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는 아이리스를 보자마자 다짜고짜

“너 따라와!”

영문도 모른 채 소녀에게 손목이 잡힌 아이리스는 소년의 손을 뿌리치며 소리쳤다.

“이거 놔!, 뭐하는 짓이야?”

아이리스의 행동에 소녀는 답답하다는 듯이 소리쳤다.

“그렇게 눈치가 없어?, 구하러 온 거잖아!”
“전혀 설득력 없거든, 내가 무슨 근거로 널 믿어?”

그러자 갑자기 소녀가 한쪽 팔로 아이리스를 감싸 안았고 당황한 아이리스가 몸을 뒤로 빼려고 할 때 목덜미에서 느껴지는 싸늘한 금속과 함께 역시나 차가운 소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난 무슨 수를 써서라도 널 대리도 오라는 명령을 받았거든?, 하지만 저애는 아니야. 넌 저애를 데리고 가려 하나 본대 네가 계속 
이렇게 반항하면 난 널 그냥 여기서 기절 시키고 끌고 가면 돼 거든? 그럼 저 애는 어떻게 될 것 같아?”

소녀는 아이리스를 놔준 뒤 다시 확인하듯이 물었다.

“어떻게 할래?”
“따라가면 될 것 아니야.”

아이리스의 대답을 들은 소녀는 귀에 꽂은 수신기로 다른 요원들에게 말했다.

“아기 새 확보 완료, 탈출 루트에서 봐.”

수신 직후 손목에 찬 시계를 확인하며 소녀는 아이리스를 돌아보며 말했다.

“뒤쳐지지 말고 잘 따라와.”

아이리스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고 소녀는 앞장서 달리며 가끔씩 뒤를 확인하며 아이리스의 안전을 확인했다.

“잠깐만.”
“뭐야?”

시간이 촉박한 상황에서 팰린은 신경질 적으로 대답했다.

“벨비티가 지쳤어.”

밸비티의 안색은 창백하다 못해 시퍼렇게 질려있었다. 아이리스 역시 지친 기색이 역력 했지만 이를 악문 채 버티고 있었다.

“지금 1분 1초가 급한 상황인줄 알긴 알어? 기다려 줄 시간 없어 빨리 일어나.”
“그럼 혼자 가 던가.”
“뭐?”

갑작스레 푹 꺼지는 아이리스의 목소리에 소녀는 고개를 획 돌리며 말했다.

“그렇게 급하면 혼자 가라고.”

아이리스는 이렇게 말하며 벨비티에게 힐을 시전해 주었다.

“이래서 민간인들이란”

소녀는 시계와 주변을 살피며 말했다.

“여기서 멈출 순 없어 속도를 줄일 태니까 따라와”
“움직일 수 이겠어?”

힐 시전을 마친 아이리스의 물음에 벨비티는 무척이나 미안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응, 미안해 괜히 나 때문에.”
“알면, 빨리빨리 움직여.”

소녀의 재촉에 아이리스의 부축을 받은 벨비티는 힘겹게 발걸음을 이어갔다.
한동안 어둡고 습한 동굴을 헤쳐 나갈 때 쯤 이었다.

“엎드려!”

동굴 벽에 붙은 상태로 이곳 까지 오기까지 아무 말 없이 앞장서 걷던 소녀가 몸을 숙이며 다급하게 소리치자 벨비티를 부축하며 팰린을 뒤따라가던 아이리스 역시 벨비티와 함께 몸을 숙였다.
공기를 찢는 소리와 함께 들려오는 폭발음, 동굴 곳곳에 설치된 방범 장치들이 작동을 시작한 것이었다.

‘여긴 분명 안전지대인데, 왜?’

첫 번째 포격이 끝나고 탄환이 장전되는 동안 소녀는 빠른 속도로 방범장치들을 처리해 나갔다.

“뭘 꾸물대?, 빨리 따라와!”

소녀는 뒤를 돌아보며 소리쳤고 아이리스는 소녀 쪽으로 뛰어나오며 소녀를 자신의 뒤쪽으로 끌어 당겼다.

‘퍽!’

순간 상황 파악이 잘 되지 않은 소녀는 얼굴에 뛴 붉은 피를 손으로 닦아 내고나서야 미처 처리하지 못한 경비로봇 L 이 자신의 뒤를 공격했다는 것을 알아 차렸다.

“안돼!”

소녀는 허리춤에 매고 있던 단검을 꺼내 휘둘렀고 주변이 조용해지자 아이리스의 상태를 살폈다.

“야!,야!”

아이리스는 머리를 부여잡은 채로 이어났고 머리를 잡은 손가락 사이로 피가 흘러내렸다.

“뒤 좀 잘보고 다녀.”

아이리스는 시야를 가리는 피 때문에 눈을 찡그리며 말했다.

“아기 새가 당했어, 제발 빨리 좀 와 언니!”

벨비티가 아이리스의 머리를 지혈하는 동안 소녀는 경보를 듣고 간간히 나타나는 경비 로봇들을 처리하며 수신기에 대고 악을 써댔다. 그리고 때를 맞춰 검은색 재규어를 탄 벨과 텔레포트를 쓰며 나타난 루카의 모습이 나타났다.
그 후 탈출가지는 별다른 어려움 없이 진행되었고, 기지로 호송된 아이리스가 의무실에 도착했을 때 아이리스 겨우겨우 의식을 붙들고 있는 상태였다.

“넌 다친대 없어?”
“응... 난 괜찮아, 언니...”

치료를 위해 의무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며 팰린은 멍하니 대답했다.
그렇게 길고 길었던 구출 작전이 마무리 되는 듯이 보였다.


다행이도 아이리스의 상태는 출혈을 제외하고는 별다른 문제는 없었고 다음날 아침에는 완전히 의식이 돌아온 상태로 기지의 의무실에서 깨어났다.

“끄응”
“아이리스!”

속눈썹 사이로 스며들어오는 백열광 전구의 불빛에 아이리스는 눈을 찡그리며 손으로 눈을 가렸고 옆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실눈으로 옆을 바라보았다.

“벨비티?, 무사했구나.”
“아이리스, 너야 말로 무사해서 다행이야, 어제는 정말 네가 죽는 줄 알았다고.”

눈이 빛에 익숙해지자 아이리스는 눈을 똑바로 뜨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칙칙한 회색빛의 별 특징 없는 콘크리트 벽, 창문하나 없는 꾀나 큰 방안에는 의료용 기구들이 여기저기 배치되어있었고 병상들이 벽 쪽에 머리를 댄 채 나열되어있었다. 하지만 병상에 누워있는 환자는 아이리스와 벨비티가 전부였다.

“일어났네, 꼴통”

때 마침 의무실 문이 열리며 평상복 차림의 팰린이 아이리스가 있는 병상 옆으로 다가오며 여전히 까칠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 넌 어제... 그러니까... 이름이 뭐였지?”
“팰린”
“아 그렇구나, 난...”

자기소개를 하려는 아이리스의 말을 팰린이 가로채며

“아이리스, 에레브의 황족 엘리니아에서 바.보.같.이. 납치당했음, 너에 대한 기본 정보는 다 알고 있으니까 소개할 필요 없어.”

아이리스는 팰린의 태도에 당황해 했지만 어떻게든 대화를 이어가기 위해 노력했다.

“그나저난 넌 다친대 없어?”
“난 누구누구처럼 그렇게 굼뜨지가 않아서 말이야.”
“너, 어제 내가 도와 줬는데 그렇게 말해야 돼?”

그 말에 팰린은 콧방귀를 뀌며 대꾸했다.

“흥, 누가 도와달랬나 머”

팰린이 이렇게 까칠한 태도를 보이는 대에는 이유가 있었다.


30분 전

“네?, 그 녀석을 제가 호위하라고요?”
“그래, 둘이 나이대도 비슷하고, 팰린 너 저애한태 빛 진 것도 있다며”
“아니 그건...”

지그문트는 팰린의 말을 자르며 이번 일에 대해 못을 박았다.

“그게 싫으면 다시 근신 처분 들어갈 거니까 그렇게 알아.”


“빨리 들어와, 뭐 그렇게 구경할게 있다고.”

알베르트 전 시장 저택, 늘 어두컴컴하던 저택 안에 오랜만에 불이 들어왔다.

“방은 많으니까. 2층 아무 방이나 들어가서 써.”

팰리는 지극히 사무적인 어투로 말했고 응접실을 둘러보던 아이리스는 먼지가 쾌쾌로 쌓인 벽난로 위에 걸려잇는 거대한 그림을 바라보았다.

“이거, 가족사진이야?”
“어.”

의자에 앉아있는 긴 노란 머리의 숙녀와 정장차림의 중년 남성 그리고 그의 팡에 안겨있는 소녀는 팰린이었다. 그중 아이리스는 의자에 앉아있는 숙녀에게서 눈을 때지 못했다.

“이 누나 어디서 본 것 같은데?”

아이리스가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은 팰린은 지금까지와는 정반대로 상기된 목소리로 물었다.

“뭐!, 진짜야 너 정말 가브리에 언니를 봤어?”
“깜짝이야, 그걸 듣냐?”
“묻는 말에나 대답해, 가브리엘 언니 봤어 못 봤어?”

팰린은 아이리스에게 소리쳤고 아이리스는 다시 사진을 확인하며 말했다.

“광산 안에서 본 것 같아...”

그 말은 들은 팰린은 당장이라도 광산으로 뛰어 가고 싶었지만 또다시 조직에 피해를 입힐 수 없다는 것을 잘 알았기 때문에 결코 문을 나서지 않았다.
분위가가 심상치 않음을 깨달은 아이리스는 아무 말 없이 2층으로 올라갔고 그렇게 저녁이 찾아왔다.

“뭐야 너 나려고?”

청바지와 흰 티셔츠에 파란색 캡 모자를 쓴 아이리스가 1층으로 내려오자 아까와 마찬가지로 응접실에 앉아있던 팰린이 아이리스 앞을 가로막으며 말했다.

“라벤 광산에 가야겠어.”
“뭐?!”

아이리스는 팰린을 보며 싱긋 웃으며 말했다.

“너 나 호위해야 되지? 빨리 따라와.”



오랜만에 인사드리는 것 같네요~~
잘부탁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