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


1. 자신이 부자라는 말을 듣고 찾아온 주유에게 자신의 재산 절반을 내어줌. 당시 부자라는 것은 유력한 호족이라는 뜻임. 당시 강동지방은 중앙정부의 손길에서 멀리 떨어진 지방이라 사실상 호족집단이였음. 손책이 강동을 얻었다는건 그 호족들과 혼약을 하기도 하고 (교씨), 자기 편으로 끌어들이기도 하고(장씨) 싸우기도 하면서(육씨) 얻은것과 마찬가지였음. 

즉, 원래 지배층인 호족들은 손씨를 굉장히 띠껍게 보고 있었음. 그런 상황에서 대호족인 노씨가 손가를 적극적으로 후원하고 손을 잡았다면 굉장히 많은 호족들과 손씨의 관계가 유해질 수 있었음. 

그랬다면 손권 말년까지 이어져 내려왔던 호족과의 갈등이 훨씬 덜해질수 있었을수도 있음.


2. 노숙은 당시 주유와 더불어 천하이분지계를 주장했던 사람임. 큰 그림을 그릴 줄 알던 사람이였고, 자신의 그림을 위해 오에서 손꼽히던 권력자 시절때부터 유비에게 직접 향하여 유-손 동맹을 그리고 적벽대전의 그림을 그렸던게 노숙임. 

유비가 손권의 통수를 치고 형주를 강점하자 노숙이 직접 나서서 관우와 담판을 짓고(연의에서는 노숙이 쫄보처럼 암살자들을 숨기고 관우를 맞이한걸로 나오지만 실제로는 노숙이 관우한테 거 우리 칼 한자루씩만 갖고 서로 만나서 얘기합시다 라고 말해서 관우와 담판을 지음) 형주를 분할하는데 성공함. 

그래서 노숙이 있었던 시절까지는 갈등이 남아있긴 했지만 유비와 손권의 관계가 대놓고 나빠지진 않았음.


3. 노숙 사후에 큰 그림을 그릴 줄 아는 사람들이 없어짐. 노숙 사후 군권을 잡은것이 여몽인데 여몽은 합비/형주 중 택1을 하자는 손권의 말에 형주를 택함. 당시 관우로 인해 중원이 난리가 난 상황이라 관우에게 호응하여 일을 더 키운 뒤 합비 방면으로 진출했다면 건업 윗쪽에 든든한 방어라인 구축이 가능해지는데 여몽은 합비를 얻어도 수비가 힘들다고 생각하여 형주를 침. (형주가 "수도 방비가 가능한 지역" 과 저울질될만한 이유는 많긴 하지만) 

그리고 그 댓가가 촉-오가 국력을 어마어마하게 쏟아붓게 된 이릉대전.

손권이 형주를 얻은게 잘못되었다는게 아니라 형주를 얻더라도 그 댓가가 너무 컸음. 촉-오 공존을 택하고 직접 동맹을 위해 양국을 오가던 노숙이 살아있었다면 저런 결과까지는 가지 않았을것이라 추측할 수 있음.


4. 노숙 사후 손권은 계속 호족들과 싸움. 손권이 황제가 된 이후에도 하제같은 장수는 중앙군과 복식을 달리 하는 군대를 운영했고 (지금 육군 전투복이 디지털인데 구형이 더 간지난다는 이유로 구형을 정식으로 채택한 사단이 있다고 생각하면 됨) 손권을 적대했던 육씨의 후예인 육손은 끝내 손권때문에 홧병으로 죽어버림. 

손권 말년 최후의 대삽질이였던 이궁지변도 호족들이 손패파/손화파로 갈린것도 있는데 만약 노숙이 장수했다면 호족들을 중재해서 이궁지변까지 가지 않았을 확률이 매우 크다고 생각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