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혈과 노련함을 겸비한 백제 최고의 무장"

진무의 첫인상은 소개 문구처럼 강인함 그 자체였다. 여기저기 흠집나고 깨진 갑옷을 두른 근육질의 거대한 체구, 수많은 전란 속에서 생겼을 상처투성이 손, "남자는 힘!"을 외치는 모습이 영락없는 마초남이었다. 하지만 잘 정돈된 길고 새하얀 수염과 강인하게 적을 노려보는 눈빛에서 치기 어린 만용과는 다른 백전노장의 노련함이 느껴졌다.

거대한 도끼를 세 자루나 들고 다니는 모습을 보며, 그의 마법이 원피스 조로의 '삼천세계' 같았어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우스꽝스러운 생각도 했다. 그러다 문득 인터넷에서 이런 문구를 발견하고는 지금까지의 어리석은 생각을 후회할 수밖에 없었다.

"진무를 좌장으로 삼아 병마에 관한 일을 맡겼다." - 삼국사기, 동국통감

지금까지 실존 인물을 바탕으로 한 장수는 담덕, 아신 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진무도 역사에 기록된 실존 인물이었다! 여기에 호기심이 발동한 필자는 진무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아보았다. 그러자 '광개토태왕'은 역사를 바탕으로 한 엄연한 허구임에도, 역사에 대한 내용이 상당히 잘 반영되어 있었고, 진무에 대해서도 잘 표현한 것을 알 수 있었다.

▲ 담덕, 아신과 마찬가지로 진무도 실존 인물을 바탕으로 했다.


진무, 알고 보니 귀하신 몸

아신이 백제의 국왕이 되었을 때, 백제의 상황은 좋지 않았다. 반년 전에 즉위한 고구려의 담덕, 광개토태왕에게 많은 영토를 뺏겼기 때문이다. 담덕이 석현성을 비롯한 10여 개의 성을 단숨에 빼앗아갔지만, 아신의 숙부인 진사왕은 담덕의 용병술이 뛰어나다는 말을 듣고 나가 막지 못했다. 심지어 천혜의 요새라 불리던 관미성을 20여 일간 포위해 함락시킬 동안에도 이를 저지하지 못했다.

얼마 뒤, 사냥을 나간 진사왕은 사냥터에서 열흘간 돌아오지 않다가 그곳에서 숨을 거두고 조카인 아신이 즉위한다. 이듬해, 아신은 장인(혹은 외삼촌)인 '진무'를 좌장으로 임명한다. 좌장은 지금의 합참의장에 해당하는 직책으로, 군의 실권을 쥐고 있는 총사령관의 자리다. 모두의 치를 떨게 한 스토리 30장에서 진무가 사령관으로 나오는 것도 이유가 있었다.

▲ 괜히 진무가 스토리 30장의 사령관인 것이 아니다!


마초남? 노블레스 오블리주!

진무의 성씨인 '진씨'에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진씨는 백제를 건국 초기에 처음 등장해 아신의 증조 할아버지인 근초고왕 치세부터 대대로 왕비를 배출하였고, 내신좌평과 조정좌평(지금의 국무총리와 법무부 장관) 등 요직을 차지하였다. 그러니까 진무는 명문 귀족 집안이라는 뜻이다. 스토리 12장에서 부루가 "손자들 재롱이나 볼 것이지."라고 말하는데, 진무가 아신의 장인이니 진무의 외손자는 백제의 왕자다.

진무는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삼국사기에는 "침착하고 굳세며 지략이 많아 당시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고구려를 공격했을 때도 병사들보다 앞장서서 날아오는 화살과 돌을 무릅쓰면서 싸웠다고 한다. 그야말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몸소 행한 셈이다.

진무의 인품에 대한 기록은 게임에 잘 반영되어 있다. 스토리 31장에서는 성난 사자처럼 몰아붙이는 고구려군을 맞아 힘겹게 싸우는 백제군의 모습이 나타난다. 31장의 도입부에서는 고구려군과 제일 가까운 곳에서 도끼를 휘두르는 진무의 모습이 나오는데, 이를 통해 누구보다 앞장서서 싸우는 역사 속의 진무를 담았다. 그리고 절망적인 발언을 하는 해민을 다그치며 용기를 북돋우는 모습에서 그의 침착함과 굳건함까지 나타냈다.

▲ 그 손자들 중에는 백제의 왕자도 포함된다.

▲ 불리한 상황 속에서도 독려하는 모습은 역사 속 평가를 그대로 옮겨왔다


진무의 영토 수복, 관미성을 되찾아라!

아신이 진무에게 내린 첫 임무는 빼앗긴 영토를 수복하는 것이었다. 아신은 진무에게 1만의 병사를 주며 관미성을 되찾을 것을 지시, 진무는 즉시 관미성에 공세를 가했다. 하지만 예로부터 수비를 특기로 하는 고구려군인 데다가, 목표는 사면이 가파르고 바닷물이 에워싸고 있는 천혜의 요새인 관미성. 진무는 관미성을 함락 직전까지 몰고 갔지만, 군량 보급이 이어지지 않아 퇴각하게 된다. 고구려도 여기에 위협을 느끼고 백제와의 국경 지역에 7개의 성을 새로 쌓았다.

백제군의 관미성 탈환 시도는 스토리 21장에서 다뤄진다. 21장에서 유저는 고구려군이 되어 관미성을 지키게 된다. 1만이라는 적지 않은 병력과 관미성 탈환 직전까지 몰고 갔다는 기록처럼, 백제군은 대규모 파상공세로 유저를 공격한다. 하지만 보급 문제로 퇴각했다는 기록도 충실히 따르는데, 일정 시간 동안 공격을 버텨내면 백제군은 스스로 퇴각한다.

▲ 역사에서나 게임에서나 진무의 관미성 탈환은 실패로 돌아갔다.


담덕의 위례성 공격, 진무의 씁쓸한 뒤안길

하지만 진무의 활약에도 제동이 걸렸다. 그를 막아선 것은 다름 아닌 광개토태왕, 담덕이었다. 아신은 다시 한 번 진무에게 고구려 공격을 명했고, 고구려는 담덕이 직접 7천의 군사를 이끌고 나와 맞서 싸운다. 진무와 담덕은 패수에서 맞붙었고, 진무는 크게 패한다. 이때 죽은 백제 군사가 8천이나 되는데, 담덕이 이끈 고구려군 7천보다 훨씬 많은 수다.

계속된 백제의 공격은 담덕을 크게 자극했다. 담덕은 직접 군을 이끌고 백제를 공격해 위례성을 포위하였다. 이 부분을 다룬 스토리 35장에서는 간략히 표현했지만, 광개토대왕릉비에는 아신이 직접 무릎을 꿇고 고구려의 영원한 노객(奴客, 노예 같은 신하)이 되겠다고 했다고 쓰여 있다. 아신이 고구려가 점령한 백제 땅의 지배권을 인정하며 진무의 영토 회복 시도는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백제가 고구려에 항복한 이후, 아신은 진무를 병관좌평(지금의 국방부 장관)으로 임명한다. 좌평은 백제 관직 중 가장 높은 품계로, 명실상부 군의 최고 자리에 오른 것이다. 하지만 역사에서 기록하는 진무의 이름은 이것이 마지막이다. 이후 백제는 지속적으로 신라와 고구려를 공격했지만 진무의 이름은 나타나지 않는다. 진무가 일선에서 물러난 것으로 보인다.

스토리에서도 진무의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다. 35장에서 위례성이 함락된 이후, 진무는 단 두 번만 등장한다. 그나마 38장에서도 고구려의 유인책에 속아 넘어가는 등 지금까지와는 다른 모습을 보인다. 42장에서도 보급을 위해 나서는 아신에게 최전선을 위임받는 모습으로 나타나지만, 유저들의 관심은 마지막에 등장하는 신라 장수 공추가 독차지한다.

▲ 역사나 게임이나, 위례성 함락 이후에는 진무의 대우가 좋지 않다


진무, 다시 한 번 백제군의 선봉으로!

역사 속의 진무는 힘 있는 귀족 이자, 동시에 고구려에 빼앗긴 영토를 되찾는 막중한 임무를 부여받은 총사령관이었다. 딸을 왕비로 둔 고귀한 위치에 있으면서도 날아오는 화살을 무릅쓰고 누구보다 앞장서서 싸우는 선봉장으로 많은 사람의 존경을 받았다. 비록 담덕의 뛰어난 용병술로 인해 그에게 패배하긴 했지만, 천혜의 요새 관미성을 함락 직전까지 몰고 가 고구려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던 뛰어난 장군이었다.

모바일 게임 '광개토태왕'은 많은 부분이 허구다. 하지만 역사를 바탕으로 한 만큼 역사 속 인물과 사건을 충실히 표현하고자 했다. 그 결과, 삼국사기에 손에 꼽을 정도로 등장하는 진무에 대해서도 세밀히 잘 표현되었다. 스토리 내용을 통해 사령관으로서의 진무를, 기품있게 기른 수염에서 고위 귀족으로서의 진무를, 강인하지만 상처투성이인 외모로 선봉장으로서의 진무를 표현했다. 게임 내에서의 모습도 적진을 와해시키는 마법 '나선풍'을 통해 적의 화살과 돌을 무릅쓰고 앞장서서 공격한 선봉장다운 면모를 성공적으로 재현했다.

진무는 자신이 활약한 지 700여 년 뒤에 편찬된 삼국사기에 이름을 남겼지만, 아쉽게도 당대의 영웅호걸인 광개토태왕에 가려 사람들의 기억에 남지 못했다. 그럼에도 1600여 년이 지난 지금, 진무는 역사의 한 줄에서 벗어나 우리의 휴대폰 속 전장에서 다시 한 번 백제군의 선봉에 서서 도끼를 휘두르고 있다.

▲ 오늘도 진무는 백제군의 선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