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 기간 7년, 현재 진행형.

파이어폴의 현주소를 간단하게 압축하면 이렇다. 대작 MMORPG들도 길어야 5~6년 정도 담금질한 뒤 출시된다는 것을 고려하면 그야말로 초장기 프로젝트인 셈. 혹자는 이렇게 말했다. "한국 측면에서 본다면 이상만 존재할 뿐, 실체가 없는 게임"이라고. 해외에서야 OBT 진행하며 개발, 피드백을 겸하고 있다지만, 국내에서는 소식조차 들리지 않았던 파이어폴의 현재를 그대로 대변하는 말이 아닐까.

레드5 스튜디오 코리아의 이우영 지사장은 원래 느긋한 인물이었다. "한국에 언제 출시해요."라고 물으면, "아직 완성 덜 됐는데 어떻게 출시해요."라며 손사래를 쳤다. CBT 기간이 늘어지는 것과 비례해 유저들의 관심에서도 멀어진 작품들을 많이 봐왔기에 솔직히 걱정도 들었다. 그들이 말하는 완성도가 언제쯤 높아질지 약속된 것도 아니고, 설령 그들이 만족할 만한 상태가 되었다 하더라도 그땐 이미 유저들의 뇌리에서 멀어진 작품이 될 가능성도 있다.

1월 13일 월요일 오전 10시 30분. 업데이트 정보를 소개하고 싶다는 이우영 지사장을 만나러 갈 때도 걱정은 그런 곳에 향해 있었다. 솔직히 말해 업데이트 정보 공개가 급선무가 아니라고 생각했으니까. 국내 유저들이 원하는 건 다른 것으로 생각했는데….

그날 들을 수 있었다.

"올해 하반기에 완벽하게 한글화된 '파이어폴'을 선보일 예정입니다. 텍스트뿐 만 아니라 음성 한글화까지 진행된 상태로요. 아직 밝힐 단계는 아니지만, 언제 서비스할지 날짜 정도는 잡아 놓은 상태입니다."

"자체 서버도 둘 겁니다. 현재 한국에서 파이어폴을 즐기려면 해외 서버를 이용해야 하는데, 핑 문제로 완벽하게 즐기기 어려운 상태예요. 저는 피드백을 주기 위해 레드5 미국 스튜디오에 자주 가는 편인데, 거기서 게임 할 때마다 놀라거든요. 한국에서 즐기는 파이어폴과는 완전히 다릅니다. FPS가 지닌 손맛, 그 차이가 너무 크니까요. 사실 한국에서 플레이하는 파이어폴은 타격감의 거의 없는 상태라 보셔도 됩니다."

파이어폴의 큰 흐름을 맡았던 마크 컨 대표가 일선에서 물러났기에 개발 분위기도 혼란스러울 것으로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꾸준히 게임 개발에 참여해왔던 제임스 맥컬리 부사장이 휘청이던 고삐를 움켜잡았고, 예전보다 더욱 힘차게 달려갈 준비까지 마쳤다. 덕분에 최근 1년 사이 업데이트된 콘텐츠 분량이 6년간 개발한 양과 엇비슷한 수준이라는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사기 충만한 개발팀, 그리고 비로소 장막이 걷힌 한국 서비스 일정을 듣고 나서야 이우영 지사장의 목소리에 집중할 여유가 생겼다. 국내외에서 몇 차례 만나 친분을 쌓은 이우영 지사장의 표정도 달라 보였다. 불안했던 표정 한구석에는 새로운 기대감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에게 파이어폴의 근황을 물었다.

어떻게 변했어요?






■ 무기 내구도 시스템 적용, 하지만 잃는 것 이상으로 큰 보상 마련했다

1월 업데이트로 변하는 내용은 대부분 파이어폴의 핵심을 꿰고 있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레드5 스튜디오 특유의 고집 덕분에 쉽게 변하지 못했던 것이기도 했다.

"온라인 게임 내 경제를 보면, 대부분 인플레이션 현상을 겪게 되더라고요. 이게 왜 일어나나 고민 많이 했어요. 나온 결론은 '장비가 영구적이기 때문'이었죠. 내구도가 무한이니까 아이템 가치가 천정부지로 솟는 거고, 개발사는 이를 해소하기 위해 더욱 강한 아이템을 넣을 수밖에 없었던 겁니다."

고레벨 장비가 추가되는 것은 콘텐츠를 늘리는 가장 간단한 방법의 하나지만, 이것이 신규 유저들에게는 진입 장벽이 될 수 있다는 게 이우영 지사장의 생각이다. 이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고자 레드5 본사 직원들과 1년간의 회의를 거쳤고, 결국 장비 아이템에 내구도를 적용했다. 내구력이 떨어진 장비를 수리하기 위해서는 '수리 포인트'가 필요하다. 이 수리 포인트도 다 떨어지면, 그 장비는 더는 사용할 수 없다. 즉, 모든 장비에는 수명이 있다.

"물론, 이렇게 되면 유저들의 반발이 장난 아니라는 거 알아요. 열심히 노력해서 좋은 아이템 맞췄는데, 이게 언젠가 못 쓰게 된다면 박탈감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승계' 개념을 추가했어요."

승계 시스템은 '프레스티지 포인트'를 기반으로 한다. 장비를 사용할수록 내구도는 감소하지만, 반대로 프레스티지 포인트는 쌓이게 된다. 이 포인트를 많이 쌓은 상태에서 아이템을 분해하면, 대량의 크리스타이트(파이어폴 내 기본 자원)와 함께 상위 아이템을 만들 수 있는 설계 도면을 얻게 된다. 즉, 사용과 분해를 통한 경제 순환구조를 만든 것.

또, 내구도 감소 속도 자체를 늦추는 방법도 마련해 유저들이 선택할 수 있는 폭을 늘렸다. 장비를 수리할 때 크리스타이트를 함께 사용하면, 내구도가 마모되는 속도가 대폭 줄어든다.

"이건 일반적인 온라인 게임에서 보기 힘든 시스템입니다. 솔직히 처음에는 혼란이 올 수도 있어요. 하지만 적응하시는 데 어려움은 없을 거로 생각합니다. 기본적으로 필드에서 드랍되는 장비도 있고, 정 헷갈리면 분해해서 다음 장비를 만들면 되니까요. 본인의 스타일에 맞게 아이템을 맞춰나가는 방식이죠."

▲ 인플레이션을 방지하고자 적용된 프레스티지 포인트 시스템





■ "이제는 키울 맛 납니다." 특성 강조한 '퍽' 시스템 업데이트

배틀프레임(파이어폴 내 클래스. 한 캐릭터로 각기 사용해 별도 육성 가능)을 성장시키는 동기부여가 부족했던 점도 이번 업데이트를 통해 큼직한 개편을 맞았다. 과거를 청산하고 새롭게 선보이는 시스템은 '퍽'(특성 트리)이라는 이름이며, 외형만 보면, RPG의 스킬트리 시스템과 매우 비슷하다. 즉, 패시브도 있고 액티브도 있다.

특성 트리는 배틀프레임 별로 완전히 다른 기능이 있으며, 상호 호환이 가능하다. 리콘의 이동속도 향상 퍽이 사용 가능한 상태라면, 드레드너트에 옮겨와 사용 가능하다는 의미다. 즉, 다른 배틀프레임의 특성을 가져와 자신이 사용하는 배틀프레임의 단점을 메우는 데 이용할 수 있다. 단, 모든 특성을 제한 없이 사용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레벨 업이 필요하다. 특성들이 처음부터 모두 공개되는 것은 아니고, 배틀프레임 레벨업에 따라 차례대로 풀리는 구조이기 때문.

물론, 파이어폴 내 모든 배틀프레임을 극한까지 성장시켰다고 해서 아무 특성이나 다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특성을 사용하기 위한 포인트는 한 캐릭터당 최대 105개로 제한을 뒀다. 그리고 특성은 등급에 따라 한 개에 5~40포인트를 소비해 장착할 수 있다. 즉, 한정된 포인트 내에서 어떻게 특성을 사용하느냐에 따라 같은 배틀프레임이라도 완전히 다른 느낌으로 즐길 수 있다.

"특성들이 워낙 많아서 밸런스 잡는 게 어려울 거로 생각하는 분들이 많아요. 그런데 사실 특성이라는 게 밸런스 영향 줄 정도로 극명한 성능 차를 보여주지는 않아요. 공격력, 방어력을 직접 건드리는 건 별로 없습니다. 이게 스킬 시스템이면 밸런스 맞추기 힘들었겠지만, 말 그대로 부가적인 특성 시스템이니까요. 리그 오브 레전드의 마스터리 시스템과 비슷하다고 보면 됩니다."

"모든 특성을 모으기 위해서는 배틀프레임을 성장시키는 게 필수예요. 지금까지는 배틀프레임을 성장시키는 이유를 찾기 어려웠어요. 이거 다 키워도 뭐 딱히 남들과 다른 것도 없었고요. 하지만 이 시스템이 적용되면 더욱 의욕적인 육성이 가능할 겁니다."


▲ 퍽 시스템은 배틀프레임을 육성하는 동기부여로 된다.





■ 깊은 스토리는 기본, 개선된 GUI로 아이템 제작도 간편하게.

파이어폴은 개발 초기부터 스토리 구성에 심혈을 기울여왔다. 이우영 지사장은 앞으로 5년간 차례로 선보이게 될 스토리가 준비되어 있다고 말했다. 유저들에게 세계관을 이해시키는 게 무엇보다도 중요하며, 이것이 곧 파이어폴의 가장 중요한 콘텐츠라고 강조했다. 이번 1월 업데이트도 스토리 미션이 중심을 이루며, 이게 마무리된 후, 오픈월드 PVP를 적용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챕터1이 끝나면 두번째, 세번째 챕터가 차례대로 등장합니다. 챕터가 업데이트될 때마다 플레이 가능한 미션이 추가되는데, 이걸 바로 즐길 수는 없어요. 멜딩 토네이도 같은 다이나믹 이벤트를 클리어하면 일정 수준의 포인트를 지급받는데, 이를 사용해 미션에 입장하는 거죠. 파이어폴의 미션은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의 레이드 개념이라 생각하면 되고, 약 5명의 인원이 필요합니다. 평균 플레이 시간은 1시간 정도로 생각하고 있고요."

이외에도 다양한 변화가 기다리고 있다. 디자인은 뛰어났지만 직관적이진 못했던 GUI도 전면 개편되어 숫자 단축키를 지원한다. 즉, 한국 유저들에게 익숙한 인터페이스가 비로소 파이어폴에도 적용되는 것. 이전 인터페이스를 선호하는 유저들은 옵션 변경을 통해 예전 방식으로 플레이할 수도 있다. 또, 메일 시스템, 제작 시스템도 더욱 직관적으로 개편된다. 하나씩 하나씩 파고들고, 검색해가며 재료를 제작할 필요가 이제 없어졌다. 한눈에 제작 재료들을 모두 볼 수 있으니까.

▲ 멜딩 토네이도를 파괴해 미션 포인트를 획득하자.

▲ 생산 시스템은 예전에 비해 훨씬 간편해졌다.





■ 두번째 시작 알린 파이어폴, 미래를 열기 바란다.

변화한 파이어폴을 보며 느낀 점은 딱 하나였다. 개발 속도에 탄력이 붙었다는 것. 갈피를 잃고 방황했던 그들의 개발 방향에 드디어 이정표가 주어진 듯했다. 눈 가리고 귀 막은 채 앞만 향해 내달리던 파이어폴이 비로소 유저들을 돌아보고 있었다. 아울러 '한국판 파이어폴'이 올해 하반기에 등장한다는 사실은 미래형 FPS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모으기에 충분하게 느껴졌다.

파이어폴이 성공 여부를 떠나 특별한 위치를 가졌다는 것은 부정하기 어렵다. 워낙 힘든 장르다. 심지어 MMOFPS는 해외에서도 성공 사례를 손에 꼽는 장르 아닌가. 따라서 그들의 미래는 함부로 점칠 수 없다. 한국에서도 마찬가지다. 안 그래도 바늘구멍같이 좁은데, 여기에 'SF가 성공한 사례를 찾기 어렵다'는 내용을 추가해야 한다.

그래서 한 편으로는 기대가 된다. 양산형 온라인 게임이 다수인 국내 시장에서 파이어폴이 어느 정도 성공할지는 장담하기 어렵다. 하지만 유저들의 안목을 넓혀 주는 자극제가 되어 주었으면 한다. 분위기 쇄신을 통해 제2의 시작을 알린 파이어폴이 더욱 단단해지기를 기대해본다.

▲ 레드5 스튜디오 코리아 이우영 지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