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밸브가 마련한 연습장에서 연습중인 MVP 피닉스(사진=TI4 공동 취재단)


MVP 피닉스의 TI4 와일드카드전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새로운 기적을 만들, 혹은 세계의 높은 벽을 느끼게 될 무대가 다가온 것이다.

MVP 피닉스가 넘어야 할 와일드카드전 첫 상대는 버투스 프로이다. 러시아에 기반을 둔 버투스 프로는 상당히 호전적인 팀이다. 푸쉬 전략이나 시간을 들여 캐리를 키우기 보다는 초반레인전부터 유리한 소규모 교전을 펼쳐 이득을 불려나가는 전략을 주로 사용한다. 그렇다 보니 자신보다 약한 팀에겐 강하지만, 반면 이런 싸움이 통하지 않는 팀에게는 약한 모습을 보인다. 한 마리의 불독 같은 느낌이랄까.

MVP 피닉스의 와일드카드전 첫 상대로 버투스 프로가 확정됐을 때 많은 이들이 쾌재를 불렀을 것이다. 적어도 기자는 그랬다. 그만큼 버투스 프로는 MVP 피닉스에게 있어 가장 '해볼만한' 상대이며, 동시에 생각해야 할 변수가 가장 적은 팀이기도 하다.



TI4 유럽 선발전 당시 버투스 프로는 조별 리그에서 '당연히' 이겨야 할 상대에게만 승리를 거뒀다. 조별 리그에서 9승 0패로 파란을 일으켰던 록스 키스와 마우스 스포츠, 팀 코스트 등 1, 2, 3위를 차지한 팀들에게는 모두 패했으며, xGame.kz를 상대로 타이니-이오 조합을 꺼냈다가 흠씬 두들겨맞고 패했다. 하지만 자이로콥터-이오라는 악수를 던진 파워 레인저와 기타 약팀들을 상대로 승리한 덕분에 5승 4패의 성적으로 가까스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조별리그에서는 고전을 면치 못했던 버투스 프로가 플레이오프에서는 180도 달라진 모습을 보였다. 조별리그에서는 패했던 팀 코스트와 록스 키스를 연달아 격파하며 최종 결승전에 진출한 것이다. 이런 승리의 배경에는 ARS-ART의 자연의 예언자와 NS의 디스럽터가 있었다.

버투스 프로는 팀 코스트와 록스 키스를 상대로 5게임 연속으로 자연의 예언자를 선택했고, 자신들이 밴한 경우를 제외하고 3게임 연속으로 디스럽터를 선택했다. 전략은 단순했다. NS의 디스럽터와 함께 또 한명의 서포터인 JotM은 초반 딜을 기대할 수 있는 영웅-나무정령 수호자, 고대 영혼, 복수 혼령 등-을 선택, 디스럽터의 잔상을 이용해 미드 레인에 힘을 실었다. 동시에 자연의 예언자가 합류, 빠른 타이밍의 5인 도타를 펼쳤다. 싸우길 좋아하는 버투스 프로다운 전략이었다.

하지만 초반이 강력한 것과는 달리 중반 이후의 한타 구도나 머리 싸움에서는 약한 모습을 자주 보였다. 더군다나 공격이 강한 반면 수비는 취약하기 그지 없었다. 유럽 지역 선발전 마지막 경기에서 마우스스포츠에게 두 세트를 연달아 승리했던 버투스 프로는 슬라크를 꺼내 든 상대에게 연거푸 일방적인 학살을 당하며 동점을 허용했고, 마지막 세트에서는 자신들이 사용했던 자연의 예언자, 디스럽터에게 고스란히 당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슬라크와 같이 소규모 교전에 능한 영웅을 상대로 약한 모습을 보인 것은 테크랩스 컵에서도 다시금 드러났다. CIS(독립국가연합)에서 진행되는 e스포츠 행사 중 가장 큰 규모인 테크랩스 컵에서 버투스 프로는 파워 레인저에게 처참한 성적으로 패하고 말았다. 당시 파워 레인저는 슬라크를 꺼내들며 버투스 프로에게 다시 한 번 악몽을 심어 줬고, 이어진 경기에서는 스턴기가 없는 상대의 약점을 파고들며 다소 손쉽게 승리를 거뒀다.

한편 테크랩스 컵에서 버투스 프로는 드림팀 168을 상대로 리나 캐리를 꺼내 들기도 했다. 다소 의아했던 픽은 상대 팀 미라나의 안일한 움직임 덕분에 결과적으로는 성공을 거뒀다. 독특한 컨셉이라 볼수 있지만, 시간에 쫓겨 내린 극단적인 선택은 결국 버투스 프로가 성공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영웅 풀이 그리 넓지 않음을 의미한다. 영웅 풀이 좁다는 한계를 지적받은 MVP 피닉스로서는 자신들의 단점을 그나마 희석시킬 수 있는 상대를 만난 셈이다.

▲ 시애틀에 입성한 버투스 프로(사진=도타 2 공식 인스타그램)


MVP 피닉스의 승리를 점칠 수 있는 또 하나의 이유는 버투스 프로의 캐리 Illidan이 그리 믿음직스럽지 않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경기에서 Illidan은 별다른 활약을 펼치지 못했다. 팀이 초반부터 승기를 잡은 경기에서는 그에 편승해 캐리다운 면모를 보이긴 했지만, 비등비등한 상황 혹은 힘든 상황에서는 파밍으로 후반을 노리지도, 한타에서 존재감을 드러내지도 못했다. 오히려 미드 레이너인 God이 팀의 캐리력을 대부분 담당했고, 버투스 프로가 간혹 타이니-이오 조합을 선택할 때도 타이니를 담당하는 이는 God이었다.

또한 버투스 프로는 팀원들간의 결속력 역시 단단하지 못하다. 선수들은 잦은 이적을 반복했고, 올해 1월에서야 지금의 로스터가 완성됐다. 지난 TI3에 출전했던 버투스 프로는 3승 11패의 성적으로 래틀 스네이크와 함께 B조 꼴찌를 기록했다. 당시 팀원이었던 Illidan은 이런 성적에 실망해 팀을 떠났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팀에서 함께 활동했던 JotM과 함께 순차적으로 재합류했다. 팀의 기둥인 NS 역시 은퇴를 선언하며 프로 무대를 떠났지만, 2014년도에 재기를 꿈꾸는 버투스 프로의 요청으로 은퇴를 번복했다.

버투스 프로의 팀원 중 가장 화려한 한 때를 보냈던 ARS-ART는 나투스 빈체레의 서포터로 1년 가량을 활동했다. 2011년 말부터 2013년도 초 탈퇴하기 까지 그는 대부분의 경기에서 우승컵을 들어올리며 나투스 빈체레의 황금 시대에 함께 했지만, 팀원간의 갈등을 해결하지 못하고 버투스 프로로 소속을 옮겼다. 결국, 지금의 버투스 프로의 로스터 역시 TI4 성적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는 불안한 기로에 서있는 셈이다.

이런 버투스 프로지만 마냥 MVP 피닉스의 승리를 낙관할 수 만은 없다. 발톱 빠진 곰이긴 하지만 어찌 됐든 도타 강국 러시아에서는 엠파이어의 뒤를 잇는 팀이기도 하며, 무엇보다 6월 1일 종료된 테크랩스 컵 이후 공식 경기를 치른 바가 없다. 조인도타 컵에 참가하긴 했지만, 당시 ARS-ART를 대신해 예비 멤버가 활동했던 만큼 결국 버투스 프로의 최근 데이터는 없는 셈이다. 반면, MVP 피닉스는 지난 달 29일 포커 페이스와의 KDL 시즌 2 결승전이라는 큰 경기를 치렀고, 불과 며칠 전 까지도 동남아 리그에 참가하며 자신들의 전력을 노출시켰다. 결국 사전 정보 싸움에서는 MVP 피닉스가 압도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놓여 있다.

경험 역시 상당히 작용할 것으로 예측된다. MVP 피닉스가 큰 무대에서 주눅드는 성격이 아니긴 하지만, 버투스 프로의 경우에는 JotM을 제외한 4명의 선수가 이미 TI 무대에 참가한 경험이 있다. 또한 MVP 피닉스보다 월등히 많은 도타 2 프로게이머 경험을 살려 심리적으로 우위를 점할 가능성이 높다.

결국, MVP 피닉스가 버투스 프로를 이기기 위해서는 픽밴 싸움에서부터 전력을 다해야 한다. 이전의 단순한 세미 푸쉬로는 자칫 상대의 빠른 5인 도타에 말릴 가능성이 높다. 최근 자주 보였던 서포터들의 활발한 움직임과 백업을 통해 핵심 영웅을 키워 정면으로 힘싸움을 펼치는 것이 오히려 좋은 선택이 될 것이다. 무엇보다 버투스 프로가 최근 장기전 승부에서 승리를 거둔 바가 없는 만큼 후반을 노리는 캐리 영웅 육성 역시 하나의 방법이 될 것으로 보인다. 최근 인터뷰에서도 밝힌 준비된 필살기는 결국 조합의 변화가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MVP 피닉스가 그들 앞에 놓여진 첫 관문을 무사히 통과하며 탄력을 받아, 나아가 단숨에 본선 무대까지 진출할 수 있기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