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인디 게임 개발사 원더포션이 개발하고 네오위즈가 서비스하는 액션 게임 '산나비'가 드디어 출시됐습니다. 이번엔 미완성인 얼리 억세스 빌드가 아닙니다. 두 가지 엔딩까지 모든 콘텐츠가 포함된 정식 버전이죠.

산나비는 사이버펑크 디스토피아 세계관에 한국적인 색을 더해 기존에는 볼 수 없었던 매력적인 게임이 될 것으로 출시 전부터 기대를 모았고, 정식 버전은 오랜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훌륭한 완성도로 마감됐습니다. 기다림의 시간은 정말 길었지만, 출시 빌드를 통해 마지막 엔딩까지 모두 보고 나니, 지금까지의 기다림이 모두 보상받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픽사의 장편 애니메이션 '코코'를 볼 때도 이만큼 울지는 않았는데, 오랜만에 펑펑 울게 되더라고요.

지난 2022년에 얼리억세스 버전이 처음 공개됐을 당시에 불편한 점으로 지적됐던 것들도 대부분 수정됐고, 이제는 편의 기능이 제공되지 않아 아쉽다는 느낌을 받을 일 없이 그저 온전히 사슬 액션과 스토리를 즐길 수 있게 됐습니다. 산나비는 한국적인 표현이 물씬 담긴 조선 사이버펑크의 독특한 비주얼, 그리고 몰입할 수 있는 스토리를 즐기고 싶은 이들에게 적극 추천하고 싶은 게임입니다.

게임명: 산나비
장르명: 액션 어드벤처
출시일: 2023. 11. 09
리뷰판: 출시 빌드
개발사: 원더포션
서비스: 네오위즈
플랫폼: PC, 닌텐도 스위치
플레이: PC



"끝까지 가는게 중요해" 한 편으로 깔끔하게 맺어진 이야기


산나비를 플레이하며 가장 만족감이 컸던 스토리 부분을 먼저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얼리억세스 단계에서는 제대로 언급하지 못했지만, 스토리는 이 게임의 가장 큰 매력 포인트거든요.

플레이어는 기계팔로 무장한 퇴역 군인이 되어 딸을 죽인 범인으로 지목된 '산나비'에게 복수하기 위해 초거대 재벌 '마고 그룹'의 부패한 사유 도시를 오르게 됩니다. 게임이 진행될 때마다 어린 딸과 함께 보냈던 행복했던 순간들이 과거 회상으로 등장하고, 플레이어는 자식을 먼저 떠나보낸 부모의 고통에 이입하며 스토리를 따라갈 수 있습니다.

게임의 주요 배경인 마고 그룹 소유의 사유도시 `마고특별시`에는 단 한 명의 살아있는 사람도 등장하지 않는데요. 작중 조선 최고의 하이테크 도시로 불리는 마고특별시가 한순간에 무인 도시가 되어버린 이유, 그리고 딸을 죽인 범인이자 복수의 대상인 `산나비`의 정체 등이 스토리를 통해 조금씩 명백해집니다. 이러한 스토리 구성은 플레이어에게 궁금증을 유발하고, 게임을 이어가게 만드는 원동력이 되어주죠.


산나비의 스토리는 두 개의 엔딩으로 나뉘는 구조를 취하고 있습니다. 매트릭스의 빨간 약과 파란 약처럼 단순한 양자택일입니다. 두 엔딩은 서로 완전히 다른 결과를 보여주기 때문에, 그 차이에서 오는 감동이 더 크게 다가옵니다. 챕터 선택 기능이 지원되기 때문에 두 가지 엔딩을 모두 보는 것 역시 번거롭지 않습니다.

스토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연출이 활용된 것도 눈에 띕니다. 화면을 그저 바라보고만 있어야하는 단조로운 지문 읽기 방식을 탈피하기 위해 정식 빌드에서는 더 다양한 시도가 활용됐습니다. 귀여운 손그림과 함께 소개되는 작전회의, 주인공이 아닌 금마리의 시선에서 진행되는 이야기나 사슬팔 액션이 결합된 단서 따라가기 등, 같은 이야기 전개 방식이 두 번 이상 반복되는 것을 피하려고 노력한 흔적이 엿보입니다.

스토리를 즐기는 과정에서 번거롭게 느껴졌던 조작 관련 편의성도 얼리억세스 이후 크게 개선됐습니다. 스페이스든 마우스 클릭이든, 버튼을 누르면 자연스럽게 다음 지문으로 넘어가므로 몰입이 깨지는 일이 크게 줄었습니다. 다소 어수선하게 배치됐던 BGM도 상황상황에 적절하게 활용되어 어색하다는 느낌 없이 이야기에의 몰입을 돕습니다. 얼리억세스 빌드를 통해 먼저 공개됐던 챕터3 이후, 나머지 엔딩까지 스토리를 즐기는 동안 한 편의 영화 작품을 감상하는 듯 편하게 플레이할 수 있었습니다.


스토리 면에서 조금 아쉽게 느껴지는 것은 마지막 장인 '챕터5'에 몰아치듯 우겨넣은 사건의 전말과 진상, 그리고 다소 간단하게 정리되는 결말입니다. 챕터5에 이르기까지 꽁꽁 숨겨놓았던 모든 의문들이 마지막 장에서 하나도 빠짐 없이 명백히 밝혀지게 되는데, 이 과정이 너무 빠르게 흘러가는 편입니다.

플레이어로 하여금 계속 지문만 읽고 있게 할 수는 없으니 플랫포머 방식의 사슬 액션이 중간중간 섞여있는데, 약간의 환기를 해줄 뿐 모든 서사의 끝을 장식하는 '클라이막스'라는 느낌은 다소 부족했습니다. 사슬 팔 액션의 끝을 기대한 유저들에게는 다소 아쉬운 구성이랄까요. 물론 액션과 스토리를 떼어놓고 봤을 때, 떡밥을 모두 회수한 점이나, 한편으로 깔끔하게 마무리되는 여운이 남는 결말 만큼은은 정말 각별했습니다. 게임을 선택할 때 '스토리'를 중시하는 이들에게 꼭 추천하고 싶은, 기억에 남는 마무리였죠.

▲ 상황에 맞는 애니메이션 컷신이 몰입을 돕고, 이야기를 더 풍성하게 꾸며주었습니다



충전 대쉬를 더해 완성도 높인 전매특허 '사슬 팔 액션'


얼리억세스 출시 당시에도 산나비의 사슬 팔을 활용한 와이어 액션은 여타 2D 액션 어드벤처 게임들과 차별화되는 매력 포인트라고 언급한 바 있습니다. 주인공의 사슬 팔은 게임 속 플랫포머 지형들을 빠르게 넘나들 수 있도록 돕는 이동 수단이자, 대부분의 적을 일격 필살로 해치울 수 있는 강력한 무기입니다. 게임에 속도감을 더해주고, 쉽고 간편한 조작으로 스타일리시한 액션을 경험할 수 있게 해주는 핵심 요소죠.

처음엔 다소 복잡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수련장의 튜토리얼을 통한 수련과 몇 번의 실전 경험을 통해 조금만 익숙해지면, 누구나 사슬 팔을 활용한 와이어 액션의 매력에 푹 빠지게 됩니다. 생각한 위치에 정확한 각도로, 정확한 길이만큼 사슬 팔을 발사한 뒤 딱 필요한 만큼의 반동을 주고, 다시 팔을 풀어 다음 장소로 옮겨가는 것을 능숙하게 반복하다 보면 마치 영화 속 거미 인간이 된 것 마냥 상쾌한 기분을 만끽할 수 있습니다. 벽에 한 번도 부딪히지 않고 공중에서 치러지는 전투까지 아무런 피해를 입지 않고 모두 끝내면, 뭔가 대단한 액션을 한 것 같은 성취감까지 느껴집니다.


출시 빌드에서는 얼리억세스에서 추가된 사슬 감기 외에 신규 액션인 `충전 대쉬`가 추가되어 액션의 운용 폭이 조금 더 넓어졌습니다. 챕터4 이후에 해금되는 충전 대쉬를 활용하면 사슬 팔을 걸기 위한 플랫폼을 플레이어가 직접 이동시켜 배치할 수 있는데요. 이를 통해 더 유동적인 플레이를 즐길 수 있게 됐습니다. 충전 대쉬를 위해 또 다른 조작 버튼 하나를 더하는 대신, 기존 로프 반동 조작에 할당됐던 시프트키를 다시 활용하여 누구나 어렵지 않게 배울 수 있도록 했죠. 기존의 사슬 팔 반동에 필요에 따라 충전 대쉬까지 함께 사용하면 조작의 재미는 더욱 커집니다.

아무리 반복해도 사슬 팔 액션이 손에 익지 않아 그저 마음 편하게 스토리만 따라가고 싶은 이들도 있을 겁니다. 동시에 더 자극적인 도전을 바라는 이들도 있겠죠. 이들을 위한 네 단계의 난이도 선택 옵션이 존재하니, 자신의 입맛에 맞는 게임 모드를 선택해서 플레이할 수도 있습니다.

▲ 사슬 팔을 걸 수 있는 공간이 없다면, '충전 대쉬'로 플랫폼을 이동시킬 수 있다

충전 대쉬의 추가 등 액션을 강화하기 위한 여러 노력이 엿보이지만, 사실 얼리억세스 이후 액션 파트에 큰 변화가 생긴 것은 아닙니다. 얼리억세스 당시 '갈수록 단조롭게 느껴지는 전투 파트'에 대한 아쉬움을 이야기한 적이 있는데, 정식 빌드에서도 이 부분에 대한 아쉬움은 여전했습니다.

실제로 후반부 전투 역시 잡기 액션의 반복입니다. 사슬 팔 그랩으로 피해를 줄 수 없는 적에게 물건을 잡아 던지거나, 신규 액션인 충전 대쉬로 처리하는 식이죠. 정식 빌드에서 새롭게 추가된 보스전은 기존 보스전 속 요소들을 따와서 조립한 단조로운 구성이었고, 모든 리미트를 해제한 뒤에 진행되는 마지막 파트에서는 `최종 결전` 같은 전투 없이 그대로 스토리가 마무리되어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정리하자면, 산나비의 사슬 팔 액션은 독특하고 재미있지만, 활용처가 다소 미비하다는 인상입니다. 이야기의 극 초반부터 거의 완성된 형태의, 강력한 힘을 가진 주인공이 등장하기에 초반부터 엔딩까지 전투의 양상은 항상 대동소이합니다.


하지만 이부분 역시 스토리를 더 강조하기 위한 전략이었으리라고 봅니다. 주인공이 다른 화려하고 강력한 무기를 사용하지 않고 오직 사슬 팔 하나만 활용해서 싸우는 이유는 스토리와 깊이 연계된 부분이거든요. 액션 면에서 더 다양한 연출을 기대했던 이들이라면 다소 아쉽다고 느낄 수 있으나, 스토리의 완성도와 개연성을 위해 이부분은 충분히 감안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스토리에 너무 감동을 받은 나머지, 최종전이 없어서 아쉽다는 감상보다 엔딩이 좋다는 기억이 더 크게 남았거든요.




산나비라는 작품을 이야기할 때마다 매번 이야기했기에 이번 기사에서는 언급을 줄였지만, 산나비는 사이버펑크 디스토피아 세계관에 한국적인 요소들을 담아낸 비주얼 역시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한국어 표기가 적힌 네온사인 간판으로 어지럽게 채워진 상업지구의 모습, 그리고 깔끔하고 밝은 분위기와 고급스러운 건축 양식으로 무릉도원을 연상케 하는 마고특별시 최상층의 대조적인 비주얼은 `이것이 바로 K-사이버펑크구나`라는 생각을 절로 떠올리게 합니다. 엔딩까지 스토리를 진행하는 동안 마고특별시를 구성하는 각 구역을 두 번 가량 반복해서 지나가게 되는데요. 어쩌면 재탕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 똑같은 배경의 반복이지만 결코 지루하거나 식상하다는 느낌 없이 도시 곳곳을 마지막으로 한번 더 둘러볼 수 있어서 좋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산나비의 정식 출시 버전은 게임을 좋아하는 이라면 누구에게라도 권해주고 싶은 감동적인 스토리를 갖춘 작품으로 완성됐습니다. 타이틀 가격도 15,500원이라는, 주말 극장 영화 한 편 정도로 저렴하게 출시됐기에 다른 이에게 추천하기에 부담도 없죠. 플레이 타임은 8시간에서 10시간 정도로 가격 대비 넉넉한 편이고요.

그간 게임 업계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었던 한국적인 비주얼에 누구라도 폭넓게 공감하고 이입할 수 있는 `부성애`라는 대중적인 주제가 더해졌고, 산나비는 세계 어디에라도 자신 있게 소개할 수 있는 대표적인 K 사이버펑크 게임이 됐습니다. 최근 네오위즈의 싱글 플레이 액션 RPG `P의 거짓`이 해외 콘솔 시장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 만큼, 지금의 흐름에 이어 PC와 닌텐도 스위치 플랫폼으로 출시되는 신작 `산나비` 역시 더 많은 이들에게 알려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