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윈스턴, 아테나

 며칠 후.
 
 삐삐삐삐삐삐

 “최단 루트 알려 줘, 아테나!”

 윈스턴은 점프 팩을 켜며 외쳤다. 그가 쓴 헬멧의 인터페이스에서는 Emergency(비상)이라는 글자가 붉게 점멸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인터페이스에는 아테나가 전송한 3D지도와 함께 최단 루트가 표시되고 있었다.

 [비상 호출로부터 2분 31초 경과했어요. 현재 속도라면 목적지에 도착 예정 시각은 270초 후.]
 “안 돼, 더 빨리 가야 해!”

 그는 다급한 표정으로 근처의 표지판에 매달리더니, 그걸 지렛대 삼아 냅다 몸을 날렸다. 그것은 도약이라기보단 거의 비행에 가까웠다. 

 [윈스턴, 착지 때는 대체 어떻게…위험해요!]
 “나도 다 생각이 있다고!”

 그 엄청난 도약에 놀랐는지 아테나의 다급한 소리가 그의 귓전을 때렸다. 거의 몇 백 미터를 날았으니 상식적으로 생각한다면 착지할 때 몸이 으스러질 수도 있었다. 아무리 그가 인간보다 훨씬 체력이 좋은 유인원이라 해도 말이다. 

 쿵!

 하지만 윈스턴은 그냥 착지하지 않았다. 대신 늘 가지고 다니는 방벽 생성기를 냅다 발 아래로 던져 쿠션 삼아 착지했던 것이다. 큰 소리가 나긴 했지만 윈스턴은 별 타격이 없어 보였다. 하긴 그는 육체 조건은 사람보다 훨씬 뛰어난 유인원이니 그럴 만도 했다. 

 [호출 받기 전에 시체 하나 치울 뻔 했네요. 제가 누누이 말씀드렸죠? 땅콩버터 과다 섭취는 집중력 부족, 판단력 저하 등의 부작용이…….]
 “어쨌든 예정보다 200초나 빨리 왔잖아.” 윈스턴이 어깨를 이리저리 돌리며 말했다. “그리고 자꾸 땅콩버터 걸고넘어지지 마.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그러면 좀 줄이시던가요.]

 아테나의 빈정거림을 뒤로 하고 윈스턴은 다시금 움직였다. 그가 착지한 곳은 보통 직원들이 사는 곳과 좀 떨어진 부사령관 아나 아마리의 숙소 옥상이었다. 그가 이렇게 급하게 온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한창 연구실에서 낑낑거리던 그에게 1급 긴급 소집령이 날아왔기 때문이었다. 만약 소집령 아래쪽에 조그맣게 적힌 메시지가 아니었으면, 지금쯤 부사령관 숙소 주변은 구조 요원들로 득시글거렸을 것이다.

 [왜 1급 비상 소집령인데, 굳이 혼자 오라고 했을까요?]
 “그야 나도 모르지. 무슨 일 있을지 모르니까 언제든 대기하고 있어.”
 [전 언제나 대기 중이에요, 윈스턴.]

 에고(Ego) 알고리즘을 너무 건방지게 짰어, 윈스턴은 열 번도 더 불평한 말을 또 입속에서 꿍얼거리며 정글짐 타듯 숙소의 벽을 타고 내려갔다. 그리고 아나 아마리의 숙사 창문이 눈에 들어오자 그의 얼굴이 대번에 딱딱하게 굳어졌다. 창문 틈새로 연기가 새어나오고 있었던 것이다.

 “아테나!”
 [부엌 쪽! 지금 보이는 창문으로 들어가면 돼요. 창문의 잠금장치를 해제…….]
 “그럴 시간 없다고!”
 [아니 그게 아니라 그냥 단순한…윈스터어어언!]

 와장창!

 윈스턴은 온 힘을 다해 발을 굴렀다가 그대로 창문으로 돌격했다. 강화 유리라는 말이 무색하게 창문은 창틀 째로 박살나버렸다. 부엌은 온통 연기와 방금 그가 만들어 낸 먼지로 가득 차있었다. 누군가의 테러인가? 최악의 경우 아나가 인질로 잡혔을 수도 있었다. 그는 다급하게 그녀의 이름을 냅다 불렀다.

 “흐흑, 흑…….”
 “아마리 부사령관님! 무사하십니까?”
 “그럼, 무사하고말고.”
 “흐어억!”

 목소리가 바로 등 뒤에서 들리자 윈스턴은 얼마나 놀랐는지 저도 모르게 숨을 들이킬 정도였다. 하지만 그는 뒤를 돌아보지 못했다. 눈앞에 펼쳐진 참상이 너무 충격적이라 차마 눈을 돌릴 수가 없었던 것이다.

 부엌은 초토화가 되어 있었다. 

 비유가 아니라, 정말 문자 그대로의 ‘초토화’였다. 고기처럼 보이는 시커먼 숯덩이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고, 찬장의 접시란 접시는 죄다 꺼냈는지 테이블 위엔 온갖 모양이 접시들이 가득했다. 그 접시들 위엔 음식이 담겨 있었다. 아마도 말이다. ‘아마도’라고 한 까닭은 그것들이 접시 위에 있지 않았더라면 쓰레기나 그에 준하는 무언가라고 착각할 뻔했기 때문이었다. 접시에는 각양각색의 무언가가 구역질나는 자태를 뽐내며 널브러져들 있었다.

 “흑, 으으, 으, 우…….”
 “부사령관님, 이건 대체…….”
 “윈스턴, 요리할 줄 알아?”
 “네? 네 뭐, 스크램블 에그나 샌드위치 같은 간단한 거라면 할 수 있습니다만.”

 그는 멍청한 기분을 느끼며 대답했다. 아나 아마리는 멀쩡했다. 파란 앞치마를 두른 그녀의 모습은 전투복을 입었을 때와는 전혀 다른 가정적인 느낌을 줬지만, 지금은 그걸 감상할 때가 아니었다. 그걸 감상하기엔 그녀의 표정이 너무나도 안 좋았다. 짜증과 체념이 덕지덕지 붙은 그녀의 얼굴은 마치 폭발 1초 전의 폭탄과도 같았다. 윈스턴은 저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비상 소집령 따윈 잊은 지 오래였다.

 “아테나는 요리할 줄 알고?”
 [물론입니다. 프로그램 되어 있으니까요.]
 “좋아.” 아나는 그 말을 씹어뱉듯 말했다. “그럼 사흘 줄 테니까, 저것 좀 데려가서 사람으로 좀 만들고 와.”
 “저, 전…전 사람이에요! 전 사람이란 말이에요!”

 연기가 걷혔다. 아나가 가리킨 부엌 구석에는 윈스턴도 익히 아는 여성이 무릎을 꼭 끌어안은 채 앉아 있었다. 앙겔라 치글러 박사였다. 아까부터 들리는 흐느끼던 소리가 뭔가 했더니 그녀가 내는 소리였던 모양이었다. 그녀 역시 핑크색 앞치마를 두른 평상복 차림이었다. 

 근데 상태가 좀 이상했다. 아나의 모습은 멀쩡한데, 치글러 박사만 마치 불구덩이에 들어갔다가 온 듯 그을음투성이였다. 게다가 손과 팔에 붙인 반창고며 붕대는 또 다 뭐란 말인가. 누가 보면 전쟁터에서 겨우 살아 돌아온 부상병인줄 알 정도였다. 그는 그저 아나와 치글러 박사를 멍하니 번갈아가며 볼 뿐이었다.

 “으으, 으으……. 그럼 제가 사람도 아니란 말이에요?”
 “사람도 아니지.”
 “어떻게 그런 심한 말씀을 할 수 있어요? 고작 요리 하나 못한다는 거 가지고!”

 앙겔라가 빽 하고 소리쳤다. 그러자 지금까지 조용하던 아나가 윈스턴을 확 밀치며 걸음을 옮겼다. 죄도 없고 영문도 모르는 윈스턴은 지금 자기가 대체 뭘 잘못한 건가 눈알만 뒤룩뒤룩 굴릴 뿐이었다.

 “고작? 고자아악? 지금 이 꼴을 보고 그따위 말이 나와? 고작이라고? 그래 너는 고작 고기 굽고, 빵 자르고 그따위 간단한 일도 못하니? 그따위 것도 못해서 부엌을 태워먹어?”
 “그래서 연습하잖아요!”
 “나아질 기미가 안 보이니까 그렇지, 이 망할 것아!” 아나가 거의 부엌이 떠나갈 정도로 소리를 질렀다. “잘 들어, 너 지금 당장 윈스턴이랑 가서, 뭘 만들던 사흘 뒤까지 제대로 된 음식 가지고 나한테 와! 안 오기만 해 봐, 지금 너한테 쏟아 부은 재료값이랑 이 숙소 수리비까지 모조리 다 너한테 청구해버릴 테니까!”

 실제로 창문 쪽 벽 하나를 부순 건 윈스턴이었지만, 그는 말을 삼켰다. 대신 은근슬쩍 그 큰 덩치로 구멍이 뻥 뚫린 창문가를 슬쩍 가렸다. 이번 달에 그가 가장 좋아하는 브랜드에서 새로운 땅콩버터를 낼 예정이었다. 이미 아테나 몰래 몇 박스나 주문해놓은 상태였다. 가격이 꽤 만만찮았기에 쓸데없는 지출이 생기는 건 사양이었다.   
   
 “윈스턴!”
 “네, 넵!”
 “저거 사람 만들어서 내 앞으로 끌고 와, 알겠어? 너도 할 수 있는 걸 쟤가 왜 못해! 안 그래? 안 그러냐고!”
 “물론입니다, 아마리 부사령관님! 그렇고말고요!”

 윈스턴은 이 상황이 절반도 이해가 안 갔지만 무조건 고개를 끄덕이는 수밖에 없었다. 아나의 기세가 어찌나 흉폭하던지 동의 안 하면 몇 대 맞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아나는 치글러 박사의 목덜미를 잡고 거의 짐짝 내던지듯 그에게 내팽개쳤다.

 “으으, 으, 으아아아아앙!”

 그의 품에 안기는 순간 앙겔라는 세상 다 산 것처럼 목 놓아 울기 시작했다.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우는 그녀의 모습은 처량하기 이를 데 없었다.

 “그거 데리고 빨리 사라져! 1초라도 빨리!”
 “네! 자, 치글러 박사님. 이쪽으로…….”
 “누가 거기로 나가래? 니가 들어온 데로 나가란 말이야!”
 “…….”

 결국 윈스턴은 앙겔라를 들쳐 업고 뚫린 벽을 통해 나오는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나오는 순간까지도 앙겔라는 울음을 멈추지 않았다. 뒤에서 와장창하는 소리가 나는 걸 보니 아나가 분을 못 참고 뭔가를 집어 던진 게 틀림없었다. 


 [윈스턴.]
 "왜?"
 [제 사고 알고리즘으로는 방금 상황이 이해가 가질 않습니다만, 제가 부족한 건가요?]
 "아니, 지극히 정상이야."

 윈스턴은 점프팩의 부스터를 켜며 말했다.  그는 이 상황이 이해되지 않았지만, 적어도 한 가지는 확실했다.

 지금 아주 귀찮은 상황에 휘말렸다는 것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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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

0. 윈스턴과 아테나 콤비 등장했습니다.

1. 아나 매우 빡침

2. 은근히 길어지네요.

3. 재밌게 읽어주세요.

4. 그럼 이만 총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