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녀 비극의 시작은 2004년 2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A씨는 미혼모였다. 혼자서는 도저히 갓난아이를 키울 수 없다고 여긴 그는 머물던 미혼모 보호시설 대표(여)의 남편 C목사가 운영하는 보육시설에 딸을 맡겼다. 딸이 태어난 지 석 달쯤 됐을 때였다. A씨는 일자리를 찾아 홀로 상경했다. 돈을 벌면 나중에 딸아이를 서울로 데려갈 계획이었다. 하지만 이 꿈은 한 달 만에 물거품이 됐다. C목사에게 전화하니 "네 딸은 아파서 갑자기 죽었다. 더는 찾지 말라"고 했다. 거짓말 같았지만, 믿을 수밖에 없었다. A씨는 '내 탓'이라 자책하며 딸을 가슴에 묻었다. 24세 지적장애 여성이 '홀로서기'를 하기에는 서울살이가 팍팍했다. 세월이 흘러 초등학교 입학 안내문이 담긴 딸의 취학 통지서가 A씨 앞으로 날아왔다. 하지만 그는 '우리 딸은 죽었는데…' 하며 유야무야 넘겼다. 그런데 최근에 호적을 정리하다 죽은 딸이 사망신고가 안 된 채 주민등록만 말소된 사실을 알았다. 지금의 남편을 만나 결혼 준비를 하면서다. A씨는 '목사가 설마 거짓말한 건가' '딸이 살아 있나' 의문이 들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지난 3월 익산경찰서를 찾아 "딸을 찾아 달라"고 도움을 청했다. 의사소통에는 문제가 없었지만, 남편이 A씨와 함께 실종 신고를 했다. 










경찰은 A씨가 딸을 맡겼다는 C목사의 교회를 수소문해 찾아갔지만, 빈 건물이었다. 목사 부인이 운영하던 미혼모 보호시설도 불법 운영 사실이 드러나 문이 닫힌 상태였다. C목사는 보육원생 앞으로 나오는 시설 운영비와 장애수당 등 국고보조금을 빼돌린 혐의(횡령)로 2013년 구속된 것으로 확인됐다. C목사가 구속되면서 보육원생 28명은 모두 다른 보호시설로 옮겨졌다. 경찰은 익산시에서 받은 보육원생 명단에서 A씨 딸과 생년월일·주민등록번호는 다르지만, 같은 이름을 가진 중학생 B양을 찾았다. 경찰은 지난달 A씨와 B양의 구강세포를 채취해 실종 아동 전문기관에 친자 검사를 의뢰했다. 그 결과 두 사람의 유전자(DNA)는 99.99% 일치했다. 사리사욕에 눈먼 목사의 거짓말 때문에 헤어진 모녀가 15년 만에 잃어버린 핏줄을 찾은 순간이었다. A씨는 "그동안 딸이 죽은 줄만 알고 가슴앓이만 했는데 경찰의 도움으로 다시 만날 수 있었다"며 경찰에 거듭 고마움을 표시했다. 익산경찰서 실종수사팀 이상욱 경위는 "새아버지(A씨 남편)가 딸을 서울로 데려가 함께 살기로 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