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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3-27 18:32
조회: 9,449
추천: 0
신라말기 진성여왕
출저:https://namu.wiki/w/%EC%A7%84%EC%84%B1%EC%97%AC%EC%99%95
1. 개요
사실 선덕여왕과 진덕여왕은 여러 정황상 즉위 시점에서는 이미 최소한 중년, 혹은 할머니였고 한국사를 통틀어 '젊은 여왕'은 진성여왕뿐이었다.
2. 정말 암군인가?현대 관점으로 보면 지극히 개막장인 사생활로 유명한데, 이는 역사에도 공식적으로 기록된 근친상간 및 역하렘 때문이다. 삼국사기에는 "임금이 평소 각간 위홍(魏洪)과 간통했는데 그가 죽자 혜성대왕(惠成大王)으로 봉했다"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 위홍이란 사람의 성은 김씨이며 경문왕의 동생이니, 즉 삼촌(!)이다. 그리고 위홍이 죽은 후 임금이 은밀히 미소년 두세 명을 궁에 끌어들이니 음탕 문란하게 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정리하자면, 근친혼은 신라 왕실에서 계속 행해온 풍습이라는 점과 왕이 후궁을 거느리는 것이 일반적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위의 사실만을 미루어보아 암군이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 비문은 "진성여왕은 과연 암군인가?"라는 의견에 대한 반박으로 사용되기도 하지만 당대 왕을 암군으로 묘사할순 없었을 것이므로 저 기록만으로 성군이었다고 볼수는 없다.
인터넷에서 욕을 그리 얻어먹은 선조도 당장 관련기록을 보면 정철같이 저런식의 찬양을 쓴게 눈에 보인다.
3. 기울어진 나라진성여왕이 즉위했을때는 이미 신라는 망해가고 있어, 3년(서기 889년) 국내의 여러 주군이 공부를 바치지 않아 재정이 궁핍했다는 기록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즉위 직후 주(州)·군(郡)에 1년간 조세를 면제하고,황룡사(皇龍寺)에 백좌강경(百座講經)을 한것 외에는 민심 수습을 위한 노력은 찾아볼수 없다.
효녀 지은 이야기가 진성여왕 시대의 일인데, 당시에 가난을 이기지 못해 구걸하고 다니거나 부잣집의 종으로 전락하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수있다. 또한 신라구의 전성기이기도 한데 현춘이라는 인물은 배 100여척, 병력 2,500여명을 이끌고 규슈지역을 약탈하다 사로잡히기도 했다.
이후 8년(서기 894년) 10월에 궁예가 북원에서 아슬라(지금의 강릉)로 침범해오니, 그 무리가 600여명에 달하고, 궁예는 스스로 장군이라 하였다는 기록과 9년(서기 895년) 8월 궁예(弓裔)가 저족(猪足), 성천의 두 군을 취하고 철원(鐵圓) 등 10여 군현을 쳐서 공취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연회장에서 불리는 향가의 가사가 조금씩 달라 국가 공인 '노래방 가사집(...)'을 만들려 한 것 아닐까 하는 추측도 있다.
삼국사기 기록一年秋七月 진성왕이 즉위하다
문제 출제 유형
진성여왕이 거의 나라를 말아먹었다고 봐도 무방할정도이기 때문에 문제출제위원자들도 직접적으로 진성여왕은 묻지않고 신라말에 원종 애노의 난을 물으면서 신라 말기가 얼마나 개막장이였는지를 묻는 문제가 종종 출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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