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것을 시도한다는 자체만으로 충분히 값지고 박수받을만한 가치가 있다. 슬램덩크라는 만화에서 북산의 에이스 '서태웅'은 1:1실력이라면 그 누구와 붙어도 밀리지 않을 실력을 갖춘 선수였지만 정작 본 경기에서는 지나친 1:1 돌파만 고집하며 한계에 부딪혔다. 1:1 돌파는 '득점'이라는 결과를 가져오기 위한 수많은 방법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서태웅은 산왕과 대결에서 자존심을 버렸다. '패스'를 시도했고, 한 층 성장하며 북산에게 승리를 가져다줬다.

김도우(SK텔레콤)는 운영 중심의 프로토스였다. 2014 핫식스 GSL 시즌2에서 단단한 운영 능력을 바탕으로 우승을 차지하고 자신의 스타일을 유지했다. 하지만 한동안 우승자 타이틀에 걸맞지 않은 성적을 기록하며, 개인 리그에서 아쉬운 행보를 이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약 1년 만에 다시 올라온 결승 무대. 김도우는 2015 스베누 스타크래프트2 스타리그 시즌2 대망의 결승전에서 기존의 스타일을 완전히 탈피하며 오히려 김유진(진에어)을 연상케 하는 전략적인 모습으로 조중혁(SK텔레콤)을 4:1로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주성욱과 함께 프로토스의 정석, 정파에 가까웠던 김도우가 이번 결승만큼은 완벽한 사파였다. 그리고 그중 가장 빛났던 전략은 본진 폭풍함이었다.


■ 똑같은 전진 우주 관문이 아니다! 과감함에 기발함까지 더해진 판짜기

프로토스와 테란의 대결에서는 공격의 주도권을 잡는 것이 중요하다. 초반부터 주도권을 잡기 위해 많은 프로토스들이 전진 우주 관문에서 예언자를 생산해 테란에게 피해를 주려고 한다. 하지만 예언자가 큰 활약을 하지 못하고 잡히면, 경기가 테란에게 유리하게 흘러가기 쉽다. 따라서 대부분의 프로토스는 땅거미 지뢰를 확인하면, 예언자가 잡히는 경우가 두려워 과감한 견제를 시도하지 못한다. 이러한 점을 알고 있는 조중혁 역시 결승전 3세트에서 땅거미 지뢰로 예언자를 대비했다.

▲ 땅거미 지뢰의 방사 피해를 활용한 예언자 폭사

하지만 김도우는 조중혁의 땅거미 지뢰를 역으로 이용했다. 추적자로 미리 예언자의 동선을 확보해두고 견제를 시도했다. 게다가 마나를 소비한 예언자로 땅거미 지뢰의 폭사를 유도해서 조중혁의 건설 로봇에 큰 피해를 줬다. 예언자를 끝까지 살려야 한다는 프로토스의 기존 관념을 넘어선 것이다.

김도우의 판짜기는 4세트에서 더욱 빛났다. 3세트에서 과감한 예언자 활용에 당한 조중혁은 미사일 포탑을 건설하고 견제를 막는 것에 집중했다. 예언자에 큰 피해만 입지 않는다면, 2세트처럼 운영과 교전으로 불리함을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김도우는 조중혁보다 한 수 앞을 더 내다봤다. 예언자 견제로 미사일 포탑을 강요한 뒤, 폭풍함의 긴 사거리를 활용해 본진 안에서 방어하려는 테란의 병력을 일방적으로 끊어냈다. 이전 세트에서 견제에 당한 조중혁의 심리를 이용했고, 폭풍함과 예언자의 활용에 대한 편견을 뒤엎은 것이다.


■ 폭풍함에 대한 기존 인식을 바꿔놓은 김도우

일반적으로 폭풍함은 후반 운영 위주의 경기에서 등장하는 유닛이다. 저그와 프로토스의 거신, 무리군주와 같은 대형 유닛을 잡아내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특히, 해병과 불곰 위주의 병력을 상대해야 하는 테란전에서는 더욱 등장하지 않는다. 또한, 최종 테크 유닛인 폭풍함을 준비하기 위해서는 많은 자원과 시간을 투자해야 하고, 그동안 상대 공격에 대한 위험도 감수해야 한다.

▲ 빠른 타이밍에 건설되고 있는 함대 신호소

하지만 김도우는 폭풍함에 대한 기존의 관념을 뒤엎었다. 후반 대형 유닛을 끊어내는 것이 아닌 긴 사거리의 장점에 초점을 맞춰 활용한 것이다. 폭풍함의 긴 사거리로 미사일 포탑으로 견제를 막으려는 조중혁에게 허를 찔렀다. 게다가, 본진 자원을 쥐어짜 낸 김도우는 폭풍함의 생산 타이밍을 앞당겨 상대가 역습할 타이밍조차 주지 않았다.


■ 같은 자리의 전진 우주 관문, 하지만 색다른 지형 활용

▲ 세종과학기지에서 자주 등장하는 전진 우주 관문

세종과학기지에서 김도우가 활용한 전진 우주 관문의 위치는 예전부터 많은 선수들이 활용했다. 대부분 예언자를 생산해 상대 본진으로 빠르게 보내기 위해 그 위치를 활용했다. 김도우 역시 예언자로 초반 피해를 주며 다른 선수들과 비슷하게 시작했다.

▲ 긴 사거리를 자랑하는 폭풍함의 포격

하지만 김도우는 한 걸음 더 나아가 맵의 지형을 적극 활용했다. 다른 맵과 달리 세종 본진 뒤에 넓은 지형이 존재하고 이곳에서 사거리가 긴 폭풍함을 적극 활용한 것이다. 김도우는 폭풍함으로 조중혁의 본진 자원 채취를 마비시키고 병력을 끊어냈다. 사거리가 짧은 테란의 초반 유닛은 멀리서 포격하는 폭풍함에 저항할 수 없었다.

폭풍함의 등장에 당황한 조중혁은 건설 로봇과 병력을 뒤늦게 후퇴시켰다. 이후, 남은 병력을 의료선에 태워 반격했으나, 3개의 관문에서 충원되는 김도우의 병력에 공격이 막혔다. 결국, 김도우는 공격과 방어에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4세트를 승리로 장식했다.

세종과학기지는 오랫동안 공식 맵으로 활용되었지만, 지형적 특징을 발견하고 맞춤 빌드를 활용한 선수는 김도우밖에 없었다. 지형을 발견한 것이 주요했지만, 결승전 당일까지 빈틈 없는 판짜기와 과감한 빌드를 준비했다는 사실이 더욱 빛났다. 초반부터 추적자와 예언자를 활용한 압박으로 조중혁이 전진 우주 관문에 신경 쓰지 못하도록 했고 반격의 가능성까지 철저하게 대비한 것이다.

사실 예전의 김도우라면 예언자 견제 이후 운영을 준비했을 것이다. 하지만 '우승'에 대한 간절함이 김도우의 스타일을 바꿔놨다. 많은 전문가 및 팬들 역시 이번 결승전에서 무난한 운영 싸움으로 흘러갔을 경우 조중혁의 우세를 점쳤다. 운영형 프로토스로 대표되는 김도우가 '운영'을 버리고 '전략'을 선택했다는 것. 그리고 새로운 스타일을 완벽하게 소화해내고 우승을 차지한 것에 대해 큰 박수를 보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