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게임명 : 모르비드: 더 세븐 어콜라이트(Morbid: The Sever Acolytes)
  • 개발 / 배급 : Still Running/Merge Games
  • 장르: 액션 어드벤쳐/RPG
  • 플랫폼: 콘솔, PC (스팀)
  • 키워드 : #소울라이크 #2D #고어 #코스믹호러

  • 프롬소프트웨어의 '소울' 시리즈가 대성공을 거둔 이후, 해당 시리즈의 독특한 시스템은 '소울라이크'라는 새로운 장르적 특성으로 재정립되었습니다. 기존에 존재하던 액션 어드벤처의 문법을 따르지만, 나는 한방 너는 여러방이라는 난도 조절 시스템과 독특한 레벨 디자인으로 액션 어드벤처 장르의 당당한 하위 장르가 되었죠. 그리고 지금은, 솔직히 큰 상관 없어 보여도 두어 대 맞으면 체력이 너덜거리는 고난도의 액션 게임에는 이 장르 분류를 붙입니다. '소울라이크'라고 말이죠.

    인디 게임씬의 경우 약간은 달랐습니다. 한정된 개발 자원만으로 게임을 만들어야 했던 이들은 '소울류'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긴박한 고난도의 액션'만 가져다가 아예 새로운 틀에 입히는 시도를 했습니다. 보통 개발 코스트가 적게 들면서도 필요한 만큼의 표현은 가능한 아이소메트릭(3차원 세계를 2D로 표현하는 방식, 흔히 말하는 쿼터뷰) 게임이나 횡스크롤 플랫포머 게임에 이를 이식했죠. 이쯤 와서는 카피캣보다는, 인디 게임씬의 새로운 풍조 중 하나에 가까운 모양새가 되었습니다. 적어도 외형상으로, 소울 시리즈와 비슷한 구석은 없었으니까요.

    '솔트 앤 생츄어리', '드리븐 아웃', '다크 디보션', 'EITR'등의 게임들이 단순히 유행을 따르는 수준을 넘어 좋은 게임성으로 호평받았습니다. 그리고, 올 겨울 또 하나의 게임이 2D 소울라이크의 대를 잇겠다며 도전장을 던졌죠. 아이소메트릭 게임임에도, 그 어떤 게임보다 기본 소울류와 비슷한 느낌을 풍기는 게임. 바로 '모르비드: 세븐 어콜라이트(Morbid: The Seven Acolytes, 이하 모르비드)'입니다.




    ■ 뭔지는 몰라도 일단 무서운 세계

    게임의 배경이 되는 세계 '모르니아(Mornia)'는 정체불명의 역병으로 대충 망해버린 세계입니다. 주인공인 디브롬의 마지막 스트라이버(Striver)는 멸망의 한복판에서 눈을 뜨게 되고, 멸망을 초래한 일곱 사제를 처단하기 위한 대장정에 오르게 되죠. 일단 여기까지가 게임의 도입부에 해당하는 스토리입니다.

    문제는, 이 배경 이야기들이 퍽 와닿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리 중요하지 않게 느껴질 지 몰라도, 의외로 액션 어드벤처 게임에서 시나리오는 플레이 동기 부여에 큰 몫을 합니다. 이는, 게임의 테마가 특정 감성에 쏠려 있거나, 피로감을 유발하는 경우 더욱 강력한 역할을 하죠.

    ▲ 심플 그 자체인 메인메뉴

    모르비드의 세계는 매우 참혹합니다. 게임 테마의 일부를 러브크래프트의 크툴루 신화에서 따온 만큼 뭔가 더러운 공포로 가득 차 있죠. 에일리언을 디자인했던 H.R 기거의 일러스트가 생각나는 그런 느낌의 공포입니다. 달리 말하면, 그만큼 피곤합니다. 게임 내 고어 연출에 익숙한 저조차도 게임을 하면 할수록 정신적 피로감이 쌓이는게 느껴졌습니다. 절로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들곤 했죠.

    이런 고단함을 정리하고, 게임을 진행하게 만들 잠재력이 바로 시나리오에 있습니다. 비장함이든, 쿨함이든, 주인공에게 몰입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해 두었다면 어떻게든 끝을 알고 싶어서라도 게임을 하게 되거든요. 하지만 잘 짜인 세계와 걸맞지 않게 모르비드의 스토리텔링은 접근성이 퍽 떨어집니다.

    ▲ 2D 도트 그래픽인데 썩은내가 납니다.

    길거리에 놓인 책만으로 스토리텔링을 이어가게 되는데, 한국어 지원이 안되는 게임 형편상 읽기 쉽지도 않을 뿐더러 내용들도 디테일보다는 다소 우회적인 표현들로 채워져 있죠. 언어의 장벽 때문에 그런가 싶었지만, 혹시나 몰라 찾아본 해외 리뷰들 또한 비슷한 문제를 지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충분히 알고 보면, 모르비드의 세계는 꽤나 잘 만들어져 있습니다. 도대체 무슨 역병인지는 모르지만, 살거죽이 벗겨진 생선이 기어다니며 주인공을 물고, 인간은 좀비가 되어 배회하고 있으며, 길바닥엔 온통 썩은 내장과 선혈로 얼룩져있죠. 산업혁명기 벽돌 건축물과 고딕 양식을 적절히 배합한 듯 보이는 건물들의 모습과 아무리봐도 악당 같아 보이는 NPC들의 추례한 모습에 이르기까지 게임 속 모르니아는 멸망의 단계로 나아가는 세계의 모습을 온전히 전하고 있습니다. 소규모 스튜디오의 인디 게임이기에 이해는 할 수 있지만, 조금만 더 적극적 스토리텔링을 했으면 하는 아쉬움은 있습니다.

    ▲ 배경 이야기를 안다면 훨씬 깊이있게 다가오는 세계



    ■ 일격이탈의 전투, 소울류의 '스릴'만큼은 합격

    게임의 근간이 되는 전투 시스템의 경우, 일반적인 쿼터뷰 게임보다는 훨씬 다채로운 조작이 가능합니다. 공격, 스킬 사용, 이동 등으로 제한되는 일반적인 쿼터뷰 액션 게임과 달리 모르비드는 강공과 속공, 방어, 원거리 무기 발사, 그리고 구르기와 은신까지 갖춰져 있습니다. 은신 후 강공으로 적을 하나씩 지워가며 플레이할 수도 있고, 구르기와 원거리 무기 활용을 최대한 살려 정신 없는 액션을 펼칠 수도 있죠.

    다만, 2D라는 한계 상 복잡한 조작은 불가능합니다. 한 방이면 저승에 갈 적의 내려찍기를 횡이동으로 피한다거나, 점프로 상대의 하단 공격을 피하는 등의 움직임은 불가능하죠. 결국 모르비드의 전투는, 형태와 빈도의 차이만 있을 뿐 사정거리의 끝에서 내 공격을 적중시키고, 상대의 공격이 닿기 전 도망가는 형태를 띄게 됩니다. 본질적으로는 '때리기만 하고 맞진 않는다'라는 점에서 소울라이크의 정신에 부합되지만 2D의 한계를 넘어서진 못한, 가능한 한도 내에서 최대한 소울 시리즈의 감성을 담고자 한 시도가 보이는 형태입니다.


    ▲ 예상보다 페이스가 빠르고 정신없는 전투

    이를 보완하기 위해 개발진이 준비한 건 다양한 무기입니다. 원거리 무기는 가짓수가 많은 편이 아니지만, 근접 무기의 경우 생각 이상으로 다양한 무기가 준비되어 있죠. 빠른 공격속도의 건틀릿부터 무거운 양손 망치에 이르기까지 각 무기에 따라 사정거리와 공격 속도, 피해량이 각각 다르고, 상대하는 적에 따라 적합한 근접 무기가 존재합니다.

    때문에 주력 무기 원툴로 게임을 진행하는게 불가능하진 않지만, 권장되진 않습니다. 모르비드 내에 자체적으로 무기 로드아웃 기능을 지원하기 때문에 두 종의 무기를 번갈아가며 사용하거나, 인벤토리에서 그때그때 필요한 무기를 꺼내 사용하는 형태로 게임을 진행하게 되죠. 하지만 이 또한 다채로운 액션의 부재라는 근본적인 문제의 해결책으로는 손색이 없습니다. 결국 무슨 무기를 쓴다 해도, 치고 빠지기로 게임을 진행하는 것만이 유일한 길입니다. 그 과정에서 '맞으면 죽는다'라는 소울라이크의 감성은 잘 살려냈으니 그건 확실히 칭찬할만한 부분이지만요.


    ▲ 소울 시리즈의 그 손에 땀나는 전투감성은 확실히 살아 있습니다.



    ■ 한계를 넘어서긴 어려웠던 소울라이크의 막내

    굳이 전투중 느끼는 감성이 아니더라도, 모르비드에서는 여러모로 소울 시리즈를 의식한 부분들이 눈에 띕니다. 체력을 채워주지만, 몬스터 리스폰도 함께 시키는 명상 시스템이라든가, 진행 과정에 따라 새로운 지역이 해금되는 형태의 레벨 디자인 등은 참고나 차용보단 존경을 담은 오마주에 가깝게 느껴집니다. 전투 중 게이머가 느끼게 되는 감성, 그리고 소울 시리즈 못지않게 꿈도 희망도 없는 세계관과 처절함은 소울라이크로서 전혀 손색이 없을 정도입니다.

    다만, 이런 장점들이 개발사의 한계를 가려주지는 못합니다. 여기서의 한계는 '잘못했다'보다 '할 수 없었다'에 가깝겠습니다만, 시작부터 엔딩까지 5~6시간, 게임을 잘 못해도 8시간이면 클리어 가능한 크다 볼 수 없는 볼륨이나 창고의 부재로 테트리스를 해야 하는 인벤토리, 처음엔 무서웠지만 후반이 될수록 만만해지는 보스들의 모습은 분명 아쉬운 부분입니다. 일반 게이머들이라면 어렵지 않은 보스를 반길 수도 있으나, 소울라이크에 눈을 뜬 어둠의 게이머들에게는 너무 심심한 수준의 보스로 보이겠죠.

    ▲ 답답하기 그지없는 인벤토리

    과거 일본의 완구회사인 '타카라'는 SNK의 다양한 대전 격투 게임의 열화판을 하청 받아 제작했는데, 그 중 유일하게 호평을 받은 '열투 킹오브파이터 96'이란 작품이 있습니다. 흑백 화면에다 SD캐릭터, 2버튼의 조작체계의 한계 등으로 원작을 100% 재현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운 상황이었음에도 놀라운 재해석과 퀄리티로 호평받았습니다. 그외에 다른 게임들은 모두 망했지만요.

    소울 시리즈와 모르비드의 관계가 원본 KOF와 열투 KOF의 관계 정도지 않을까 싶습니다. 보다 열악한 환경에서도 본작의 느낌을 살리기 위해 여러 장치를 넣어 두었고, 실제로 어느 정도 근접하기도 했지만 그 그림자를 벗어나는 수준에 이르지는 못했죠.

    강점이라면, 가격 경쟁력입니다. 소울 시리즈의 최신판은 현재 PS5 버전으로 리메이크된 '데몬즈 소울'입니다만, 게임 가격도 그렇지만 PS5도 구매 결정이 쉬운 가격은 아닙니다. 하지만, 모르비드는 2만원 대의 가격에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지요. 하지만, 모르비드가 단순히 가격만으로 후려칠 게임은 결코 아닙니다. 비록 소규모 스튜디오라는 태생적 한계를 벗어나긴 어려웠겠지만, 모르비드는 여러모로 소울라이크를 사랑하는 게이머들이 좋아할 장치들로 가득 차있는, 충분히 '돈 값 하는' 게임이니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