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C MMORPG로 시작되어 모바일게임으로 출시되기까지 4년. 태아가 세상을 나와 온전한 발음으로 자기의 의사를 전달할 수 있을 정도로 성장할 수 있는 시간을 거쳐 마침내 라이브 된 '영웅의군단'.

개발에 매진한 지난 시간을 이야기하러 KGC 강연대에 오른 이건 PD는 시간제약이 없었더라면 밤 새워서라도 이야기할 기세였다. 그에게 '영웅의군단'은 아쉬웠던 것도 많고 자랑할 것도 많은 귀한 자식이나 다름 없었으니까.

군주, 군주 글로벌, 아틀란티카의 개발 팀장을 역임하며 10년의 경력을 가진 이건 PD가 특별히 아끼고 사랑하는 '영웅의군단'에는 어떤 이야기가 담겨 있을까? 다소 상기된 표정으로 2009년 7월의 첫 기획시점부터 시작한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 4년에 걸쳐 영웅의군단을 만들어 낸 엔도어즈 이건 PD



"원래는 PC MMORPG였어요. 아틀란티카의 후속작으로, 실시간 전투를 지향하고 엔도어즈의 단점으로 지적되던 그래픽을 대거 보강할 대작을 구상중이었죠. 아틀란티카가 그랬듯 게임브리오 엔진을 고집할 생각이었고요."

'영웅의군단', 아니 '아틀란티카2'의 날이 바짝 선 첫 발걸음은 2010년, 다른 팀이 공개한 '삼국지를품다'에 무뎌졌다. '삼국지를품다'의 콘텐츠가 아주 특이한 것도 아니었고, 그래픽이 엄청나게 좋은 것도 아니었다. 기존 작품들과 크게 다를 것 없는 그래픽에 턴제RPG였을 뿐.

"삼국지를 품다, 그러니까 삼품에서 주목할 점은 바로 PC와 모바일의 연동기능이었습니다. 당시에 멀티플랫폼 타이틀은 상당히 획기적이었고, 당연히 관심이 따라올 수 밖에 없었습니다. 유니티엔진이 좋더라고요. 멀티플랫폼 연동도 되고."

PC와 모바일, 어디에서든 같은 게임을 동일하게 즐길 수 있다는 이유로 세간의 주목을 받은 삼품으로 이건 PD는 '아틀란티카 2에도 유니티엔진을 한 번 써서 PC와 모바일로 연동해 보자!'라고 결심했다. 하지만 문제는 당시 꾸려진 팀들이 너무나 당연스럽게도 전작인 아틀란티카 개발진이 대부분이었다는 것.

유니티 엔진과 친해지는 게 급선무였던 이건 PD와 팀원들은 잠시 아틀란티카2를 내려놓고 삼품 프로젝트에 합류하기로 결심했다. 2009년에 미리 구상해뒀던 세계관과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틈틈이 그래픽리소스도 만들기 시작했다. 이건 PD는 이렇게 만들어 둔 리소스들이 훗날 '영웅의군단'에 아주 요긴하게 사용되었다며 지금의 그래픽에 큰 공헌을 했다고 평가했다.

시간은 흘러 2012년. 바야흐로 퍼즐과 러닝게임이 대유행하던 시대였다. 여기서 아틀란티카 2는 또 방향을 바꾸게 된다. 모바일 연동을 지향하면서 실시간 전투를 고집하면 작은 화면에서의 조작이 번거롭고 직관성이 떨어질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아틀란티카 2는 전작과 동일한 턴제 전투 시스템으로 재설계되었다. 그리고 그 해 겨울...

"삼품은 소위 대박까진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상당히 의미있는 데이터를 뽑아냈죠. 정말 놀랍게도, PC버전을 중점적으로 개발해왔음에도 전체 가입자 중 80%가 모바일버전에서 나왔어요. PC의 콘텐츠를 모바일로 넣는 게 유저를 만족시킬 수 있는 방법이라 생각했는데, 으음...모바일 플레이어가 더 많았던 거죠."

예상하지 못한 삼품의 데이터와 더불어 넥슨 사업부의 돌직구 발언도 크게 작용했다. 넥슨 사업관계자는 PC버전을 '그저 그런 콘텐츠와 흔한 그래픽, 고만고만한 성적을 거둘 게임'이라 혹평했다. 반면 모바일버전은 'PC MMORPG 역사의 한 획을 그었던 '뮤'나 '리니지'가 위치했던 선구자 자리에 설 게임'이란 호평을 아끼지 않았다.

▲ 화려한 그래픽에 드넓은 필드를 지닌 실시간 전투MMORPG 아틀란티카2는 많은 변화를 거쳤다


▲ 넥슨 사업부 관계자의 쓴소리도 모바일 전환에 크게 영향을 미쳤다.

당연히 무엇을 선택했겠는가. PC버전 제작보다는 모바일에 집중하자는 전략이 세워졌고, 그간 만들어 왔던 PC버전은 그대로 접히게 되었다. 다소 어렵게 느껴지는 전작의 이미지에서 벗어나기 위해 게임명도 직관적으로 바꿨다. 그리하여 2013년, 마침내 모바일MMORPG '영웅의군단'의 윤곽이 드러났다.

"PC게임 개발자들은 욕심이 많아요. 진보된 기술을 최대한 활용해 할 수 있는 걸 모두 만들어내고 싶어 하죠."

모바일로의 전향을 택할 당시 이건 PD를 가장 괴롭게 했던 것이 바로 '욕심'이었다. 모바일 플랫폼은 PC와는 완전히 다르게 접근해야 했다. 툴팁 하나 띄우는 것도 힘들었고 재밌는 콘텐츠 하나 구현하는 것도 최적화 문제에 막혔다. PD도, 팀원들도 넣고 싶은 게 산더미처럼 많았는데 이렇게 제약이 많은 모바일 플랫폼에 모두 우겨넣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모바일게임의 비중이 점점 커지고 있던 당시 상황도 심적 부담으로 다가올 수 밖에 없었다. 이건 PD는 러닝과 퍼즐이 주가 된 캐주얼게임이 대유행하던 때라 코어한 게임이 점점 사라질까 불안했다고 회상했다.

기껏 쌓아온 노하우 발현이 쉽지 않은 협소한 플랫폼, 단순함과 킬링타임이 주가 된 목표 시장. 진득한 모바일게임을 개발하길 원했던 이건 PD에게 이런 상황이 주는 위기감은 커다란 부담이었다.

"필요한 건 '내려놓기', 그리고 '선택과 집중' 이었습니다. 플랫폼에 맞추는 게 생존을 위한 최선의 선택이었죠. 모바일게임을 만들 때는 이 두 가지가 가장 중요하다 생각합니다. 욕심 많은 개발자들을 어느 정도는 현실과 타협할 수 있도록 설득해야 해요."

내려놓기에 따라 많은 것이 버려졌다. SNG의 콘텐츠를 이용한 하우징, 파밍이 가능한 영지 시스템이 이미 구현되어 있었지만 전반적인 게임 시스템 및 분위기에 비해 너무 이질적이다 싶어 버렸다. 심지어 김태곤 표 타이틀에 항상 포함되어 있던 무기제조 시스템까지 버렸다. 제조 하나에 너무 많은 터치가 필요한 건 유저들에게 번거로움을 줄 것 같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대신 집중할 건 확실히 집중했다. 유저들에게 익숙함과 편리함을 제공하는 데 온 힘을 쏟았다. 일단 모바일 유저들에게 친숙한 TCG의 시스템을 도입해 영웅의 획득 및 강화, 진화 시스템을 설계했다. 또한 터치 한번으로도 간편하게 이동할 수 있도록 모험일지와 세계지도를 마련했고, 모바일 특화 UI인 즐겨찾기 메뉴를 구상해 개발자가 강조하려는 콘텐츠를 유저 스스로 설정하도록 유도했다. 또한 소셜플랫폼의 힘을 받기 위해 다양한 플랫폼과의 연동까지 지원했다.

▲ SNG콘텐츠 영지, 장비제조콘텐츠, 그래픽까지 모두 내려놓았다

▲대신 영웅콘텐츠 및 쉬운 조작, 간편한 UI와 테스트에 온 힘을 쏟았다!

▲ 오랜 시간에 걸쳐 잘 다듬어진 영웅의군단


그리고 2014년 2월 14일 대망의 런칭, 이후 시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도 모른 채 눈 깜짝할 사이에 9개월이 흘렀다. 이건 PD는 이 시간동안 모바일게임 시장에 대해 많은 것을 배웠다며 모바일게임 시대에 대한 개인적인 의견을 청중들에게 공유했다.

1. 매일매일 성적표가 나온다.
→ PC게임 순위는 주간,월간마다 전문 매체를 통해서만 확인할 수 있었지만, 모바일에서는 실시간으로 변경되며 그 모든 순위는 적나라하게 마켓에 접속한 유저들에게 보여지게 된다.

2. 어느 누구도 영원한 강자가 될 수 없다.
→PC MMORPG의 경우 상위권에 한 번 올라가면 쉽사리 내려가지 않지만, 모바일에서는 순위가 급변하기 때문에 한 번 상위권에 들어가도 방심해서는 안된다.

3. 모든 게 쉽다. 올라가는 것도...내려가는 것도...
→다른 플랫폼에 비해 순위 상승은 어렵지 않지만, 그만큼 빨리 떨어진다. 잠깐 소홀히 해도 금방 50위권 밖으로 밀려나는 것이 모바일게임 시대.

4. 유입...그리고 잔존율이 상당히 중요하다.
→ PC에 깔린 게임은 언인스톨하기 상당히 번거롭지만, 모바일게임은 터치 한 번으로 바로 삭제된다. 유저 유입 못지 않게 계속 게임을 즐기는 유저층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잔존율은 구글 피쳐드(Featured, 추천)에 들어 가기 위한 조건 중 하나일 정도로 중요시해야 한다.


5. 자본과 협업이 중요한 시대가 되었다.
→예전과 다르게 모바일게임이라고 자본이 적게 드는 시대가 아니다. 크로스프로모션이나 콜라보레이션, 거액의 마케팅이 효과를 보고 있다.


"PC게임을 개발하는 게 어렵나요, 모바일게임을 개발하는 게 어렵나요?라는 질문을 받으면 저의 대답은 당연히 모바일입니다. 만들고 싶은 걸 다 해볼 수도 없고, 신경쓸 건 오히려 더 많으니까요. 업데이트도 계속 진행하면서 유저분들을 잡아야 하고, 순위도 매번 모니터링 해야하고...제대로 이해하고 접근해야 할 시장이 바로 모바일게임입니다."

이후 iOS, 구글플레이, T스토어, 밴드 및 카카오 등 다양한 플랫폼에서 '영웅의군단'을 런칭한 경험을 바탕으로 정리된 게임 마켓 별 유저 성향 설명이 이어졌다.

구글플레이의 경우 모든 성향의 유저가 골고루 분포되어 있는 반면, T스토어의 경우 진성 RPG유저 층이 많고 과금 비율도 더 높다. 소셜플랫폼인 카카오와 밴드의 경우 연령층에서 차이나며, 가장 늦게 '영웅의군단' 을 접한 iOS쪽 유저는 특유의 심의문화를 알고 이 때문에 업데이트가 다른 플랫폼에 비해 좀 늦더라도 너그러이 이해해 주고 충성도도 높다는 것이 이건 PD의 의견.

중국, 북미, 일본 등 글로벌 진출도 진행하고 있는 '영웅의군단'인 만큼, 글로벌 런칭을 바탕으로 축적된 국가별 특징을 정리한 정보도 소개되었다. 참고로 '영웅의군단'은 지난 7월 말 중국 추콩과 서비스 계약을 발표했고 10월엔 일본 라인을 통해 서비스가 예고되어 있다. 또한 비슷한 시기에 넥슨M을 통해 북미 및 유럽 지역의 글로벌 서비스가 개시된 상태. 아래는 이건 PD가 제시한 PPT화면이다.

국가별 특징 정리 PPT 화면





위에 설명했던 국가별 특징을 살펴 보면, 비슷한 듯 제각각 다른 특색을 보이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는 글로벌 런칭 시 현지 퍼블리셔의 요구가 각각 다르다는 걸 의미한다. 이 많은 사항을 엔도어즈는 어떻게 다 대응했을까?

"게임은 개발자가 만들지만, 검증은 유저의 몫이죠. 손님은 왕이잖아요. 테스트니 CBT니, 뭔가 거창하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은데, 그럴 필요 없어요. 단 3~4명 정도의 분들만 불러 놓고 간단하게 테스트해도 된다고 봐요. 대신 반드시 지켜야 될 게 있죠. 되풀이 되는 유저의 의견은 반드시 고칠 것. 테스트가 끊기지 않도록 꾸준히 관리할 것."

영웅의군단은 수도 없이 많은 FGT와 총 5번의 CBT를 거쳐 완성된 작품이다. 그만큼 엔도어즈는 테스트의 중요성을 잘 알고, 꾸준히 단계별 테스트를 행하며 완성도를 높이고 있다. FGT, UX테스트 및 CBT, QA 등 엔도어즈의 테스트 단계 중 특히 이건 PD가 중요시하는 건 CBT와 QA. 그는 CBT는 가장 유저와의 소통이 활발한 시점이며, QA팀은 업데이트 전 테스트를 진행하는 만큼 시스템 지식이 많이 축적된 팀이기에 별도의 종료사인 없이 패치까지 직접 진행하는 권한을 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엔도어즈의 게임 테스트 과정







"그 동안 숱한 선입견과 싸웠습니다. 모바일게임은 필드가 있으면 안되고...무겁게 실행되면 안되고...용량이 커서도 안되며, 플레이타임이 길면 곤란하고, 플랫폼이 없으면 힘들고, 조작이 많으면 어렵고...그 모든 선입견과 맞서 싸우며 반항심과 의무감으로 만든 것이 바로 '영웅의군단'입니다."

이건 PD의 반항심과 의무감은 결국 성과를 냈다. '영웅의군단'은 PC MMORPG의 콘텐츠를 담았고, 개발자 스스로가 재미있는 게임으로 탄생되었다.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플레이하며 함께 어울릴 수 있는 게임성도 갖췄고, 수익성은 다소 낮지만 2년 이상 길게 끌고 갈 수 있는 대형 타이틀이 되었다.

4년의 고생 끝에 달콤한 성공을 거뒀지만 이건 PD는 아직 해보고 싶은 게 많다. 콜로세움과 길드전 등 모바일게임의 e스포츠 대회도 진행해보고 싶고, 아직 저장해 둔 리소스로 PC버전도 선보이며 선입견과 맞서 싸우려 한다. 그는 강연을 마무리하며 자신 있는 목소리로 준비해 둔 마지막 멘트를 읊었다.

"인디안들이 지내는 기우제는 반드시 비가 온다죠. 왜일까요? 그들은 비가 올 때까지 기우제를 지내기 때문이죠. 이 시장도 그래요, 실패하지 않을 때까지, 성공할 수 있을 때까지 힘껏 달려보는 게 방법이죠. 아직도 남아 있는 선입견을 깨고 성공할 때까지 부딪혀보는 게 우리 개발자의 몫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