대앉아

졸고 있으면

떠오르고는 사라지는 장면들


내가 지내왔던 많은 시간들이

나의 곁에서

여전히 응원을 보내 주네요


응원은 한조각 빛이 되고

그 수없이 많은 빛들은

여기 모여서 더 크게 반짝거려요


아직 그 많은 빛을 감당할 순 없어도

여기 내 가슴에 품고

영원히 희망을 노래할래요



-Annabel trois Einsward, 「빛」

제논력 107년, 사수자리의 1월 2일




파삭.

머리카락이 갈라지며 조금 더, 빨간 부분이 늘어났다.

이런 상황은 니브도 처음 보는 듯, 호기심 어린 눈으로 애나를 보고 있었다.


「호오, 흥미롭구나」

「어...어때요, 할머니?」

「너는 노래를 통해서 마나를 구현할 수 있는 모양이다. 여태까지의 마녀들과는 다르게 말이야」

「에? 제가 노래해서 뭔가 이상한 현상이 일어나거나 그런 적은 한 번도 없는데요?」

「그건, 애나 네가 아직 완전히 각성하지 못해서 그럴 게다. 노래를 할 때마다 마나가 파문을 일으키는구나」


마리가 고개를 끄덕 하고는 말했다.


「내가 애나를 찾았을 때도 마나가 이상하게 고동치는 듯한 느낌을 받았지. 틀림없을 거야」

「아, 분명 그 때도...」


맞아. 어제도 노래를 불렀었다.

생사의 기로를 넘나들고, 노예 생활을 끝낸 지도 단 하루밖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뭔가 엄청나게 오랜 시간이 흐른 듯 한 기분이 들기도 했기 때문에, 새삼 신기하다고 느끼게 되었다.


「아마도 그 머리카락이 전부 빨갛게 되거나 하면, 그때서야말로 각성의 시간이겠지. 뭐, 기다려 보자꾸나」

「네. 그럴게요」

「오늘부터 너희 둘도 이 마녀의 탑의 손님이자, 일원이다. 자, 받거라」


하며 단상 아래에서 무언가를 꺼내 단상에 올렸다.

네모난, 얇은 종이 같았는데 애나가 집어들자 의외로 매끈하고 단단했다.


「마녀의 탑에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출입증이다. 평소 탑은 결계를 치고 있어서, 보통 사람의 눈에 띄지 않거든」

「아아...」

「그 출입증이 있는 사람만이 결계를 해제하고 탑에 들어올 수 있지. 어제처럼, 탑 내부로 공간이동을 하지 않는 한」

「감사합니다」


애나와 넬이 품 속에 출입증을 넣었고, 그걸 보자마자 니브는 어딘가로 연락을 넣었다.

원격통신 마법의 일종인 것 같았는데, 니브가 작게 이야기하였기에 잘 들리지 않았다.

통신을 끊고, 니브가 둘에게 말했다.


「너희는, 준비를 마치는 대로 잉그빌로 가라. 아는 놈이 그 쪽에서 검술과 마법 아카데미를 하거든」

「네? 그게 무슨...」

「무릇 마녀 되는 자, 공부를 해야지. 그렇지 않아?」


마리가 윙크하며 말했고, 니브가 보충설명을 했다.


「그쪽 기숙사에서 지내며 검술을 익혀라. 애나가 각성하면 마법도 같이 배울 수 있도록 손을 써 둘 테니」

「지낼 곳 뿐만 아니라 배울 곳까지 제공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넬이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자, 애나도


「감사합니다...」


하고 따라 숙일 수 밖에 없었다.

애초에 가정교사의 수업도 잘 듣지 않던 애나가 아닌가.

갑자기 아카데미에서, 그것도 기숙사에서 지내면서 수업을 들으라니...진이 빠졌다. 


「애너벨 트로아 아인스워드!」


갑자기 니브가 큰 소리로 애나의 풀 네임을 말했고,


「네, 넷!」


애나는 무심코 큰 소리로 대답했다.


「공부가 싫으냐? 얼굴에 다 써 있단다」

「우우...」

「그래도 열심히 배우거라. 언젠간 그 지식들이 너와 너의 동료를 지켜줄 게야」

「네...알겠어요」


뭔가 억지로 떠맡겨진 느낌이 강하게 들었지만,

그래도 일단 넬과 함께 간다는 게 행복했으니 만족하기로 했다.


「사실, 나도 처음엔 가기 싫었는데, 의외로 환경도 좋아서 열중하게 되어버렸다니까?」

「네? 마리 언니도 저기 다녔었어요?」

「응. 우릴 믿고 한번 가 봐. 나름 재미도 있어. 게다가...마녀가 마법 하나도 모른다면, 말이 안 되잖아?」


마리가 거들어 말했고, 그 실력을 눈 앞에서 목격한 애나도 슬슬 흥미가 생겼다.

한 번 사고회로를 긍정적인 쪽으로 바꾸자, 아카데미 생활 역시 기대가 되기 시작했다.

어떤 수업을 할까? 어떤 친구들을 만나게 될까? 

아직은 세상의 물정도 잘 모르는, 순진한 9세 소녀 애나의 기대감은 부풀어만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