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인디 개발팀 원더포션에서 지난 11월 정식 출시한 2D 액션 플랫포머 게임 '산나비'는 짜임새 있게 완성된 스토리와 훌륭한 연출, 그리고 여운을 주는 엔딩으로 호평 받았다. 21년 텀블벅 모금 때는 물론 이미 얼리액세스 단계인 2022년에 대한민국 게임대상 인디게임상을 수상하고, 도쿄게임쇼에서 호응을 얻는 등 '싹'이 이미 보였던 셈이다.

그 싹을 틔우고 완성하기까지 3년 동안, 그리고 원더포션이 결성되기까지 어떤 일이 있었을까. 유니티 엔진의 최신 기능 소개 및 유니티로 만든 게임들의 개발 노하우를 공유하는 유데이에 연사로 초청된 원더포션의 유승현 대표는 '산나비'가 만들어지기까지의 그 과정을 되짚어나갔다.

유승현 대표가 처음 게임 개발자의 꿈을 꾼 것은 '역전재판' 시리즈를 접했을 때였다. "이런 게임을 만들고 싶다"고 게임 개발을 공부했지만, 10년이 지나도 성과는 없고 열정은 식었다. 그리고 대학교도 게임과 관련이 없는 과로 들어간 만큼 결국 게임 개발자로서의 기회는 없다고 거의 포기한 상태였다. 그러다가 군 입대 후 전역하면서 게임 개발자가 되겠다는 열정이 다시 불타올랐고, 본격적으로 게임 개발에 뛰어들었다.

▲ 역전재판 시리즈를 하면서 게임 개발자의 꿈을 키웠으나

▲ 시일이 지나 열정이 시들면서 그 꿈을 접나 싶었는데

▲ 군대 갔다 오고 나니 게임 개발자의 꿈이 다시 불타올랐다

게임 개발을 재개하기로 마음먹은 뒤 유승현 대표는 게임잼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수익도 안정적이 않고 오직 열정만으로 개발을 이어나가야 하는 인디 게임 개발에서 믿을 만한 동료와 만들 만한 이유를 검증하는 절차를 거쳐봐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걸 검증할 수 있는 곳이 게임잼이라 생각해서 참가하다가 현재 원더포션의 멤버들을 만나 게임 개발을 시작했다.

그렇게 팀을 꾸렸지만, 전원 다 게임을 개발해 출시한 경험도 없고 현실적인 감각이나 그들을 말릴 무엇도 없는 상태였다. 오직 열정과 패기만 있는 상황에서 경쟁 자체를 피할 수 있는 대체 불가능한 게임을 만들어야 한다는 가닥을 잡고 '조선 사이버펑크 로프액션 플랫포머', 곧 산나비의 초안이 만들어졌다.

▲ 같이 할 동료를 모으기 위해 게임잼을 돌아다녔고

▲ 인원이 모인 뒤엔 이건 먹힌다! 라고 생각해서 산나비의 초안이 만들어졌다

그 문구를 바탕으로 1년 동안 작업한 결과물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고, 멤버들 모두가 반성에 들어갔다. 결론은 모든 것이 문제였다. 우선 로프액션 메카닉은 문제가 없었으나, 왜 그간 로프액션을 메인으로 삼은 게임이 없었나는 간과하고 무턱대고 만들었다. 게이머의 시각에서 볼 때는 웜즈의 로프액션을 재미있게 즐겼던 경험이 있으니 로프액션 플랫포머는 재미있을 것이라 생각했으나, 그걸 구현하기 위해서 테스트하고 디버깅하고 조작감을 개선하는 그 일련의 과정에서 문제가 산적했다. 아울러 개발 과정에서 자신들은 이미 익숙해져있던 탓에 실제 유저가 플레이하는 감각으로 테스트할 수 없던 것도 완성도를 낮추는 요소 중 하나였다.

그러면서 산나비 개발팀은 '조작감'에 대해서 새롭게 생각하게 됐다. 이제까지 누른 대로 정직하게 움직이는 것이 좋은 조작감이라 생각했으나, 실제로는 달랐다. 유저들이 '상상하는 대로' 움직여야 좋은 조작감이라 평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조작감을 고평가 받는 트리플A 게임들을 복기했을 때 그러한 결론이 나왔고, 그걸 구현하기 위해 조작감의 요소를 차근차근 파고 들면서 그 이론을 토대로 상상하는 대로 움직일 수 있게끔 노력했다.

▲ 초안 나오고 1년 동안 작업한 결과물.webp

▲ 게임 개발자로서 어떻게 이걸 구현해야 할까에 대한 고민이 없었고

▲ 구현하면서 익숙해지다 보니 유저 눈높이에 맞춰서 조작감을 구축하기도 어려웠다


▲ 그래서 핵심 메카닉부터 뜯어고치고 수치 조정도 쭉 이어나갔다

다만 그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산나비에서 구현하고자 하는 로프액션은 진자 운동을 이용한 움직임이 핵심인데, 여기에 적용되는 공식은 상당히 까다롭기 때문에 조작감을 살리는 것이 처음부터 어려웠다. 그래서 메카닉을 처음부터 다듬는 과정이 필요했다.

최초의 산나비는 사슬 길이를 잡는 타이밍에 따라서 조절하는 방식이었으나, 그 방식 자체가 너무 어렵다는 피드백이 많았다. 그래서 위아래 키로 사슬 길이를 조절하게 변경했으나, 이 역시도 충분하지 않았다. 스윙 액션도 낯선데 길이조절까지 수동으로 하니 유저들이 더 번거롭게 느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적당히 알아서 잘 가도록 조율하는 한편, 로프를 건 뒤에 감는 와인딩과 이 요소를 적극 활용하기 위해 천장에 붙어서 이동하는 기능을 추가했다. 이외에도 조작감 관련해서 500개 이상의 수치들을 재조정하고 수정했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되짚어보면서 게임의 방향성도 바뀌었다. 원래는 전투 없이 이동 위주의 정밀 플랫포머를 계획했으나, 그렇게 정밀한 조작과 합리적 난이도를 구축하는 것은 현 개발팀의 상황에서는 무리였다. 거기다가 아무리 봐도 전투를 해야 할 것만 같은 팔 디자인을 썩히는 것도 아까웠다. 그래서 전투를 넣되, 전투 중에 이동이 끊기지 않는 독특한 템포를 이어가는 방향으로 고민했다.

▲ 디자인을 봐도 전투가 없는 게 이상했기 때문에

▲ 당초 생각했던 이동의 철학은 유지하면서 전투를 진행할 수 있도록 구현했다

구조뿐만 아니라 '스토리'에서도 문제가 체감됐다. 조선 사이버펑크라는 요소를 드러내기 위한 '스토리'를 만드는 과정도 예상과 달랐기 때문이었다. 스토리가 괜찮고 안 괜찮고를 떠나서, 스토리를 풀어나가는 '텔링'을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에 디테일을 완성도 있게 구현할 수 없었다. 그래서 처음부터 다시, 그 요소들을 고려해서 새롭게 제작했다.

▲ 아이디어는 좋았는데

▲ 그걸 어떻게 이야기할 것인가는 고민이 없었다

▲ 그래서 결론은 처음부터 스토리를 다시 썼다

이렇게 문제점을 파악하고 다시 고치는 과정은 이론상으로는 쉽지만, 인디 개발팀 입장에서 현실적으로 어렵다. 특히 원더포션은 고정 수익이 발생하지 않는 팀이었기 때문에, 금전 문제가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청년 커뮤니티 지원사업, 경기 게임오디션 등등 지원 사업을 필사적으로 찾아다녀서 응모했다. 지원금의 액수는 크지 않았지만, 그래도 빠듯하게나마 팀을 유지할 수는 있었다.

그렇지만 인디 개발팀이 해산되거나 틀어지는 이유는 단순히 금전적인 이유만은 아니었다. 서로 의견충돌이 발생하는 걸 잘 조율할 필요도 있었다. 처음 게임 개발에 들어설 때는 서로 만들고 싶은 것이 달라서 의견이 충돌한다고 생각했지만, 그보다는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때 무엇이 좋은지 논의하는 과정에서 충돌이 발생했다. 처음에는 이를 조율하기 위해서 회의를 거쳤지만, 무의미한 논쟁만 길어지는 결과가 나왔다. 그래서 유승현 대표가 총대를 매고 게임의 방향성을 이끌어가기로 결정했다. 유승현 대표는 모두가 자신이 만들고 싶은 걸 만든다는 '인디'의 방향성과 다소 다르지만, 좋은 경험을 주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다고 회고했다. 자신의 판단과 결정을 팀원들이 신뢰할 수 있도록 실력을 갖춰야만 했기 때문이었다.

▲ 국가 지원 사업이나 콘텐츠진흥원 사이트를 찾아가면서 어찌저찌 비용은 충당했지만

▲ 의견충돌이 심화되어 팀이 와해되는 건 피해야 했다

▲ 그래서 방향성을 모을 리더가 되어야 했다

그렇게 벼락치기로 접근하기에 게임 개발은 쉬운 영역이 아니었다. 국내에서 인디 게임 개발 환경은 옛날에 비해 나아졌으나, 게임 개발 과정에서 해야 할 일이 줄어든 건 아니었기 때문이다. 아울러 '현실'은 냉혹하다는 것을 개발하면서 느낄 수밖에 없었다. 참신하면서도 재미있다고 생각한 아이디어는 남들이 다 했다는 것을 느꼈고, 새로움에 대한 강박 때문에 얼토당토 않은 걸 넣었다가 실패했던 경험들이 유승현 대표의 발목을 잡았다. 그렇게 답답한 상황에서 노력이 보답을 받는다는 보장도 없었다. 그 갑갑함을 이겨낼 수 있던 것은 게임개발이 좋다는 열정이었다. 자신과 같은 방향을 바라볼 동료를 찾기 위해 시간과 노력을 투자했던 경험, 게임 개발에 대한 열정, 그리고 힘든 부분을 구체적으로 파악하고 극복해나갔던 과정을 거쳐서 '산나비'는 완성될 수 있었다.

▲ 한 때 꺼졌던 불씨였지만, 다시 타오른 그 열정으로 '산나비'가 완성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