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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도치 않았지만, 앙겔라 치글러 박사는 기본적으로 주변에서 ‘만능 미녀’에 가까운 이미지였다. 일단 매력적인 외모의 여의사라는 점이 사람들 가슴 속에 묘한 불꽃을 태웠다. 거기다 다들 힘들고 지칠 땐 씩씩하게 사람들을 이끄는 리더의 모습을 보이기도 했고, 농담도 잘 했으며, 넉살도 꽤나 좋아 누구에게 미움 받을 성격은 아니었다. 하긴 공상 속에서 툭 튀어난 것처럼 완벽에 가까운 사람이 눈앞에 있는데 미워한다는 게 더 이상한 일이었다. 본인은 별 자각이 없긴 했지만 말이다.

 어쨌든 그러한 이미지는 좋게도 작용했지만, 동시에 나쁘게도 작용했다. 주변 사람들에게 퍼진 평판이 너무 좋은 나머지 그녀가 못하는 게 있거나 실수를 해도 ‘그럴 수 있지’하는 분위기가 되어버린다는 것이었다. 때로는 운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굳이 그녀가 단점을 커버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아도 될 상황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심지어 그녀가 잘못한 게 있으면 제 일처럼 돕고 나서는 사람마저 있을 정도니, 말 다 한 셈이었다. 

 그 좋은 예시가 얼마 전 있었던 할로윈 파티였다. 모르는 사람이 모양새만 본다면 그녀는 장소 제공에 고급 식재료 수배까지 정말 큰일을 한 것처럼 보였다. 그런 그녀가 겨우 요리 정도 안 한다고 해서 뭐라 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실제로 식재료 조달은 죄다 블랙워치 요원들의 도움을 받았고, 그녀는 끽해야 아파트의 자기 방 정도만 빌려준 것밖에 없었다. 이런 식으로 일이 늘 묘하게 잘 풀리니, 그녀의 단점이 남에게 비춰질 일은 매우 드물었다.

 허나 이번만큼은 아닌 모양이었다. 적어도 이번만큼은 말이다.

 아나 아마리는 식탁 앞에 앉아 그녀를 매우 짜증스런 눈빛으로 노려보고 있었다.

 “이게 뭐지, 치글러 박사?”

 그렇게 말하는 그녀의 손엔 접시가 들려 있었고, 당연히 그 위엔 음식이 담겨 있었다. 그것을 ‘음식’이라 부를 수 있다면 말이다. 앙겔라를 부르는 호칭에서 그녀가 단단히 화가 났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있었다. 그리고 앙겔라는 거의 울 듯한 표정으로 손가락만 꼼지락거리고 있을 뿐이었다.

 “샌드위…….”
 “이건 샌드위치가 아냐. 석탄 덩어리지.”

 아나 아마리는 접시를 식탁에 탁하고 소리 나게 내려놓으며 그녀의 말허리를 끊었다. 인정사정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불행히도 아니었다. 접시 위에 올려진 그것은 ‘석탄’ 또는 ‘탄화된 무언가’라는 단어 외에는 별달리 표현할 수 있는 단어가 없었다. 아나는 단단히 맘에 안 든다는 듯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며 한마디 쏘아붙일 것처럼 기세가 등등했으나…맹수 앞의 토끼처럼 바들바들 떨고 있는 앙겔라를 한 번 보고 한숨을 푹 쉬었다.

 “앙겔라, 요리 대접하라는 건 반쯤 장난이긴 했지만 그래도 이건 너무 심하지 않아? 도대체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온 거야?”
 “그, 저…….” 앙겔라가 아나의 시선을 애써 피하며 말했다. “실은 저, 지금까지 요리를 해 본 적이 한 번도 없어서요. 그래서 뭐랄까 주방 안에 있으면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한다는 느낌이랄까…….”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는 거야, 지금?” 아나는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며 말했다. “딴 것도 아닌 샌드위치를 태워먹는 사람이 어디 있어?”
 ‘여기 있죠…….’

 푹 수그린 앙겔라의 머릿속에 그런 생각이 맴돌았지만, 물론 입 밖으로 나오는 일은 없었다. 앙겔라는 요리만 못할 뿐이지 불난 집에 기름을 들이 붓는 멍청한 위인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아나는 의자에 등을 기대며 미간을 문질렀다. 지금 앙겔라는 요리를 잘 하냐 못하냐가 문제가 아니라 요리란 무엇인지부터 시작해야 할 처지였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앞길이 구만리라 이거였다. 아나는 질린 눈빛으로 방금 샌드위치(라 부를 수 있는 무언가)를 놓은 식탁 위를 바라봤다. 거기엔 한쪽 면은 새까맣게 탔고 나머지 면은 핏물이 보일 정도로 덜 익은 고깃덩어리부터 시작해 차마 음식이라 부를 수 없는 무언가들 몇몇 접시가 즐비하게 놓여 있었다. 그걸 보는 아나의 표정엔 참담함만이 가득했다. 세상에 못해도 이 정도로 못할 줄은 상상도 못했기 때문이었다.

 “앙겔라, 나 좀 봐.”
 “네, 아나…아니, 아마리 부사령관님.”
 “아나 씨로 됐어.” 아나는 엷게 쓴웃음을 지었다. “요리는 내가 가르쳐 줄게. 아직 재료가 조금 남았으니까 오늘은 간단한 것부터 시작하고, 내일부터 해서 열심히 연습해보자. 이건 널 위해서이기도 해, 앙겔라. 세상에 다 큰 어른이 요리 하나 못해서야 되겠니?”
 “못하면 안 되겠죠……. 고마워요, 아나 씨. 열심히 배울게요.”
 “아무렴, 열심히 배워야지. 그 윈스턴조차도 하는 요리를 네가 못하면 뭐가 되겠어?”
 “아하하…….”

 앙겔라는 난처한 웃음을 흘리며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아나의 그 말이 비수가 되어 앙겔라의 가슴을 마구 찔렀다. 윈스턴을 비하하는 건 아니지만, 아무리 그래도 자기가 유인원보다 아래라니……. 이런 비참한 기분이 들지 않기 위해서라도 죽어라고 노력해야 했다. 그녀는 기합이 바짝 들어간 표정으로 다시 재료에 손을 뻗었다.

 여기서 앙겔라 치글러 박사가 하나 간과한 게 있었다. 축하 받을 사람이 바로 자신이란 것을 말이다. 솔직히 말해 그녀가 파티를 준비할 이유는 없었다. 축하 받을 사람이 파티를 준비한다는 것도 모양새가 이상하지 않는가. 훗날 앙겔라가 그 사실을 눈치 채긴 하지만, 그땐 시간이 너무 늦은 뒤였다. 이미 앙겔라는 아나의 덫(?)에 걸려 버린 것이었다. 앙겔라를 바라보는 아나의 입가엔 악동 같은 미소가 걸려 있었다. 앙겔라는 그걸 자애로운 미소로 단단히 착각하고 있었지만 말이다.

 가브리엘 레예스의 귀환 예정일까지 앞으로 8일. 마지막 날은 실전이라 하고, 연습 시간은 7일 정도 있는 셈이었다.

 ‘뭐, 그동안 어떻게든 되겠지. 손재주가 없는 것도 아니고, 설마 겨우 요리 하나 못하겠어?’

 아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녀는 아직 모르고 있었다.

 그 설마가 사람을 잡을 수도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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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

0. 잡담 길게 썼는데 점검한다고 다 날아가버렸어요. 아이 빡쳐.

1. 늘 재밌게 봐주시는 분들 감사합니다. 다음편엔 새로운 인물들이 등장할 예정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