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보다 괜찮았어요."

지금까지 이 말을 하기가 참 쉽지 않았다. 보통 눈치 안 보고 할 말 하는 성격이라는 말을 참 많이 듣지만, 욕 좀 먹고 끝날 상황이 아니라는 것쯤은 짓누르는 분위기로 알 수 있었다.


CEO 자리에서 물러나는 마사장 '마이크 모하임'을 위한 세리머니 카드를 받았을 때의 흥분. 배틀넷에 액티비전 게임인 '데스티니2'가 추가된다는 짤막한 광고에 내지르는 야유. 2018년 블리즈컨에 모인 사람들은 그냥 게임팬이 아니라 블리자드광 그 자체였고 디아블로4나 디아블로2 리메이크를 기대하는 팬들에게 이 게임을 꺼낸 후 쏟아지는 비난에는 말 그대로 분노가 담겼다.

그렇게 현장의 야유가 데이터화 되어 전 세계로 뻗어 나가고 있을 무렵, 애너하임 컨벤션 센터 구석에서 조금 먼저 '디아블로 이모탈'을 만질 수 있었다. 몇 번 모바일 가상 패드를 휘젓고 나서 '나름 괜찮네'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물론 감히 입 밖으로 꺼내선 안 될 말이었다. 알고 있었다. 2018년의 '디아블로 이모탈'은 그저 괜찮은 게임이 아니라 진짜 디아블로를 기대하다 등 돌린 팬들의 어깨를 강제로 잡아끌 정도로 '엄청나고, 완벽하고, 훌륭한 디아블로'여야 했다는 점 말이다.

그리고 2년이 지난 지금, 알파 테스트를 플레이하고 그때는 차마 하지 못한 '괜찮다'라는 표현을 꺼내보려 한다. 다만 기준은 그저 모바일 액션 게임의 하나가 아니라 '디아블로'라는 기준에서의 '괜찮음'이다.



쿨타임이 가져온 전투의 변화
집중하고 또 집중하라

핵앤슬래시라는 장르의 핵심 요소 중 하나는 전투다. 눈에 보이는 구성부터 기술의 시전 모습 등 디아블로 이모탈의 전투 외형은 디아블로3의 것을 그대로 따랐지만, 그 내용은 스킬 선택부터 자원 활용까지 새롭게 구현됐다. 틀 자체는 붕어빵 디아블로지만 그 틀 안에 넣는 재료를 팥에서 슈크림으로 바꿨달까?

우선 기본적으로 마나나 공력, 분노 같은 자원을 없앤 대신 각 스킬에 적용된 대기 시간에 따라 사용할 수 있다. 그렇다고 모든 스킬이 '사용 후 10초 대기'식으로 정확하게 쿨타임만 따져 돌아가는 건 아니다.

디아블로3의 '맹렬한 돌진'처럼 재사용 대기시간마다 최대 보유량까지 스킬을 저장해둘 수 있는 스킬들은 모아뒀다 여러 발을 한 번에 쓸 수 있다. 파열'이나 '서리광선', '소용돌이' 같이 버튼을 누르는 동안 계속 사용할 수 있는 채널링 스킬들은 스킬 별로 별도의 자원이 차오르고 이 자원 한도 내에서 자유롭게 이어 쓰는 게 가능하다.

▲ 스킬은 자원이 없어지고 쿨타임과 횟수 누적, 채널링 등으로 시전 방식이 바뀌었다.

사실 디아블로1을 제외하면 시리즈 내내 자원 관리의 중요성은 그리 중요한 덕목은 아니었다. 플레이어는 스킬을 마음대로 쓸 수 있을 정도까지 마나 스탯을 올리거나 마나를 수급할 수 있는 장비를 착용했다. 디아블로3에서는 한 발 더 나아가 세트아이템과 전설 장비의 특수 옵션으로 재사용 대기시간만 조금 신경 쓸 뿐 주력 스킬을 거의 무한으로 즐길 수 있었다.

디아블로 이모탈의 스킬들은 쿨타임제, 그것도 재사용 대기시간이 짧게는 5초에서 길게는 30초 정도까지 길게 유지되며 이를 활용하는 양상 자체가 뒤바뀌었다. 강력한 딜 능력을 갖추고 있긴 하지만, 스킬은 다음 사용까지 오래 기다려야 하는 만큼 적재적소에 활용하는 게 중요해졌다. 크게는 주력 딜링기 역할에서 반걸음 정도 물러나기까지 했다.

플레이어의 주력 공격 기술은 쿨타임이 없는 일반 공격이 차지하게 됐다. 마력탄이나 광분처럼 자원을 생성하는 수준이었던 주 기술은 이제 스킬의 공백을 메우는 훌륭한 딜링 수단이 됐다. 실제로 일반 공격처럼 쓰이지만, 이들 역시 쿨타임이 없을 뿐 스킬 중 하나로 분류돼 레벨이 존재하고 가하는 대미지 기대치도 스킬 피해량, 혹은 그 이상이다.

▲ 괴물놈들을 (평타로) 매우 세게 쳐라!

일반 공격의 강화와 제한적인 스킬은 전투 자체의 양상 변화만큼이나 플레이어의 게임 집중력에도 변화를 줬다. 그저 마우스 버튼 하나만 누르면 다 되는 지루할법한 전투가 이것저것 눌러가며 진행되는 꽤 긴장감 넘치는 전투로 변모했다.

그렇다고 마냥 복잡하게만 만들어진 건 아니다. 아무리 가상 패드의 조작이 좋다고 해도 마우스와 키보드 조작에 따라갈 수 없는 만큼 적들의 패턴도 조금은 단조로워지고 투사체도 느긋하게 피할 수 있는 정도로 개선됐다. 가상 패드의 경우 고정되어 있지 않고 손을 댄 방향에 따라 조금씩 움직여 썩 편한 편도 아니었다. 물론 추후 플레이어 커스텀 옵션이나 가상 패드 지원 등이 예고된 만큼 정식 버전에서는 좀 나아지겠지만 말이다.

조작의 불편함을 차치하면 스킬 구성의 변화는 전투의 긴장감은 높이되 충분히 적응할 수 있는 수준에서 타협한 셈. 그 덕에 시즌을 거듭할수록 게임에 적응되고 일부 플레이어로부터 졸음 유발 게임이라는 악명을 얻었던 디아블로3만큼의 느슨한 플레이는 많이 사라지게 됐다.

▲ 졸았어요? 그럼 죽어야지! 초반 중반 후반 언제든 방심하면 죽는다

게임의 긴장감을 높이는 또 하나의 요소는 이 모든 게 플레이어의 직접 컨트롤 하에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아마 디아블로 이모탈의 첫 공개 이후 가장 큰 우려를 샀던 부분 중 하나가 바로 플레이 경험과 맞바꾼 모바일 게임의 편의성일 것이다. 그 편의성이 대개는 공격과 스킬이 저절로 이루어지는 자동 전투 시스템으로 귀결된다는 것도 알 테고.

디아블로 이모탈은 이 자동 전투를 배제했는데 이로써 앞서 이야기했던 '끌어올린 긴장감'을 플레이어에게 직접 경험하도록 했다. 여기에 플레이어 레벨에 맞춰 필드 몬스터와 고대 균열, 던전 몬스터의 레벨을 보정해 성장구조와 게임 플레이의 감각이 일정 수준으로 동일하게 구현되도록 맞췄다.

이런 플레이는 일반적인 모바일 게임이 플레이에 넘어서기 어려운 벽을 설정하고 이를 훨씬 웃도는 장비와 전투력으로 돌파하도록 하는 성장 구조와는 상반된다.

▲ 최소 진입 레벨은 있지만 그 전에 갈 수도 있고 현재 레벨이 높다면 적들도 그에 따라 강해진다

사실 자동 전투 없이 플레이어의 조작 경험을 우선한 모바일 액션 게임은 더러 있었다. 모바일 액션이 핵 앤 슬래시 게임의 시조이자 대표적으로 꼽히는 디아블로의 영향력을 받지 않을 수 없는 만큼, 디아블로 이모탈이 어떤 차별점을 구현해도 비슷한 게임이 없는 게 더 어려운 일이기도 하다. 되려 스킬 연계 등 모바일에서 더 나은 시스템을 선보이는 게임도 있었다.

다만, 디아블로 이모탈 매우 다른 무언가를 꺼내 보이기보다는 그저 자기들의 장점을 내보이는 데 집중했다. 사실 똑같은 민머리 캐릭터가 번개가 번쩍이는 펀치를 날렸다고 해도 알렉시스 프랑코의 썬더볼트 펀치(진짜로 이런 캐릭터는 없겠지만)와 수도사의 천둥주먹은 분명 다르니까. 그게 IP가 가진 힘이고 디아블로 이모탈이 자신 있어 하는 부분이기도 할 테다.

▲ 똑같은 바바리안이라도 디아블로의 야만용사가 가지는 정체성. 그건 무시할 수 없다

디아블로 시리즈의 특징을 계승한 또 다른 특징은 장비에 따라 달라지는 스킬의 활용도다.

디아블로 이모탈은 기본 공격으로 쓰이는 주력 스킬을 포함해 총 5개의 스킬을 각 버튼에 할당해 전투에 임한다. 대개 형태는 디아블로3의 것을 따왔는데 각 스킬에 별도의 특징을 내는 룬석은 사라졌는데 이 룬석의 역할이 전설 장비로 옮겨갔다.

예를 들어 '소용돌이'를 쓸 때 자신의 쪽으로 적들을 끌어오는 룬석 '먼지 돌풍'의 특성이 전설 장비의 옵션으로 구현됐다. 기존 전설 장비가 주는 특징에 이런 룬석 역할까지 함께하며 어떤 장비를 어떻게 착용하는지, 일명 빌드에 따라 전투 양상도 더 크게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6개의 제한된 주 장비에 하나씩 달린 옵션으로 룬석과 특수 효과까지 모두 구현하려면 어떤 옵션을 사용할지 선택해야 할 테다. 한 스킬에 다양한 옵션을 몰아주거나 스킬마다 옵션을 하나씩 붙여 좀더 범용적인 기술 구성을 달성하는 식이다.

다만, 이런 빌드 구현을 가정법으로 표현한 건 이번 알파테스트에서는 그런 다양성을 쉬이 체험해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 전설 장비의 옵션은 디아블로3의 룬석 역할까지 함께한다

알파 테스트는 최대 레벨이 45로 제한되며 각 캐릭터가 가진 스킬의 일부만 사용할 수 있었다. 스킬에 옵션을 추가하는 전설 장비의 획득은 더 어려웠다. 처음 키운 야만용사는 최고 레벨을 달성하고도 수 시간은 더 즐겼지만, 같은 부위의 전설 장비가 여럿 나오며 전 부위에 전설 장비를 달아주지 못했다.

전설 장비의 수급 자체가 어렵기도 했는데 추후 최고 레벨 개방. 여기에 어렵지만 그만큼 더 나은 장비 수급이 예고된 지옥1과 지옥2의 플레이가 수월하게 이루어질 정도로 성장한다면 획득률은 나아질 수도 있다. 전설 장비의 수가 많고 옵션 종류도 다양하다면 디아블로3의 세트 아이템에 따른 비슷비슷한 빌드 구성이 디아블로 이모탈에서는 사라질지도 모르겠다.

물론 드랍률은 여전히 낮은데 추가 옵션이 이번 알파 테스트에서 보여준 공격력 강화나 룬석의 재분배 정도에 그친다면 더 좋은 기본 옵션인 숫자 놀음에 그칠지도 모른다. 이르면 10시간여 만에 시즌 대세 빌드를 완성해두고 순위 경쟁에 뛰어드는 디아블로3의 성장을 즐기는 게이머들이 답답해할 테고 말이다.

장비는 정식 출시 이후가 가장 기대되는 동시에 우려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 최고 레벨 달성 이후 지옥 레벨에서는 더 많은 드롭 아이템 확률을 보장한다


바알을 봉인하는 탈 라샤와 졸툰 쿨레
자유롭게 뻗어나가는 스토리와 세계 탐험

디아블로 시리즈는 성장 과정에서의 차이가 있을 뿐 콘텐츠 결말은 대개 반복 파밍으로 귀결됐다. 속칭 OO런으로 불리는 특정 보스와 특정 콘텐츠 반복. 3층의 메피스토는 방을 새로 파고 자신을 노리며 달려오는 수백만 플레이어에게 이를 갈 정도였다. 디아블로3에서는 이 역할이 균열과 대균열로 옮겨갔다. 균열은 캐릭터의 성장치를 조금씩 높여나가는 핵심 콘텐츠로 파밍과 성장이 동시에 이루어지는 장소였다.

디아블로 이모탈 역시 차원 균열과 거의 유사한 고대 균열이 등장한다. 하지만 고대 균열은 그 목표가 한쪽의 목표가 명확한 파밍 루트의 하나로 재설계됐다. 무작위로 생성되는 균열 디자인 복잡도도 낮아졌고 정예 몬스터를 잡았을 때 나오는 구슬의 게이지 상승량도 훨씬 크다. 균열의 전체적인 클리어 시간 단축에 일조했는데 짧으면 2분, 길어도 대개 5분 안쪽으로는 클리어 된다.

균열의 시간이 짧아진 만큼 보상도 적은데 클리어 시 얻는 기대 경험치가 아주 적다. 만레벨까지 달려가는 중반 단계인 40레벨 정도만 되어도 균열 열댓 번으로는 레벨 하나 올리지 못 한다. 알파 테스트 기간 45레벨로 제한된 최고 레벨이 정식 출시 후 60으로 풀린 이후라면 아마 경험치 성장 만족도는 훨씬 낮아지게 될 것이다. 균열이 정복자를 포함해 레벨업을 통한 성장보다는 소량의 장비와 부수적인 재료 획득에 그 역할이 집중된 정도다.

▲ 균열에서 부수적인 보상을 얻을 수 있는 전설 인장

경험치를 가장 효과적으로 얻을 수 있는 루트는 오픈 필드가 됐다. 여러 개의 지역으로 구분된 오픈 필드는 입장에 필요한 최소 레벨 정도만 구분되어 있을 뿐 스토리에 따라 한 번 도달한 이후에는 별다른 제약 없이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다. 그리고 이 현재 캐릭터의 레벨이 이 최소 레벨을 넘어선다면 필드 내 적들의 레벨은 캐릭터의 레벨에 적당히 맞춰진다. 한번 지나간 지역은 어디든 개인에 맞는 레벨업 파밍 필드가 되며 이곳에서 균열에서의 아쉬운 레벨업 속도가 만족할 수준의 궤도에 오르게 된다.

다만, 오픈 필드를 그저 '파밍'이라는 표현에 국한하는 건 필드의 특징을 절반만 이해하는 이야기다. 게임 플레이 중심이 옮겨지며 게임은 플레이어가 '탐험'에 보다 집중하도록 만들어졌다. 우두머리 처치나 부수적인 아이템 획득, NPC의 퀘스트 등 지역마다 존재하는 부가 이벤트는 오로지 플레이어가 직접 맵을 돌아다니며 찾아야 한다.

이들 부가 이벤트는 플레이어가 근처에 이동하거나 퀘스트를 발동할 아이템을 획득한 후에야 활성화되고 이를 확인할 수 있다. 그전에는 게임 가이드가 위치를 알려주지도 않고 맵 위에도 별다른 정보가 뜨지 않는다. 실제로 기본적인 메인 스토리로 플레이어가 필드 곳곳을 누비지만, 이를 모두 클리어해도 대개 지역의 70~80% 정도를 밝힐 뿐이다.

결국, 모든 이벤트를 보기 위해서는 플레이어의 오픈 필드 탐험이 선행되어야 하고 게임 역시 경험치 보상을 이곳으로 밀어 넣어 필드를 탐험할 이유를 만들었다. 모바일 게임에서 스토리나 별도의 사이드 퀘스트는 그다지 큰 의미가 있지 않기도 한데 이를 경험치라는 게임 내적인 보상과 새로운 발견이라는 게임 외적 보상으로 함께 제공하는 식이다.

▲ 아이를 끝내 지키지 못하는 딥다크 스토리부터

▲ 근처에 도달하고 나서야 발생하는 서브 이벤트

이런 탐험은 디아블로 2와 디아블로3라는 정사 스토리부터 조금은 더 유연하게 뻗어져 나온다. 강령술사 줄, 악마사냥꾼 발라 등 시리즈 주역 캐릭터의 다른 모습이 등장하고 성역에 내려온 티리엘이 결성한 호라드림의 졸툰 쿨레와 탈 라샤가 힘을 모아 바알을 영혼석에 봉인하는 내용을 게임 내에 직접 구현했다.

그동안 출시된 디아블로 세계관 내에서 '설정 오류'만 일으키지 않는다면 둘의 이야기를 자유롭게 표현해 나가고 있다. 그렇다고 이들 이야기가 그저 정사에 포함되지 않은 야사 모음집 수준은 아니다. 디아블로 이모탈은 엄연히 공식 시리즈의 한 편으로 존재한다. 큰 사건이 있었던 시리즈 둘의 사이. 나아가 그간 게임에서는 다루어지지 않았던 이야기를 채워나간다는 게임 배경의 특징도 이런 이야기의 유연함을 더하는 데 힘이 됐다.

전투에서의 비슷함에 IP가 차별화를 더한 것처럼, 디아블로다움이 디아블로 이모탈에 디아블로서의 정체성을 더 명확히 칠한 셈이다.

▲ 바알을 봉인하는 탈 라샤와 졸툰 쿨레, 호라드림의 이야기

다만, 스토리와 탐험을 게임의 핵심 콘텐츠로 끌어오며 우려할 점도 생겼다. 개발진이 준비한 콘텐츠가 생각보다 일찍 소모되면 게임의 목표 자체가 붕 떠버리게 된다. 블리자드는 이미 비슷한 선례를 겪었다. 디아블로3 출시 당시 탄탄한 스토리와 이를 메울 분량을 자신했지만, 블리자드와 디아블로의 광팬들은 이를 순식간에 끝내버렸다.

탐험 요소에 대해 개발진이 꾸준히 준비해두고 이를 더 오래 즐길 방안이 필요하단 의미. 물론, 아직 알파 테스트인만큼 아직은 옳고 그름을 논할 단계도 아니거니와 디아블로 이모탈은 그간 선보인 디아블로 게임들과 달리 부분 무료화 게임으로 지속적인 업데이트가 게임 생명의 핵심이기도 하다.

여기에 개발진 역시 알파 테스트 전 방대한 콘텐츠가 이미 준비되고 있음을 알리기도 했다. 최근 몇몇 게임들 탓에 개발사의 말을 전적으로 신뢰하기 어려워져 가는 분위기긴 하지만 말이다.

▲ 던전이나 이벤트는 인스턴스 던전 형태로 변경된다

디아블로 이모탈은 기본적으로 생성된 하나의 서버에 다수의 플레이어가 몰리며 오픈 필드는 기본적으로는 대규모 다중 사용자. MMO의 형태로 구현된다. 사냥 중인 악마를 다른 플레이어가 함께 노릴 수 있고 지형 역시 다수의 플레이어가 공유한다. 모든 플레이어가 게임에서 퇴장하는 게 불가능하기에 기본적인 틀을 갖추고 그 안에서 맵의 형태와 이벤트를 무작위로 만들어낸 특유의 맵 생성은 고대 균열 등에만 적용된 상태다.

기존 디아블로 시리즈의 4인, 혹은 8인 이상의 플레이어가 몰리니 자연스레 마주치는 플레이어와 능동적으로 팀을 이루는 게 가능하다. 이런 모습을 보면 게임 자체는 MMORPG라는 기본 틀에 충실한 것처럼 보일지 모르겠다. 대신 게임은 필드를 공유하는 기본 개념과 인스턴스 던전처럼 플레이어만을 위한 공간을 쉴 새 없이 전환하며 단순히 하나의 장르 구분되는 것을 거부하는 모양새다. 그래야 게임의 특징인 개인, 혹은 파티 단위의 탐험 경험을 살릴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게임 플레이에서 스토리와 관련된 중요 이벤트가 발생하면 게임은 그 즉시 플레이어만을 위한 공간으로 전환된다. 타 플레이어의 모습은 보이지만, 내가 상대하는 보스는 나와 파티원만 제압할 수 있다. 같은 오픈 필드 외에 플레이어 각각의 맵이 따로 포개지는 식이다. 주요 보스들이 서식하는 던전 역시 별도의 공간으로 구분되어 플레이어 개별 입장은 물론 파티 모집을 따로 받는다.

개발진이 MMORPG니 MORPG니 하는 섣부른 레이블링을 경계한 것도 이처럼 인스턴스 던전과 인필드 플레이가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은 게임 플레이가 이유인 듯하다. 이렇게 경계 없는 콘텐츠 대다수는 자유롭게 파티를 맺어 플레이해도 되고 그저 혼자 조용히 밀고 나가도 클리어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내 플레이로 얻은 장비
시간을 들여야 완성되는 캐릭터

탐험이 레벨 성장에 집중한 시스템이라면 균열은 장비와 보석, 그리고 최종 성장 옵션인 부적(charm) 성장의 기반이 되는 장소다. 앞서 언급했듯 균열 자체는 소량의 경험치와 장비 획득만 이루어질 뿐이다. 여기에 인장(Crest)를 추가했을 때 비로소 균열이 그 존재 의의를 가진다.

균열 한 번에 총 3개의 인장을 추가할 수 있는데 희귀 인장을 하나 쓰면 추후 설명할 룬을 무작위로 3개, 꺼져가는 불씨(Fading Ember)를 소량 얻을 수 있다. 전설 인장은 희귀 인장 보상에 전설 보석 1개를 무작위로 제공한다.

6개의 주 장비마다 1개씩 장착할 수 있는 전설 보석은 정예 처치 후 공격력 강화나 번개의 화관 공격 등 부수적인 효과에 더해 많게는 30%까지 해당 장비의 기본 능력치를 상승시켜준다. 디아블로3에서는 장신구에만 제한적으로 착용할 수 있었던 전설 보석을 최대 6개까지 착용할 수 있고 능력치까지 올려주니 최고 레벨 달성 이후 전투력 향상의 핵심이 된다.

▲ 장착만으로 훌륭한 효과를 내는 전설 보석이 여섯 개!

전설 보석은 적게는 30개에서 많게는 600개의 'ATI' 룬과 다른 룬을 섞어 조합할 수 있는데 인장을 섞은 균열 한 번에 최대 9개까지 얻을 수 있다. 들어가는 시간과 노력을 생각하면 전설 인장을 써 무작위 전설 보석을 얻는 게 더 효과적. 전설 보석은 강화에도 전설 보석만 필요하니 생각보다 많이 모아야 할 테고 이를 얻을 수 있는 전설 인장이 게임의 핵심 상품으로 자리 잡을 듯하다.

다만, 알파 테스트 기간에는 현금 결제 시스템이 막혔고 이를 직접 확인할 요소도 남아있지 않아 어느 정도 선에서 유저들이 만족할 가격에 판매될는지는 쉬이 판단하기 어려웠다.

여러 룬의 조합으로 꽤 복잡하게 구성된 전설 보석과 달리 장비 강화는 비교적 심플하게 구성됐다. 6개의 주 장비, 6개의 보조 장비 등 착용 아이템은 희귀 이상이면 업그레이드할 수 있으며 소모 재료도 일반, 희귀, 전설 3종류로 간단해졌다. 전설 장비를 분해해서 나오는 전설 재료를 빼면 게임을 플레이하며 얻는 장비 대부분이 재료로 쓰이는 셈이다.

다만 강화 자체에 필요한 재료량이 생각보다 많다. 그렇다고 디아블로 이모탈에 '수요일 재료 던전' 식의 입장 제한, 혹은 장비나 재료를 부스팅하는 타 모바일 게임식 콘텐츠가 존재하지 않아 장비 업그레이드는 플레이어의 오랜 노력으로 채워나가야 할 부분으로 남아있다. 그런 의미에서 일반 필드를 돌아다니며 레벨을 올릴 순 있지만, 한번에 많은 몬스터를 잡는 보스 던전, 혹은 빠르게 클리어하고 수 개의 무작위 장비를 확정적으로 얻는 균열이 장비를 얻는 장소로 더 선호될 수도 있겠다 싶다.

▲ 장비(=재료) 모을 시간이다!

장비 업그레이드에 눈여겨볼 부분이 있는데 각 장비의 업그레이드를 부위별로 여러 번씩 해줄 필요가 없다는 점이다. 예시를 들어보자. 기존의 희귀 투구에 재료를 투자해 3번 업그레이드 했다. 이후 더 강력한 전설 장비를 얻어 장비를 교체하고자 한다면? 아쉬운 대로 기존 장비를 분해하는 방법을 떠올리겠지만, 디아블로 이모탈은 새 장비로 업그레이드 수치를 그대로 이전할 수 있다.

장비 자체를 업그레이드하는 형태로 보이지만 실은 그 부위에 자원을 투자하는 셈이다. 장비의 업그레이드 수치를 이전하지 않고 분해하는 실수를 범하지만 않는다면 자원과 돈 걱정 없이 그때그때 투자해 업그레이드하면 된다는 의미다.

5등급을 올릴 때마다 추가 능력치 옵션이 붙는데 이걸 새롭게 교체하는 재련과 여기 들어가는 제련석이 인장과 함께 캐시로 판매되는 주요 상품이다. 무작위 교체되는 옵션의 특성 종류를 한정하는 특별 제련석만 판매 아이템으로 이름을 올렸고 모든 종류의 옵션 중 하나로 무작위 변경되는 일반 제련석은 게임 중 얻을 수 있다고 알려졌는데 테스트 기간에는 이를 구하는 게 쉽지 않았다.

▲ 한 번 강화한 장비는 같은 종류의 장비라면 강화 수치를 언제든 이전할 수 있다. 무료로!

45레벨 이후에야 착용할 수 있는 13번째 장비 참은 디아블로2와 달리 1개만 직접 장비하는 식으로 활용된다. 참은 사전 브리핑에서부터 열성적이고 게임에 깊이 빠져있는 플레이어를 위한 콘텐츠가 될 거라고 줄곧 소개됐는데 실제로도 그래 보인다.

디아블로 이모탈은 레벨업마다 별도의 스탯 투자도 없고 스킬도 해당 레벨에 맞게 자동으로 오른다. 아무런 장비도, 보석도 없다면 모든 캐릭터가 같은 능력치를 가지는데 참은 이 정해진 스킬의 레벨을 최대치 이상으로 올려준다. 다만, 추가되는 스킬 종류가 현재 내 캐릭터의 직업과 상관없이 등장한다.

야만용사에게 마법사의 스킬인 아이스 아머를 강화해주는 참이 등장하는 등 원하는 스킬 옵션을 구하려면 정말 많은 시간이 필요할 듯하다.

▲ 스킬 최대치 이상의 성장. 그만큼 오랜 시간 플레이해야 한다

45레벨 이후 플레이어를 강화하는 또 다른 방법은 정복자 레벨이다. 정복자 시스템은 꽤 새로운 모습으로 바뀌었는데 그저 스탯에 포인트를 투자하는 걸 넘어 패시브 스킬 트리로 그 모습이 확장됐다.

이번 테스트에는 총 4개의 정복자 트리가 공개됐는데 방어력을 시작으로 체력이 낮아질수록 피해량이 줄어들고 이동 속도가 오르는 등의 방어적인 정복자 트리. 공격력과 방어구 관통력 스탯을 시작으로 적 제거 시 공격력 증가와 추가적인 치명타 확률 증가가 주를 이루는 공격 트리. 핵심 보상의 상승이 이루어지는 트리 등 특색있는 패시브 스킬이 정복자로 자리를 옮겼다.

정복자 트리는 한 포인트에 정해진 포인트를 투자해야 다음 단계에 투자할 수 있는 등 트리라는 이름에 걸맞은 형태를 띤다. 하나의 정복자 트리에 100개의 포인트가 투자 가능하고 4개의 트리 숫자는 정식 출시 이후 더 늘어날 예정이다. 이번 알파 테스트의 레벨업 속도를 생각하면 정복자 트리로 만족할 효과를 얻어내는 데 들일 시간이 대충 가늠된다.

▲ 그냥 스탯 상승을 넘어 패시브 스킬 개념으로 확장된 정복자 트리

다만 정복자 트리가 존재한다고 해서 다른 캐릭터를 키우는 데 초반부터 큰 도움이 되지는 않는다. 정복자 레벨 자체는 계정 내 모든 캐릭터가 공유하지만, 이전 캐릭터가 달성한 정복자 트리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최고레벨인 45레벨을 먼저 달성해야 했다.

여기에 성장 구간에서 돈이나 재료, 창고 등도 캐릭터간 공유가 되지 않아 캐릭터별로 처음 최고레벨에 달성할 때까지 들이는 노력 자체는 큰 차이가 없다. 그나마 배틀 패스와 게임 가이드가 캐릭터마다 따로 적용돼 성장에 답답함을 덜어내고 있다.


디아블로니까 가능한 이야기
그리고 디아블로니까 우려되는 이야기

그간 디아블로 이모탈의 개발진은 팬덤의 수요 예측 실패, 모바일 게임화가 가져올 변화 등 팬들의 우려에도 꽤 당당한 자세를 취했다. 그리고 며칠간 테스트해본 알파 테스트를 통해 그 자신감이 어디서 나오는지 대략 체감할 수 있었다.

디아블로 이모탈은 모바일게임이라면 으레 있었던 요소들을 과감히 쳐냈다. 그래서 그간 디아블로의 핵 앤 슬래시 게임 경험을 모바일로 옮겨내려던 여러 게임과 달리 디아블로 그 자체를 만들었다. 모바일은 그저 플랫폼의 차이라는 듯 게임 플레이만으로 재료를 모으고 필드를 탐험하는, 시간을 들여 세계에 녹아들고 빠져들도록 만들었다.

부분 유료화라는 과금 정책에도 그저 돈을 들여 뽑기 기회를 얻고 운 좋게 캐릭터의 성장 한계를 돌파하는 '지르면 이긴다' 식의 성장 그래프도 없앴다. 돈을 투자해도 나름의 시간을 들이고 플레이 자체를 통해서 파밍하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도 가지지 못하도록 게임 경험을 옮겨놨다.

모바일 게임의 특징을 두루 가지고 있음에도 게임의 무게추는 '어느 모바일 게임'보다 '게임 디아블로' 쪽으로 더 기울어져 있다 할 수 있다.


그래서 게임은 그저 모바일 게임 하나로 봤을 때 과감한 시도, 혹은 착한 과금 정도로 띄워줄 수 있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여전히 게임이 '괜찮다' 수준에 머무를 수밖에 없는 이유도 이 게임이 '디아블로'라는 이름을 등에 업고 나올 게임이라는 점에 있다.

디아블로 이모탈이 시각과 조작 모두 완성된 수준에 이른 디아블로3, 한창 개발 중인 디아블로4를 두고 꾸준히 시간을 들여서 모바일 게임을 플레이해야 할 구실을 만들 수 있을까? 편의성에 잠겨 자동 전투 없이는 모바일 게임을 켜지도 않는 이들, 짧은 시간 동안만 작은 화면에 집중할 수 있는 플레이어가 디아블로 이모탈만의 무게감을 견뎌내도록 할 수 있을까? 따위의 걱정들 말이다.

디아블로이기에 생기는 접근 수요 만큼이나 디아블로답기에 발생하는 벽을 극복해낼 뭔가가 있어야 실망감으로 시작했던 디아블로 이모탈의 끝, 아니 정식 버전과 함께하는 새로운 출발도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