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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3-15 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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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오큘러스 vs 제니맥스, 그 법정 공방의 시작과 끝

정재훈(Laffa@inven.co.kr)


얼마 전, VR 업계를 깜짝 놀라게 한 소식이 들려왔다. '오큘러스'가 '제니맥스 미디어'와의 소송에서 패해 5억 달러의 배상금을 지급하게 되었다는 소식이었다. 물론 그게 전부는 아니다. 5억 달러가 큰돈이긴 하지만, 그것으로 마무리되었다면 '큰일'까지 번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제니맥스는 멈추지 않았다. 재판에서 승소한 제니맥스는 연이어 오큘러스의 '상품 판매 중지' 신청을 법원에 제출했다.

실제로 집행된다면 VR업계 자체가 흔들릴 수도 있는 일이다. 메인스트림급 VR HMD 중에 오큘러스의 지분이 높은 편은 아니지만, 오큘러스가 VR 업계에서 가지는 상징적 의미는 꽤 큰 편이다. 단순히 하나의 HMD가 없어지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오큘러스를 대상으로 게임을 개발해온 많은 개발사는 강제로 노선을 돌려야 하고, 오큘러스를 구매한 구매자들은 더 콘텐츠를 구할 수 없게 되어버린다.


시장이 어느 정도 성숙한 단계였다면 충격은 있을망정 후폭풍이 크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VR 시장은 아직 성숙한 시장이라 말하기엔 이르다. 하드웨어라는 기둥 위에 간신히 만들어진 판에 불과한 지금, 오큘러스가 사라진다는 것은 시장을 지탱하는 기둥 중 하나가 사라지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물론 '제니맥스'의 주장이 '정의'라 할 수 있고, 오큘러스가 정말로 판매 정지 처분을 받을만한 잘못을 저질렀다면 그렇게 되는 것이 옳다. 시장이 살아야 한다는 이유로 옳지 않은 것을 옳다고 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 상황을 정확히 모르는 이들, 나아가 업계인들은 걱정을 할 수밖에 없다. 지금 당장 국내만 해도 '오큘러스'를 대상으로 콘텐츠를 개발 중인 스튜디오들이 많기 때문이다.

한번쯤 현 상황을 정리해야 할 필요가 생겼다. '제니맥스 미디어'와 '오큘러스'간의 기나긴 분쟁. 그 시작은 어떻게 벌어졌고, '오큘러스'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 2014년 5월 - 법정 분쟁의 시작

제니맥스와 오큘러스간 악연의 시작은 무려 3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2014년 5월. 제니맥스는 오큘러스와 창립자인 '팔머 럭키'를 지적재산권 침해 혐의로 고소했다. 제니맥스의 주장은 오큘러스가 '오큘러스 리프트'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제니맥스 소유의 IP를 무단으로 사용했다는 것이었다.

제니맥스의 이와 같은 주장에 대해 오큘러스 측은 "그들의 주장은 모두 거짓이다"라고 일축하며 강경한 맞대응을 보여주었다. '팔머 럭키'는 오큘러스와 제니맥스가 협력 과정에 있었던 것은 맞으나, 오큘러스 리프트의 개발 과정에 제니맥스의 기술이 쓰인 일이 없으며, 제니맥스 측에서 오큘러스의 지분을 요구하다가 틀어지자 협력을 중단했다고 주장했다. 이후 페이스북이 오큘러스를 인수하자 돈을 뜯어내고자 억지를 부리고 있다는 말이었다.

▲ 오큘러스 설립자 '팔머 럭키'

덧붙여 팔머 럭키는 "존 카맥이 이드 소프트웨어를 퇴사하고 오큘러스를 올 정도로 제니맥스는 VR에 대한 의지가 부족했다. 오큘러스의 SDK는 모두 공개되어 있으니 무단 사용했다면 그것이 무엇인지 말해 봐라"라고 말하며 제니맥스 측에 강도 높은 비난을 가했다.

재미있는 것은 당시의 분위기였다. '오큘러스'는 2012년 E3에서 처음 하드웨어를 공개한 이후 당시 최고로 뜨거운 기대를 받고 있는 하드웨어였고, 반면 제니맥스는 여러 사건·사고로 좋지 못한 이미지가 쌓여가고 있었다. 그래서 대중은 대부분 오큘러스를 옹호했고, 자연스럽게 제니맥스를 비난하는 여론이 형성되었다.


■ 고소장 공개 - 제니맥스의 2차 공세

이에 제니맥스는 총 46장, 170항에 이르는 고소장을 인터넷을 통해 공개하기에 이르렀고, 이 내용 중에는 2012년부터 2014년까지 진행된 2년간의 사실 관계가 포함되어 있었다. 이메일 내용부터 계약서, 사진 자료, 인터뷰 등을 비롯해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자료를 동원해 법정 분쟁의 무기로 사용한 것이다.

제니맥스가 제출한 고소장 내 사실관계는 다음과 같다.

관련 링크: 제니맥스가 제출한 고소장 전문(PDF 파일)

먼저, 제니맥스는 오큘러스 등장 전부터 VR이라는 분야에 관심을 두고 있었고, 무려 90년대부터 가상현실 기술과 HMD에 관한 연구를 이어오고 있었다. 그들의 목표는 제니맥스가 퍼블리싱하는 게임인 '엘더스크롤'과 같은 게임들을 VR로 구현하는 것이었다.

이 프로젝트의 중심이 되는 팀은 '이드 소프트웨어'와 이드 소프트웨어의 창립자인 '존 카맥'이었고, 이들은 2012년 E3에서 '둠3: BFG 에디션'을 VR로 발표하는 것을 목표로 잡았다. 그리고 E3가 열리기 몇 달 전인 2012년 4월, 존 카맥은 '팔머 럭키'의 '리프트'를 발견했다. 존 카맥은 '리프트'에 관심을 두었고, 팔머 럭키를 데려다 함께 '리프트'를 개선해 나갔다. 초창기 '팔머 럭키'가 선보였던 '리프트'는 그간의 디스플레이 패널들과 큰 차이가 없는 광학 장치 수준에 불과했으나, 제니맥스 측은 '헤드 마운트' 기능과 소프트웨어, 그리고 내장 모션 센서 등 중요한 기술들을 제공했고, 이 과정에서 제니맥스와 '팔머 럭키'는 차후 개발과 홍보를 위한 NDA(비밀유지약정)을 체결하게 되었다.

▲ 오큘러스 CTO '존 카맥'

이후 '리프트'는 E3에 무사히 출품해 굉장한 반향을 몰고 왔고, 제니맥스는 계약 내용에 따라 FTP 서버를 열어 그간 쌓아온 개발 노하우와 자료를 오큘러스와 공유하기 시작했다. 이에 오큘러스 측은 수차례 제니맥스에 감사의 뜻을 담은 메일과 기술지원을 요청하는 메일을 남겼고, 제니맥스는 오큘러스에 정식 계약을 제안했지만 오큘러스 측은 이에 응하지 않고 기술적 지원 요청과 홍보 요청만을 반복했다.(이 모든 메일의 내용이 제니맥스가 제출한 고소장 안에 포함되어 있었다.)

2012년 E3이후, 오큘러스는 '킥 스타터'를 시작했고, 이 과정에서 제니맥스의 게임들(이드소프트웨어의 '레이지'나 베데스다의 '엘더스크롤5: 스카이림'과 같은 게임)을 홍보에 이용했다. 하지만 이 또한 제니맥스와는 사전 협의가 이뤄지지 않은 내용이었다. 결국, 킥 스타터는 성공했고, 제니맥스는 꾸준히 정식 계약 체결을 요청했다. 오큘러스 측은 이를 회피했으나, 결국 초안을 쓰는 단계에 이르게 된다.

▲ E3 2012, 초기 버전 '리프트'를 소개하는 존 카맥

계약서 초안에는 제니맥스는 오큘러스에 대한 기술적 지원의 대가로 오큘러스 주식의 2%를 무상으로 취득하게 되며, 3%를 유상으로 추가 취득한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다. 제니맥스는 이 조건에 동의했고, 나아가 추가 주식을 취득할 권리를 달라고 했으나 오큘러스측은 계속해서 기술 지원과 감사의 편지만을 보낼 뿐 이 제안에 대한 대답을 회피했다.

이 모호한 관계는 반년 가까이 이어졌다. 2012년 11월, 오큘러스는 제니맥스가 오큘러스의 주식을 추가로 취득하고 싶다면 막대한 자금과 투자를 해야 할 것이라는 답변을 보냈다. 이후에도 오큘러스는 CES 2013에 출전해 좋은 성과를 거두는 등 자사의 이미지를 확립하면서, 동시에 꾸준히 제니맥스에 기술 자문과 투자를 요구했다.

결국 제니맥스는 오큘러스와 일이 되지 않으리라 판단했고, 오큘러스에 대한 투자와 지원을 중단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이 결정으로 VR 분야에 대한 투자가 이어지지 않자 '존 카맥'은 이에 불만을 느끼고 고용계약이 종료된 직후 함께 일하던 5명의 인원과 함께 오큘러스에 투신하게 되었다. 제니맥스는 이 5명의 직원이 제니맥스 내 VR 기술들에 대해 많이 알고 있는 직원들이며, 일부는 퇴사와 함께 제니맥스의 기술을 함께 가지고 갔다. 마지막으로 제니맥스는 '퇴사자 보안 약정서(퇴사 이후 이전 직장의 비공개 정보나 자료 등을 공개하면 안 된다는 약정)'를 잘 지켜달라는 메일을 보냈으나, 존 카맥은 제니맥스의 시비를 방지하고자 그간 작업한 오큘러스 SDK를 완전히 다시 짰다.


상기한 박스 내 내용이 바로 제니맥스가 주장한 오큘러스와의 사실관계다.(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제니맥스의 '주장'이다) 제니맥스는 이 사실관계를 입증할 방대한 자료를 확보한 채 고소에 나섰고, 페이스북이 오큘러스를 인수할 때 지불한 20억 달러의 금액을 배상금으로 요구했다.


■ 존 카맥의 하드 드라이브 - 오큘러스의 위기

그리고 2년이 지난 2016년. 새로운 소식이 나왔다. 법원 측에서 제니맥스의 요구를 받아들여 존 카맥의 맥 하드 드라이브에 대한 포렌식 분석(전자적 증거물 등을 사법기관에 제출하기 위해 데이터를 분석, 수집, 보고하는 작업)이 이루어졌는데, 그 결과 존 카맥이 진술한 내용이 부정확하며, 하드 드라이브 내 중요한 로그 파일이 증거로 수집되기 전 삭제되었다는 것이다. 존 카맥은 법정 공방 도중 오큘러스로 이직했고, 현재는 완전히 오큘러스 측에 있는 인물이니만큼, 이는 재판 과정에서 오큘러스에 불리한 정황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었다.

이보다 앞서, 존 카맥은 "이드 소프트웨어에서 일하던 시절 작업한 내용은 현재 오큘러스 리프트와 전혀 관계없다"라고 주장해왔다. 먼저 짚고 갈 것은 존 카맥이 이드 소프트웨어에서 일하던 시절(상기하자면, 이드 소프트웨어는 제니맥스의 자회사다) 개발한 모든 작업물이 제니맥스의 소유라는 점이다. 이는 존 카맥이 이드 소프트웨어 소속일 당시 진행했던 VR 프로젝트가 존 카맥의 개인 프로젝트가 아닌, 전사 차원에서 진행한 프로젝트이기 때문에 당연한 일이다.

쟁점은 이 작업물들이 오큘러스 리프트에 포함되었느냐는 것인데, 포렌식 분석 결과가 이 작업물들이 포함되지 않았다는 오큘러스와 존 카맥의 주장에 불리한 정황을 남겨버린 것이다. 결국, 법정 공방은 이후 3개월간 더 이어졌고, 2017년으로 넘어가게 되었다.


■ 2017년 - 제니맥스 미디어의 승리

이어진 공판에서는 현 오큘러스의 모회사인 '페이스북'의 마크 주커버그가 모습을 드러냈다. '마크 저커버그'의 이름값 때문인지, 이날 공판은 게임업계와 IT 업계를 제외하고도 대단히 많은 언론의 주목을 받았고, 사실상 이 사건을 수면 위로 떠오르게 했다. 그전까지는 이 사건 자체를 모르는 이들도 많았기 때문이다.

마크 주커버그는 "인수 당시 오큘러스와 제니맥스 간 비밀유지협약에 대해서는 들은 바가 없으며, 법률적 위험을 조사했었으나, 큰 이슈가 없었다. 오큘러스 리프트는 오큘러스만의 기술로 만들었을 뿐, 제니맥스의 기술과는 관계없다."라는 주장으로 일관했고, 사실상 재판에 큰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사건은 이제 끝을 향해 가고 있었다. 제니맥스의 증빙 자료는 방대하면서도 치밀했고, 오큘러스측은 이를 반박할 만한 수단이 딱히 없었다. 결국, 2월 2일, 법원은 제니맥스의 손을 들어주었고, NDA 위반, 저작권 위반, 출처 미표기 등의 항목으로 오큘러스에 3억 달러, CEO '브랜든 아이리브'에게 1억 5천만 달러, 팔머 럭키에게 5천만 달러, 총 5억 달러의 배상금을 지급하라고 선고했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 브랜든 아이리브 현 오큘러스 CEO


■ 판매 금지 가처분 신청 - 오큘러스 앞에 놓인 가시밭길

법정 싸움의 승리로 제니맥스는 총 5억 달러의 배상금을 타냈지만, 멈추지 않았다. 그간 오큘러스가 보여준 태도에 화가 나서인지, 혹은 오큘러스를 경쟁사라 판단해서인지(현재 제니맥스는 HTC VIVE와 손을 잡고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법원에 판매 금지 가처분 신청을 제출해버린 것이다.

판매 금지 가처분 신청이 용인될 경우, 사실상 오큘러스는 완벽하게 끝장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말 그대로 벼랑 끝으로 밀어버리는 것이다. 물론 제니맥스 측에서도 여지는 남겨 두었다. 제니맥스는 판매를 중단하든지, 혹은 앞으로 10년 수익의 20%를 로얄티로 받겠다고 요구했다. VR HMD 시장에서 오큘러스가 가지는 상징성과 시장성을 생각할 때, 든든한 고정 수익을 하나 만들어두겠다는 뜻이다.

물론, 오큘러스가 판매 금지 처분을 받을 현실적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제니맥스 또한 VR 관련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마당에 오큘러스라는 축을 무너뜨리는 것은 넓은 관점에서 볼 때 자충수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제니맥스의 판매 금지 가처분 신청은 오큘러스에게 가하는 엄포라고 할 수 있다. 판매 금지 신청이 받아들여지기도 힘들뿐더러, 통과된다 해도 실질적으로 이득이 되는 로열티로 협상을 진행할 가능성이 높지만, "우리가 이만큼 화가 나 있다"라는 것을 알리기 위한 액션이다.

이렇게 제니맥스와 오큘러스 간의 분쟁은 일단락되었다. 사실상 전쟁은 끝난 상황. 가처분 신청이나 존 카맥의 개인적 소송은 전후 흔히 벌어지는 혼란기의 단면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오큘러스의 이미지는 되돌아오지 않았다. 흔히 말하는 3대 HMD 중에서 오큘러스는 가장 이미지가 좋지 못한 기업이다. 초도 물량 확보에 실패해 상품 배송이 늦어지는가 하면, 팔머 럭키가 여러 공식 석상에서 보여준 부적절한 대응이 쌓이고 쌓이며 곪은 것이다.

▲ 가격은 낮아졌지만 이미 꽤 늦었다.

지금에 이르러서야 HMD 가격을 인하하고, '오큘러스 터치'가 포함된 패키지를 새로 소개하는 등 이미지 반전을 노리고 있지만, 쉬운 일은 아닐 거다. VIVE가 세계를 대상으로 영향력을 넓혀가고 있고, LG가 최고급 HMD를 선보인 마당에, 초창기의 선구자적 이미지로 먹고살기엔 이미 막강한 경쟁자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오큘러스가 나락으로 떨어질 예정이란 뜻은 아니다. 여전히 오큘러스를 기반으로 하는 콘텐츠들은 꾸준히 개발되고 있고, 오큘러스만큼의 기술력을 쌓은 기업도 흔치 않다. 1막의 끝이다. 제대로 혼이 난 만큼, 배운 것도 많았을 테다. 2막의 상대들은 만만치 않다. VR 시장이라는 각축장에서 살아남고 굳건한 기둥이 되려면, 지금까지보단 더 굳센 추진력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이미지를 개선하고, 경쟁력 갖춘 차기 모델을 잘 마련한다면, 아마 내후년 쯤엔 또 다른 오큘러스를 보고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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