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성팔족

1. 진(眞)씨 (진모씨;眞牟)

조미(祖彌), 저미(姐彌)등으로도 등장하여 모두 ㅈㅁ 초성을 가져 진(眞)의 우리말 뜻 '참'과 관련이 있지 않겠냐는 추측이 있지만 해당 단어의 언어학적 연원이 밝혀지지 않아 추측에 그치고 있음

서기 1~3세기 기록에 북부(北部) 출신이라고 적혀있는데 부여계라는 말이 없어 한강이북~황해도가 주 세력지였던거로 보임

3~4세기 경 13대 근초고왕의 왕비를 배출하여 성장, 고구려를 적대하다가 광개토대왕한테 정벌

부여설례의 난 이후 한성백제에서 등장하지 않다가 5세기 웅진백제 시대에 해구의 난을 진압할때 재등장하여 좌평 자리를 얻어내지만 이후 24대 동성왕이 금강 지역을 세력으로 하는 사씨, 연씨, 백씨를 등용하여 견제

현재 서산 진(眞)씨와 능성 구(具)씨가 후손으로 추정되나 확실하지 않음


2. 해(解)씨

부여에서 왔다고 함. 1대 온조왕이 친족세력인 을음의 직위를 해루에게 넘길 정도로 왕실과 가까웠던 것으로 추정

17대 아신왕 때 중앙정계를 지배하기 시작, 5세기까지 왕비 배출 등 가장 강한 대귀족 가문. 22대 문주왕 때 해구의 난 이후 진씨에게 잠시 꺾이지만 이후로도 중앙 정계에서 활동하다 30대 무왕에 의해 축출

후예 알수없음

3. 목(木)씨, (목리씨;木刕)

목라의 오기인 목협(木劦)을 중국 사서에서 따로 세서 대성팔족이 됨. 사실 7개 가문임
목라(木羅)로도 등장, 13대 근초고왕때 남부 정벌에 참여하여 가야와 당시 마한 연맹체였던 침미다례(전라도) 정벌(로 추정)

21대 개로왕의 웅진 남천때 동행 이후 사비백제 시대까지 계속 중앙 정계에 참여

구 마한 수장국 목지국(천안, 홍성 일대) 출신인 것으로 추정 

현 나주 임(林)씨가 후손인 것으로 추정 (종가 주변에서 대규모 마한계 유물 발굴, 평택 임씨를 중심으로 한 당나라 도래계 임씨와 계통이 연결되지 않는것)


4. 사(沙)씨, (사택;沙宅)

사타(沙咤)로도 등장. 한성백제 말기부터 등장하기 시작하나 큰 위치는 아니었다가 웅진백제 시대 이후로 성장, 사비백제 시대에는 왕비도 배출하여 30대 무왕, 31대 의자왕 시기에 가장 권세가 컸음.

충남 부여군이 본거지인 것으로 추정

현대에도 사씨가 있기는 하지만 관련성을 찾을 수 없음


5. 백(苩)씨

24대 동성왕 때 진씨를 견제하기 위해 등용, 하지만 이후 반란을 일으켜 제압됨. 사비백제 시대까지 명맥은 어찌저찌 이어나가지만 본거지였던 공주 일대는 중국계 예씨에게 넘어간 것으로 추정됨

현대의 백(白)씨와는 관련성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의견이 있음.


6. 연(燕)씨 (연비;燕比)

24대 동성왕 때 진씨를 견제하기 위해 등용, 적당히 중앙 정계에서 적당한 직위를 역임.

아산 탕정 일대가 주 세력권이었던 것으로 추정됨

현대에 동일한 한자를 쓰는 성씨는 국내 총 20명 가량이지만 관련성은 불명.

7. 국(國)씨

사비백제 시절에 잠시 나타남

국내 30명 가량이 있으나 관련성은 불명

8. 예(禰)씨

유물을 통해 볼때 중국계 인것으로 보임. 백씨의 반란 이후 웅진(공주)를 차지함. 25대 무령왕의 친위세력으로 추정.

유명인으로는 의자왕 시기 웅진성주 예식진이 있음. 의자왕이 웅진성에서 나당연합군의 포위섬멸을 계획하자 전투도 해보기 전에 의자왕을 데리고 나당군에게 항복함. 이후 예식진은 당에서 황실 경호 및 수도방위군을 맡는 좌위위대장군과 웅진도독부 동명주자사 벼슬을 받음.

당시 백제군 피해가 없어 버티면 해볼만한 싸움이었는데 바로 항복때린 점에서 센세이셔널한 인물

국내에 예씨가 있긴 하지만 동일하거나 유의미하게 비슷한 한자를 쓰는 집안은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