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 텔레콤 T1이 리그 오브 레전드 프로게임단 창단 이후 처음으로 정규리그에서 3연패를 당했다. LoL 챔피언스 코리아(이하 LCK)가 토너먼트 리그에서 풀 리그로 바뀐 이래 처음 있는 일이다.

리그 오브 레전드 월드 챔피언십 3회 우승, LCK 6회 우승, MSI, IEM 등을 포함해 총 14회 우승과 2회 준우승을 기록하는 등 역대 최강의 LoL 프로게임단으로 지난 몇 년 동안 입지를 다져왔기에 지금의 부진한 모습은 많은 이들에게 충격으로 다가오고 있다.

SKT T1의 부진은 어디에서부터 출발했을까? 연패의 시작은 대만 까오슝에서 열린 리프트 라이벌즈 2017 Team WE와의 경기에서부터다. 그러나 SKT T1은 리프트 라이벌즈 이전에도 팀 안에 불안 요소를 분명 가지고 있었다. 바로 식스맨을 기용한 포지션, 현재 메타에서 중요성이 매우 커진 탑과 정글이다.




2014년, SKT T1이 한 차례 왕좌를 놓치고 두 개의 팀을 하나로 합치면서 김정균 코치가 식스맨을 기용하기로 마음먹은 포지션은 정글과 미드 포지션이었다. 김정균 코치는 그의 선택이 옳다는 것을 성적으로 증명했다. 이듬해, SKT T1의 탑 라인 자리를 꿰찼던 ‘마린’ 장경환은 한 해 동안 월드 챔피언십 MVP다운 활약은 매경기 보여줬다. 봇 라인의 ‘뱅-울프’ 듀오는 2015년부터 점차 완성도가 오르더니 라인전이 강하면서도 안정적인, 모순(矛盾)을 모두 겸비한 팀의 실질적인 에이스로 거듭났다.

반면, ‘벵기’ 배성웅은 안정적이지만 메타의 영향을 많이 받는 선수였고 ‘페이커’ 이상혁은 자신의 능력으로 경기를 파괴할만큼 폭발력이 있으나 분명히 기복이 있는 선수였다. 김정균 코치는 이 부분을 보완하기 위해 안정감이 장점인 ‘Easyhoon’ 이지훈을 잔류시키고, 논란의 소지가 있음에도 당시 신예 정글러로선 최고로 평가받던 ‘톰’ 임재현의 영입을 강행했다. 그렇게 2015년 SKT T1은 스프링 시즌 이상혁의 폼이 좋지 않았을 때는 이지훈이, 배성웅이 부진할 떄는 임재현이 활약해주며 왕좌를 되찾을 수 있었다.




2016년 SKT T1을 돌아보면, 가슴에 새긴 세 번째 별과 그랜드 슬램을 달성했다는 결과와 달리 사실 꽤나 불안한 경기력을 보여줬던 한 해 였다. CJ 엔투스와 플레이오프를 기점으로 중요한 순간 폼을 되찾아준 배성웅이 다시 침묵했고, 임재현 대신 영입했던 신예 ‘블랭크’ 강선구는 한창 재미를 추구할 때였다. 솔로랭크에서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줬던 ‘스카웃’ 이예찬은 한 시즌만에 팀을 떠났고, 장경환을 대신한 ‘듀크’ 이호성은 나진에서 보여줬던 활약에 비교하면 다소 아쉬운 모습이었다.

그해 SKT T1은 스프링 정규 시즌을 3위로 마감했고, 섬머 시즌에는 결승전에 서지 못했었다. MSI에서는 2,3 일차 경기에 4연패를 당했었고, 롤드컵에서는 4강과 결승을 풀세트까지 가는 접전을 벌였다. 2016년은 SKT T1에게 가장 치열했던 한 해였다.

2015년과 2016년을 돌아보면, 김정균 코치는 가장 기복이 있는 라인에 주로 식스맨을 기용해왔다. 바꿔말하면 김정균 코치가 식스맨을 기용하는 라인이 SKT T1의 불안요소라는 뜻이다. 올해 2017년에는 탑 라인의 ‘후니’ 허승훈, ‘프로핏’ 김준형, ‘운타라’ 박의진 등 탑 라인에만 세 명의 선수를 기용했고, 정글에는 ‘피넛’ 한왕호, ‘블랭크’ 강선구를 번갈아 기용하고 있다.




허승훈과 한왕호가 매 1세트마다 먼저 기용되는 것은 이들의 개인기량이 각 포지션의 경쟁자들보다 뛰어나기 때문이다. 허승훈과 한왕호는 모두 자신에게 기회가 오면 프로게이머간의 대결에서 경기를 지배하는 모습을 보여준 적이 있으며 허승훈은 라인전에서, 한왕호는 갱킹 능력에서 특출난 모습을 보여줬었다.

그러나 피지컬이 뛰어난 선수가 보여주는 안일한 플레이, 자신의 피지컬을 믿고 다소 위험한 모습을 연출하는 단점은 이들 모두가 가지고 있다. 실제 허승훈은 삼성과의 경기 2세트 11분 경, 상대방의 드래곤과 아군의 1차 탑 타워를 교환하는 과정에서 굳이 가까지 가지 않아도 되는 상황에 타워에 접근하다가 포탑과 함께 솔로킬을 내줬고, 한왕호는 아프리카 프릭스와의 경기 2세트 32분 경, 위험한 상황에서 와드를 파괴하려다 킬을 내주며 상대에게 바론을 내주는 단초를 제공했다. 이는 솔로랭크에서는 몇 번이고 나와도 이상하지 않은 장면이나 팀 게임, 게다가 프로 간의 경기에서는 승패와 직결되는 큰 실수다. ‘실수없이 우리 할 것만 잘하면 이긴다’를 모토로 하는 김정균 코치의 생각과는 정면으로 위배되는 행위이기도 하다.

김정균 코치가 섬머 1라운드 전까지 식스맨의 효율적으로 기용했다 하더라도 주전멤버가 원하는 경기력을 보여주지 못하는 이상 불안요소의 존재는 사라지지 않는다. 특히, 메타의 변화로 탑 라인에 탱커가 아닌 브루저가 자주 모습을 비추면서 각 라인의 강하고 안정적인 활약이 더욱 필요해진 이 때에 날개 운영에 한 축을 담당하는 탑 포지션의 불안은 SKT T1에게 뼈아픈 변수다.




SKT T1이 불안요소를 식스맨을 통해 처방하던 때에 설상가상 믿고 있던 미드-봇 라인에서 문제가 터졌다. 가장 눈에 띄는 점은 리프트 라이벌즈 2017을 기점으로 ‘페이커’ 이상혁의 기복이 두드러지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이상혁은 리프트 라이벌즈 2017 중국 Team WE와의 대결에서 초반 상대 칼날부리를 무리하게 빼앗으려다 경기를 그르치는 실수를 범했었다.

이상혁의 실수가 SKT T1에게 너무나도 뼈아팠던 이유는 조합상 상대의 돌진을 카운터치고 갈리오의 성장을 억제해야하는 카시오페아가 초반부터 점멸이 빠지면서 제대로된 역할 수행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또한, 이 경기에도 스플릿 조합의 중심인 탑 라인의 잭스가 Team WE의 자르반 4세를 상대로 CS를 30개 이상 뒤지면서 조합의 색이 완전히 바래져 버렸다.

아프리카 프릭스와의 경기에서 보여준 이상혁의 모습은 분명 이전 같지 않았다. 이상혁은 ‘쿠로’ 이서행을 상대로 언제나 자신있는 모습을 보여줬었다. SKT T1은 1,2세트 경기에 모두 상대의 픽을 보지도 않고 1픽으로 탈리야를 먼저 골랐다. 이는 상대가 잘하는 것을 빼앗는다는 의미와 함께 이서행이 무엇을 해도 탈리야로 상대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기저에 깔려있는 밴픽이기도 하다.

그러나 경기결과는 ‘쿠로’ 이서행이 1,2세트 MVP를 모두 차지하며 아프리카 프릭스의 승리로 끝났다. 이상혁의 탈리야는 이서행의 코르키, 카사딘을 제대로 막아내지 못했다. 경기 내용이나 보여준 퍼포먼스도 자신감 있는 픽과는 대조적으로 많이 아쉬운 모습이었다.




팀에서 가장 뛰어난 안정감을 보여주며 최후의 보루처럼 여겨지던 봇 라인까지 흔들리면서 SKT T1은 이제 모든 라인에 문제를 드러냈다. ‘울프’ 이재완은 시야를 장악하는 과정에서 종종 잘리는 장면을 연출하긴 했었지만 라인전에서 킬을 내준 적은 거의 없었기에 아프리카 프릭스전에서 당한 솔로킬은 굉장히 낯설었다. 팀의 최후의 보루가 되어줬었던 ‘뱅’ 배준식은 아프리카 프릭스전 1세트 14분 한타 상황, 소환사 스펠을 모두 들고 있는 상황에서 알리스타의 분쇄-박치기 콤보를 맞아 비명횡사, 팀에서 가장 먼저 죽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SKT T1이 18일 치른 진에어와의 경기는 졸전 그 자체였다. 점멸이 없음에도 라인을 밀다가 갱킹을 허용한 신드라, 이도 저도 아닌 어설픈 봇 다이브, 무너진 탑 라인과 성급한 오더들, 분석이 필요없을 정도로 엉망이었고 진에어전에서 SKT T1은 더이상 세계 최강의 리그 오브 레전드 프로게임단이 아니었다.




SKT T1의 부진이 연패로 인한 부담감 때문이라 말할 수도 있다. 혹은 리프트 라이벌즈 2017 이후 경솔하고 프로답지 못한 발언과 행동들이 재조명되면서 쏟아진 비판과 비난이 그들의 경기력에 영향을 줬다고 말하고 싶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경기 외부적인 요인은 어떤 것도 그들의 패배를 정당화시키지 못한다. 프로는 승리가 미덕이고, 승리는 그들이 추구해야할 단 하나의 목표다.

지금 SKT T1에게 절실한 것은 승리다. 프로 선수로서 다시 한 번 각오를 다지고, 반성할 일은 반성하면서 달라진 경기력을 보여줘야 한다. 부진은 있어도 몰락은 없다는 김정균 코치의 말은 또 한 차례 시험을 앞두고 있다. 그리고 그들이 시험을 어떻게 통과하는 지를 많은 눈들이 지켜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