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크래프트(이하 스타)는 유저와 프로게이머가 발전시킬 수 있는 게임이다. 개발사를 놀라게 할 만한 빌드와 운영이 새롭게 등장했고, 단순한 유닛 성능만으로 게임의 승부를 판가름할 수 없었다. 그리고 종족 간 밸런스에 관한 논쟁을 넘어 새로운 길을 제시한 경기가 있다. 스타1 시절 2007 곰티비 MSL 결승전에서 다크템플러라는 '비수'를 꺼낸 김택용, 그리고 이번 2016 스타2 스타리그 시즌1 결승전에서 박령우의 맹독충이 새로운 돌풍을 일으켰다.

우승자와 준우승자가 갈리는 중요한 결승전 무대. 두 강심장은 겁 없이 그동안 공식 경기에서 시도해보지 않은 새로운 빌드를 꺼냈다. 김택용의 다크템플러, 박령우의 맹독충 드랍은 그들이 활용하기 전까지 단순한 올인 카드였다. 전략이 통하면 승리, 막히면 곧 패배를 불러와 빈틈 없는 프로들의 결승전 다전제에서 자주 등장하기 힘들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두 선수는 기존 관념을 뛰어넘는 운영을 보여줬다. 김택용의 커세어-다크템플러 드랍은 프로 무대에서도 한동안 힘겨웠던 저그전을 극복할 만한 중요한 열쇠가 됐다. 박령우는 매 세트 맹독충 드랍을 중심으로 경기를 풀어가며 최고의 안정감과 후반 화력을 자랑하는 김대엽(kt)을 격파했다. 김대엽이 후반만 가면 승리한다는 의견이 있었지만, 박령우는 초반부터 후반까지 주도권을 놓아주질 않았다.





■ 토스전 맹독충은 올인 카드? 운영형 유닛으로 재조명


'맹독충 드랍'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선수는 진에어 그린윙스의 이병렬이다. 화끈한 맹독충 드랍으로 프로리그 포스트 시즌에서 주성욱(kt), 김준호(CJ)와 같은 프로토스 에이스를 격파한 경험이있다. 상대는 허를 찌르는 전략으로 무장한 이병렬이 어떤 전략을 꺼낼지 모르기에 프로리그 단판제에서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다전제에서 이병렬은 자신을 상징하는 맹독충 드랍을 집요하게 활용하지 못했다. 상대가 첫 세트에서 맹독충 올인 공격 패턴을 상대가 파악해버린다면, 나머지 세트는 이에 대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른 저그 역시 개인리그 다전제에서 맹독충 카드를 수차례 활용하진 못할 것 같았다.

하지만 박령우는 달랐다. 많은 이들에게 올인 공격으로 자리 잡았던 맹독충 드랍으로 운영을 시도한 것. 첫 세트에서 박령우는 다방향 맹독충 드랍에 여왕까지 동원해 강력한 올인성 공격을 퍼부었다. 단순한 기선 제압용인 줄 알았던 맹독충은 2세트에서도 다시 등장했다. 내성이 생긴 김대엽은 맹독충 드랍을 잘 막아내며 위기를 극복한 것처럼 보였다. 문제는 맹독충이 아니었다. 김대엽이 맹독충 드랍 수비에 집중하는 동안 박령우는 빠르게 멀티를 확보해 자원에서 압도해버렸다.

김대엽은 뒤늦게 이 사실을 알고 진출했지만, 병력 상성마저 박령우에게 밀리고 말았다. 최근 저그가 가장 자주 활용하는 바퀴-궤멸충, 가시 지옥 중심의 조합을 상대하기 위해 다수의 불멸자를 모았다. 무난히 후반으로 가면 프로토스의 고급 유닛 조합이 승리할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대엽의 불멸자는 130기가 넘는 박령우의 저글링에 뒤덮여 고철이 됐다.






■ 같은 값 최고의 효율! 상성과 인구수 운영 중심 저글링-맹독충


프로토스 고급 병력의 중심을 무너뜨린 유닛은 다름 아닌 저글링이었다. 박령우는 4세트에서도 저글링, 맹독충을 중심으로 후반까지 이끌고 갔다. 값싼 유닛을 뽑고 나머지 자원을 모두 고급 병력에 투자했다.

후반 인구수 관리에서도 저글링, 맹독충은 엄청난 효율을 자랑했다. 인구수 200을 채운 이후 궤멸충-히드라리스크-가시 지옥과 같은 유닛은 함부로 버리기 힘들다. 병력에 공백이 생겼을 시 상대가 그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공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글링과 맹독충은 원하는 타이밍에 빠르게 병력을 충원, 소모가 가능하다. 무리 군주-울트라리스크와 같은 군락 유닛을 뽑을 자원이 생길 때마다 가벼운 마음으로 상대의 자원 채취 지역으로 저글링과 맹독충을 던져버리면 그만이다.

저글링-맹독충의 카운터는 거신이었다. 강력한 광역 대미지로 군단의 심장까지 맹활약을 펼친 유닛이다. 하지만 공허의 유산에서 대미지가 약화되고 많은 이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진 유닛이 돼버렸다. 박령우는 로토스가 최근 거신을 쉽게 꺼내지 못한다는 점을 노려 저글링-맹독충 체제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었다.


■ 제공권이 없다면 주도권이라도! kt 토스의 힘 불사조 넘어선 박령우


최근 kt 롤스터의 프로토스는 저그전에서 막강한 힘을 발휘했다. 프로리그에서 박령우를 상대로 승리를 따낸 주성욱을 비롯해 강민수를 꺾고 결승에 오른 김대엽. 두 선수의 저그전 강세의 기본 바탕은 불사조 운영에 있었다. 다수의 불사조로 제공권을 장악하고 견제부터 교전까지 확실히 주도권을 잡았다. 상대하는 입장에서 빠른 이동 속도, 공격 속도를 자랑하는 불사조를 제압할 만한 방법은 잘 떠오르지 않았다.

이에 박령우는 불사조를 제압하기보다 움직임을 제한하는 선택을 했다. 맹독충 드랍이 한 번 실패하더라도 끊임없이 대군주를 보냈다. 단 하나의 맹독충이라도 큰 변수를 만들 수 있기에 불사조는 '보이지 않는 폭사 위험'을 대비해 수비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불사조의 정찰 역시 제한됐다. 저글링 중심의 병력을 뽑아도 상대의 체제를 정찰하지 못한 김대엽은 가장 안전한 불멸자를 생산할 수밖에 없었다. 평소 불사조 정찰로 상대 체제에 맞춤 빌드를 준비할 수 있었지만, 본진에 묶여 정찰 조차 힘들어졌다. 박령우는 불사조를 멀쩡히 살려뒀지만, 그 위력은 절반도 발휘하지 못하는 상황을 연출한 것이다.

박령우는 이번 우승으로 평가가 완전히 달라졌다. 단순히 공격만 잘하는 매서운 저그에서 판짜기와 운영 능력까지 뛰어난 프로게이머로 거듭났다. 그것도 단순히 상대에게 맞춰가는 운영이 아닌 자신이 경기의 주도권을 쥐고 상대에게 움직임을 강요하는 '새 시대의 폭군'의 모습이었다. 프로토스전 맹독충은 올인 뿐이라는 관념을 바꾼 박령우. 결승전 인터뷰에서 말했던 것처럼 박령우의 맹독충 운영이 새 시대의 프로토스전 패러다임으로 거듭날지 지켜보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