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한동훈이 나선 것은 소위 '짜고치는 고스톱'이라기보다 정부가 빠르면 26일부터 시작하겠다고 이야기한 면허정지처분이 실제로 집행될 경우 전공의들에게 복귀명령을 내린 것과 모순되고, 교수들이 사표를 내겠다고 한 것이 25일이기 때문에 시간을 벌기 위한 고육책으로 보인다.

대통령실은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면허정지처분을 원칙대로 진행한다는 입장을 발표했었다. 그러나 교수 사직에 더해 전공의에 대한 3개월 면허정지가 실제로 진행되면 전공의들이 복귀해도 의료행위를 할 수 없다는 모순에 결국 총선 전 시간을 벌기 위해 한동훈에게 도움을 요청했다고 생각된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에 한동훈이 움직였다고 해서 의료 사태가 해결될 수는 없다.


구체적인 이유는 아래와 같다.


첫째, 대통령실은 전공의 면허정지 이슈를 당과 협의해 유연하게 처리하라고 했지 증원문제를 협의하라고 하지 않았다. 애초에 이번 사태가 증원문제 때문인데 증원에 대해서는 다루지 않고 면허정지만 논의하는 것은 문제 해결과 거리가 있다. 더구나 정부가 증원문제에서 물러나는 듯한 모습을 취하면 총선에서 패배할 것이므로 총선 전에는 증원 관련 문제는 논의조차 되지 않을 것이다.

둘째, 전공의들은 어떤 지도부의 명령에 의해 움직인 게 아니라 자기들끼리 스스로 논의하고 스스로 결정하는 '집단지성'의 형태로 움직이고 있다(그 판단이 맞느냐 틀리냐는 별론으로 하고). 물론 peer pressure가 분명 있겠으나, 큰 줄기는 누구의 지시에 의해 사직한 게 아니라 자기가 스스로 사직한 것이다.

따라서 설령 교수들이 그만 복귀하라고 해도 상당수의 전공의들이 복귀하지 않을 것이고 특히 전공의들이 절실한 필수의료쪽도 복귀율이 높지 않을 것으로 본다.

원래 필수의료쪽이 안 그래도 열악한 분야였음에도 그쪽을 선택한 전공의들은 그야말로 돈보다는 사람을 살린다는 사명감이 더 큰 인물들이었을 텐데, 이번 사태로 인해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셋째, 이번 사태로 인해 전공의들은 의료보험체계에 대해 더욱 명확히 알게 되었다. 만약 정부가 의대증원을 2천명이 아니라 1천명으로 줄이면 이들이 복귀할 것인가? 아니면 5백명이나 3백명으로 하면 복귀할 것인가?

누누이 이야기했듯 현재 의료보험제도가 직면한/직면할 문제는 인원이 아니라 의료전달체계, 소송 등 다른 데에서 야기된 것이므로 이 문제에 대한 논의가 없으면 이번 사태 이전으로 돌아가기 어렵다. 그나마 상정할 수 있는 최선의 대안은 위와 같은 이슈와 함께 증원이슈를 원점에서 재검토하는 조건으로 전공의들이 복귀하는 것인데, 최소한 총선 전에는 절대로 정부가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고 총선 이후에도 쉽지 않을 것이다.


'22년 서울아산병원 간호사 뇌출혈 사건 이후에도 정부는 뇌혈관외과 의사를 확충하는 방법을 마련한 게 아니라, 의사들이 동시에 휴가를 못쓰게 하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물론 정부로서도 분명 상당한 고충과 고민이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이제 뇌혈관쪽으로 지원하는 전공의들은 더 줄어들 것이 뻔하다.

이번 사태도 마찬가지다. 지금도 전공의들은 주당 80시간까지 일하게 만든 법률에 의해 최저임금보다 낮은 처우를 받고 있다. 앞으로 정부는 전공의 사직금지, 전공의 미수료시 개업금지 등을 법제화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렇게 옥죄면 옥죌수록 더더욱 필수의료쪽으로 지원하는 전공의들은 사라질 것이다.


어쩌면 정부는 2천명 증원 발표를 하면 의사들이 길거리로 뛰쳐나와 데모, 시위, 철야농성으로 악다구니를 쓰는 모습을 기대했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정작 "35살에 연봉 4억"을 받는다는 의사들은 조용하고 의술에 대한 사명감과 미래에 대한 믿음으로 저임금구조를 받아들여왔던 전공의들만 스스로 물러나버렸다. 그리고 그 결과 6600개 병상을 운영해야 할 대형병원들이 휘청이고 있다. 그 병원들을 살리려면 건보재정을 비롯해 엄청난 세금을 투입해야 할 것이다.

외국인들이 와서 감탄한다는 한국의 의료보험제도가, 박정희가 그렇게 힘들게 노력해서 만들어냈던 의료보험제도가 한국인들 스스로에 의해 무너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