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 OGN


삼성 왕조를 이끌던 주역들이 중국에 흩어진 지 3년이 흘렀다. 그 시절을 주름잡던 선수 중 일부는 아직도 선수 생활을 이어가고 있고, 일부는 은퇴를, 그리고 나머지 일부는 코치로 e스포츠와 여전히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삼성 블루의 서포터를 맡았던 ‘하트’ 이관형은 코치의 길을 갔다. 영광스러운 일도 있었다. 이관형 코치는 2015년 부임 당시 LGD 게이밍의 서머 시즌 우승으로 팀을 롤드컵으로 이끌며 전성기를 보냈다. 그리고 고난도 있었다. 2016년의 LGD 게이밍은 ‘마린’ 장경환이라는 전년도 월드 챔피언십 MVP를 영입했지만, 그해 LPL 리그 최악의 팀이라는 평가를 들었다.


그때를 회상하며 이관형 코치는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때였다고 고백했다. 또한, 당시에 공황장애를 겪고 있었다는 뜻밖의 이야기를 전해왔다. 팀 성적의 난조와 개인 건강상 문제까지 겹친 최악의 시기였다.




“상태요? 별로 좋지 않았죠. 공황 장애를 앓고 있었거든요. 그때는 밴픽을 위해 경기장에 올라서는 것도 겁이 났어요. 발작도 한 번 오고. 공황장애를 겪어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집 밖을 나가지 못해요. 항상 죽을 것 같다는 불안감에 휩싸여 살 거든요.


모든 일을 내가 다 책임져야 한다는 압박감이 컸던 거 같아요. 저는 아마추어 시절부터 항상 팀장 역할을 했었거든요. 밴픽 하는 거, 스크림 잡는 거, 경기 결과까지, 그런 모든 일에 있어서 제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왜 나만 더 노력해야 하는 거지? 내가 할 일이 아닌 것들까지 왜 나만 계속하고 있을까?’


저의 삶은 제가 원하는 삶이 아니었어요. 저는 정말 많이 노력했는데, 팀에서는 인정을 해주지 않았죠. 인정해줄 필요까진 없어도, 적어도 다 같이 이기자는 그런 생각은 함께 할 수 있지 않았을까요? ‘남들이 하지 않으면 내가 좀 더 하면 될 거야’라고 생각하면서 살았지만, 사실 제 진짜 속마음은 그걸 원하지 않았던 거에요.”


이관형 코치는 자신이 공황장애를 앓고 있는 동안, 여러 명언집을 많이 읽었다고 말했다. 그중에 가장 가슴에 와닿는 말이 있었다고 한다. “너는 살기 싫은 게 아니라, 이렇게 살고 싶었던 게 아니다”라는 말이었다.


선천적으로 심장병을 가지고 있던 그는 언제 심장이 멈출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공황장애를 더욱 심각하게 만들었다. 심장 소리가 크게 들리면 혹시나 자신의 심장이 멈출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심장 소리가 들리지 않으면 심장이 멈췄나 라는 생각에 잠을 이루지 못한 적이 많았다고.


자신의 아픔을 이겨내기 위해 그는 큰 노력을 했다. 그리고 이겨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자신 때문에 주변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것이 정말 싫었기 때문이다. 자신이 없던 것들에 새롭게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하나하나 다시 도전에 나섰다. 집 밖을 나서는 것부터, 다른 곳에서 밥을 먹는 것, 비행기를 타는 것까지.



“RNG에 합류할 때에 팀에 부탁했어요. 월급을 많이 주지 않아도 되니까 제가 스스로 건강 관리를 할 수 있도록 시간을 많이 달라고요. 그리고 이곳에 배우러 왔다는 생각으로 일을 시작했죠. 스스로 계속 세뇌한 것 같아요. 중국에서 이미 살아봤는데, 뭐가 두렵겠냐?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손대영) 감독님이 와주시면서 많은 것들이 완벽해졌다는 생각도 했어요. 우리 팀이 톱니바퀴 맞물리듯이 서로 잘 맞기도 했고, 선수들과 신뢰도 쌓였고, 올해 초에 팀 성적이 좋지 않을 때도 감독님께서 끝까지 믿어주시고 좋은 이야기도 많이 해주셨거든요. 그런 부분이 저에게 정말 많은 힘이 됐어요.


감독님이 제 발언에 힘을 많이 실어 주세요. 중국에서는 코치의 발언이 힘이 없는 편이거든요. 선수들이 문제가 생기면, 코치와 이야기를 하지 않고 바로 위에 이야기한다든지 그런 문제가 좀 심했어요. 저희 RNG 팀은 이제 그런 부분이 거의 없어졌어요. 선수들이 어쩔 수 없이 코치와 이야기해야만 하는 상황을 감독님이 많이 만들어주셨거든요. ‘우리 문제는 우리끼리 해결해야 풀린다.’라는 생각을 선수들에게 많이 인식 시킨 거죠.


감독님의 위치가 저보다 위인 상황에서, 저를 그렇게 믿어주고 적극적으로 밀어주는 건 정말 힘든 일이라고 생각해요. 책임은 다 감독님이 지는 거니까. 그런데도, 성적이 잘 나오지 않을 때도 저를 믿어준 것, 그런 부분이 제게는 정말 크게 와닿았어요.“



이관형 코치는 그가 겪고 있는 고난을 RNG와 함께 이겨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가능할 수 있었던 건, 그의 뛰어난 선수들과 손대영 감독 덕분이었다. 그는 RNG 팀에서 펼치고 있는 자신의 전략적 철학을 전했다. 그의 생각은 독특한 만큼 재미있었다.


“어떤 방식이든 잘해야 해요. 한 가지 방식으로만 이길 수 있는 팀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어요. 그런 부분들을 선수들에게 많이 이야기했어요. 밴픽, 챔피언은 핑계다. 우리가 어떤 조합을 가지든, 무슨 챔피언들 하든 우리가 잘하면 이길 수 있다. 이게 사실 말로는 쉽고 실제로는 굉장히 어려운 거지만, 이제는 서로 믿음이 생긴 것 같아요.


상황에 따라 전략이 바뀌는 건 매우 중요한 무기이고, 그만큼 선수들이 잘해줘야 해요. 그런 의미에서 저는 아직 증명된 사람은 아닌 거 같아요. 지금 RNG가 잘하고 있는 건 잘하는 선수들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제가 꼴등팀에 가서도 성적을 올려야 내가 잘하는 코치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겠죠.


‘내가 못하지는 않는구나’, ‘내 방식이 틀리진 않았구나’ 딱 여기까지만 생각해요. 그전에도 여러 선수를 관리해봤기에 잘 알고 있어요. 우리 선수들이 정말 잘한다는 걸 확실히 느끼고 있어요.”



RNG는 여러 가지 재미있는 전략들을 자주 시행하는 팀이다. 일례로, RNG는 야스오를 봇 라인 원거리 딜러 포지션에 가장 먼저 보낸 팀이다. 또한, ‘카사’와 ‘mlxg’ 두 정글러를 동시에 기용해 승리하기도 했고, 우지의 포지션을 탑 혹은 미드로 보내는 전략을 시행하기도 했다. 그는 이런 전략의 유동성이 평소의 생각이 때와 메타와 맞아 들면 꺼낼 수 있게 되는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예를 들어, 우리 팀에 야스오를 잘하는 선수가 있어요. 그럼 어떻게 이 선수가 야스오를 쓸 수 있는 상황을 만들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해요. 그런 생각을 가지고 전략을 미리 생각해 두고 있다가, 메타가 맞아떨어진다는 생각이 들면 이를 꺼내요.


저는 편견을 깨는 걸 좋아해요. 챔피언에 대한 편견을 깨고, 이를 실제로 해낼 수 있는 거. 챔피언에 대한 편견은 모두 가지고 있잖아요. 솔로랭크에서도 이상한 챔피언을 고르면 바로 욕을 하고 닷지하는 것처럼요. 선수들은 그게 더 심해요. 자기들의 이해도가 최고라고 생각해서요. 이럴 때 선수를 설득할 수 있는 건, 팀원들이 그 선수의 챔피언을 얼마나 믿느냐, 그리고 이를 맡긴 저를 얼마나 믿느냐에요.


예전에 사용했던 5미드 전략도 편견을 깼던 대표적인 사례라고 생각해요. 2012-2013 NLB 윈터 시즌이었죠. 저희가 CJ 엔투스를 상대로 5경기에 5미드 전략을 썼었잖아요. 지금 VG에서 뛰고 있는 이지훈 선수가 생각해내서 준비한 전략인데, 5세트에 상황이 맞아서 쓰게 됐어요(웃음).”


▲ GSG 시절 (왼쪽부터 이지훈, 최천주, 이관형)


NLB 2012-2013년도 결승전에 나온 GSG와 CJ 엔투스의 5세트 경기는 지금도 간혹 회자되는 명경기다. 당시 아마추어팀인 GSG는 프로게임단 CJ 엔투스를 결승전에서 만난다. 양 팀은 5경기까지 가는 접전을 벌였고, 마지막 경기에 GSG는 다섯 명의 챔피언이 모두 미드 라인에 서는 특별한 전략을 구사하며 20분이 되기 전에 승리를 거뒀다. 현재의 메타와 비교해도 그 어느 때보다 EU식 틀을 깼던 혁신적인 전략이었다.



이관형 코치는 선수들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중국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원거리 딜러 우지부터 밍과 mlxg, 렛미, 카사 등 자신의 팀원들 한 명, 한 명을 모두 언급하며 장, 단점을 말했다. 그는 특히 우지와의 일화를 전하며 그가 직접 느낀 우지의 능력을 전해줬다.


“제가 서포터 출신이잖아요. 그래서 원거리 딜러 선수는 미니언을 먹는 것만 봐도 잘한다, 못한다가 바로 구별되거든요. ‘우지’는 그 동물적인 감각이 너무 뛰어나요. ‘데프트’나 ‘프레이’는 학교 선생님에게 배운 그런 모범적인 움직임이라면, ‘우지’는 어디 정글에서 동물들과 함께 살다가 내려온 느낌이에요. 사람이 하는 것 같지 않은 느낌이랄까?


이론적으로는 약한데 동물적인 감각이라는 면에서는 엄청 뛰어나요. 이런 스타일은 예전에 잘할 때 ‘임프’ 구승빈이나 지금은 ‘룰러’ 박재혁에게 느꼈었어요. ‘우지’는 여러 면에서 ‘룰러’ 선수와 비슷한 구석이 있는 거 같아요.


사실 우리 팀원들은 작년만 해도 뭔가 사람 같지 않은 느낌이었어요. 좀 극단적으로 표현하자면 다들 짐승 같았어요. 너도 짖어라! 나도 짖을게! 이런 느낌? 정말 호흡이 맞지 않았거든요. 처음에는 정말 다 이기적인 애들이었는데 이제는 그나마 호흡을 맞추려고 많이들 노력하고 있어요.”



2018 LPL 스프링 시즌 우승과 MSI 우승, 데마시아 컵 대회 우승까지. 참가한 모든 대회에서 트로피를 수집하고 있는 RNG. 현재 중국 내에서는 RNG에 대한 믿음이 점점 더 굳건해지고 있는 중이다. 중국 팬들은 이번이야말로 RNG가 월드 챔피언십의 소환사 컵을 중국에 가져다줄 것으로 믿고 있다. 그리고 이관형 코치 역시 팬들에 기대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우승 못 하면 큰일 나요, 정말(웃음). 무서워 죽겠어요. 지금은 정말 연습할 시간이 없거든요. 당장 내일이 대회인데 연습할 시간은 녹록지 않아요. 메타는 계속 변하고 있고, 연습 시간은 너무나 부족해요.


우승이란 건 정말 많은 운이 필요한 거 같아요. 그 날에 따라, 어떤 선수가 정말 잘해도 우승이 가능한 건 아니에요. 우승을 하려면 10명 모두가 잘해야 이길 수 있거든요. 실수 하나로 승부가 갈리기 때문에 집중력도 정말 필요해요. 그만큼 운이 따라줘야 하죠.


그런 생각 때문에 SKT T1이 정말 대단한 팀이라고 생각하고, 팬분들이 지금의 SKT T1을 너무 안 좋게 평가하지 않으셨으면 해요. 지금까지 해낸 업적만으로도 정말 대단한 팀이잖아요. 연속으로 몇 시즌을 우승한다는 게. 중국에서는 우승한 팀이 다음 시즌 7, 8위 되는 경우도 너무 많아요. 몇 년 동안 최고의 자리에 있는 건 정말 힘든 일이고, 팬분들이 이를 조금만 더 알아주셨으면 해요.


참 다행인 점은 선수들이 부담을 크게 느끼지 않는다는 거예요 경력이 오래돼서 그런지 그 부담을 즐기는 거 같아요. 엄청나게 큰 장점이죠. 그리고 선수 본인들도 그런 이야기를 해요. 살면서 이렇게 열심히 연습한 적이 없다고.”



이관형 코치는 선수들에게 형처럼 느껴지고 싶다는 자신의 바람을 전했다. 힘들면 다독여줄 수 있고, 잘못한 것은 지적해줄 수 있는 좋은 형. 자신은 그걸 잘하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선수들과 친하게 지내고 있다고 자신했다.


RNG가 이번 월드 챔피언십에 진출한다면, 이관형 코치는 3년 만에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게 된다. 그는 한국으로 돌아가게 된다면 너무 즐거울 것 같다며 꼭 돌아가고 싶다 말했다. 자신을 아직 기억해주는 팬분들을 만나 그에 보답하고 싶다고.


“저를 사랑해 주시는 것에 보답하는 게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팬분들과 대화하고 이야기 나누는 그런 것들. 그분들도 굉장히 아까운 시간과 감정을 소비해 저희에게 사용해주는 거니까. 이런 인터뷰도 이를 읽을 한국과 중국의 팬분들에 대한 보답인 거고요.


저를 아직 기억해주는 분들에게 감사 인사를 드리고 싶어요. 그리고 그분들에게 어떻게 보답할 수 있을지 고민 중에요. 저를 기억해주셔서 정말 감사드려요. 그리고 그분들에게 좋은 모습 보일 수 있도록 좋은 성적 거두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