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인디 개발팀 원더포션에서 개발한 2D 액션 플랫포머 게임 '산나비(SANABI)'가 지난 11월, 드디어 정식 출시됐습니다. 처음 산나비의 텀블벅 모금 소식이 전해졌던 것이 2021년 3월이었으니, 산나비를 기다려온 팬으로서는 대략 3년 만에 오랜 기다림이 결실을 보게 된 셈입니다.

산나비는 퇴역 군인인 주인공이 정체불명의 인물 '산나비'가 저지른 테러로 가족을 잃고, 딸의 복수를 위해 긴 여정을 떠나면서 펼쳐지는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담은 2D 액션 플랫포머 게임입니다. 정식 출시 후 짜임새 있게 완성된 스토리와 훌륭한 연출, 그리고 여운을 주는 엔딩으로 호평받았습니다. 현재 스팀 기준으로 약 12,000개에 달하는 사용자 리뷰와 함께 압도적으로 긍정적 평가를 기록 중이죠.

여운이 길게 남는 엔딩 탓일까요. 한동안 여러 커뮤니티에서 '산나비 앓이'를 겪고 있는 유저들을 많이 만나볼 수 있었는데요. 이들의 갈증을 달래주기 위해 개발사 원더포션이 보여줄 앞으로의 행보는 어떤 모습일지, 원더포션의 유승현 대표를 만나 직접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 원더포션 유승현 대표


"산나비에 보내주시는 사랑에 감사, 게임은 계속 개선 중"
Q. 본격적인 인터뷰에 앞서, 간단한 소개와 함께 팀 '원더포션'의 근황을 소개해주세요.

= 안녕하세요. 원더포션의 팀장이자 기획자, 유승현입니다. 팀 원더포션은 여전히 다섯 명이 함께 개발 중이고, 출시 이후에 버그와 난이도 수정 작업에 매진하고 있습니다. PC 버전은 문제가 없는 편인데, 닌텐도 스위치 빌드에 조금 이슈가 남아 있어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최근엔 지스타나 버닝비버 같은 오프라인 행사에도 참여해서 유저분들과 직접 소통하는 기회도 자주 만들고 있습니다. 현장에서 유저분들이 직접 만든 굿즈를 선물로 주시기도 하시는데, 저희가 만든 것보다 더 퀄리티가 좋아서 놀라곤 합니다. 유저분들에게 감사한 마음이 크고, 이런 부분에서 인기를 실감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Q. 텀블벅 모금을 시작으로 약 3년 만에 정식 출시에 이르게 됐죠. 어떻게 보면 첫 번째 여정을 마무리한 셈인데, 소감이 궁금합니다.

= 처음 게임을 출시했을 땐 얼떨떨한 느낌이 컸습니다.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달까요. 이제 약 한 달 정도 됐는데 아직도 비슷한 느낌입니다. 실제로는 약 4년 정도 개발한 작품인데, 그게 끝났다는 것이 아직도 실감이 잘 안되는 것 같습니다. 실제로 여러 게이머들, 스트리머들도 많이 즐겨주시는 것을 보니 정말로 출시한 것이 맞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서 시원섭섭하면서, 후련한 느낌입니다.


Q. 출시 후 약 한 달이 지났고, 많은 게이머들이 소감을 전하고 있죠. 여러 채널에서 호응이 이어지고 있는데, 이 중에 특히 인상에 남았던 리뷰나 평가가 있었다면 어떤 것인지 궁금합니다.

= 사실 모든 리뷰 하나하나가 너무 소중합니다. 악평도 진지하게 읽고 있고, 좋은 리뷰들을 볼 때면 항상 감사한 마음입니다. 인상적이라기보다 혼란이 생겨서 기억에 남는 리뷰가 있는데, 바로 완전히 다른 반응을 보여주는 경우입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난이도 관련이죠. 어떤 분들은 너무 쉬우니 어렵게 해달라고 하시고, 반대로 너무 어려우니 쉽게 만들어달라는 분들도 계시거든요. 두 쪽 다 확고한 의지를 가지고 말씀하시니, 어느 쪽에 맞춰야 하나 고민하게 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아직도 약간 어렵게 느껴지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해서, 그런 부분들을 반영하기 위해 플레이 중에 '불합리하다'라고 느낄 수 있을 만한 부분들을 계속 쳐내려고 노력 중입니다.

▲ "게이머들이 남겨주신 모든 리뷰에 감사한 마음"


Q. '불합리하다'라고 느낄 수 있을 만한 부분이라면, 대표적으로 어떤 것들인가요?

= 감독관 보스가 등장하는 챕터3 부분입니다. 세이브 포인트의 간격이 넓다 보니 반복 플레이에 어려움을 느낄 수 있는 구조였는데요. 난이도도 낮추고, 세이브 포인트 간격도 촘촘하게 만드는 식으로 개선하고 있습니다. 원래 낙사로 죽는 구간에 바닥을 발라서 낙사 위험을 줄이는 등, 여러 면에서 구조를 개선하고 있는 식이죠.


Q. 정식 버전을 출시하기까지의 모든 과정에서 특히 기억에 남는, 개발 비하인드가 있다면 소개해주세요.

= 앞에서 말한 감독관 보스를 만드는 과정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처음 기획할 때는 '이런 느낌을 줘야지'라고 다소 두루뭉술하게 접근하게 되는데, 감독관을 만들 때는 압도적인 위력으로 절대 이길 수 없는 적과 여기서 전해지는 공포를 담고자 했습니다. 이를 위해 엄청 거대한 적이 필요했는데, 이걸 도트로 만들고 있으니 생각보다 더 힘들었고, 어찌어찌 만들어놓고 보니 무슨 판때기가 움직이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처음에 기대했던 위압감 같은 것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죠. 아무래도 이건 잘못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처음부터 다시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으로 고민하다가 3D로 만들자는 아이디어를 떠올리게 됐습니다.

2D 게임에 3D를 넣는 것이 기술적으로 쉽지 않았죠. 이땐 두세 달 정도 맨땅에 헤딩하는 기분이었어요. 어색함을 줄이기 위해 쉐이더를 써서 색감을 조절하고 도트랑 잘 어울리게 만드는 등 수많은 변경 사항을 넣었고, 정말 노력을 많이 했던 기억이 납니다. 이렇게 만들고 나니 2D 게임에 3D 적이 등장하니 더 기괴하게 느껴져서 무섭다는 등, 긍정적인 평가를 들을 수 있게 됐습니다.

▲ 개발진의 시행착오와 노력이 집약된 '감독관' 보스


Q. 처음 예고했던 출시 일정보다 꽤 많이 지연된 편인데, 현재의 출시 빌드에는 처음 '산나비'라는 게임에 담고자 했던 요소들을 다 담았다고 생각하는지 궁금합니다.

= 사실 놓친 부분이 꽤 많습니다. 처음 게임을 기획할 때는 마고특별시라는 도시 자체를 자유롭게 탐험할 수 있도록 사슬 팔을 이용한 입체적인 이동 요소를 넣어주려고 했었거든요. '오리와 눈먼 숲' 시리즈 같은 메트로배니아가 목표였죠. 하지만 현실적으로 어려운 부분이 많았고, 결국 선형적인 게임으로 만들게 됐습니다.

이것 말고도 아실 분들은 아실 텐데, 떡밥이 다 풀리지 않은 스토리가 있습니다. 이런 것들을 사이드 요소로 풀어내려고 했는데, 개발 기간에 쫓기다 보니 다소 부족하게 담아낸 것 같아 아쉬운 마음이 큽니다. 물론, 디테일한 부분을 제외하고 보스처럼 핵심적으로 구현하려고 했던 부분은 처음 계획했던 대로 잘 구현했다고 생각합니다.


Q. 여러 요인으로 인해 아쉬움으로 남은 부분들을 추후 업데이트로 보완할 계획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 산나비라는 작품은 현재 완결성을 띠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뭘 더 바꾼다는 것은 두려움이 더 크네요. 앞으로는 편의성 업데이트 위주로 진행할 계획입니다. 하지만, 텀블벅 공약으로 내년에 짧은 무료 DLC를 추가할 계획이 있으니, 이 내용으로 조금이나마 아쉬움을 달래실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DLC는 원작과 다른 매력을 보여주는 콘텐츠로, 마리와 준장의 이야기를 담아낼 예정입니다.



"산나비는 여기서 일단락, 원더포션의 차기작도 기대해주시길"
Q. 산나비에서 스토리가 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스토리는 기획 단계에서 계획했던 그대로 진행된 것인가요?

= 방향성 자체는 잘 유지가 됐습니다. 보통 스토리는 시작과 끝부분을 먼저 잡아놓고 만드는 편인데, 게임이라는 매체 특성상 여기에 '플레이'가 들어간다는 점도 함께 고려해야 합니다. 그러다보니 플레이했을 때 재미 없는 부분을 쳐내고, 정황상 등장하면 안되는 보스가 있을 경우엔 이야기를 바꿔야하기도 합니다. 이런 부분에서 루트가 많이 바뀌긴했는데, 일단 처음 기획한 시작과 끝은 기획대로 잘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Q. 핵심적인 줄기 외에, 사이드 스토리 표현에서는 다소 아쉬움이 남았을 것 같습니다.

= 아쉬운 부분이 많습니다. 처음엔 스토리를 통해 '마고특별시'라는 도시와 세계관을 풀어내고 싶었거든요. '사이버펑크 2077'에 등장하는 나이트 시티처럼요. 하지만 개발 기간의 한계라던가 역량 부족으로 담아내지 못했던 부분이 많고, 미처 풀리지 못한 떡밥이 많이 남게 됐습니다. 이것을 설정 오류로 느끼시는 분들이 있어서 아쉬운 마음입니다. 이외에도 처음에 산나비를 '메트로배니아' 장르로 계획했을 때는 마리와 주인공의 관계, 그리고 베일에 싸여있던 진실들을 순차적으로 차근차근 풀어낼 생각이었습니다. 도시 전체를 누비면서 단서들을 하나씩 찾아가는 구조로 만들고 싶었죠. 이것도 현재는 마지막 챕터에 전부 뭉쳐놓은 듯한 그림이 되어서 아쉬운 마음입니다.



Q. 개인적으로는 마지막 챕터의 모든 구성이 대부분 만족스러웠지만, '최종전' 전투가 없는 것 같아 조금 부족하다는 느낌이 있었습니다. 이부분의 기획 의도도 궁금합니다.

= 처음 기획 의도는 모든 진실을 깨닫게 된 주인공이 다시 처음부터 올라가는 것, 첫 번째 여정과는 다른 자신의 자유 의지로 도시를 오른다는 느낌을 주고자 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이야기를 `게임`이라는 매체를 통해 담는 과정에서 극적인 파트가 부족했고, 이야기 자체가 조금 약해졌다고 생각합니다.

원래는 하늘에서 내려온 조정의 강력한 적들을 하나씩 물리치면서 최종전의 분위기로 고조시키고 싶은 마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걸 다 하면 개발 기간이 천정부지로 길어질 것 같았고, 넣는다고 해도 이게 과연 잘 어울릴지 고민이 많아서 결국 현재의 모습처럼 만들게 됐습니다.


Q. 주인공 금마리와 의금부 백대령, 송소령, 저스티스까지. 산나비에는 주인공 외에도 매력적인 캐릭터가 참 많이 등장합니다. 이들을 활용할 추가 계획은 없나요?

= 현재까지는 따로 없습니다. 앞서 밝혔듯 산나비의 이야기는 이미 완결됐고, 이것을 다루다 보면 완결된 이야기에 영향을 줄 수 있어서 아직까지 조심스러운 마음이 큽니다. 게임 자체가 이야기 중심의 게임이다 보니 뭘 추가하는 것이 쉽지 않은 편입니다. 번역 이슈도 있고요. 현재로서는 어설프게 후일담을 계속 더하기보다, 제대로 다음을 준비하는 것이 더 나은 방향성이라고 생각합니다.

▲ "완결된 산나비, 어설픈 후일담보다 확실한 '다음'을 준비할 것"


Q. 팀 원더포션의 차기작 개발 계획이 궁금합니다. 현재 어떤 '다음'을 준비하고 있나요?

= 사실 산나비를 만드는 동안 멤버들의 건강이 많이 안 좋아졌습니다. 그래서 당장은 요양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보고 있고요. 일단 몇 개월 충분히 휴식을 취한 뒤, 차기작을 본격적으로 준비할 예정입니다. 앞으로도 게임 개발을 계속할 계획이고, 어떤 게임을 만들더라도 산나비보다 더 멋있고, 재미있는 게임을 만들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Q. 차기작으로 만들고 싶은 게임의 대략적인 모습이 있다면?

= 최근 '아우터 와일즈'라는 게임을 해보고 정말 충격을 많이 받았습니다. 스토리텔링의 본질적인 부분을 게임을 통해 정말 잘 해석한 게임이라고 생각합니다. 오직 게임으로만 할 수 있는 완벽한 결과물을 보여준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그야말로 게임 스토리텔링의 미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죠. 꼭 차기작이 아니더라도, 언젠가 이러한 게임들의 발자취를 따라가 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습니다.

▲ "가장 깊은 감명을 받은 작품은 아우터 와일즈(Outer Wilds), 발자취 따라가보고 싶다"


Q. 산나비, 그리고 인디 개발팀 원더포션의 다음을 손꼽아 기다리는 게이머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 부족한 부분이 많은 게임인데도 불구하고 산나비에 많은 애정을 보내주셔서 감사한 마음뿐입니다. 몇 년 전부터 계속 기다려주시고, 응원해주신 팬분들과 게이머들에게 감사하다는 말밖에 드릴 말이 없습니다. 다시 한번 산나비를 플레이해주시고 사랑해주신 분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며, 다음에는 산나비보다 더 재미있고, 멋있는 게임을 만들어서 다시 인사드릴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앞으로도 많은 기대와 관심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