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이재명 선거대책위에 따르면 이 후보는 이날 오후 11시쯤 광주 북구 구호전 장례식장에 마련된 5·18유공자 고인의 빈소를 조문한다. 이재명 선대위 한 관계자는 "이 후보가 전두환 사망일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채 발견된 고인의 사연을 듣고 너무나 안타까워하셨다"며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라도 조문하겠다고 하셨다"고 말했다. 고인은 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이 쏜 총에 맞아 하반신이 마비돼 평생 고통에 시달리다 지난 23일 고향인 강진군 군동면의 한 전수지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과 유족 등에 따르면 고인은 군복무를 마친 뒤 전남의 한 사찰에서 승려로 생활했다. 1980년 5월18일 부처님 오신날 행사를 준비하러 광주 증심사에 왔다가 계엄군의 만행을 목격하고 적십자 봉사단에 입단했다.


















부상자를 실어 나르고, 의약품과 혈액을 모으는 활동을 하던 도중 80년 5월21일 구시청 사거리에서 백운동쪽으로 차를 타고 이동하다 계엄군이 쏜 총에 허리를 맞았다. 인근 병원에서 긴급 수술을 받았지만 총탄 파편이 몸속에 그대로 남아 하반신이 마비됐다. 1996년 파편 제거 수술을 받긴 했지만 진통제가 없으면 견딜 수 없는 통증이 갈수록 심해졌다. 진통제 없이는 참을 수 없는 고통 속에서도 고인은 1988년 국회 광주 특위 청문회와 1995년 검찰 조사, 2019년 5월 전두환 사자명예훼손 혐의 1심 재판에서 증인으로 출석해 헬기 사격을 일관되게 증언해왔다. 고인은 "80년 5월21일 오후 2시 (광주 서구) 월산동 로터리에서 광주공원 쪽으로 헬기가 날아와 총을 난사했다. 아스팔트에 불똥이 탁탁탁 튀었고 기사가 지그재그로 운전해 가로수 밑에 숨었다"고 진술했다. 또 "여학생 하나가 그 총에 맞아 쓰러졌다. 그 애는 비명을 지르고 해서 보니, 어깨를 관통했다. 차에 바로 싣고 헝겊을 하나 대 손으로 피를 꽉 막으면서 적십자 병원에 갔다"며 헬기 사격이 있었음을 증언했다.


















최근 고통이 심해지면서 지난 22일 전북 익산의 자택에 유서를 남기고 170여㎞ 떨어진 고향 강진의 한 저수지에서 생을 마감했다. 고인은 유서에 '나의 가족에게. 어머니께 죄송하고, 가족에게 미안하고, 친구와 사회에 미안하다. 5·18에 원한도 없으려니와 작은 서운함들은 다 묻고 가니 마음이 홀가분하다. 나의 이 각오는 오래 전부터 생각해온 바, 오로지 통증에 시달리다 결국은 내가 지고 떠나감이다. 아버지께 가고 싶다'고 적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