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훌쩍"

기지를 나온 소녀는 비가 쏟아지는 광산 쪽 황무지를 걷고 있었다.

'넌 인간이 아니니까. 넌 인간이 아니니까.'

기지에서 들었던 남자의 목소리가 계속 소녀의 머리 속에서 울려 퍼졌고 소녀는 그 목소리를 떨쳐내기 위해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지만 그 오히려 그 목소리는 더욱 더 또렷하게 울려 퍼졌다. 그리고 결국 벨비티 그 자신 역시 목소리에 동화 되어 갔다.

'그래 난 애초에 그곳을 나와서는 안됐어. 그 애를 만나서도 안 됐고.'

아이리스를 처음 만난 날 소녀는 처음으로 두려움이 아닌 다른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비좁은 시험관에선 느낄 수  없었던 사람의 온기, 행복, 즐거움 , 우정...
물론 두려움 역시 존재 했다. 하지만 언제 폐기 될지 모른다는 죽음의 두려움이 아닌 소중한 사람이 죽을 지도 모른다는 새로운 두려움이었다. 소녀는 그 두려움 마저 감사하고 행복했다. '내게도 소중한 사람이 생겼구나.'라고
사람들과 대화하고, 움직이고, 같이 호흡하는 모든 시간들이 소녀에게는 절대 뺏기기 싫었던 시간들이었다.
그리고 아직 소녀 역시 확실히는 모르겠지만 사랑이란 감정도 가지게 되었다.

"그러면 뭐해. 그 아인 인간이고, 난... 괴물인 걸..."

인간을 한 거대한 세포 덩어리 자신의 존재는 그것 뿐이라고 소녀는 생각했다.
목적을 위해 만들어지고 목적을 이루고 나면 버려지는 존재... 그런 자신에게도 이름이 있었다.

"벨비티!!"

소녀는 마치 빗소리를 타고 자신의 이름이 불리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벨비티!"
"아이리스?"

그리고 그것은 착각이 아니었다. 빗줄기 사이로 또렷하진 않지만 분명히 아이리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벨비티는 순간 아이리스에게 뛰어가고 싶다는 마음을 억누르며 아이리스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반대 방향으로 뛰기 시작했다.
하지만 한참 동안 빗속을 걷던 몸을 아이리스에게 도망치기란 쉽지 않았다.

"왜 도망가는 거야!"
"오지 마!, 오지 말란 말이야!"

바로 등 뒤까지 따라잡힌 벨비티는 자리에 주저 앉아 머리를 감싸며 소리쳤다.

"왜... 그러는 거야?"
"오지 마. 제발 네가 다친단 말이야!"
"그게 갑자기 무슨 소리야!"

아이리스는 벨비티를 진정 시키기 위해 벨비티의 말대로 멀찌감치 떨어져 있었고 아이리스가 다가오지 않는 걸 확인한 벨비티는 서서히 일어나 아이리스 쪽으로 몸을 돌렸다.

"왜 온 거야? 난 인간이 아닌데! 난 너희랑 다르잖아."
"그래 알고 있어. 그래서?, 그래서 네가 누굴 해치기라도 했어? 아니잖아. 돌아가자 지금 팰린이 네 오해를 풀고 있어. 그러니까..."

"넌 내가 인간이 아니라는 데 아무렇지도 않아?, 너희와 다른데?"
"그래서 그게 무슨 상관인데!. 네가 인간이 아니라고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어!, 너와 함께 했던 시간은 분명히 존재하고 넌 여전히 내 친구 벨비티일 뿐이야!"
"!!"

지금까지의 불안했던 표정은 온데간데 없어지고 벨비티의 얼굴에는 다행이라는 미소가 걸쳤다.

"고마워, 나 지금까지 무서웠어. 내가 갈 곳은 어디에도 없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아이리스 때문에 무섭지 않아."

의미신장한 말과 함께 벨비티의 주변에서 붉은 아우라가 피어올랐다.

"벨비티 무슨?"
"나 죽는 게 두려웠는데 그래서 절대 돌아가기 싫은 곳으로 돌아 가려고 했는데, 이제 그러지 않을래."

벨비티는 지금 까지 자신을 괴롭혔던 남자의 말을 떠올렸다.

"... 그리고 말이야 여기 있는 사람들을 다치게 하고 싶지 않으면 그곳으로 돌아가는 게 좋을 거야 왜냐하면 너한테는 폭탄이 장착되어 있거든."

"벨비티!"

이상한 낌새를 느낀 아이리스는 앞뒤 생각 않고 벨비티에게 뛰어 갔지만...

"고마워, 그리고 사랑해."

아이리스 앞에서 터지는 붉은 섬광과 핏줄기 그리고 폭발의 충격에 아이리스는 뒤로 한참을 날아갔다.

"벨...비티..."

아이리스는 바로 벨비티의 상태를 확인하려 했지만 이미 온몸에 튄 붉은 피에 결과는 예측할 수 있었다. 그래도 아이리스는 희망의 끊을 놓지 않았다. 하지만 폭발의 흔적만 남아 있을 뿐 벨비티의 모습은 그 어디에도 남아 있지 않았다.

"벨비티... 거짓말이지 응?"

타다만 벨비티의 옷 자락을 발견하고 나서야 아이리스는 벨비티를 찾는 일을 그만 두었다.
옷 조각을 집어 들며 아이리스는 울음을 터뜨렸다.

"벨비티! 벨비티!"

처음으로 친구를 잃은 충격 그리고 슬픔은 어린 아이리스가 견뎌내기에는 너무 나도 힘든 것 이었다. 그리고 슬픔은 점차 분노로 바뀌어 갔다.

"다... 블랙윙 때문이야..."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무겁고 강렬한 기운이 아이리스를 감쌌고 신수의 힘을 상징하는 눈 밑 문양은 그 어느 때보다 선명히 빛났다.



아이리스를 찾기 위해 에델슈타인 곳곳을 들쑤시고 다니던 이카르트는 멀리 라벤 광산 쪽에서 터져 나오는 강렬한 기운에 고개를 돌렸다.

"제길!"

단 한번 느껴 보았고 너무 나도 친숙한 그 힘에 이카르트는 현재 상황이 현실이 아닐 길 바랬다.

"왜 하필 지금 각성이..."

에레브 황실을 수호하는 신수의 힘, 현 여제인 시그너스의 각성 때 단 한번 느껴본 힘이었지만 이카르트는 분명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때의 일 역시...

'빨리 안정 시키지 않으면 왕자님께서 위험하시다.'

이카르트는 지난 일을 떠올렸다. 황실의 기사가 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시그너스 여제는 여제로서의 각성을 했고 아직 어린 나이였던 시그너스는 그 힘을 견디지 못해 육체가 파괴되는 현상에 이르렀었다.

"머리띠, 왕자님의 머리띠에 달린 보석이 필요해."

현재에도 시그너스 여제가 늘 걸고 있는 황실의 상징인 펜던트, 그 가운데에 박혀있는 보석이 바로 그 신수의 힘을 제어해주는 것 이었고, 늘 아이리스가 머리에 달고 다니던 머리 장식 역시 그런 역활을 하고 있었다.
이카르트는 한시가 급하다는 것을 깨닫고 몸을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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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없어서 글만 올릴게요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