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솔직한 감상부터 전해야겠습니다. 스팀 컨트롤러, 생각보다는 쓸만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기사를 보는 분들에게 중요한 것은 그것이 아닐 겁니다. 결국 더 나아간 결론이 필요한거죠. '이걸 지금 사야돼 말아야돼?' 하는 고민에 대한 답 말입니다. 그리고 저는 그 답도 준비했습니다. 간단합니다. "아직은 아닙니다."

그렇담 다음 질문이 또 있을 겁니다. '왜?' 당연히 거기에 대한 답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건 그리 간단하지 않습니다. 조금 조리있게 말할 필요가 있어요. 그래서, 5가지로 그 이유를 추려보았습니다. 여러분의 49.99달러가 주머니 속에서 나오지 말아야 하는 이유, 지금부터 들려 드리겠습니다.



사실 그렇게까지 못 쓸 물건은 아니지만


먼저, 사실 '스팀 컨트롤러'는 흔히들 이야기하는 것처럼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물건은 아니라는 것을 명확히 해야 겠습니다. 하드웨어 자체는 꽤 괜찮게 만들어졌어요. 기존의 컨트롤러와 다른, 조작부가 오히려 푹 들어간 형상을 하고 있지만 조작을 어렵게 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쥐고 있을 때 컨트롤러 앞부분이 다른 패드에 비해 좀 더 높이 위치하는 차이가 있죠. 그립감도 좋습니다.


많은 분이 걱정할, XYAB 버튼의 위치와 트랙패드 조작 자체는 큰 문제가 없습니다. 트랙패드는 생각보다 세밀한 조작이 가능하고, 또 특유의 햅틱 진동으로 인해 마치 트랙볼을 다루는 듯한 감각을 줍니다. 그게 게임에 적합한가는 조금 뒤에 다루도록 하고, 트랙패드는 조작면에서 큰 발전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건 사실입니다.

이 트랙패드는 굉장히 다양한 조합의 조작 설정을 고를 수 있는데, 이를테면 입력 조작 자체는 마우스와 같지만 컴퓨터에 전달되는 입력은 조이스틱인 방식도 있고, 혹은 완전히 마우스와 같을 수도, 또는 조이스틱 그대로의 조작을 감도에 따라 구현할 수도 있습니다. 또 기존의 조이패드보다 더 많은 키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키 부족을 느낄 일도 없습니다.


그만큼, 이상대로 완벽히 구현이 된다면 이 '스팀 컨트롤러'는 스팀 안의 모든 게임마다 정해져있는 제각각의 최적의 조작법에 완벽히 대응할 수 있습니다. 조이패드가 어울리는 게임이라면 조이패드처럼, 키보드+마우스가 어울리는 게임이라면 그렇게, 혹은 '스팀 컨트롤러'만이 가능한 조작법을 만들어낼 수도 있습니다. 그만큼 가능성이 높은 컨트롤러인 것이죠.

물론, 문제는 단서에 있습니다. '이상대로, 완벽히' 구현한다는 것, 제아무리 상상이 구체적이어도 그걸 현실로 만드는건 많은 제약이 따르기 마련이거든요. 그리고 '스팀 컨트롤러'의 한계 또한 이런 현실의 영역에 걸쳐 있습니다.



그래서, 아직은 안사도 되는 5가지 이유


1. 하드웨어, 괜찮다고 했지 완벽하다고는 안했다


일단 첫번째 이유는 바로 하드웨어에 있습니다. 조금 전에 하드웨어 자체는 나쁘지 않고 잘 만들어졌다 평했었지만, 그 말이 곧 '게임에 최적화 되었다'는 뜻은 아니거든요. 제가 말하고 싶은 하드웨어적 문제는 엄지로 조작하는 상판이 아닌, 전면부의 트리거와 범퍼, 그리고 후면 버튼 두개에 몰려 있습니다.

범퍼와 트리거는 매우 강한 반발을 가졌으면서도 동작거리가 짧은, 조이스틱 클릭 스타일의 버튼을 달고 있는데, 이 때문에 범퍼를 누르는데 순간적으로 꽤 힘이 들어갑니다. 트리거의 경우는 자연스럽게 당기는 방아쇠 조작과 모두 당겼을 때 한 번 더 누를 수 있는 클릭 버튼의 두가지로 분리되는데, 공식 소개영상에서 보셨을 하나의 버튼으로 조준-사격을 가능하게 하려는 의도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이 클릭 버튼도 강한 클릭을 해야만 한다는거지요.


이런 문제 때문에 앞쪽의 범퍼나 트리거를 조작하고자 하면 생각보다 힘을 더 주게 되서, 자연스럽게 손을 올리고 있는 트랙패드의 패드 클릭을 눌러버리게 되거나, 컨트롤러를 쥐고 있는 중지, 약지에 힘이 들어가 후면 버튼을 눌러버리게 됩니다. 이는 제법 큰 문젠데, 사실상 트리거와 범퍼는 요즘 게임들에서 가장 많이 눌리는 버튼들 중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트리거의 2중 버튼은 사실상 사장되고 당기기만 사용되고, 또 범퍼는 꽤 꺼리게 됩니다. 이 부분은 버튼 부품과 위치를 바꾸는 것만으로도 해결할 수는 있지만, 이번 세대 제품에서는 어려운 일 같습니다.


2. 막강한 트랙패드 세팅 난이도


두번째 문제는 바로 앞서 제법 호평한 트랙패드입니다. 분명, 이 트랙패드는 매우 신선한 시도이고, 어쩌면 '스팀 컨트롤러'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입니다. 과연 이 트랙패드가 마우스의 신속함과 세밀함, 그리고 조이스틱의 편리함과 정확함을 모두 담고 있는가가 '스팀 컨트롤러'의 성공 여부를 가릴 가장 큰 부분이죠.

하지만 애석하게도, '스팀 컨트롤러'의 트랙패드는 양쪽을 100% 담아내지는 못했습니다. 가장 중요한 기능이라 할 수 있는 'Mouse-like Joystick' 은 게임에 따라 효과적인 정도의 차이가 너무나 큽니다. '울펜슈타인 : 디 올드 블러드' 에서는 말 그대로 패드를 대체할 수 있을만큼 좋은 조작감을 보여주지만, '헬다이버스'나 '폴아웃4'에서는 어떻게 게임을 하라는건가 싶은 애매한 조작감을 선사합니다.


물론, '시티즈 : 스카이라인'을 플레이 할 때는 마우스 그대로의 조작감으로 트랙볼을 굴리듯 다루면 되었기에 효과적이긴 했습니다. 실제로 이 게임은 '스팀 컨트롤러'로 하기에 가장 좋은 게임 중 하나죠. 하지만 그렇다고 키보드+마우스로 할 때와 차원이 다른 경험을 선사한다거나, 이게 없으면 게임을 할 수 없는 수준도 아닙니다. 뭐, 혹시나 건물을 지을 때마다 진동 피드백으로 타격감을 줬다면 완전 신선한 시도였을 수는 있겠습니다.

'스팀 컨트롤러'의 트랙패드는, 분명 쓰는 저도 이게 완벽히 익숙해지고, 또 적절한 세팅을 곁들인다면 그 어떤 게임에도 적절히 사용할 수 있는 도구가 될 것이라 쉽게 예측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게 지금은 아니에요. 트랙패드의 감도는 몇 번 만져보는 걸로 다 파악할 수 있을 만큼 고정된 값도 아니며, 여기에 가속도를 더하고, 패드 영역을 나누기 시작하면 훨씬 복잡해집니다. 언제쯤 이게 손에 익을지 감이 안잡힙니다. 밸브가 발벗고 나서서 모든 게임을 조율하지 않는한, 매우 어려운 문제가 될겁니다.


3. 너무 적은 지원 게임, 부족한 소프트 최적화

이걸 한시간동안 보고 있으면 머리가 아파온다

'스팀 컨트롤러'는 앞서 설명했듯 제각각 버튼마다 다른 동작을 할당할 수 있고, 그 가지수도 많습니다. 심지어 각 트랙패드별 감도와 가속도, 기울기 센서의 정도도 설정할 수 있죠. 그런데 이게 오히려 문제가 됩니다. 아직 모든 게임이 '스팀 컨트롤러'에 맞는 정답에 가까운 조작법을 찾아내지 못한 까닭에, 플레이어가 일일히 모든 세팅을 바꾸어주고 하나씩 맞춰나가야 한다는 겁니다.

실제로 제가 '울펜슈타인 : 디 올드 블러드'를 플레이하기 위해 '스팀 컨트롤러'를 써먹기 좋게 손보는데는 30분이 넘는 세팅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마저도 초반부를 플레이하며 몇 번 더 고쳐줘야 했죠. 그나마 빅픽처 모드를 통해 게임 플레이 도중 언제든 설정을 바꿔줄 수 있는 것은 좋았습니다. 하지만 이런 문제로, 컨트롤러를 지원하지 않는 게임도 수두룩했고, 일일히 게이지를 만져가며 조작법을 스스로 찾아가야하는 건 짜증스러웠습니다.


콘솔 게임기의 객관적인 평균 성능이 PC에 비해 부족한데도 수많은 사람들이 콘솔 게임기를 사고 콘솔 게임기로 게임을 즐기는 이유 중 하나는 바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모두가 매우 높은 최적화 수준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이미 최적의 조작 방식을, 두개의 조이스틱과 한개의 방향 패드, 4개의 상단 버튼과 한쌍씩의 트리거와 범퍼라는 정형화된 틀 안에서 구현하기 때문에, 그 어떤 플랫폼이라도 일단 조이패드를 써 본 사람이라면 매우 빠르게 모든 게임의 조작방식에 익숙해질 수 있습니다.

한국 게이머들이 조이패드를 사용하는 비중이 매우 낮은건 조이패드가 키보드+마우스에 비해서 열등한 조작체계여서가 아니라, 그 장점을 느낄 수 없는 환경에서 게임을 플레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조작체계는 빠르고 쉽게 익숙해질 수 있을 것, 또 어느정도 정형화 된 모범 조작법이 있을 것이 필수적입니다. 애석하게도 '스팀 컨트롤러'는, 둘 다 많이 부족합니다.


4. 언제 써야할지 모르는 애매한 포지셔닝


다음 문제는 바로 지금 이 기기가 가진 위치입니다. '스팀 컨트롤러'의 개발 계기와 목표는 확실합니다. 마우스+키보드와 조이패드의 장점을 합치자는 것이죠. 하지만 지금의 결과물은 좀 애매합니다. 쉽게 말해, 책상 앞에서 시뮬레이션 게임을 할 때 마우스를 두고 '스팀 컨트롤러'를 선택할 이유가 없고, 슈팅 게임이나 액션 게임을 할 때 XBOX360 컨트롤러를 두고 '스팀 컨트롤러'를 선택할 이유가 없습니다.


굳이 '스팀 컨트롤러'가 이들 기존의 조작체계보다 우월해질 수 있는 상황을 생각해본다면, 그건 키보드+마우스 조합을 사용하기 힘든 거실의 소파 같은 장소에서 슈팅이나 액션이 아닌 시뮬레이션 게임을 해야할 때 정도가 됩니다. 그런데 일단 이런 상황은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해외로 가도 매우 희귀합니다. 물론 편안한 소파가 있는 거실에서 먹을 것 먹으며 고화질, 대화면의 TV로 게임을 한다는건 정말 매력적인 일이지만, 보통 그런 장소엔 콘솔 게임기가 이미 있거나, 아니면 컴퓨터를 꺼내 스팀 게임을 즐기기에 그닥 좋지 않은 환경일 경우가 십중팔구죠.


만약 '스팀 컨트롤러'와 함께 발매된 '스팀 링크'를 가지고 있어서 거실에서 편하게 스팀 게임들을 즐길 수 있거나, '스팀 머신'을 구매할 계획이 있다면 이런 문제는 많이 해소 됩니다. 그럼에도 이런 상황에서 게임을 할 때 마저 '스팀 컨트롤러'는 최선이 아닌 그저 차악이어서 선택하는 것에 가까운 인상을 줍니다. 그야말로 적절한 포지셔닝에 실패한 것이죠.

밸브는 스팀과 게임들을 거실로 가져오기 위해 계속해서 노력해 왔습니다. 결국 선택은 두가지입니다. '스팀 컨트롤러'를 제대로 사용하기 위해 '스팀 링크'와 '스팀 머신'을 구매할 것인가, 아니면 조금의 불편을 감수하고서라도 컴퓨터 앞에 앉아 게임을 할 것인가. 지금은 후자가 압도적으로 유리하고, 장점을 더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5.진동은 구시대의 유물?


제 아무리 키보드+마우스가 정확하고 빨라도, 도저히 따라할 수 없는 조이패드식 컨트롤러의 장점은 바로 진동을 비롯한 '손맛' 입니다. 손에 착 감기는 컨트롤러를 활용해 오작동하거나 잘못 입력할 위험 없이 게임을 플레이하고, 거기서 느껴지는 강렬한 진동 피드백을 받는 것은 오직 조이패드에서만 가능한 강점이죠.

사실 이제는 너무나 당연한 것이기에 구입 단계에서부터 별 고려없이, 조사없이 구입을 했습니다. 그리고 처음 컨트롤러를 쥐고 게임을 할 때가 되서야 당황했습니다. 솔직히, 처음에는 제 패드가 불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곧 건전지를 넣을 때, 보통 진동 모터가 들어가는 손잡이 부분에 오직 건전지를 위한 자리만 있었던 것이 기억났죠.

사실 현세대 진동 최강자

네, '스팀 컨트롤러'에는 다른 조이패드처럼 강렬한 진동 피드백이 없습니다. 단지, 입력시마다 이를 확인시켜주는 햅틱 피드백이 있죠. 사실 트랙패드를 조작하다 보면 마치 트랙볼 같은 느낌을 주는 이 햅틱 피드백이 재미있긴 합니다. 하지만 지나치게 소음 같아서 짜증을 나게 할 때도 있고, 무엇보다, 우리가 원하는 그 강력한 총기 반동 같은 진동이 아닙니다.

좀 지향점이 다르긴 하지만, 일단 '스팀 컨트롤러'도 하나의 조이패드입니다. 하지만, 거기서 만들 수 있는 가장 간단하고 확실한 강점 하나를 날려버렸죠. 키보드+마우스에 익숙한 국내 게이머들은 진동 피드백의 가치를 모르는 경우가 많지만, 패드 좀 쥐어본 사람이라면 그게 얼마나 중요한지 알겁니다. 그 찰진 손맛이요.



"그럼 언제 사지?"



'스팀 컨트롤러' 공식소개영상

정리하자면 그렇습니다. XBOX360 패드나 듀얼쇼크 시리즈가 강정호 혹은 류현진 급 현역 야구선수라면, '스팀 컨트롤러'는 이제 막 2군에 입단한 루키에 가깝습니다. 아직은 장타도 제대로 못치고, 수비마저도 부족합니다. 송구가 잘되냐면 그것도 아니죠. 하지만 포텐셜이 있는 친구입니다. 1미터 90센티의 건장한 체격에, 어느 정도 주루 센스도 갖추고 있고, 아직 미숙하지만 남들과는 다른, 마치 박정태 같은 타격폼을 가졌다고나 할까요?

밸브는 '스팀 컨트롤러'를 위시한 새로운 하드웨어 프로젝트들을 시작하면서, 처음부터 우리들에게 그 기기들의 '이상'을 보여주었습니다. 어쩌면 그 때문에 현실에 비해 기대가 너무 비대해진게 아닐까 합니다. 하고자 하는 게임이 어떤 장르이던 가리지 않고, 트랙패드를 가지고 마우스처럼 신속 정확한 조준을 가능케 하고, 조이스틱의 부드럽고 편안한 움직임, 트리거의 찰진 손맛, 어디서나, 앉아서나 누워서나 게임을 할 수 있는 편안함까지. 그 모든걸 담은 '궁극의 컨트롤러'를 기대했지요. 사실 지금까지 제시된 비전이나 앞으로의 이상을 볼 때 이게 불가능한 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래도 아직은, 갈 길이 멉니다. 컴퓨터용 마이크로 프로세서의 절대강자 인텔이 고수하여 유명해진 전략으로 '틱-톡 전략'이 있죠. 간단히 말해, '톡'을 통해 새로운 마이크로 프로세서를 만들고, '틱'을 통해 이 완성도와 성능을 높입니다. 요즘 대부분의 전자제품들은 모두 이와 비슷한 전략을 쓰고 있고, 밸브 또한 그럴 것이라는 확신을 합니다.

이번 '스팀 컨트롤러'는 확실히 '톡'입니다. 이걸 '틱'이라고 한다면 밸브는 좀 혼이 나야겠죠. 만약 여러분이 지금 호기심이 너무나 넘쳐서 49.99달러를 내고 베타테스트를 하고 싶다면, 말리고 싶습니다. 다만 그게 이 컨트롤러를 아예 포기하라는건 아니에요. 제목에 '지금'이 들어가 있는 이유가 바로 그겁니다.


이 첫 제품의 완성도는 차치하고서, '스팀 컨트롤러'의 컨셉트는 아직도 무척 매력적입니다. 그리고 어느 정도(한 60% 정도라고 생각합니다)는 그걸 구현했죠. 이제 '스팀 링크'가 대중적으로 보급되고, '스팀 머신'이 흔해지며, '스팀 OS'로 구동되는 게임이 넘쳐나게 된다면 그때 차기 '스팀 컨트롤러'는 빛을 볼 수 있을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니까, 그때 사세요. 지금은 치킨을 시키시고요. 그럼 모두들 즐거운 게임 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