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부터 19일까지 4일간의 시간은 국내 도타 2 팬들에게 있어 기념비적인 날일 것이다. 세계 무대에서 약체로 평가받던 한국 도타 2 팀인 MVP 피닉스가 동남아 상위권 팀들을 연달아 격파하며 디 인터네셔널 2014(이하 TI4) 본선 무대가 열리는 미국 시애틀에 진출했기 때문이다.

비록 최종 결승전에서 애로우 게이밍에게 패하며 본선 최종 진출전이란 관문이 남았지만, 그들이 이룬 성적은 팬들을 열광시키기에 충분했다. MVP 피닉스의 시애틀 진출을 놓고 한 팬은 "한국 축구의 월드컵 16강 진출과 비교할 수 있는 성과다"며 기뻐했다.

세계 최정상 급 팀들에게만 자격이 주어지는 TI4 무대에 MVP 피닉스가 오르는 것은 여러모로 의미가 깊다. 국내 서비스 시작 이후 채 1년도 되지 않아 일궈낸 성과는 한국 도타 2의 무궁무진한 성장 가능성을 보여 주기에 충분했다.

해외 중계진과 매체들은 조별 경기에서 6연승을 달린 MVP 피닉스에 주목했고, e스포츠 종주국 대한민국의 저력을 되새길 수밖에 없었다. 해외 팬들은 스타크래프트와 리그오브레전드에 이어 중국과 유럽의 전유물이었던 도타 2 대회마저도 한국이 휩쓰는 것은 아닌지 농담 반 진담 반 우려의 목소리를 던지기도 했다.

한국 도타 2 팀들이 처음부터 화려한 출발을 한 것은 아니다. 지난해 말 도타2 슈퍼매치에서 해외 팀들을 상대한 한국 팀들의 성적은 초라하기 그지 없었다. 한국 팀들은 거저 1승을 내어주는 쉼터같은 존재밖에 되지 않았다. 하지만 압도적인 패배를 당했던 한국 선수들은 패배를 거듭하면서도 자신들만의 칼날을 갈았다.

▲ 도타 2 슈퍼매치에서 한국 팀은 비등한 경기조차 이끌어내지 못했다

한국 선수들은 국내 도타 2 무대에 출전한 외국팀인 제퍼에게 전승을 허용하기도 했다. 하지만 KDL 시즌 2에서는 상황이 달라졌다. 또한, 동남아 2티어 급 팀들에게도 승리를 장담하기 어려웠던 한국 팀들이 승리를 따내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오는 26일 펼쳐질 ESL ONE 프랑크푸르트 최종 예선에는 MVP 피닉스와 포커페이스 등 2팀이 출전할 예정이기도 하다.

지난 4월, 우크라이나에서 열린 스타래더 본선에 진출한 MVP 피닉스는 전패를 기록했지만, 세계 최정상급 팀들을 상대로 만만치 않은 경기력을 보여주며 인상을 남겼다. 그리고 그 때의 경험을 타산지석삼아 결국 자신들의 힘으로 TI4 본선 무대가 열리는 시애틀로 향하게 됐다.

MVP 피닉스의 TI4 진출은 국내 비인기 종목의 성장에도 적지 않은 기여를 할 것으로 보인다. 지금껏 국내 e스포츠는 특정 종목에만 대부분의 인기와 지원이 집중되어 왔다. 인기 종목에 속한 선수들이 뜨거운 관심 속에 세계 무대를 휩쓸 때, 또 다른 세계 무대에서 성적을 거둔 비인기 종목 선수들은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대회 규모면에서도 차이가 컸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TI4의 경우는 사정이 다르다. 세계적으로 도타2는 최상위권 인기 종목이며, TI4의 상금은 지난 해 자신들이 갱신했던 e스포츠 역대 최대 상금 규모를 훌쩍 넘은 60억 원을 넘어섰다. 이런 TI4 현장에 한국 최초로 첫 발을 딛게 될 MVP 피닉스에게 많은 관심이 쏠릴 수 밖에 없다. 도타 2 무대에 한국을 대표하는 첫 스타 팀이 탄생한 것이다.

▲ 한국시각 20일 600만 달러를 돌파한 TI4 총 상금

스포츠 종목에 있어서 스타의 존재는 매우 중요하다. 누구도 관심을 두지 않았던 피겨 스케이팅을 국민 스포츠로 만든 것은 김연아의 존재 때문이며, 소치 올림픽에서 스피드 스케이팅이 금메달 기대 종목으로 떠오른 것은 4년전 무관심 속에 금메달을 일궈 낸 모태범과 이상화의 노력 때문이다. e스포츠의 비인기 종목이었던 워크래프트 3 역시 장재호라는 걸출한 스타의 탄생과 함께 많은 관심을 얻을 수 있었다.

결국, 이번 MVP 피닉스의 TI4 진출은 외적으론 한국 도타의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선봉 역할이며, 동시에 오랜 골치거리인 국내 e스포츠 종목 다변화에도 새로운 선택지를 제시한 것이다. 시애틀의 '키 아레나'에서 작지만 큰 첫걸음을 내딛게 된 MVP 피닉스가 승패와 상관없이 귀중한 경험을 쌓고 오기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