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전세계 스타 개발자들의 대거 참여로 더욱 빛났던 KGC 2012 ]


코엑스 컨퍼런스 홀에서 개최된 'KGC 2012'는 해외 유명개발자들의 대거 참여로 한층 환한 분위기를 연출했습니다. 해외는 물론 국내에서도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는 인디게임 제왕 '마인크래프트' 개발자부터 시작해, '콜 오브 듀티 : 모던워페어3', '배틀필드3' 등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개발자들이 줄지어 참가했죠. 뭐, 자리를 빛냈다는 표현을 빚대자면, 그 밝기의 수준부터 다르다는 말이 전혀 부족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행사 셋째 날, 최후의 키노트를 장식했던 이 분의 명성 역시 앞서 소개한 개발자들에 비해 전혀 부족함이 없습니다. 아니 더 유명할 수도 있죠. 그 날 행사장은 그의 강연을 듣기 위해 참가한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고, 모두 숨죽이며 그의 입을 주시했습니다.

소개가 늦었네요. 명작 어드벤처 게임, '언차티드' 시리즈의 미적 아름다움을 우주까지 끌어올린 '롭 러펠(Robh Ruppel) 아트 총괄 디렉터가 오늘의 주인공입니다.

그는 키노트에 들어가기 전부터 모두의 기대를 듬뿍 받았습니다. 누가 뭐래도 출시 당시 세계 최고의 게임 그래픽이라 표현해도 부족하지 않았던 타이틀의 아트 디렉터니까요. 분명 무엇인가 다른, 그만의 강연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 생각하며 눈을 빛냈죠.

그런데, 어라?

[ ▲ 아, 미대 전공 시절 들었던 수업보다도 어려웠습니다 ]


모르겠습니다! 강연에 전혀 게임 관련 내용이 없었어요.

물론, 거시적으로 보면 게임 아트와 깊은 연관성을 가진 것은 사실이나 직관적이진 않았다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영화 사진과 서양 미술 작품을 중심으로 그만의 심미안을 풀어 설명한 것은 분명 유용했으나, 이 강연은 마치 기자가 미대에 재학하던 시절 주임교수님 수업 수준의 높은 난이도를 자랑했죠. 꼭꼭 씹어 먹을만한 음식인 것은 틀림없는데, 이가 성하지 못하니 이를 어찌할까요.

예상치 못한 전개에 관계자들과 취재를 나선 기자들 대부분 당황했습니다. '언차티드'의 스크린샷은 결국 강연이 끝날 때까지 등장하지 않았죠. 기억나는 것은 영화 '블레이드 러너'가 얼마나 미적으로 뛰어난 업적을 세웠는지 정도랄까요?

하지만 이대로 그를 본국으로 돌려보낼 수는 없었습니다. 아니, 너무 아까웠다고 표현하는 게 정확할 것 같네요. 강연 속에 숨겨진 게임과의 연결고리를 확실하게 잡고 싶었고, 이를 알기 쉽게 풀어내고 싶었습니다. 문제는 이러한 배경 지식이 충분히 뒷받침 되어있지 못한 상태라 혼자만의 해석으로는 자칫 왜곡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머리 속에는 불안감과 아쉬움, 그리고 복잡함이 점점 커졌고, 이를 해소하기 위해선 최후의 수단밖에 없었습니다.

그에게 인터뷰를 요청했습니다. 그에게 좀 더 가까이 접근, 알기 쉽게 듣고 싶었습니다. 다소 갑작스러웠지만 롭 러펠 아트 디렉터는 이를 흔쾌히 수락했고, 결국 그가 묵고 있는 인터컨티넨탈 호텔 2층 접견실에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하마터면 놓칠 뻔 했던 이야기. 여기에 키노트 강연의 난이도로 인해 가려지고 말았던 그와 게임의 관계, 그리고 롭 러펠 아트 디렉터가 게임을 바라보는 특별한 시선을 담았습니다.


[ ▲ 너티독의 '롭 러펠' 아트 총괄 디렉터 ]


KGC2012 강연을 위해 한국에 처음 방문하셨는데, 서울에 대한 첫인상이 어떠셨나요?

- 굉장히 마음에 들었고, 특히 도시의 복잡함과 밀집도에 많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평소 자주 오는 나라가 아니니만큼 서울의 여러 명소를 둘러보며 영감을 수집하려 노력했는데, 그 중 인상깊었던 풍경은 경복궁과 청와대 뒤에 위치한 인왕산이었죠. 굳이 표현하자면, 차기작을 구상할 때 한 번 접목해 보고 싶을 정도로 아름다웠습니다.

그리고 서울 야경을 보기 위해 남산타워(현재 명칭은 'N서울타워')도 가 봤는데, 위에서 보니 서울만의 밀집성이 더 극대화 되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저는 세계 여러 대도시를 가 봤지만 이정도로 빼곡한 진풍경은 본 적이 없어요.


게임은 영화나 사진과는 달리 플레이어가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 점이 특징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자칫 아트 디렉터의 예술관을 유저들에게 제대로 전달하지 못할 우려도 포함하는데요. 이를 대비하기 위한 장치라면 어떤 게 있을까요?

- 게임 내 배경이나 화면을 구성하는 것은 건축가가 건물을 설계하는 것과 마찬가지라 생각합니다. 전체적으로 아름답게 꾸며야 하지만, 뚜렷한 특징을 지녀야 하며 어느 부분에는 임펙트도 줘야 하죠. 이렇게 해야 인물과 건물의 배치에 따라 더욱 멋진 장면이 연출되기 때문입니다. 파리의 에펠탑이 그 좋은 예입니다.

저희도 그러한 원리를 적용했습니다. 게임 전반적으로 멋진 배경을 제작하되, 특히 멋진 부분에서는 섬세한 진행 루트를 담아 놓죠. 그렇게 하면 유저들은 개발자가 보여주고 싶었던 부분을 완벽하게 감상하고 '이 게임 정말 멋진데!'라고 느끼게 됩니다.



KGC 2012 키노트 강연에서 많은 사진 및 미술작품들을 예시로 사용했습니다. 그 사진들은 전체를 아우르는 일종의 색감이 있었는데요. 예를 들어 어두운 파란색이라던가, 연한 초록색이 들어간 노란색 느낌 말이죠.


하지만, 언차티드의 경우, 이러한 느낌 톤이 있다기보다는 전체적으로 쨍한 느낌이면서 총천연색이 어우러져 있습니다. 혹시 게임을 만들 때 영향을 준 예술 작가나 작품이 있는지요?


- 아, 좋은 질문입니다. 저희는 게임을 만들 때 한 명의 작가에게 영향을 받지는 않고, 최대한 다양한 부분을 적용하려 노력하는데요. 이는 자칫 게임이 한 가지 색깔만 보여주게 되어 독창성을 흐리게 만드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입니다.

언차티드3의 초반 챕터에 등장하는 런던을 예로 들어 보겠습니다. 우리가 볼 수 있는 일반적인 도시 느낌은 차가운 푸른 빛입니다. 영화나, 게임, 그리고 사진 등에서 이러한 배경 색을 많이 사용했기 때문이죠. 하지만 우리 게임에 등장하는 런던은 오렌지 빛을 띄는 노란 색 배경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새로운 느낌을 주기 위해서죠. 이는 저희 아트 팀이 기존의 틀에 묶여있지 않고, 신선한 느낌을 주기 위해 선택한 '모험'이었습니다.


키노트 예시 사진들이 대체로 서양 작품들이었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 우선 저 스스로 서양인이라는 것이 첫 째, 그리고 공부하는 환경 역시 서양 쪽이었다는 것이 두번째 이유입니다. 하지만 그 이유만으로는 조금 부족하고, 좀 더 정확한 답을 준다면 미술이나 영화산업의 발전사가 동양보다는 서양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있기 때문이라 말하겠습니다. 서양화를 제외하고 미술사를 논하기 어려운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물론, 현재 영화업계에서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감독들이 선전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나, 주도적인 단계는 아닙니다. 일본 자동차가 품질 면에서 뛰어난 것은 사실이나, 전체 산업 규모나 정통성을 보면 독일이 갖고 있는 것과 같다고 보시면 됩니다.



혹시 언차티드 몇 편 때부터 개발에 참여하셨는지 알려주실 수 있나요? 그리고 개인적으로 어느 시리즈에 애착을 갖고 있는지도 궁금합니다.

- '언차티드1'때는 콘셉트 아트를 담당했으며, 이후 작품부터는 아트 디렉터로서 본격적으로 참여했습니다.

두번째 질문의 답은...흠, 글쎄요. 세 작품 모두 훌륭한 게임이지만, 개인적으로 '언차티드2'에 신경을 많이 쓴 것 같습니다. 전작이 훌륭했던만큼, 후속작에서 더 많은 것을 보여줘야 한다는 사명감이 있었거든요. 그리고 기술적인 면 역시 1편과 2편 사이의 갭이, 2편과 3편 사이의 갭보다 더 큽니다.

언차티드 수준의 대작을 만들 때는 고심도 많았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개발하며 특별히 힘들었던 부분이 있었다면?

'언차티드2'의 챕터 중 '생명의 나무'를 찾는 내용이 있습니다. 개발 과정에서 상당히 고심했던 부분입니다.

- 그 부분을 플레이 해 보셨으면 아시겠지만, 배경이 지하 석실입니다. 플레이어는 우선 움푹 파여진 바닥 쪽으로 내려간 후 다시 올라와서 제단에 위치한 오브젝트를 발견하게 되죠. 일반적인 건축학 기법에서 볼 때, 물체를 강조하기 위해서는 시점이 내려갔다가 올라가는 것이 효과적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문제가 생겼습니다. 언차티드 시리즈는 캐릭터의 움직임을 전부 실제 배우의 모션 캡쳐 기법으로 촬영하여 대입하는 방식으로 만들어내는데, 이 부분을 촬영할 만한 세트장 마련이 되어있지 않았던 거죠. 저희가 원하는 만큼 내려갔다가 올라올 만한 장소가 없었습니다. 높낮이 부분에서 말이죠.

모션 캡쳐 기법을 사용해 보신 분들이라면 공통적으로 느껴본 고민이라 생각합니다. '현실에서 어느 정도까지 장치를 마련할 수 있느냐'와의 싸움이에요.

[ ▲ 실제 촬영장 구현에 어려움을 겪었던 생명의 나무 챕터 (출처 - 써니의 취미 블로그)


롭 러펠 아트 디렉터는 개발자라기 보다는 예술가 적인 느낌이 강한 분으로 느껴집니다. 그렇다면 예술가의 시점에서 봤을 때 '언차티드'와 '라스트 오브 어스'는 어떤 차이점을 두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 여러가지 다른 부분이 있으나 대표적인 것으로 색상과 톤을 꼽을 수 있겠습니다. '언차티드' 시리즈가 밝은 햇살이 내리쬐는 총천연색 자연을 배경으로 두고 있다면, '라스트 오브 어스'는 모노크롬 스타일의 어두운 도시를 바탕으로 합니다.

미국의 애니메이션 기업 '픽사 스튜디오'가 한 가지 스타일을 고집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게임 회사 역시 자신의 능력을 다양하게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플레이 스테이션3 플랫폼이 본인의 예술성을 나타내기에 충분한 성능을 갖추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아울러 해당 플랫폼 성능 문제로 미처 표현하지 못한 것도 있는지?

- '라스트 오브 어스'는 이전의 게임과는 다른 수준의 빛 효과를 보여줍니다. 그 정도 효과까지 구현할 수 있는 플레이 스테이션3이기에, 제가 생각한 것을 표현하는 데 있어 아직까지 부족함을 느끼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만족하는 편이에요.

(잠시 생각한 후) 물론 아쉬운 부분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닙니다. 풀어 설명하자면, 실시간으로 빛 효과를 계산하는 알고리즘이 있는데 기술적으로 이를 구현하는 것에 한계가 있었습니다. 뭐, 그렇긴 해도 사실 예술이라는 게 마음만 먹으면 볼펜 한 자루로도 할 수 있는 것이기에 불만은 없습니다.


그렇다면 하드웨어 상 문제가 아닌, 기획 단계에서 아쉽지만 접어야 했던 콘텐츠가 있었을 것 같은데요.

- 모든 타이틀이 다 그렇죠. 기획 단계에서 정말 다양한 스테이지나 장치를 생각해 내지만, 현실적으로 이를 모두 넣을 수는 없습니다. 저 역시 마지막까지 고민을 했었죠. 이렇게 빠지는 콘텐츠들을 차기작에 넣을 수 있는 것도 아니거든요. 콘솔 게임은 온라인 게임과 달리 하나의 작품으로 '완결'의 이미지가 강하기에, 이를 차기작에 반영할 경우 자칫 게임의 전반적인 흐름을 해칠 우려가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이번 작품에 콘텐츠가 다 들어가지 못한다고 해서 특별히 아쉽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언차티드' 시리즈는 정말 꾸준하게 진화하는 프로젝트입니다. 캐릭터의 무빙이나 광원효과는 시간이 흐를수록 개선되는 부분이기에 후속작 개발 자체로 아쉬움을 풀어낸다고 말씀드릴 수 있겠네요.



한 외신 매체 인터뷰 내용에 의하면, 너티독은 개발 팀원 간 위치가 수평 구조라고 합니다. 혹시 아트 팀도 마찬가지인가요? 만약 그렇다면, 그런 구조를 채용해 얻게 되는 장점은 무엇인지 알려주세요.

- 너티독에서는 사원 간의 모든 게 수평적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를 통해 얻게 되는 장점이라면, 자신이 갖고 있는 맹점을 정확하게 찾아 줄 수 있는 동료가 풍부하다는 것을 들 수 있겠네요. 다른 팀 역시 수평적이며, 갑자기 떠오른 좋은 아이디어도 빠르게 공유하고 있습니다. 저 역시 너티독만의 정책 덕분에 회사가 생기가 넘치고, 유기적인 모습을 유지할 수 있어 만족하고 있습니다.


언차티드 시리즈는 퍼즐과 액션이 모두 완성도가 높고, 무엇보다 영화를 능가하는 화려한 연출에서 비평가들의 찬사를 받았습니다. 이에 대한 영감은 어디서 얻는지?

- 저는 평소에 공상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아예 불가능한 공상이라기 보다는 조금 과장된 현실을 생각하는 것을 즐기죠. 너티독의 '에이미' 스토리라이터가 콘티 스토리를 가져오면, 저는 이것을 보며 연구하고 생각합니다. '이 부분을 좀 더 이렇게 과장하면 더 재미있지 않을까?' 이렇게 말이죠. 이렇게 하나 하나 짜 맞춰 가다보면, 현실성을 잃지 않으면서도 극적인 느낌을 더욱 강화할 수 있습니다.


혹시 한국의 게임 중 인상깊은 아트 디자인을 보여준 작품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NC소프트의 '길드워2'가 상당히 인상깊었습니다. '길드워2'의 제작을 담당한 아레나넷에는 미국에서도 최고라 불리우는 콘셉트 아티스트들이 포진해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역시 뛰어난 퀄리티를 보여주더군요.

그리고, 저 역시 한국 아티스트들의 작품집을 보며 연구를 많이 하는 편입니다. 한국은 재능있는 일러스트레이터가 많은 나라로, 이들의 발전 가능성도 높게 보고 있습니다.


인터뷰를 위해 어려운 시간 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한국의 팬 여러분들에게 한 말씀 전해주신다면?

이렇게 아름다운 도시에 사는 여러분들께 진심으로 찬사를 전합니다. 그리고 저희 게임을 사랑해 주신 덕분에 저 역시 이러한 서울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런 기회를 주신 것 정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