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워크래프트' 프랜차이즈는 '월드오브워크래프트'를 기점으로 그 뛰어난 번역과 현지화의 예시로서 한국 게임계에서 두고두고 회자되곤 했다. 그만큼 순우리말의 어감을 잘 살리며 의미를 유지하는데 특출난 모습을 보여주며, 해외에서 출발한 '월드오브워크래프트'라는 문화가 친숙하게 다가오는데 일조했다.

그리고 이번 영화 '워크래프트'의 개봉을 앞두고 이 영화의 번역에도 많은 관심이 쏠린 것은 당연지사. 사람들은 기존 블리자드 코리아의 번역에 높은 신뢰를 가지고 있었기에 전반적으로 믿음을 보냈지만, 일각에서는 게임계와는 다른 영화 번역계의 사정 때문에 걱정의 시선을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영화 번역을 맡은 이가 WOW 경력 10년차의 베테랑 게이머라는 것이 밝혀지면서, 우려들은 상당 부분 불식됐다.

그리고 그 베테랑 게이머이자 '워크래프트' 영화의 번역을 맡은 황석희 번역가를 실제로 만나 볼 수 있었다. 궁금한 것은 한가득이었지만, 침착하게 조곤조곤 정리해 이야기를 나눠보았다.

▲ 황석희 번역가





Q. 워크래프트 영화의 마케팅 포인트로 와우저가 번역했다는 것을 내세우고 있다. 본인의 와우력에 대해 이야기 해달라.

A. 오픈 베타 때부터 대학시절을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와 함께 했다. 4년 정도 플레이를 했고 일에 매진하느라 잠시 쉬다가 결혼 전 또 다시 한참 하다가 현재 아내 몰래 조금 조금씩 플레이 하고 있다(웃음). 불타는 성전은 못했고, 대격변까지 해보고 최근 영화 작업을 하면서 호드를 플레이 해봤다. 이전에는 주로 얼라이언스를 해서, 길드까지 창설해 길드장을 했었다. 얼라이언스에서 맞춘 장비들에 대한 애착이 커 호드 쪽으로 넘어가는게 쉽지 않았다.


Q. 워크래프트 영화 번역을 하면서 특별히 신경 써서 진행 한 부분이 있다면?

A. 게임 내 고유명사 번역이 원작과 영화에서 조금씩 다른 부분이 있다. 예를 들어 이전에는 ‘골드샤이어’라고 칭했던 지역이 지금은 ‘황금골’과 같이 변경이 되었듯, 영화에서도 황금골로 번역을 한 것이 그렇다.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내 존재하지 않는 고유명사들도 더러 존재하는데 이는 블리자드 코리아의 현지화 팀 분들과 상의하여 한국 스럽게 바꾸고자 노력했다. 예를 들어 ‘그랜드 햄릿’ 같은 고유명사를 ‘너른마을’ 로 변경한 것이 그것이다. 이런 식으로 새롭게 창조한 고유명사들이 있고 나머지는 거의 게임과 같도록 했다.




Q. 아무래도 영화의 번역을 진행 하여 영화를 이미 충분히 시청 했을 것 같다. 영화평 한번 부탁드린다.

A. 대개 관객들이 걱정하는 것은, 자신이 얼라이언스와 호드가 있는 세계관에 대해 잘 모른다는 것이다. 그렇게 따지면 반지의 제왕 역시 두꺼운 소설책을 다 접한 후 영화를 본 사람이 많지 않았던 것과 같이 워크래프트 게임을 즐겼던 게이머 입장에서 봤을 때에도 굳이 게임을 즐겼던 경험이 없어도 영화를 즐기는데 무리가 없어 보인다. 오히려 신선할 것으로 생각된다. 영화를 수없이 돌려보았고, 내부 시사도 참여 하였는데, 그리 크지 않은 공간 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가진 사운드가 굉장했다. 게임에서의 타격감이 고스란히 영화에서 느껴질 정도였다. 영화 자체가 굉장히 박력이 있고, 큰 화면으로 보면 굉장히 실감날 것 같다. 아이맥스 관람에 큰 기대 하고있다.


Q. 해외에서는 일반 관객과 게임 팬의 차이를 고려하지 못했다는 평이 있는데, 일반 관람객을 위해 번역에 신경 쓴 부분이 있는지?

A. 게이머들이 소외감을 느끼지 않도록, 한편 일반 관객이 봤을 때도 소외감을 느끼지 않도록 번역하고자 했다. 원작의 느낌을 최대한 살리되 어색하지 않도록 신경을 썼다. 특히 '막고라' 라는 단어가 있는데, 이걸 단순히 결투라고만 번역하자니 고유 명사의 어감을 좋아하는 호드 플레이어들이 슬퍼할 것이라고 생각하여, 처음 언급 시 ‘막고라(결투)’ 라고 같이 쓰고 이후 막고라 라고만 하는 등의 배치를 했다.


Q. 등장 인물 중 한 명에게 감정을 이입해서 본다고 하면, 누구에게 이입이 많이 되는가?

A. 개인적으로는 듀로탄에 감정이입이 많이 됐다. 이 영화를 통틀어서 가장 멋있는 캐릭터라고 생각한다. 로서도 무척 멋있지만, 전 뼛속까지 얼라이언스이긴 하지만 듀로탄의 멋짐을 따라올 수가 없다.
영화의 주인공이 둘로 나뉘어져 있는데, 관객 중에 “왜 주인공이 괴물이야!” 하는 분도 봤다. 그러면서 과연 오크에 감정 이입이 되겠느냐 하고 의문을 보이시는데, 그럼에도 멋지고, 순정마초 같은 캐릭터여서 많은 것이 느껴진다. 호드 분들이라면 정말 좋아할 것이고.


▲ 영화의 듀로탄


Q. 영화를 보는 일반 관객들이 게임에 관심을 가질 것 같은가?

A. 가지는 분들도 있을 거다. 하지만 영화랑 게임을 받아들이는 느낌이 너무나 달라서, 관객과 게이머의 반응은 같진 않을 것 같다. 자신있게 이렇다 라고 말하긴 어렵지만, 자연스럽게 어느정도 관심이 쏠릴 것이라고는 본다.


Q. 마블 코믹스와 MCU의 관계처럼 아예 별개의 세계관으로서 염두를 두고 봐야하나?

A. 그런건 아니다. 와우저 중에서도 굴단과 안두인 로서가 나오는 세계관을 아는 사람이 별로 없다. 1차 대전쟁 시기인데, 정말 관심이 있던 사람이 아니면 그럴거다. 그래서 관객과 게이머의 차이를 언급하기 그런게, 둘 다 비슷한 입장이다. 이 세계관은 아마 양쪽 관중 다 익숙하지 않은 것이기에, 상관이 없다고 생각한다.


Q. 워크래프트가 게임으로도 있지만 소설로도 스토리텔링을 하는데, 소설은 읽은 적이 있는지?

A. 소설을 본적은 없다. 다만 이 영화 프리퀄 소설이 출간될 예정인데, 그 책의 번역가 분과도 개인적인 친분이 있기 때문에 여러가지 의논을 한다.


Q. 영화와 소설, 게임 모두가 시너지를 내고자 노력한 것 같다.

A. 가능하면 그 내용들을 살려서 가려고 한다. 기존에 너무 익숙한 용어들도 있고, 되려 기존의 분들은 이질감을 느끼는 것도 있을 것이다. 이런 노력이 프랜차이즈를 묶어서 갈 수 있는 힘이 된다고 본다.




Q. 특별히 비중이 높은 캐릭터가 있는지?

A.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이 영화에서 주목하기 쉬운 캐릭터는 듀로탄이다. 제작 기획 단계에서 원래 안은 얼라이언스가 더 비중이 높았는데, 감독이 호드를 매우 좋아해서 호드와 비중이 5대5로 잡힌 것으로 알고 있다. 영화 측면에서도 듀로탄이 호드를 이끌고 이주를 하기 시작해서 인간과 충돌하는 과정을 온몸으로 피튀겨가며 보여주는 인물이기 때문에, 워크래프트 영화가 몇 편이 이어질지 모르겠지만 두고두고 회자될 캐릭터다.


Q. 후속작이 나온다면 또 번역으로 참여하고 싶은가?

A. 물론이다. 당연한거 아닐까?


Q. 얼라이언스와 호드의 대립을 다룬 만큼, 영화 내에서 어느 한쪽만 선과 악으로 부각되는 경우가 있을까?

A. 말씀드린 것처럼 일방적인 선과 악의 구조가 아니다. 호드 중에서도, 얼라이언스 중에서도 악인과 선인이 있다. 어떤 세력이 악하다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얼라이언스가 야비하다는 이야기를 하는데, 사실 왜그러는지 모르겠다.(웃음).

여기서 가장 선명한 악인은 굴단이다. 얼라이언스 입장에서는 어리둥절하게 당하는, 방어전을 치르는 입장이고, 오히려 호드가 침공자의 입장이다. 모두가 사연이 있다.


▲ 워크래프트에서 나쁜 오크의 상징인 굴단


Q. '워크래프트' 세계관 전체 중에서 이 영화가 얼마나 되는 부분을 담고 있는가?

A. 먼저 영화가 모든 워크래프트 세계관의 이야기를 담진 않았다. 너무 길고 방대한 스토리다. 블리자드 내에서도 설정을 정립하는 과정이 있었기 때문에, 모든 설정을 하나하나 꺼내놓고 점검해 나가기 보다는 관객들이 좀더 받아들이기 쉬운, 여유가 있고 재편성한 세계관으로 구성한 것 같다.


Q. '반지의 제왕' 원작과 영화처럼, '워크래프트' 원작과 영화가 다른 부분이 있다면?

A. 가로나의 역할이 원작과 약간 차이가 있다. 개인적으로는 원작의 가로나가 더 매력적이라고 생각하는데. 다루지 못해서 아쉽다기 보다는 앞으로 더 나올 것이 기대된다. 반지의제왕 1편을 봤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다. 반지 원정대에 비하면 첫편으로서의 스펙타클함이 더 강조되어 있다.


Q. 와우저로서 번역을 하면서 고유명사를 쓰고 싶었지만 어쩔 수 없이 우리말로 표현 한 경우들이 있는지?

A. 없는 것 같다. 기존 블리자드 코리아의 번역 자체가 무척 훌륭하다. 관객 중에서 블리자드 코리아가 번역을 하는게 낫지 않겠냐 할 정도로. 이를테면 '돌망루 요새' 같은 것도 원문은 'Stone watch' 인데, 그런 듣기도 쓰기도 쉬운 말을 고르는게 참 훌륭한 것 같다.


Q. '워크래프트1'을 해봤는지? 또 오그림의 소속 부족에 설정 변경이 있는 걸로 아는데.

A. 해봤다. 무척 오래 전이고, 그 이후에 WOW를 더 오래 했던 사람이기 때문에. 한가지 어려움은 호드가 익숙하지 않았다. 호드 유저들이 쓰는 말과, NPC 들이 하는 말 같은 것도 잘 몰랐다. 그래서 이번에 번역하면서 호드 캐릭터를 하나 새로 만들었다. 그 전에는 수장팟 다닐 때나 들어가던 오그리마 같은 곳을 돌아다녔다. 상점도 구경하고.

오그림 둠해머와 듀로탄은 모두 서리늑대 부족 소속으로 시작한다. 원작과 다른데, 블랙핸드나 굴단은 어느 부족이냐가 뚜렷하게 나오지 않는데, 부족이 확실하게 나오는 캐릭터는 오그림과 듀로탄 둘 뿐이다.


Q. 전반적으로 원작의 설정이 바뀐 부분이 있는데, 카드가와 메디브의 관계는 어떤가?

A. 우선 카드가가 여기선 늙지 않는다. 전반적으로 기본적인 설정만 비슷하다고 보면 될 것 같다. 티리스팔의 수호자 메디브인 것은 기본적으로 같고, 타락 등의 설정도 유지되지만, 디테일이 다르다. 기존의 워크래프트 세계관을 아는 분들이라면 무엇이 어떻게 바뀌었는가를 찾아보는 것도 즐거움일 것 같다.


▲ 영화에 등장하는 카드가의 모습


Q. 가장 인상적인 연기는?

A. 역시 듀로탄이다. CG가 많이 입혀졌을텐데도 굉장히 맹렬히 연기를 하는게 느껴졌다. CG캐릭터 임에도 생동감있게 느낄 수 있었던 것이, 호드의 경우 CG 작업이 굉장히 사실적이고, 육체가 정말 진짜 같다. 그런 면에서 듀로탄도 이빨의 디테일까지 표현되어 있기 때문에. 격투씬도 많고, 가장 격렬한 연기를 많이 한다. 그 덕에 큰 매력을 느꼈던 것 같다.


Q. 번역하면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대사가 있는가?

A. 일단 그 유명한 록타르 오가르가 나온다. 영화 내에서 드레노어 세계가 어떻게 생겼는지 모르는데, 대사 중에서 슬쩍 지나가는 식으로 오그림과 듀로탄의 대화가 나온다. 오랜만에 숲을 보니, 눈을 보니 좋다는 대사를 한다. 자신들의 고향이 그립다는 느낌으로. 듀로탄의 아내도 그런 눈발 속에서 사냥하는 꿈을 꾸어서 좋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한다. 그런 대사를 들으니 장면이 절로 연상이 되어서 훌륭했다.


Q. 마지막으로 예비 관객들에게 한마디 한다면.

A. 영화가 어떻게 다가오는지는 직접 와서 보셔야 판단할 수 있을 것 같다. 굳이 제가 와서 보라고 하지 않아도 와우저들은 다 보실 것 같다는 생각이다. 관객 분들도 어떤 부담을 가지지 않고 관람하셨으면 좋겠다. 어렵게 다가가도록 한 부분이 없기 때문에, 충분히 재미있게 접근하실 수 있을 것이다.

워크래프트 세계관에 이후로 수많은 이야기들이 있는데, 아서스, 쓰랄 등 다음 세대의 이야기들, 멋진 이야기들이 많이 남아있고, 그 시작을 목격하는 기회라고 생각한다. 많은 의미가 있는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