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태. 대한민국의 게이머라면 이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지 않을까요? 창세기전부터 마그나카르타, 그리고 '블레이드앤소울'까지. 많은 대작에서 일러스트레이터와 AD로 활동하며 으뜸이라고 부를 수 있는 몇 안 되는 일러스트레이터죠. 해외까지도 인지도를 크게 쌓은 건 물론이고요.

그는 이제 '일러스트레이터'면서 스타트업 '시프트업'의 '대표'를 맡아 게임 개발사를 이끌어가고 있습니다. 보통 스타트업을 창업한다고 하면 대부분 프로그래머나 기획자분들이 많죠. 그래픽 디자이너나 일러스트레이터가 게임 개발사를 차린다는 건 정말 드문 편이죠. 창업을 하고 난 후 그는 어떤 일들을 겪었을지, 그리고 그가 전하는 메시지는 무엇일지…

인벤 게임 컨퍼런스 2015(IGC2015)의 마지막 강연을 장식한 김형태 대표. 그가 직접 겪고 전하는 '일러스트레이터'로서 스타트업을 시작하기 강연을 옮겨봤습니다. 기사의 양식에 맞춰 조금 각색한 부분이 있으니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 시프트업의 김형태 대표 ]

Part.1 창업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요?
안녕하세요. 김형태입니다. 제가 그동안 그래픽 디자인이나 일러스트레이터로서는 강단에 많이 섰어요. 그런데 오늘은 좀 다른 주제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스타트업'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먼저 스타트업이란 무엇일까요? 벤처 기업을 좀 멋있게 부르는 말이기도 하고, 뭐 여러가지 말이 있어요.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나 회사 차렸어요! 정도가 되겠죠. 오늘은 일러스트레이터로서 제가 겪은 일, 조금 눈높이를 낮춰서 회사를 만들어 가는 과정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 볼게요.

스타트업도 다양한 종류가 있죠? 온라인 게임을 개발하는 분들도 있을 거고, 콘솔 플랫폼도 강력하죠. 하지만 모바일 플랫폼이 열리고 나서 거대 자본 없이도 성공할 수 있는 시장이 잠깐 열렸었죠? 수많은 개발자들이 꿈을 위해서 스타트업을 차리기도 했고요. 이것도 벌써 한 2~3년전 이야기입니다.

수많은 스타트업이 생기고 사라지면서 소규모의 창업이 성공하기는 불가능하다는 의견도 나왔어요. 현실적인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시작도 안 할 순 없잖아요? 이야기를 많이 들어봤어요.



"만약 자신이 괜찮은 아이디어, 그리고 능력과 IP에 대한 집착과 갈망. 예를들어 '원피스'나 '블리츠' 같은 타이틀을 가지고 싶어해요. 그런 IP를 가지고 싶다는 갈망과 개발에 대한 열정이 있다면 스타트업은 언제든지 시작할 수 있다!"

…라고들 하시더군요. 여기 PPT에 뭔가 흐릿하게 보이는데…넘어가죠. 네, 그래요. 뭐 그렇다고 합니다. 언제든 시작을 할 수 있어요. 이 말에 현혹된 19년차 일러스트레이터 김 모씨는 창업을 해보기로 했습니다. 제 이야기죠.

창업을 위해서는 여러가지가 필요합니다.

창업을 그러면 어떻게 해야할까요? 가장 좋은 방법은 먼저 차린 사람에게 물어보는 겁니다. 근데 희한하게도 창업하신분들은 프로그래머나 기획자가 많아요. 여기 오신 분들중에 그래픽 디자이너나 일러스트레이터 분들 한 번 손 들어보시겠어요? 네 많네요. 아무튼, 그래요. 기획자나 프로그래머분들이 창업을 많이 하죠.

프로그래머는 자신이 생각한 걸 구현할 수 있는 기술이 많이 있어요. 기획자는 그걸 설계할 능력이 있죠. 하지만 그래픽 쪽으로 일하시는 분들은 문서에 맞춰 리소스를 만들다 멈추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그래픽 디자이너는 창업이 쉽지 않죠. 저도 역시 예외는 아니었어요.

어쨌든 간에, 그렇다고 해서 나랑 아는 사람이 없으니 창업을 못하겠다 하는 건 없으니까. 일단 아는 사람에게 물어봅니다. 창업했다가 망해서 다시 회사에 복직하신 아는 형님께 물어보기도 했죠. 투자자가 없냐고 물어보기도 했고요. 면식도 없는데 직접 모르는 투자자를 찾아가서 물어보기도 했고요. 10년 동안 연락하지 않았던 친구에게 연락을 해보기도 해요. 이런 걸 적극적으로 해야 해요.

능동적으로 하는 거죠. 회사는 능동적인 객체의 집합이라고 할 수 있으니까…아무튼, 이런 과정에서 정말로 중요한 인연이 생기게 됩니다.



Part.2 '사람'이 중요합니다. 신뢰를 쌓아야죠.
그럼 창업에서 가장 중요한 건 무엇이냐? 바로 사람시간입니다. 시간이 작은 이유는, 이건 뭐 어떻게 할 수가 없으니까요. 아무튼 창업에서 가장 중요한 건 사람입니다. 내가 가지지 못한 능력을 가지고 있잖아요. 저도 엄청 못하는 게 많아요. 서버 프로그램부터 클라이언트, 엔진, 시나리오 기획, UI, 이펙트, 경영 등등 너무 많아요. 그래서 사람이 꼭 필요합니다.

그리고 '나는 내가 만들 게임과 회사에 목숨을 걸 준비가 되어 있지만, 다른 사람들이 그렇지 않다.'라는 점을 꼭 기억하세요. 회사를 차리면 정말 절박해집니다. 나는 준비가 되어 있지만 다른 사람들과 같이 하는 게 중요해요. 뚜렷한 비전. 그걸 공유하고 공감대를 만들고…그리고 성공에 대한 확신과 그 근거. 그리고 개발자들 사이에서 신뢰가 필요합니다. 여기서 하나 더 중요한 것이 있는데, 바로 '주인의식'입니다.

동료들에게 '주인의식'을 심어주는 것이 중요!

주인 의식에 필요한 건 이렇게 3가지에요. '비전과 목표의 공유', '지식과 정보의 공유', '결과와 성과의 공유'. 이건 인터넷에 치면 나와요. 좋은 말이죠. 그런데 초반에는? 공유할 지식도 결과도, 성과도 없는데 어떻게 공유를 하죠? 비전과 목표로 사람들을 많이 모아서 시작할 수 있는데 그렇게 쉽지는 않죠. 여기서 필살기가 또 있습니다.

바로 미래 가치입니다. 미래에 가치가 있어질, 현재는 가치가 없는 자산. 바로 주식이죠.

다행히 당신은 회사의 주인입니다. 당신이 차렸으니까요. 주식을 발행할 권한이 있어요. 물론 지금은 아무런 가치가 없죠. '이 주식이 주당 천만 원이야' 해봐야 누가 인정해주겠어요? 저는 이 회사를 가치 있게 만들 거니까. 훌륭한 게임을 만들어서 우리 이걸 가지고 한 번 큰 가치를 만들어보자. 그렇게 주식을 나눠서 같이할 사람들의 주인의식을 높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주식은 독이 든 성배와 같아요. 대부분의 트러블은 주식으로 나옵니다. 주식을 함부로 발행해 공유했다가 대주주가 바뀌기도 하고, 주식으로 트러블이 생겨서 회사가 공중분해 되거나, 적대적인 사람에게 회사를 빼앗기기도 하죠. 신중하게 공유해야 해요. 주인의식을 같이 가질 수 있는 동료를 만들어야 합니다.

아까 필살기라고 했죠? 주식은 일종의 필살기에요. 필살기는 자주 쓰면 죽습니다. 가급적이면 필살기는 자주 쓰지 말고, 친구들과 같이하는 게 좋아요. 그렇다고 너무 필살기를 쓰는 걸 두려워하면 안 되겠죠.

어쨌든 간에, 우여곡절 끝에 파티가 결성됐습니다! 아니, 전 아직 모으고 있지만…아무튼 이렇게 모으면 됩니다. 다음은 뭘까요? 투자에요. 회사는 돈이 없으면 안 굴러가거든요.



Part.3 파티가 완성됐으면 그럼 이제 자금을 조달해봅시다.
자금조달을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요? 첫 번째로 좋은 팀이 필요하고, 다음은 좋은 프로토타입이 필요해요. 그리고 음…여기 PPT에 뭐 잘 안 보이는 게 있는데 여러 가지가 필요해요.


자, 그럼 좋은 팀을 위해서는? 우선은 좋은 리더가 필요하겠죠. 그리고 검증된 경험과 기술력을 가진 개발진, 네임 밸류가 있는 개발자들 그리고 경험이 있는 개발자 등등…그런데 저런 사람들이 모여서 회사를 시작하는 경우가 흔치는 않아요. 저건 조건을 가진 사람이 하나 둘만 있어도 감지덕지죠. 매우 힘든 일이지만, 좋은 팀은 기본적으로 좋은 투자의 조건이에요.

좋은 프로토타입. 사실 이건 좋은 팀을 꾸리고 난 후에 할 수 있는 거라 아주 어려운 겁니다. 그런데 좋은 개발진도, 좋은 프로토타입도 없으면 어떻게 투자를 받죠?

그러면 창업자 자신의 밸류. 그 가치가 투자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VC, 투자자들을 유심히 살펴보면 그들이 제안한 투자 제안서 같은 것보다 창업자의 비전에 대한 것들에 굉장히 신뢰를 가지고 투자했다는 게 많이 보이죠. 일단 자금이 없으면 회사를 세우면 안 돼요. 나만 망하면 상관없는데, 다른 사람들까지 같이 망하면 안 되잖아요. 자금 조달이 어렵다면 투자 방식의 회사를 세우면 안 되고, 소규모 팀 단위의 창업을 시작하는 게 좋습니다.


자, 그러면 자금 조달의 경로를 좀 살펴보죠. 가장 대표적으로 벤처캐피탈. 그리고 퍼블리셔가 있고요. 기술 보증기금도 있을 것이고, 개인 자금과 사금융이 있겠죠. 사금융은 별로 추천하지 않아요. 받았다가 큰일 난 사람들을 몇 알고 있거든요.

우선 상상해볼 수 있는 가장 큰 것들은 직접 투자사에 제안서를 가지고 가는 거에요. 이런 방식을 '콜드콜(Cold Call)'이라고 하는데, 이건 별로 성공률이 높지 않아요. 워낙에 많거든요. 어쨌든 지인들을 통해서 가는 게 성공률이 높다고 해요. 좋게 말하면 인적 네트워크고, 나쁘게 말하면 인맥이겠죠. 업계에서 동종 직군 이외의 다양한 인연을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저는 인적네트워크가 별로 없었어요. 오랜 시간 개발하면서 그래도 얇게나마 인연의 끈을 잡고 거슬러 올라갔더니 다행히 저한테는 미안할, 고마울 정도로 그 실을 잡아주시는 분들이 있더라고요. 그런 많은 것들을 저도 창업하면서 깨달았어요.

대부분 창업자들이 그렇겠지만…창업은 두 번 이상 경험하기가 쉽지 않아요. 연쇄 창업 하시는 분들도 있고 그걸 전문으로 하시는 분들도 있는데, 우리는 그러려고 회사를 차리는 게 아니잖아요? 저도 처음이고요, 경험이 많지는 않은데 이건 진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게 하나 있어요. 바로 계약서. 정말 중요합니다.

그는 계약서 검토의 중요성에 대해서 많이 강조했습니다.

우리는 정말 계약서를 많이 쓰죠. 근데 계약서가 참 두껍고 어려워서 읽어보기가 쉽지 않아요. 하지만 이거 제대로 안 보면 큰일 납니다. 협업하거나 이런 저런 일로 계약서를 많이 쓰게 되는데…변호사를 통해서 쓰는 게 좋습니다.

팀원들을 전부 모아놓고 꼼꼼히 살펴봐도 절대 발견하지 못하는 문장들이 숨어 있어요. 아무리 열심히 봐도 거기에 한글로 쓰여있지만 그건 한글이 아니에요. 다른 나라 말이라고 해도 될 정도죠. 변호사를 통해서 꼭 검토하시길 바랍니다. 계약서를 다 검토해보고 만족했다고 그쪽에서 문장 하나 업데이트됐다고 연락이 와서 안심하고 찍다가는 그대로 회사가 남의 것이 됩니다. 저도 그럴 뻔 했고요.

한국에서는 사실 좀 그럴 게 별로 없어요. 하지만 외국은 정말 위험합니다. 변호사도 외국어 할 줄 알아요. 주변에 외국어 잘한다고 해서 검토를 맡기시는 건 추천해 드리지 않아요. 저도 한 번 큰일 날 뻔 했죠. 다행히 상대 회사에서 이 문장은 당신 회사에 위험하다고 알려줘서 잘 넘어갔지만요. 그게 딱 한 번. 변호사를 통하지 않았던 문서인데 정말 다행이었어요.

계약서는 꼭 잘 봐야 해요. 단 한 문장으로도 내가 만들고 있는 게임과 내 회사의 주인이 바뀔 수 있어요. 어…음, 이거 이야기 안 하려고 했는데 PPT에 이미 나와 있네요. 네, 돈을 많이 주면 돼요. 좀 많이 달라고는 하는데 정말 꼼꼼하게 잘 살펴줘요. 아끼지 맙시다.



Fin. 이제 시작입니다.
자, 이제 돈이 생겼어요. 사람을 모으는 일, 신뢰를 얻는 일. 그 신뢰를 바탕으로 돈을 끌어오는 일. 참, 그리고 투자금도 예측한 것보다 많아야 해요. 좀 민감합니다. 우리는 한 5억 있으면 되겠어하고 개발하잖아요? 그럼 10억이 있어야 만들 수 있어요. 보통은 3배로 잡아요. 안 그러신 분도 있겠지만…저의 경우는 3배가 든다고 봐요.

자, 투자를 받았으면 그다음부터는 쉽죠? 사무실을 임대하고 책상과 컴퓨터를 사서 게임을 만들면 됩니다. 여기서부턴 다 아시는 거죠? 아니에요.


사실은 게임을 만드는 것이 가장 어렵습니다. 이걸 알 수 있는 게 바로 이런 시간이에요. 오늘 열린 인벤 게임 컨퍼런스도 대부분 게임을 만드는 이야기였잖아요? 이제부터 그런 강연을 들어야 하는 거에요. 사람을 모으고 투자를 받은 다음에. 이제 그런 강연을 듣고 공부도 많이 하고 경험도 쌓으면서 좋은 게임을 만드는데 매진해야 하는 게 가장 큰일입니다.

창업은 재미있는 게임을 만들기 위해 시작하는 것입니다. 이건 창업을 하는, 아니 게임을 만드는 모든 분이 끝까지 기억해야 할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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