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4(The International 4)의 총 상금 규모가 600만 달러(61억 5천만 원)에 도달했다.

총 상금의 절반이 우승 상금으로 주어지니 우승 팀은 단숨에 30억 원을 손에 넣게 된다. 이는 지난 TI3의 총 상금 규모에 버금가는 액수이며, 테니스 메이저 대회인 윔블던 단식의 올해 우승 상금과도 같은 규모이다. 리그오브레전드 최고의 대회인 롤드컵 시즌3 우승 상금과 비교하면 3배에 달한다.

TI4가 처음부터 이러한 액수의 상금 규모로 진행된 것은 아니다. 처음 리그가 발표될 때만 하더라도 상금 규모는 밸브에서 책정한 160만 달러(16억 4천만 원)에 불과했다. 하지만 밸브는 지난 TI3에서 도입했던 기록서 시스템을 통해 유저들의 노력으로 600만 달러라는 규모를 이끌어냈다. 약 10달러의 기록서가 판매될 때마다 25% 판매 수익이 상금에 누적되는 클라우드 펀딩이 바로 그것이다.

이처럼 TI4는 전 세계 도타 2 팬들의 축제이자, 세계 정상급 팀들의 수준을 확인할 수 있는 별들의 전쟁이기도 하다. 하지만 TI4의 초기 상금이 지금에 비할 것이 못 되는 만큼, The International의 시작 역시 그리 순탄치 않았다.

지난 3월 23일, KDL 시즌 2가 열리는 강남 넥슨 아레나에서는 한 편의 영화 시사회가 열렸다. 바로 도타 2 프로게이머들의 일대기를 다룬 e스포츠 다큐멘터리 영화 '프리 투 플레이(Free to Play)'의 시사회였다. 이에 앞서 밸브는 3월 19일 프리 투 플레이를 스팀으로 공개했고, 유튜브에 올려진 프리 투 플레이 영상은 2백만 건이 넘는 조회수를 기록했다.

▲ 프리 투 플레이 한국어 영상

프리 투 플레이는 The International의 시작인 TI1에 출전하는 선수들의 모습을 그렸다. TI1은 2011년 8월 17일부터 21일간 게임스컴이 열리는 독일 쾰른에서 개최됐다. 160만 달러의 상금을 놓고 펼쳐진 승부 끝에 나투스 빈체레는 EHOME을 꺾고 100만 달러의 상금을 차지했다.

특이한 점은 TI1이 개최된 시기이다. 당시 도타 2는 클로즈 베타를 진행 중인 상태였다. 그런 시점에서 밸브는 16억 원 규모의 The International을 기획했고, 기존 도타 올스타즈 등에서 명성을 날렸던 클랜과 팀을 초청해 대회를 벌였다. 더군다나 리그오브레전드 시즌 1 챔피언십이 종료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열린 대회인 만큼 일종의 마케팅 성의 대회로 보는 시각이 많았다.

그렇게 열린 TI1이 밸브의 바램대로 성공적으로만 진행됐다면 좋았을련만, 현실은 그리 녹록치 않았다. 대회 자체는 흥미로웠고, 성과도 좋았다. 하지만 클로즈 베타라는 변수는 많은 문제와 지연을 야기시켰고, 다소 삐그덕대며 마무리됐다.

1년이 지난 2012년 밸브는 TI2의 개최 소식을 알렸다. TI1 이후 도타 2는 한국을 제외한 세계 시장에서 급격히 성장, 다수의 프로 팀들을 배출했다. TI1이 초청팀들간의 경기로만 진행됐다면, TI2에서는 14개의 초청팀과 더불어 동부와 서부에서 각 1개 팀이 치열한 경쟁을 뚫고 본선에 올랐다.

▲ TI2와 TI3 본선이 펼쳐진 시애틀 베나로야 홀


TI2는 이제는 도타 2의 성지와도 같은 시애틀 베나로야 홀에서 개최됐다. TI2를 보기 위해 많은 팬들이 현장을 찾았고, 결승전 경기는 전세계 56만 여명이 관전했다. 밸브가 제작한 TI2 다큐멘터리 영상은 130만 건의 조회수를 기록했으며, 나투스 빈체레와 IG간의 결승전 명장면을 멀티캠으로 담은 영상은 79만 건의 조회수를 기록했다.

▲ 나투스 빈체레와 IG의 하이라이트 'The Play' 멀티캠 에디션


TI2에 들어서 팬덤은 더욱 두터워졌다. 팬들은 자신들이 응원하는 팀이 명장면을 연출할 때마다 연호했고, 특히 서구권을 대표하는 나투스 빈체레의 인기는 하늘을 찌를 듯 했다. 결승전 현장에서 IG가 이길 때면 팬들은 형식적인 박수를 보냈지만, 나투스 빈체레가 이길때면 '나비'를 연호하며 뜨거운 반응을 보여주었다. 도타 2 최강의 칭호를 둘러싼 동부와 서부 간 대결의 본격적인 시작이었다.

결국, IG는 나투스 빈체레를 3:1로 제압하고 약 11억 원의 우승 상금을 차지했다. 나투스 빈체레는 덴디가 루빅을 선택하며 상대의 한타 궁극기를 역으로 이용하는 명장면을 연출했지만, IG의 YYF와 페라리 430, 츄안의 호흡을 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 TI2 우승을 차지한 중국의 IG

2013년 들어 밸브는 본격적으로 The International의 권위를 높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첫 단계는 대회 규모의 확대였다. 2012년에 이어 또다시 시애틀 베나루야 홀에서 열린 TI3는 이전 대회들과 마찬가지로 160만 달러의 상금으로 열렸다. 참가 팀 역시 2012년과 동일하게 14개의 초청팀과 동부와 서부 지역 선발전을 통과한 2개팀 등 총 16개 팀이었다.

이와 함께 밸브는 'TI3 기록서'를 출시하며 클라우드 펀딩 시스템을 대회에 도입했다. 약 10달러의 기록서 아이템은 대회 예측 투표와 올스타전 및 1대1 최강자전 출전 선수 투표 등의 권한을 보유자에게 제공했다. 또한, 선수 카드를 수집할 수 있는 콜렉터 북이기도 했다.

하지만 가장 큰 특징은 기록서가 판매될 때마다 판매 수익의 25%가 대회 상금에 누적되는 것이었다. 이를 통해 밸브는 TI3의 총 상금을 약 290만 달러까지 늘리는데 성공했으며, 대회 우승팀인 얼라이언스는 그 절반인 16억 원을 차지하게 됐다. 또한, 스팀 게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목표 과제를 기록서에 도입, 총 상금 규모에 따라 달성되는 목표 과제를 통해 새로운 혜택을 기록서 보유자들에게 제공했다.

▲ 총 상금 287만 달러로 6차 목표 과제를 달성했던 TI3 기록서

한편, TI3에서는 오랜 강팀으로 군림했던 동부권, 곧 중국 팀들이 대거 탈락하는 이변이 연출됐다. TI2 우승팀인 IG는 DK와 99분 여의 초장기전 승부를 펼쳤지만 끝내 패하고 말았다. LGD는 얼라이언스에게 덜미를 잡혔고, 통푸는 나투스 빈체레에게 승리를 내주었다. 나투스 빈체레는 통푸와의 경기에서 덴디가 퍼지를 선택, 첸의 신념의 시험과 연계한 고기 갈고리로 상대를 패닉에 빠지게 만들었다.

▲ TI3 현장에서 펼쳐진 나투스 빈체레의 첸과 퍼지의 합작품. 패치로 이제는 불가능하다


3년 연속 결승에 오른 나투스 빈체레와 승승장구를 달린 패기의 신생팀 얼라이언스 간의 경기는 TI3를 마무리 짓기에 충분했다. 이 경기에서 얼라이언스는 이오를 적극 활용하며 승리했고, 마지막 세트에서 보여준 S4의 '16억 짜리 꿈의 고리'는 그를 세계 최고의 미드 레이너 반열에 올려 놓았다.

▲ 16억 원짜리 명품 백도어. 상대 귀환을 막은 S4의 활약이 눈부시다

이제 2014년도 챔피언을 가리기 위한 TI4 일정이 약 2달의 시간만을 남겨놓고 있다. 밸브의 수장 게이브 뉴웰은 지난 3월 5일 레딧에 등장해 TI4를 거론하며 롤드컵을 뛰어 넘는 최고의 대회를 선사할 것을 팬들에게 약속했다. 그리고 그의 약속대로 현재 TI4의 상금 규모는 기존의 상식을 훌쩍 뛰어 넘었으며, 본선 무대 역시 1만 7천여 명의 관중을 수용 가능한 시애틀 키 아레나에서 펼쳐질 예정이다.

▲ 시애틀 키 아레나 내부 모습

참가 팀은 기존과 동일한 16개 팀이지만, 초청팀의 비율을 줄이면서 새로운 팀들이 등장할 수 있도록 장치했다. 그리고 지난 19일 종료된 TI4 동남아 지역 선발전에서 도타 2 불모지인 한국의 MVP 피닉스가 각본 없는 드라마를 쓰며 지역 2위로 키 아레나로 향하게 됐다.

이제는 e스포츠 대회를 넘어 메이저 스포츠 대회와도 어깨를 견줄 만큼 성장한 TI4에서 어떤 명장면들이 우리를 흥분시킬지, 그리고 MVP 피닉스가 한국 도타2의 성장을 알릴 수 있을지 설레는 마음으로 지켜보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