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블 스파이더맨은 아캄 트릴로지와 함께 슈퍼 히어로 게임의 역사를 바꾼 게임으로 꼽힌다. 엄청난 판매량과 함께 코믹스 속 슈퍼 히어로만이 보여줄 수 있는 모습을 게임플레이에 담아내며 많은 팬의 사랑을 받았다. 그리고 이러한 성과는 개발사 인섬니악 게임즈를 플레이스테이션 스튜디오를 대표하는 게임사로 만드는 데 큰 공을 세웠다.

2023년 10월 출시된 후속작 마블 스파이더맨2는 전작의 세계를 더욱 확대하면서 다양한 캐릭터, 훌륭한 게임플레이로 다시 한 번 높은 평가를 받았다. 특히 게임 속 오픈 월드는 전작의 도전적인 요소를 한층 강화하며 불가능할 것 같았던 진화를 이뤘다

지난 9년 동안 마블 스파이더맨의 개발 여정을 함께한 조슈 베나비데즈 게임 디자인 디렉터는 확장된 오픈 월드 구현을 위한 도전과 방법을 GDC2024를 통해 공유했다.


마블 스파이더맨2가 그린 세계는 전작보다 훨씬 컸다. 그리고 이는 오픈 월드의 핵심 중 하나인 규모의 도전으로 이어졌다.

오픈 월드의 규모는 단순히 숫자를 말하는 게 아니다. 크기는 게임에 따라서 상대적으로 결정되기 때문이다. 베나비데즈 디렉터는 이것을 크다고, 혹은 작다고 말할 수도 있다며 1리터 정도 크기의 물병을 들어 올렸다. 하지만 곧이어 5리터 정도의 커다란 물병을 같이 들어 보이며 이제 1리터 물병은 작은 게 됐다며 오픈 월드의 규모를 이해시켰다.

이번 작품이 전작과 비교해 훨씬 더 커진 오픈 월드를 그리지만, 여전히 소규모의 콘텐츠를 소화하기도 한다.

전작보다 더욱 다양하고, 빠른 이동수단의 도입은 도시를 더욱 작게 만들었다. 콘텐츠의 분배도 이에 맞게 배치되어야 한다. 하지만 반대로 작은 드론인 스파이더 봇을 활용한 액션은 매우 작은 스파이더 봇의 크기에 맞춰 작은 공간마저도 크게 그려진다.

실제로도 베나비데스 디렉터는 히어로 스케일, 그리고 도시 스케일을 따로 구분해 게임 디자인을 고민했다고 전했다.


이러한 규모의 계산은 곧 도시 안에서 어떻게 미션과 퀘스트를 찾아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졌다.

기본적으로 전작에서는 타워 맵 시스템이 방편으로 쓰였다. 기본적으로 맵은 잠겨져있고 타워의 주파수 이벤트를 통해 지역을 해금하는 방식이었다. 그럼 해당 지역의 모든 게임 플레이 내용이 공개됐다.

가려진 지도를 오픈하기 위해 타워에 도달하는 것. 그리고 다음 타워까지 가는 과정. 그 사이를 탐험하도록 만드는 게 타워 시스템의 핵심 목표였다. 이러한 발상 자체는 좋았다. 하지만 실제로는 게임 플레이 시간 대부분을 그저 타워 잠금을 해제하는 데에만 썼다. 그 사이사이 존재하는 콘텐츠를 소비하지는 않았다.


반대로 스파이더맨2에서는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처음부터 모든 지도가 완전히 드러나는 방식을 선택했다. 하지만 여기에도 문제가 있었다. 플레이어에게 처음부터 너무 많은 선택지가 생기니 정작 무엇을 선택할지 모르게 된 것이다.

결국에는 자연스럽게 세계를 탐험하기보다는 지도를 열고, 그저 목적지를 네비게이셔으로 찍어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데 그쳤다. 거의 두 배 크기로 확장된 세계가 존재했지만, 플레이어들이 탐험할 때 그 세상을 들여다보지 않는 것이었다.

더욱 효율적으로 개선된 빠른 이동 시스템도 그런 분위기를 부추겼다. 사실 강화된 빠른 이동 시스템은 게임의 불필요한 플레이를 줄이고, 플레이어에게 선택지를 주는 시스템이었다. 여기에 로딩 시간을 줄이고, 날거나 웹스윙하며 보다 자연스럽게 빠른 이동 화면이 전개되는 방식은 분명 더욱 효과적으로 맵을 활용하도록 만들었다.


빠른 이동 시스템 자체가 문제가 있는 건 아니다. 모든 플레이어가 맵 곳곳에 있는 콘텐츠를 모두 찾아다니지도 않는다. 그렇다면 빠른 이동 시스템이 있음에도 충분히 세상에 뛰어들고, 탐험하고 싶은 느낌을 전달하는 데 집중하는 것이 플레이의 다양성을 살리는 길이었다.

기본적으로는 빠른 이동 기능이 잠금되어 있는 구간을 만들고, 탐험 요소들을 충분히 소개하는 형태로 게임의 방향을 잡아나갔다.

이를 위해 월드를 탐험하고, 새로운 것을 발견하며, 직접 참여할 수 있는 콘텐츠로 플레이 역학을 개선하는 게 큰 틀이었다.



위 사진처럼 케이크를 전달해야 한다는 임무를 받는다고 가정해보자. 우선 빵집에 들러 케이크를 챙기고, 케이크를 배달하는 루트가 노란색이다. 하지만 플레이어가 빵집, 커피숍, 공원의 위치를 아직 알지 못하는 단계라면 하늘색 루트들을 직접 돌아다니며 빵집을 찾아다니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탐험 방식의 구성에서 플레이어는 더 많이 탐색하고, 또 목표인 빵집을 발견해도 커피샵을 들러 커피를 사고, 공원에 들려 잠시 다른 행동을 취하기도 한다.

플레이어에게 무언가 탐험할 여지를 주고, 무언가를 놓치지 않도록 명확한 무언가를 전달하는 데 초점을 맞추는 행위다. 실제로 이러한 행동은 플레이어들의 실제 게임 역학을 살펴보고 확인할 수 있었다.

플레이어가 오픈 월드에서 어떤 방식으로 반복하는지, 그것을 안내하고, 행위를 유도하는 것이 개발진의 디자인 방향이 됐다.




다만, 실제로 발견한 무언가를 충분히 플레이하거나 발견할 가치가 있는 것으로 만드는 것 역시 중요하다. 그렇지 않다면 플레이어들이 탐험에 나설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앞서 케이크를 예시로 들었듯, 플레이어가 먹고 싶은 케이크를 준비해야 하는 셈이다.

탐험은 재미있어야 한다. 그럼 무엇이 재미있는 탐험을 만드는 것일까?

그것은 아직 발견되지 않은 장소가 주는 미지로의 탐험이 첫 번째였다. 이미 무엇인지 알고 있으면 그것은 그 자체로 탐험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목적이다. 목적 없이 탐험하지 않으면 그것은 탐험이 아니라 그저 방황처럼 느껴진다.

베나비데즈 디렉터는 자신의 이러한 목표가 구현된 게임들로 데스 스트랜딩, 고스트 오브 스시마 등을 꼽았다.



또 하나는 발견이 주는 재미 역시 주고자 했다. 이는 같은 플레이스테이션 스튜디오인 게릴라 게임즈의 호라이즌 포비든 웨스트의 예를 함께 들었다. 호라이즌 포비든 웨스트에서 플레이어가 새로운 지역에 도달하면 어떤 지역인지 이를 오른 쪽에 문구로 직접 띄우고, 플레이어에게 새로운 지역을 발견했음을 알린다.

마블 스파이더맨2에서도 팟캐스트로 등장하는 JJJ 위에 표시되는 팝업 메뉴처럼 다양한 방식으로 새로운 이벤트 지역 발견을 알리고자 했다.


이처럼 발견은 플레이어에게 명확한 상황을 인식하게 만든다. 다만, 그것을 어떻게 더 잘 식별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은 필요했다. 이번 작품에서는 웨이브포인트를 2D와 3D 방식으로 혼합해 눈에 더 잘 띄도록 했다.

발견 요소인 수집품을 어떻게 배치하느냐에 대한 고민도 있었다. 수집품을 찾는 것은 성취감이라는 재미 요소를 전하는 시스템이다. 수집품은 목표와 목표의 이동, 그 사이 휴식 개념으로 잠깐씩 찾아 나갈때 큰 재미를 주지만, 20분 동안 한 지역의 수집품을 찾는 그라인딩 개념으로 접근하면 그 재미가 크게 떨어진다.

인섬니악은 플레이어 성향을 분석하며 후자의 방식으로 수집품을 찾는 플레이어를 많이 보았다.

게임 플레이를 접하면서 자연스럽게 수집품을 찾고 무언가를 발견해나가는 것. 이것을 위한 방편이 인센티브와 모멘텀을 통한 참여로 이어진다.


첫 번째 게임에서는 보상의 제공을 명확한 게임플레이 클리어로 제공했다. 범죄나 맵 위에 있는 마크를 클리어할 때마다 해당 지역에 해당하는 토큰을 제공했다. 이것은 게임 플레이를 유도하는 충분한 효과를 냈다. 플레이어들은 스파이더맨의 장비, 능력을 업그레이드 하기 위해서는 토큰을 주는 미션이나 임무를 수행했다.

하지만 이것은 플레이어의 선택이라는 측면, 그리고 개발이라는 측면 모두에서 가능성을 제한했다. 만약 플레이어가 업그레이드에 필요한 베이스 토큰을 얻기 위해서는 그것을 제공하는 콘텐츠를 클리어하는 것 외에는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마일즈 모랄레스에서는 여러 유형의 통화를 줄이고 공유 통화를 제공해 플레이어에게 선택의 여지를 줬다.


하지만 통화 종류를 줄였지만, 여전히 플레이어는 일부 게임 플레이를 무시할 수 있었고, 콘텐츠의 편중 역시 달라지지 않았다.

마블 스파이더맨2에서는 이러한 보상 체제를 인센티브 형태로 바꾸었다. 특정 지역에서 다양한 콘텐츠를 플레이하면 진척도에 따라 보상을 주는 식이다. 이는 여러 콘텐츠를 개별적인 옵션이 아니라, 해당 지역의 게임 플레이 안에 포함된 묶인 요소로 만들었다.

특히 단순히 토큰 같은 콘텐츠 외에도 게임 플레이의 편의, 혹은 확장을 더하는 요소를 제공하기도 한다. 앞서 설명한 빠른 이동 역시 진척도를 통한 보상으로 잠금 해제되는 식이다.

이러한 보상 개념은 플레이어의 참여도를 높였을 뿐만 아니라 더 나은 모멘텀 구축에 도움이 됐다.


탐험하고, 발견하고 참여하는 것. 베나비데즈 디렉터는 이러한 방향의 개선이 거창한 해결책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여러 솔루션이 겹치고, 그걸 겹겹이 쌓아나가며 더 나은 방식으로 게임을 변화시킨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는 단순히 강연에서 설명한 게임 디자인은 물론 아트, 특수효과, 오디오, 조명, 애니메이션, 게임플레이, 프로그래밍, UI 등 모든 부분에서 동일하게 이루어진다. 그는 결국 좋은 게임은 더 나은 게임을 만들고자 하는 팀이 모두 함께 해야 달성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지도를 들여다보는 것을 멈추고, HUD를 너무 많이 보지 말고 마블 스파이더맨2의 세계를 자유롭게 탐험했으면 좋겠다며 강연을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