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부트 시작하게 된 계기)

원래 6년도부터 12년도?까지 크로아섭에서 열심히 하다가 웰시코기를 받고 해킹당해서 접었던 것 같다.

이후 게임을 거의 안하다가 18년도 7월경, 종강 이후 무료한 시간을 달래기 위해 좀 알아보던 중,
메이플에 리부트란 서버가 생겼고, 1업시 3업을 하는 테라버닝을 한대더라.

찍먹으로 가볍게 해보려했는데, 혹시나 푹먹이 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제일 하기 힘들다는 직업을 찾아보았고, 그게 블래스터였다.

그리고 지금까지 나는 블래스터를 본캐로 키우고있다. 하..



첫 재획)

하다보니 아르카나에 입성하게 되었다.
재획이란 2시간의 벽이 컸기에 그때까진 생각도 안했는데, 슬슬 재획을 안하고는 스펙업이 안되겠더라.
그리고 생전 처음 재획을 해봤는데, 열악한 원킬컷과 마리수로 1.2억을 벌었던 것 같다..

17성 둘둘을 끝내고 드메를 맞추기 시작했는데, 5개월에 거쳐 드메 67/100을 맞추게 되었고, 동아깊2에서 재획당 4~5억을 먹게되어 정말 기뻤던 것 같다.

당시 블래유저는 모두 광부캐 루미를 따로 대부분 키우고 있는 것 같더라.
그래서 루미를 키우게 되었는데, 동윗깊1에서 8억을 먹더라..
심지어 원킬컷도 블래는 주스탯 2만이 넘도록 나기 힘들었는데, 루미는 1.4가 넘으니 나더라..

그렇게 본격적인 재획 루틴도 가지게 되었다.



스타포스)

내 첫 20성은 제작 얼장이었다.

처음 레시피를 캐기위해 블루와이번을 잡았는데, 거짓말 안보태고 4시간은 넘게 걸렸던 것 같다.
당시 블래스터밖에 캘수있는 캐릭터가 없어서 진짜 힘들었는데.. 막상 나오고 제작하니 기분은 좋더라.

일단 17성을 달고 대충 쓰다가 드디어 20성 도전을 하는데.. 결과적으로는 12펑에 130억을 썼더라..
당시 주보캐가 있던 것도 아니고, 오로지 우르스와 재획으로 메소를 모으고 레시피를 캐가며 20성이 될때까지 도전하는게 진짜 막막하더라..

그래도 다음 제작 목걸이는 2펑 50억선에서 20성을 달아서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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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다음으로 기억남는게 파풀마인데, 1년?정도 하니까 파풀마가 하나 뜨더라.
당시 블빈마가 나오는 족족 20성을 달아 토드를 하고, 19->20이 실패하면 재토드를 계속 했다.
첫번째 파풀마가 터지기까지 1년좀 안걸렸던 것 같다..

그리고 한참 있다가 또 파풀마가 뜨던데, 블빈마 토드과정을 다시 반복했다.
결과적으로는 두번째 파풀마가 22성을 갔는데, 그때까지 토드에 사용한 블빈마만 30개가 넘더라..
여튼 22성을 갔고, 당시 하스데 솔플을 상상할 수도 없어서 진짜 든든하게 잘 썼고.. 지금도 쓰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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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분자벨인데, 은 2년동안 22성을 못달았던거 같다.
스페어 나오는 족족 강화는 했는데, 결국 끝까지 22성을 안가더라.
그리고 홧김에 남아있는 골클벨을 광클했는데 바로 22성가서 걍 이거 썼다..
한참 이후에 탈벨 스페어가 30개쯤 쌓였을 쯤에 탈벨 12성보내고 드디어 지긋지긋한 벨트에게서 해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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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브랑 에스텔라도 진짜 맘고생 심했는데, 메소야 어떻게든 충당가능한 상태이다보니 스페어가 문제였다.
결과적으로는 데브 토드용 목걸이 40여개는 썼던 것 같고, 데브도 총 3개 터트리고 4번째에 22성이 가더라.
첫 데브를 먹은 이후 22성까지 정확히 1년정도 걸렸더라.

에스텔라는.. 10펑하고 11번째에 갔다.. 이건 3개월도 안된 최근일이긴 한데.. 4여명 되기까지 정말 너무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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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튼 본캐 3카 5아케인 4여명 스타포스를 모두 끝내는데 누적 8천억정도 사용한 것 같다.
앱솔같은 경우는 다 17성이어서 매몰비용이 많진 않았는데, 17성인 이유는 아케인 보급화가 될때까지 앱솔 22성을 못달았기 때문이다..



이건 예전에 찍어둔 짤인데, 저만큼 터질때까지 토드용 20성을 한개도 못만들어서 어이없어서 찍어놨었다.



시드링)

시드 억까야 워낙 정도가 심해서 유명한 분들도 있을 정도이니 명함도 못내밀지만..
퇴근하고 시드를 하는게 진짜 심적으로 정말 힘들더라.. 심지어 블래스터라 그런지 진짜 그냥 하기가 싫었다.

얘는 리3뜰때까지만 하고 더하면 접을 것 같아서 자체졸업 했다.
당시 블래스터는 4분이 직업이었고.. 필요성을 크게 느끼지도 않았던 것 같다.

그리고 23년도 중순에 시드링 상자가 보스드랍으로 나오게 되었는데, 당시 검세칼카 모두 팟격을 다니고 있었기에 리4 웨4도 시간문제일줄 알았다.

결과적으로는 리4는 최근에 먹었고, 아직도 내 웨펍은 3렙이다.

이거랑 번외로 블래스터는 2분이직업이고, 평딜직업이고, 오리진도 진짜 너무 약해서 많이 억울하다..



칠흑)



10개 터질동안 20성간것 2개, 21성간것 0개였다.
첫 칠흑을 먹었던게 21년도 2월인 것 같다.

지금은 하루윌 총합 500회(부캐포함), 진듄더 350마리쯤 되는것같다.
물론 독식기간이 중요하겠다만, 적어도 주변에서 칠흑 10개동안 22성 1개 못간사람은 거의 못봤었다..

그리고.. 11번째 거공이 22성을 가주어서 칠흑 2셋 옵을 제대로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어빌리티)



리부트를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건 어빌리티였다.

메린이때는 첫줄 패시브가 그렇게 안떠서 힘들었고,
어느정도 어빌리티를 맞춰두니 쓸컴뱃이 펫에 장착 가능하게 되어 첫줄 보공을 쓰돌고 메타가 바뀌더라

블래스터는 꼴에 스탠스가 100이 아니어서 법지 유니크를 쓰고 미하일 링크를 썼었는데, 이것도 스탠스 평준화 패치이후에 다시 어빌을 갈아야 했다.

어찌저찌 보상메를 맞춰두니, 메소 수급은 재획보다는 주보가 컸고, 당시 칠흑을 위해 보상드를 저격하기 시작했다.

드랍이 떴는데 13퍼였고, 나중에 재저격을 위해 명성치를 정말 많이 모았다가 다시 안떠줘서 드랍 10을 쭉 쓰기도 했다.

그리고 보상드 20/8/14로 쭉 지내오다가 프리셋이 나오게 되었고.. 현재는 보상공을 쓰고있다.

다른 사람들도 이렇게 어빌을 자주 바꾸는지는 모르겠지만..
뎀퍼 당시부터 부캐 무릉돌이로 명성치를 수급했고, 환불 사태때 명성치 2천만정도를 배상받았다.

어찌되었건 본캐에만 명성치를 누적 8천만 중반대는 박아온것 같다.

보상공도 최근에 맞추게 되어 망정이지.. 못맞췄으면 진짜 암담했을 것 같다.



데스크 셋업)

블래스터를 처음 키우기 시작했던게 24살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30살이 되었다.
당연히 처음에는 젊고 튼튼하니 블래스터 재획따위 별거 아니었다. 아닌줄 알았다.

어느날인가 왼손 검지 관절이 아프더니 재획자체를 못할만큼 아팠고, 손목도 너무 아팠다.
직업이 개발자이기도 해서 피로도가 더 높았던것 같기도 한데, 여튼 현업에도 영향을 미치기에 심각했다.

자연스레 키보드를 알아보게 되었는데, 키압까지 조정하기위해 커스텀 키보드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여러 조합을 해보고 결국 피로감이 제일 적은 키압을 찾았고, 서서히 통증이 줄어들었다.
그거랑 별개로 커스텀 키보드 자체에 관심이 생겨서 취미로도 하게되었다.

키보드 다음으로는 책상 높이나 의자, 모니터 등 자연스레 데스크 셋업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재획을 블래스터로도 피로감 없이 하기위해 정말 많은 시간과 돈을 투자해왔다.

와헌용 투컴을 위해 노트북까지 추가로 세팅해서 지금의 데스크셋업이 탄생하게 되었다.





길드)

메린이때 들어간 길드의 길마랑 간부진이 갑자기 빤스런해서 길드가 망했다.
그래서 당시 친했던 6명(지금은 2명이 남은..)과 18년도 11월에 길드를 만들고, 길마가 되어 지금껏 운영하고 있다.

요즘 상황이 상황이다보니 다른 길드들도 많이 힘든 상황이고,
몇 년 간 길드에 계시던 분들도 접속을 안 하시니 기분이 참 좋진 않다.

길드에 위기는 많이 있었으나, 지금처럼 허탈하고 어이없는 감정을 느낀 적은 없었다.

그래도 나는 길드원이 한명이라도 남아있는다면 길드 운영을 그만둘 생각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