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0월 23일, LA의 오래된 명소인 '오르페움 극장'에 수많은 이들이 모였다. 연극은 아니다. 영화, 콘서트도 아니지만, 인파는 끝도 없이 몰려들었고, 결국 네개개 층 규모의 극장을 가득 채웠다. 극장에서 하는 행사 치고는 이채롭다. '유나이트 LA 2018'의 키노트. 지난 1년 간 엔진 개발사 '유니티'가 어떤 성과를 거뒀는지 알리고, 다음 행보는 어떻게 될 것인지를 말하는 시간이다.


무대가 암전되고, 청록색과 보랏빛의 무수한 끈들이 어느새 올라간 막의 뒷면을 채웠다. 유니티의 시간이 시작되었다는 알림이다. 그렇게 '유나이트 LA'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키노트는 회고이자 제시의 자리다. 그간 유니티가 어떤 길을 걸었고, 어떤 성과를 얻었는지. 그리고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를 알리는 자리다.

디테일한 설명이라기엔 부족했다. 어디까지나 '제시'이니까. 보다 심도있는 설명은 이어질 행사 중 세션에서 등장할 터였다. 하지만 디테일이 부족한 만큼 광범위했다. 기본 뼈대는 '투 트랙'이다. '게임 엔진'으로서 유니티가 거쳐온 정체성을 유지하고, 동시에 비게임 분야에서 영역을 확장하는 것이 앞으로 유니티가 걸어갈 방향의 주요 골자다.

오후 6시가 되자 무대위로 한 사람이 올라섰다. 에픽의 '팀 스위니'와 함께 엔진 시장을 양분하는 거두, '존 리치텔로' CEO다.



■ 존 리치텔로 유니티 CEO, 유니티의 방향성에 대해 설명하다

▲ 유니티 '존 리치텔로' CEO

"상상을 현실로 만드는 것". 리치텔로 CEO가 말하는 유니티 엔진의 존재 이유이자 기업 유니티의 목적이다. 그리고 유니티가 나아갈 방향은 이 과정을 보다 쉽게 만드는 것이다. 유니티 엔진은 계속해서 기술을 축적해왔고, 게임 엔진으로서의 편의성과 성능 외에도 XR 기술에 대한 지원, AI와 머신 러닝, 물리 엔진 등 다양한 부분에서 발전해왔다. 그리고 현재에 이르러서는 게임 외적인 분야로도 활용도를 높이고 있다.

리치텔로 CEO는 '유니티 엔진'이 단순한 게임 엔진을 넘어선 활용성을 갖추고 있다는 점을 강하게 어필했다. 하지만 거기서 끝냈다면 다소 어색해졌을 자리를 그냥 두지 않았다. 리치텔로 CEO는 본인 스스로도 코어 게이머이며, 게임 엔진으로서 유니티 엔진이 갖는 정체성을 놓치 않았다고 역설했다. 기존의 노선을 지키되, 병렬적으로 노선을 늘려 나가겠다는 뜻이다.

이러한 방향성에 맞춰진 것처럼 키노트 또한 두 가지 굵은 줄기를 토대로 진행되었다. 하나는 유니티 시네캐스트와 애니메이션 개발 툴을 이용한 '영상'분야에서의 활용성. 그리고 다른 하나는 두 가지 렌더링 파이프라인과 ECS 기술을 통한 게임 엔진으로서의 발전이었다.



■'영상 제작 툴'로서의 유니티가 가진 잠재력

먼저 중요한 발표로 '유니티 시네캐스트'라는 기술에 대한 설명이 시작됐다. 쉽게 말하면, 굉장히 많은 카메라를 하나의 케이스에 배치하고, 이를 통해 다각적인 영상 소스를 확보하는 기술이다. 예를 들어 드라마나 영화를 촬영할때는 장면을 강조하기 위해 전체적인 장면을 촬영하고, 인물의 가슴부터 얼굴 부분까지를 조명하는 '바스트 샷'을 따로 촬영해 편집한다. 카메라끼리 화각에 동선이 겹칠 수 있기에 촬영은 여러 번에 걸쳐 진행된다.

▲ 영상 제작 툴로의 활용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유니티 시네캐스트는 한 번의 상황에서 모든 촬영을 끝낼 수 있다. 카메라를 아무리 많이 배치해도 동선이 걸리거나 하는 일은 없기에 가능한 일이다. 이렇게 확보된 영상 소스들은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이 가능한데, 3D 애니메이션을 제작하는데 쓰일 수도 있고, 게임과 응용한다면 '컷씬'을 제작한다던가 e스포츠를 보다 멋지게 보여주는 용도로, 혹은 리플레이용 카메라로서도 사용할수 있다.

동시에 '애니메이션 제작 툴'로서의 유니티 엔진도 함께 조명됐다. 월트 디즈니와의 협업을 통해 제작된 '베이맥스 드림'은 애니메이션 '빅 히어로'의 로봇인 '베이맥스'가 등장하는 애니메이션인데, 툴을 통해 실시간으로 장면 내 소품이나 등장 인물을 조절하는 등, 소스만 확보한다면 입맛대로 애니메이션의 내용을 주무를 수 있다.

▲ 유니티 엔진으로 개발된 애니메이션 '베이맥스 드림'

이는 유니티 엔진이 바라보는 비게임 분야의 진출 방향을 잘 드러냈다. 이번 유나이트 LA의 또다른 아젠다는 '오토모티브'에 대한 접근이다. '자동차'를 구매하는 상황에서 유니티 엔진을 통해 여러 옵션과 색상을 사전에 설정하고 눈으로 확인할수 있게끔 확인할 수 있는 장치다. 유니티의 비게임 진출 분야는 영상, 혹은 '영상화'로 향하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 놓지 않은 '게임 엔진'으로서의 정체성

하지만, '영상화'가 이번 유나이트 LA에서 유니티가 내세운 전부는 아니었다. '게임 엔진'으로서의 정체성을 잊지 않았다는 듯 유니티는 차후 엔진이 지원할 여러 기술에 대한 설명을 덧붙였다.

먼저 주목할만한 것은 '커넥티드 게임'이라는 구절로 대표되는 클라우드 게임 프로세스다. 유니티는 멀티 플레이 게임에서 유저가 이탈하는 가장 큰 이유가 '연결의 불안정'임을 파악했고, 이를 방지하기 위해 구글 클라우드와의 협업을 이뤄냈다. 네트워크와 트래픽에 대한 부담을 클라우드 컴퓨터 시스템을 통해 덜어내는 것이 '커넥티드 게임'의 핵심이다.

그런가 하면, 엔진 자체적으로 영상 렌더링 파이프라인을 정비해 모바일에서 PC, 콘솔에 이르기까지 두루 섭렵할 수 있는 두 가지 렌더링 파이프라인을 만들어냈다. 비교적 저사양의 하드웨어에서도 원활한 렌더링을 지원하는 LWRP(LightWeight Render Pipeline), 그리고 고사양의 하드웨어에서 이에 걸맞는 고성능의 비주얼을 뽑아내는 HDRP(High Definition Render Pipeline)이다.

▲ 렌더링 파이프라인도 분류되었다.

유니티의 테크니컬 디렉터인 '루카스 마이어'는 이를 설명하기 위해 새로운 테크 데모인 '메가시티'를 선보였다. '메가시티'는 비행 차량이 일상화된 미래 도시를 배경으로 만들어진 데모 콘텐츠인데, 여기서 두 가지 파이프라인을 적용해 PC에서 고성능 그래픽으로 구현된 메가시티와 모바일 기기에서 고정된 60프레임으로 구동되는 메가시티를 동시에 선보였다. 디테일은 당연히 HDRP가 적용된 버전이 더 세밀하겠지만, 일단 같은 수준의 콘텐츠를 기기와 상관 없이 구동할수 있다는 가능성은 보여준 셈이다.

여기에 프로세스 부하를 덜기 위해 몇 년 전부터 유니티가 내세운 기술은 ECS(Entity Component System)에 대한 설명도 더해졌다. ECS는 콘텐츠 내에 등장하는 오브젝트에 여러 조건을 걸어 이 조건에 맞춰 오브젝트의 기능과 루틴을 짜내는 기능인데, 모든 오브젝트를 베이스로 처리하지 않고 조건에 맞춰 구분하기에 개발 과정과 처리 과정 모두에서 효율을 끌어올릴 수 있다.

▲ 다양한 신기술이 포함된 테크데모 '메가시티'



■ '게임'과 '비게임'의 쌍발 엔진, 유니티의 미래 비전은?

물론 기재한 내용이 전부는 아니지만, 유나이트 LA의 키노트는 이렇게 두 가지 맥을 따라 정리할 수 있었다. 리치텔로 CEO가 깔아둔 교묘한 발언들이 키노트 곳곳에 녹아들었다. 유니티 엔진은 '게임 엔진'으로서 명성을 쌓아왔지만, 진짜배기 목표는 게임 뿐만이 아닌, 모든 크리에이터가 그들의 상상을 현실로 이룰 수 있게끔 해주는 도구다. 리치텔로 CEO의 이와 같은 발언 덕에 유니티는 '비게임 분야'로의 진출에 설득력을 더할수 있었고, 실제로 다양한 비게임 분야로의 진출을 알렸다.

이는 라이벌인 '언리얼 엔진'과 유사한 확장 방향이라 볼 수 있다. 언리얼 엔진 또한 여러 테크 데모와 사업적 방향성을 논하며 단순한 '게임 엔진'의 한계를 벗어나 다양한 산업으로의 확장 욕심을 드러낸 바 있기 때문이다. 다른 상용화 엔진들은 감히 시도하고 있지 않은 방향으로 두 엔진이 방향을 정했다. 실로 흥미로운 대결구도가 아닐수 없다.

물론, 이와 같은 행보가 유니티의 도전장이라 보기엔 민망하다. 비슷한 방향을 향한 두 엔진이지만, 사용자들의 인식이나 내세우는 특장점은 분명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어느 한쪽이 차이를 벌렸다고는 말하기 힘든 요즘이다. 애초에 대결이라는 워딩을 붙이지 않아도 되는 상황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하나는 확실하다. 유니티는 리치텔로 CEO의 발언처럼, "상상을 현실로 만드는 것"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갔다. 그 보폭이 얼마나 될지는 이어지는 유나이트 LA에서 확인해야 하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