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갈량 시절보다 군사적, 정치적으로 암울했던 촉의 상황에서도 북벌의 의지를 관철했던 강유의 신념, 또는 자신감은 어디서 온 것이었을까 대단히 궁금해진다. 촉에 대한 충성심인지, 제갈량 개인에 대한 충성심인지, 천수로 돌아가기 위한 사적인 필요성 때문인지, 아니면 이공위수(以功爲守) 즉 선제공격을 행함으로써 위를 견제하는 전략이었는지, 북벌의 목표였던 옹양주 겸병이 가능했는지 아닌지를 떠나서 북벌을 약 30여년 동안 홀로 지속하고 63세 일기로 죽기 전까지 촉을 부흥시키려고 했던 강유의 의지와 충심은 강했다. 그만큼 촉한에서 강유를 빼놓을 수 없는 것이다.

등애와 강유와의 관계는 삼국지 후반부의 메인 떡밥으로, 이 둘의 관계를 두고 등애가 강유의 공세를 여러차례 막아내었으니 등애가 더 잘났다, 눈에 띄는 전력차를 가지고도 잘싸운 강유가 더 잘났다 등 등애빠와 강유빠, 위빠와 촉빠 간에 늘 논란이 있다.

강유와의 첫 전투인 조성 전투에서 강유의 의도를 알아채고는 강행해 조성에 미리 도착, 강유의 진격로를 미리 끊은 것은 등애의 자질이 돋보인다. 하지만 255년 왕경이 적도에서 포위당했을 때 등애는 구원을 포기하려고 했다. 왕경 스스로가 말했듯이 진태가 아니었다면 강유는 적도를 함락시켰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