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는 딱히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아무런 대사도 내뱉지 않는 주인공과 약간 엇나간듯한 음울한 세계. 그리고 퍼즐을 겸비한 플랫포머. '림보' 이후 비슷한 콘셉트로 등장했다가 사라지는 게임 중 하나라고 생각했거든요. 왜 롤이 잘되면서 한동안 국내서 MOBA 장르가 판을 쳤고 '포케몬 GO'의 인기와 함께 특별한 IP는 생각도 않고 그저 AR 게임에 주목하는 것처럼요.

하지만 역시 게임쇼는 다르더군요. 독특한 분위기의 부스, 그리고 노란 비옷를 입은 식스의 코스프레 공연은 정말 매력적이었습니다. 순간 영상이나 스크린샷으로 평가하던 제가 부끄러워질 정도였죠. 결국, 아침 일찍 짜놓고 나온 계획표를 다 무시하고 뭐에 홀린 듯 대기 시간 1시간이 적힌 대기 줄에 몸을 옮겼습니다.

▲ 비옷을 입은 식스가 작은 구멍으로 빠져나와 요리사 몰래 숨어다니는 모습을 보여준 부스 이벤트.

게임을 처음 시작하면 아무런 설명 없이 방 안에 떨어진 주인공 식스가 나타납니다. 모든 것이 커다란 거인의 세계에 떨어진 건지, 아니면 주인공 식스가 난쟁이인 것인지 방과 방 안의 물건들 모두 거대한 세상입니다. 처음에 독일어로 된 튜토리얼 문구가 표시됩니다. 뭐 따로 멈춰지지는 않고 'R2키를 누르면 물건을 집을 수 있다.', 'L2키를 누르면 몸을 숙여 지나갈 수 있다.'같은 간단한 내용입니다.

우선을 방안을 나가는 게 목표인 것 같은데 식스의 점프력으로는 문고리가 잡히지 않았습니다. 대신 근처에 서류 가방을 R2키로 잡고 질질 끌고 온 후 그 위에서 뛰어올라 문을 열어야 했습니다. 이런 부분은 서두에 언급한 '림보'와 크게 달라 보이지 않죠?

첫 체험이니만큼 방문을 열었지만 일단 바로 나가지 않고 방안을 이리저리 돌아다녔습니다. 기본적인 조작이나 주인공의 능력을 확인하려고 했던 건데요. 열린 서랍장을 한칸 한칸 올라가 천장 가까이 까지 올라갈 수 있고 너무 높은 곳에서 떨어지면 죽지만 웬만큼의 높이에서는 떨어져도 잠시 휘청거릴 뿐 곧 움직일 수 있었습니다.

식스의 움직임은 굉장히 자연스러웠는데요. 대신 입력한 정보에 즉각 반영하는 빠릿빠릿한 피드백은 없었습니다. 약간은 예측하고 움직여야 할 것 같았습니다.


방문을 나가면서 본격적인 퍼즐 액션이 시작됐습니다. 게임의 핵심 요소인 퍼즐은 기본적으로 조작 실력보다는 생각을 많이 하는 사람이 유리한 구조인데요. 물건을 들어 발판처럼 사용해 보이지 않던 길을 가거나 다음 퍼즐의 힌트를 얻는 식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너무 많이 생각해서 그냥 지나가면 될 길도 괜히 이 물건 저물건 집어가며 플레이해 조금 뒤처져 버리기도 했습니다. 다행히 옆자리에 있던 여성이 게임을 매우 잘해 흘긋흘긋 곁눈질하며 게임을 진행해나갈 수 있었죠.

중간쯤 진행하니 부스 앞에서 보았던 요리사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당연하게도 이 요리사의 눈을 피해야 다음 방으로 도망갈 수 있었는데요. 주인공의 몇 배나 되는 덩치에 묘한 표정과 다 상해버린 듯한 퉁퉁한 외모가 기괴함을 더했습니다. '딱 봐도 얜 피해야 해' 하는 스파이더 센스가 발동했죠.

어떻게 진행해야 할까 고민하다 요리에 한창인 듯 한눈을 팔고 있을 때 파파밧!하고 달리기 기능을 사용해 도망쳤습니다. 요리사의 덩치가 커서 테이블 밑으로 쉽게 따라오지 못할 것 같아 그 밑으로 다닌 게 주효했습니다. 위압적인 모습에 비해 비교적 쉽게 통과해 어깨를 으쓱했더랬죠.

그런데 알고 보니 저는 정말 운 좋게 한 번의 시도로 요리사의 추적을 따돌린 거더군요. 빼어난 실력으로 퍼즐 해결에 큰 도움을 줬던 옆자리 유저는 이곳에서만 5번은 죽은 것 같았습니다. 결국, 부스에 있는 스태프의 도움을 받아 깼으니 쉽지 않은 도전이었던 것 같습니다.

방을 나간 후에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2개의 층을 오가며 풀어야 하는 마지막 퍼즐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사실 화면이 아예 바뀌다 보니 두 맵을 오가며 깨야 한다고 자각하기 어려웠는데요. 대부분의 퍼즐이 이렇게 심리의 허점을 이용하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퍼즐 디자인은 훌륭하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퍼즐은 간단한데 손이 따라가지 못해 클리어하지 못하는 것처럼 짜증 나는 게임은 또 없으니까요.


퍼즐을 깬 후에는 신발 소각장처럼 생긴 큰 홀 안에 떨어집니다. 그리고 이곳을 헤쳐나가다가 정체 모를 괴물의 습격과 함께 시연이 종료됩니다.

시연이 끝나고 기억에 남는 건 노이즈가 자글자글 남아있는 무채색에 가까운 화면. 그리고 거대한 세계를 홀로 돌아다니는 식스의 노란색 비옷이었습니다. 검은색 일변도의 색조합은 아니고 군데군데 화사한 색감이 더해지며 이질적인 분위기를 연출했거든요. 친숙하지만 기괴한 세계만큼 무서운 것은 찾아보기 힘들어요.

아, 물론 그 요리사의 모습도 기억이 납니다. 사실 외부 소리가 워낙 시끄러워 헤드셋을 착용하고도 배경음악이나 효과음을 자세히 듣기 어려웠는데요. 괴상한 소리와 함께 흥얼거리고 있는 요리사의 소리는 주변 소음을 없애고 혼자 게임속에 남아있는 듯한 오싹한 기분을 느끼게 했어요.

한 가지 아쉬웠던 건 성인용 게임이 아니라 그런지 요리사에게 잡혔거나 사망하는 장면은 따로 없이 바로 게임을 다시 시작하게 하였습니다. 뭐 림보처럼 지나치게 잔인한 표현을 드러낼 필요는 없지만, 적어도 요리사에게 잡힐 때쯤에 '어 죽었네요.'하는 연출은 촌스러운 느낌이 들었거든요.


그래도 이 정도 단점은 고개를 끄덕이며 봐줄 만할 정도로 분위기, 연출 모두 빼어난 게임임에는 확실합니다. 뭐 '리틀빅플래닛', '테어어웨이: 언폴디드' 등 아기자기한 캐릭터를 이용하는데 있어서는 최고 중의 하나인 타시어 스튜디오이니 믿을 만 하겠죠. 평단의 평가도 좋습니다. 이번 게임스컴 어워드2016에서 최고의 인디 게임상을 받았으니까요.

뭐 요는 이렇습니다. 아직은 완성도를 논할 단계가 아니기는 하지만 "PS4, Xbox One, PC 버전의 게임이 한국어화를 거처 출시되는 만큼 충분히 기대해볼 만하다." 그리고 "게임은 영상과 스크린샷만으로는 절대 제대로 판단할 수 없다."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