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강전을 넘어 LCK에 처음 올라와 당차게 롤드컵 우승을 말하던 팀. 그리핀이 올해도 LCK 우승부터 세계 무대를 향한 도전을 이어간다. 2018년의 그리핀이 롤드컵을 앞두고 단 한 경기 차이로 아쉬움을 삼켜야 했다면, 다시 한번 결승전에 오르며 작년에 못다 한 숙원을 풀 기회를 잡았다.

지금의 그리핀은 작년보다 확실히 한 걸음 나아갔다. 작년 섬머 1라운드에서 패배를 기록했다면, 이번 스프링 1R는 전승으로 마칠 수 있었다. 최고의 기세로 정규 스플릿이 끝나기 전에 당당히 1위로 결승 직행에 성공한 것이다. 전승 우승한 KeSPA 컵부터 LCK 스프링까지 올해의 모든 흐름은 작년보다 발전한 그리핀의 행보를 잘 보여주고 있다.

그리핀의 실력은 이미 LCK 2연속 결승 진출로 검증한 상태다. 아쉬운 건 단 하나. 바로 LCK 우승 트로피다. 국가를 대표해 세계 무대에서 뛴 경험이 없다는 것. 아직 LoL의 역사에 한 획을 그은 팀은 아니란 점이다. 막연한 강팀과 역사적인 팀은 확연히 다르다. 롤드컵 선발전만 되면 놀라운 힘을 발휘하는 젠지, 압도적인 경기력으로 2013-15-16 롤드컵을 휩쓴 SKT T1처럼 말이다. 그들이 완벽하다는 평가를 받지 못했던 시기가 있을 지언정, 우승으로 자신들이 최강이라는 사실을 전 세계에 알렸던 것처럼.

역사적인 팀이 되려면, '강팀 그 이상'의 무언가를 보여줘야 한다. 그리고 그리핀은 그 갈림길에 서 있다. 현재 그리핀은 약점과 강점이 분명해 보이는 상황이다. 약점을 극복해야만 세계 무대에 어울릴 만한 LCK의 우승자가 될 수 있다. 상대는 전통의 최강팀이자 플레이오프에서 최고의 기세를 탄 SKT T1이다. 작년과 마찬가지로 그리핀은 우승자가 되기 위해서 한 걸음 더 나아가야만 한다.


더이상 뒤가 없다. 결연한 '소드' 각오
플레이오프 핵심은 사이드 운영, 탑 라이너는?


이번 LCK 스프링 플레이오프의 승리 공식은 '사이드 라인 지배'라고 할 수 있다. 사이드 푸쉬와 끊어먹는 난전이 바론 한타까지 영향을 주는 경우가 잦았다. 킹존 드래곤X가 발 빠른 합류로 담원 게이밍의 사이드를 지배했고, SKT T1이 사이드 운영에 나선 킹존의 허를 찌르는 판단으로 승리했다.

많은 P.O 경기의 중심에는 강력한 힘을 자랑하는 각 팀의 탑 라이너들이 있었다. 메타의 변화로 두 팀 중 한 팀 이상 브루저-딜러를 기용해 사이드에 힘을 준 것이다. 이를 노리거나 받아치는 싸움이 중-후반에도 큰 영향을 미치곤 했다. 킹존 '라스칼' 김광희의 라이즈가 SKT T1과 2세트에서 수많은 역경 끝에 쌍둥이 포탑 철거에 실패하면서 힘이 빠지는 장면이 이를 잘 보여준다.

그리핀의 '소드' 최성원 역시 사이드 라인 운영에서는 아쉬움이 남는 선수다. 스프링 2라운드 후반에 접어들면서 라이즈(2R 0승 3패)를 주로 선택했지만, 상대 공격에 대처하지 못하고 쓰러지는 장면을 하위권팀인 젠지-아프리카 프릭스전에서도 볼 수 있었다. 제이스(2R 2승 2패) 역시 팀원들의 도움을 받아 성장하는 듯했지만, 사이드에서 끊기고 힘이 빠지고 한타마저 그르치고 말았다. 완벽해 보였던 그리핀이 탑 라이너 중심의 사이드 운영에는 적응하지 못하는 의외의 모습이었다.

이에 그리핀은 '소드'에게 오른-나르-아트록스와 같은 챔피언을 주며 변화를 꾀했다. 사이드에서 탑 라이너의 힘을 뺀 대신 버티고 한타에 기여할 수 있는 챔피언으로 기용한 것이다. 그리핀 역시 탑에 사이드 운영만 맡기지 않는 모습이었다. 그렇지만 여전히 최근 대세인 탑 딜러-브루저 카드를 다루지 못한다면, 그리핀은 그만큼 다양한 카드를 활용할 수 없게 된다. 정규 스플릿 마지막 경기에서 '소드'가 제이스를 다시 꺼내면서 진에어 그린윙스전을 승리했지만, 아쉬웠던 이전 경기에 대한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한동안 경기가 없었던 만큼 '소드'의 경기력에 대한 우려는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소드' 최성원은 담담하게 결승전에 임하는 자신감을 드러냈다. 경기가 없는 기간 동안 최선을 다해 준비했고, 이를 결승 무대에서 자신의 기량을 보여줄 것만 기대하고 있었다. 탑 메타에 대해서는 "상황에 맞게 브루저든 탱커든 뽑아서 승리라는 목표만 보고 내 역할에 충실할 것이다"고 답변했다. 최근 기세를 끌어올리는 중인 '칸' 김동하와 대결이 '나 자신을 증명할 최고의 기회'라고 말할 정도로 결승전에 대한 기대도 내비쳤다.

이런 말에 대해 '소드' 본인도 '근거 모를 자신감'이라고 말했다. "뒤가 없다. 난 앞만 보겠다"는 각오로만 결승이라는 무대가 버거운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이 모든 걸 우승이라는 결과 하나로 뒤집을 수 있다. 가장 큰 무대에서 자신이 그리핀의 승리에 기여했다는 점. 끝까지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역할을 완수할 수 있다면, '소드'의 말은 '근거 있는 자신감'으로 바뀔 것이다.


힘의 중심 변화하는 그리핀
탑 라이너 스플릿만 고집할 필요있나?


그리핀이 탑 딜러 중심의 사이드 운영에 약점을 보였다고 쉽게 무너질 팀은 아니다. 앞서 말했듯이 '소드'에게 교전 중심의 챔피언을 쥐어주고 다른 팀원들이 사이드 운영에 힘을 줘 스타일을 변화했다. 그리고 결승 상대인 SKT T1을 상대로 스프링 2차전에서 이를 증명한 바 있다. 그 경기가 스프링 최고의 명경기로 뽑히는 이유 역시 불리한 상황을 사이드 운영으로 극복한 그리핀의 대처가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그리핀은 경기 초반 구상했던 것들이 SKT T1의 노림수에 무너지고 말았다. 1세트에서 '타잔' 이승용의 녹턴이 SKT T1 라이너의 뒤를 봐주는 '클리드'에게 힘을 쓰지 못하면서 힘이 빠졌다. 그리핀의 기존 승리 공식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2세트 역시 '소드'의 우르곳이 사이드 운영에서 '칸'의 리븐에 밀렸고, 리븐이 한타에서도 엄청난 존재감을 드러냈던 경기였다.

하지만 그리핀의 사이드에는 든든한 '쵸비-타잔'이 있었다. 이렐리아-엘리스로 사이드에 홀로 남아있는 '페이커' 이상혁의 리산드라를 확실히 압도했다. 위 영상 2분 27초만 보더라도 엘리스의 칼 같은 플레이에 두 번 연속으로 끊어내는 장면을 확인할 수 있다. 상대 이동 경로를 예측하고 미리 매복하는 슈퍼플레이로 사이드 라인을 지배한 것이다. 해당 경기는 SKT T1 탑이 크게 활약했음에도 그리핀이 승리한 경기한 예라고 보면 된다.

3세트 역시 마찬가지였다. '타잔'의 이블린이 힘 좋다고 정평이 나있는 '칸' 제이스를 끊어버려 힘을 확실히 빼놓았다. 승부를 결정짓는 마지막 백도어 장면 역시 미리 봇 라인을 밀어서 가능한 플레이였다. 한타에서 SKT T1이 어마어마한 힘을 발휘했을지 몰라도 교전을 피해 사이드로 돌파하는 그리핀은 막을 수가 없었다.

이렇듯 그리핀은 약점이 드러났다고 좌절하는 팀이 아니다. SKT T1전이라는 중요한 경기에서 당황하지 않고 대처하는 법을 알고 있었다. 당시 단독 MVP를 받은 '타잔'에게 힘이 주는 경기였고, 정글러가 탑 라이너의 사이드 운영보다 더 강력한 위력을 발휘했다. 특정 스타일에만 의존하는 팀이 아니기에 그리핀의 사이드 운영이 결승전에서 어떻게 변화할지 모른다. SKT T1 역시 킹존과 대결에서 사일러스와 아칼리를 가져오며 사이드에서는 밀리지 않겠다는 의지를 드러냈기에 진검 승부를 기대해볼 만하다.

▲ '칸' 상대로 사이드 지배하는 정글러 '타잔'



강해져서 돌아오는 팀
휴식 후 그리핀 변화는 상상 이상


작년부터 그리핀은 LCK에서 독특한 챔피언을 많이 꺼내기로 유명한 팀이었다. 티모를 비롯해 다양한 챔피언을 봇 라인에 기용했고, 정글러 역시 특정 메타에 따라가지 않고 이블린과 같은 픽을 가장 적절하게 활용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더 무서운 건 휴식 후 돌아온 그리핀의 챔피언 선택이다. 철저한 준비로 상대의 허를 찌르는 카드를 꺼내 많은 이들을 놀라게 한 경우가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올해 역시 오랜 휴식 후 치른 LoL KeSPA컵부터 SKT T1과 2R 대결에서 많은 이들의 예상에서 빗나간 챔피언 카드를 꺼냈다. 그리핀의 휴식기에 더 힘이 실리는 이유는 그리핀이 새 조합을 가장 잘 살릴 운영법까지 연구해왔다는 것이다. 다른 팀 전략에 대처만 준비하지 않고, 휴식 후 새로운 스타일을 제시할 수 있는 팀이 그리핀이다.

이런 그리핀의 장점은 팀원들의 넓은 챔피언 폭에서 나온다. 프로게이머라면 챔피언 폭이 넓은 건 기본일텐데, 그리핀만의 장점이 돋보이는 이유는 간단하다. 어떻게 활용해야할지, 상황에 맞춘 활용법을 정확히 알고 있다는 것. 김대호 감독부터 선수들까지 팀 스타일과 하나된 모습을 경기로 보여준다. '타잔'이 성장에 집중할 때 라이너들이 초반을 사려준다. 반대로 최근에는 '타잔'이 공격적인 정글러로 라이너들에게 힘을 실어주기도 한다. 이렇듯 유기적인 팀플레이가 있었기에 그리핀이 완벽한 경기를 펼칠 수 있었던 것이다.

▲ 3월과 2월, 극명히 갈린 '타잔'의 선택

나아가, 그리핀 팀원 개인의 챔피언 폭 역시 무시 못한다. 스프링 최고의 KDA 수치로 전 세계를 놀라게 했던 '쵸비' 정지훈이 이렐리아-아칼리를 다시 쓸 수 있는 시기가 왔다. 지난 아칼리 너프 때만 하더라도 못 쓰는 픽이라고 단정하던 '쵸비'가 다시금 아칼리를 꺼내기 시작했다. LPL에서 활동하는 관계자에 따르면, "그리핀 '쵸비'만큼 아칼리로 라인 주도권을 잡을 수 있는 선수가 없다"고 말할 정도로 그 위력은 실제로 어마어마했다.

이렐리아 역시 2R SKT T1전을 비롯해 3월부터 3연승을 달리며 다시금 부활했다. 막을 수 없다는 인식이 잡힌 '쵸비'의 이렐리아-아칼리는 밴픽 창부터 상대에게 큰 압박으로 다가올 수 있다. 최근에는 구원 사이온-여진 라이즈 등으로도 좋은 모습을 보여줬기에 '쵸비'의 존재감은 여전히 뚜렷하다고 할 수 있다.

'바이퍼' 박도현 역시 어떤 위력적인 챔피언을 쓸지 기대를 모으는 선수다. 최근에는 원거리 딜러를 위주로 했지만, 언제든지 비원거리 딜러로 많은 이들을 놀라게 해줄 수 있는 능력을 충분히 갖췄다. 스프링 초반만 하더라도 블라디미르로 4승 0패라는 놀라운 기록을 낸 바 있다. 작년부터 다양한 챔피언을 충분히 보여줬기에 언제든지 믿고 쓸 수 있다. 최근 분위기 역시 봇 라인에 충분히 변화가 생기고 있는 상황이다. LCK에서 킹존 '데프트' 김혁규가 빅토르-모르가나를 활용했고, 세계 무대에서 소나까지 등장하는 시기다. 김대호 감독 역시 "팀적으로 필요한 순간, 비원거리 딜러 챔피언도 충분히 활용할 수 있다"고 미디어데이에서 언급한 만큼 '바이퍼'의 선택에 기대가 실린다.

화려한 수치! LCK 스프링 그리핀 챔피언의 위용

풀어주면 감당하기 힘든 '쵸비' 챔피언
아칼리 7전 전승 KDA 71
이렐리아 3전 전승 KDA 5.3

'바이퍼' 다양한 비원거리 딜러 챔피언
블라디미르 4전 전승 KDA 10.5
다리우스 KDA 7-야스오 KDA 15-니코 KDA 7-카시오페아 KDA 3.5 (모두 1승 0패)

스프링 스플릿에서 1R에서 전승으로 무적의 포스를 내던 그리핀에게 많은 이들이 희망을 걸었다. 세계 무대에서 아쉬웠던 작년 LCK의 한을 풀어줄 수 있는 새 시대의 강자. LoL 판에 새로운 역사를 쓸 신흥 강자로 지목하곤 했다. 그리고 그리핀은 결승전에서 "다시 한번 1라운드의 포스를 보여주겠다"고 선언했다.

이제 그리핀이 진정한 새 시대의 강자로 거듭날 수 것인가. 그동안 새로운 스타일로 팬들에게 뚜렷한 인상을 심어주고, 작년보다 나아진 성적을 냈기에 기대를 모으긴 충분하다. 이제 남은 것은 단 하나, 우승뿐이다. 상대는 다시 왕좌를 되찾으려는 '전통의 최강자' SKT T1이다. 그런 SKT T1을 넘는다는 것은 그리핀이 MSI를 비롯한 세계 무대에서 활동할 때 더 큰 힘이 될 것이다. 그리핀은 새 시대의 최강자로 거듭나기 위한 최고의 기회를 잡을 수 있을까.

▲ KeSPA 컵 우승 당시 그리핀


2019 스무살우리 LCK 스프링 스플릿 결승전 일정

그리핀 vs SKT T1 - 4월 13일 오후 5시 (잠실 실내체육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