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2차대전 후 유럽의 인구 10만명당 나치 독일 협력한 민족 반역자 숙청인원 
  2. 프랑스 94명 

  3. 벨기에 596명 

  4. 네덜란드 419명 

  5. 노르웨이 633명 


  6. 프랑스 현재 인구 6200만명, 당시 대숙청 99만명, 다른나라에 비하면 관대한 처벌.. 


  7. 나치 독일에 점령 당한 나라중에 사형제도가 없던 나라는 법을 고쳐 소급적용 처형시킴.






    1. 유럽은 50년이 지나서도 공소시효 없이 민족 반역자를 검거한다


    나치에 부역질한 프랑스인 '폴 투비에'가 무려 50년을 도피하다 1994년 80세의 나이에 검거되어 종신형을 선고 받았다. 르몽드지 기자가 16세 소년에게 질문 '어떻게 생각 하냐?'소년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역사를 위해서 반드시 해야될 일'라고 말했다.



  • 드골의 나치 협력자 규정 기준

  • △나치 독일의 점령을 정당화한 투항주의자 

    △히틀러의 괴뢰정권인 비시정권의 모든 공직자와 지원세력 

    △나치 독일과 동맹국(일본과 이탈리아)의 승리를 위해 물심양면으로 협력한 사람

    △나치 독일을 찬양 미화 보도한 언론인과 침묵한 모든 언론인



    [나치 독일군과 동침을 하거나 사겼다는 이유만으로도 처벌 받았다]

    [돈을 받고 독일군에게 매춘 행위를 한 여자도 처벌 받았다]

    그녀들은 머리가 삭발되고 머리와 가슴에 나치 문양을 새겨 대중의 손가락질을 받았다.





    드골이 처형한 사람중에 자신을 가르친 대학교수도 있었다. 

    에어 프랑스는 민간기업이었으나 나치에 협력을 하였다는 죄목으로 국영화 몰수되고 

    르노 자통차 루이 르노 회장은 나치에 자동차를 납품했다는 죄명으로 감옥에서 옥사했다.


    샤를 드골 

    “나치 전체주의에 ’민족의 혼과 정신‘을 팔아먹은 민족반역자는 프랑스 말을 할 자격이 없는 외국인이나 마찬가지다. 사회주의자나 공산주의자는 이념을 달리한다고 해도 ‘나라를 팔아먹은 매국역적’은 아니며, 단지 국가의 관리와 경영을 달리하는 이념의 소유자라고 볼 수 있다.”


    1. [드골 처형 외 나치 협력자들이 당한 보복 사례] 

    2. 남편은 살해되고 11살 아이는 강간 당한 엄마와 함께 살해되었다.

    3. 눈을 찌르고 남자는 생식기를 자르고 여자는 가슴을 도려냈다.

    4. 자식이 보는 앞에서 엄마를 강간한 후 살해하고, 

    5. 부모가 보는 앞에 딸을 12차례 강간했다.

    6. 맨발로 깨진 유리 위를 걷게 한 후 동물과 교미를 시켰다.

    7. 한 신부는 성기에 총상을 입은체 자신의 무덤을 판 후 생매장 되었다.


     [모든 청산을 종료한 후 드골이 한 말] 
    "프랑스가 다시 외세의 지배를 받을 지라도, 또 다시 민족 반역자가 나오는 일은 없을 것이다"




    드골은 어떠한 변명도 용납하지 않았다. 

    자발적이던 협박에 의해서던 경중에 따라 처벌을 했다.


    재산몰수는 기본이었다


    친일 민족반역자들이 걸필하면 들먹이는 

    시대 상황, 

    살기 위해 어쩔수 없었다,

    이미 공소시효가 끝난 일,

    과거는 그만 잊자,

    과실만 보지 말고 공도 보자는 공과의 논리,

    연좌제 금지 등..

    씨알도 먹히지 않는 변명에 불과하다.

    인권을 중시하는 유럽도 민족 반역자에 대한 증오심이 너무 컸기에

    아주 잔인하게 처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