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종태 오토데스크 기술영업그룹 차장

[인벤게임컨퍼런스(IGC) 발표자 소개] 박종태 오토데스크 기술영업그룹 차장은 엑스엘게임즈의 리드 콘텐츠 프로그래머로 일한 바 있으며, 현재 오토데스크 코리아의 '스팅레이' 기술지원 담당으로 근무 중이다.

캘리포니아 '산 라파엘'에 위치한 '오토데스크'는 디자인 시각화라는 업계를 논함에서 빼놓을 수 없는 기업이다. 토목, 건축 분야에 필수적으로 필요한 소프트웨어인 'CAD'를 비롯해 3D 모델링의 기본이라 불리는 3D MAX, 그리고 3D 애니메이팅 프로그램인 'Maya'까지, 오토데스크의 프로그램들은 오늘날 사회 전반의 설계에 유용하게 쓰이고 있다.

게임이라 해도 예외가 아니다. 2015년 8월, 독일 쾰른에서 열린 GDC Eu 현장에서 오토데스크는 게임 엔진인 '스팅레이'를 발표했다. 2014년 인수한 '빗스쿼드' 엔진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게임 엔진인 '스팅레이'. 사실 이상한 일도 아니었다. 오토데스크는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비주얼 소프트웨어 회사로서의 내공과 실적을 착실히 쌓아 왔다. 디지털 콘텐츠의 최첨단에 서 있는 게임과의 연계가 이뤄지는 일은 당연한 일. 어떻게 보면 언젠가 일어날 일이었다.

오토데스크 코리아 박종태 차장은 7일 진행된 IGC 첫날, ' 게임 엔진 사용자층의 다양한 기회 – 새로운 게임 엔진 '스팅레이'를 다양한 산업 분야에서 활용해보자!'라는 주제로 연단에 섰다. 게임 엔진을 더 많은 산업 분야에서 사용한다는 것. 오토데스크다운 발상이 아닐 수 없었다.


■ 강연주제: '게임 엔진 사용자층의 다양한 기회


⊙ '게임', 디지털 콘텐츠의 최첨단.

"오늘의 강연은 게임 엔진을 이용하는 이용자들이 게임만 만들 것인지, 혹은 게임이 아닌 다른 산업 분야나 업종으로 진출할 수 있을지에 대한 가늠이라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박종태 차장이 입을 열었다. 그는 최근 게임 시장의 흐름을 간단히 말한 후 '게임 엔진'의 정의를 가볍게 언급하며 강연을 시작했다.

'게임 엔진'은 말 그대로 게임을 위한 소프트웨어다. 박종태 차장은 링컨 대통령이 발표한 게티즈버그 연설 일부를 차용해 게임 엔진을 간단히 말했다. "게임의, 게임에 의한, 게임을 위한 프로그램". 게임 엔진을 가장 짧게 말할 수 있는 문장이었다.

말 그대로 게임 엔진은 게임을 만들기 위한 프로그램이다. 하지만 게임이 만들어지는 과정은 게임 엔진에 그래픽 리소스를 끼얹는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박종태 차장은 '게임'이라는 디지털 콘텐츠를 더욱 깊이 설명하기 시작했다. 하나의 게임이 만들어지는 데 필요한 요소들에는 어떤 것이 있는가.


아티스트가 창조하는 그래픽적인 요소들, 배경이나 캐릭터 모델, 그리고 애니메이션은 게임의 기본이다. 몇 가지 기본을 더 말하자면 게임이라는 몸체에서 '순환계'의 역할을 맡아 줄 게임 플레이 시스템. 그리고 이 게임이 어떤 것을 말하고자 하는지를 나타낼 내러티브가 있다.

물론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UI와 UX를 만들어야 하고, 화려한 이펙트를 넣어 감칠맛을 더해야 한다. 배경 음악과 효과음이라는 감미료를 뿌린 후 그 외에 갖가지 양념을 끼얹으면 하나의 게임이라는 작품이 만들어진다.

이 모든 요소는 게임을 구성하는 요소들이자 동시에 게임을 나타내는 '어필 포인트'가 될 수 있다. 어떤 게임들은 뛰어난 BGM을 자랑하고, 또 어떤 게임은 치밀한 스토리 라인을 보여준다. 화려한 그래픽을 과시하는 게임이 있는가 하면 강렬한 캐릭터성으로 유저에게 호소하는 게임도 있다. 하지만 그 끝은 하나다. 모든 길은 결국 하나로 통한다고 했던가. 결국, 이 많은 요소는 결국 같은 목표를 위한 길이다. 그들이 만들어낸 '게임'이라는 세계와 유저가 상호작용하는 것. 그리고 그 과정을 더욱 몰입할 수 있도록 꾸미는 일이다.


이를 위해 개발자들은 수없이 많은 방법을 연구한다. 몰입감을 저해하는 끊김 현상을 없애기 위해 '실시간 렌더링'기술을 발전시키고 있으며, 기존과는 다른 차원의 게임 플레이를 제공하기 위해 VR과 AR이라는 영상 출력 장치를 개발해냈다. 재미있는 점은, 이런 기술들이 게임 외 다른 산업 분야에서 쓰이고 있는 건 게임에 비해 매우 최근의 일이라는 점이다.

게임은 끝을 모르는 게이머의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끝없이 발전해 왔고, 다른 산업 분야에서 '필요'에 의해 쓰이는 프로그램에 비해 두 계단, 세 계단을 앞서 올랐다. 명실상부 게임은 '디지털 콘텐츠'의 최첨단이라 할 수 있다.

박종태 차장은 이렇게 말했다. "디지털 콘텐츠라는 단어를 들으면 저와 같은 게임쟁이들은 맥스나 마야를 사용한 무언가를 생각해요. 하지만 디지털 콘텐츠라는 분야의 폭은 그것보다 훨씬 넓어요. 소프트웨어를 이용해 만들어내는 모든 것이 바로 디지털 콘텐츠라고 할 수 있죠"



⊙ '디지털 비주얼라이제이션(디지털 시각화)', 생각의 구체화

오토데스크의 프로그램 중 '레빗(Revit)'이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3D BIM(Building Information Modeling) 프로그램인 '레빗'은 청사진에 의존하던 기존의 2D식 설계를 아예 처음부터 3D로 보여준다. 지금에 이르러 레빗은 매년 새 버전이 출시되고 있고, 건축 전반에서 쓰이고 있지만, 사실 레빗의 등장이 건축에 있어 준 도움은 큰 뿌리에서 볼 때 단 하나다. 설계 도면을 보고 머릿속에서 상상하는 과정이 필요 없이 바로 영상으로 완공 시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는 거다.

이처럼 막연한 '생각'을 소프트웨어를 이용해 구체화하는 작업을 '디지털 비주얼라이제이션(디지털 시각화)'이라고 일컫는다. 하지만 막상 건축 설계사들은 이 '레빗'을 이용하는 과정을 굉장히 어려워한다. 그들은 건축을 공부한 사람들이지 '레빗'을 사용하기 위해 맥스나 마야를 다루는 이들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건축 설계사들은 설계도를 영상화하는 과정에서 외주 업체에 의뢰하게 된다. 어쩔 수 없이 하는 선택이지만 제일 나은 방법은 아니다. 외주로 인한 비용 손실도 문제지만, 가장 큰 단점은 업무의 진행 속도가 현저히 처지게 된다는 거다. 완성된 모델을 만들기까지 기업과 외주 업체는 끝없이 피드백과 컨펌의 전쟁을 하게 된다. 그만큼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고, 업무 스트레스도 늘어난다.

이 과정에서 '게임 엔진'이 의외의 활약을 한다. 건축 모델링 피드백 과정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잡아먹는 '피드백'의 과정이 게임 엔진의 실시간 렌더링 기능을 이용하면 훨씬 빠르게 이뤄지기 때문이다. 레빗으로 만들어둔 청사진을 게임 엔진인 스팅레이에 그대로 얹어 실시간 렌더링을 걸어버리면 가능하다.


과정 자체는 게임의 개발 과정과 같다. 어셋을 받고, 엔진에 얹어 실행한다. 이를 통해 가구의 배치나 색상의 변경, 건물 내 배선과 벽지 등을 실시간으로 바꿀 수 있고, 가상의 태양을 띄워 채광의 여부와 그림자의 모습까지 살펴볼 수 있다. 게임 개발자들의 영상화 능력은 디지털 콘텐츠를 이용하는 전 업계에서도 최고의 수준이다. 더욱 빠르고 간단하게, 그러나 높은 퀄리티의 모델링을 제시할 수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건축가들에게 이걸 말해준다고 바로 되는 것이 아니다. 그들에게 게임 엔진은 친숙한 프로그램도 아니며, 잘 알지도 못한다. 박종태 차장이 처음에 말한 '게임 엔진 사용자들의 타 업종 진출'의 핵심이 여기에 있었다. 게임 엔진을 통한 수준 높은 디지털 시각화. 이를 다른 산업에 적용하는 것이다.



⊙ "영화, 애니, 게임의 경계", 디지털 시각화의 잠재력

"10년 전, 게임을 하면서 제가 읊은 말이 있어요. '이게 게임이야 영화야?'. 재미있는 점은 10년 전에 했던 이 말이 지금도 똑같이 다른 게임을 플레이하는 다른 게이머의 입에서 흘러나오고 있다는 점이죠."

10년의 세월이 지나면서 게이머들의 눈이 높아진 만큼, 영상화 기술도 동시에 발전했다. 무엇보다 좋은 건, 그저 수준이 높아진 것에서 그치지 않고 업무의 효율 자체가 좋아졌다는 것이다. 전보다 더 구체적이고 사실적인 그래픽을 더 쉽게 만들어낸다. 디지털 시각화라는 분야의 발전 방향은 언제나 이와 같았다.

이어 박종태 차장은 '스팅레이'의 주요 기능과 오토데스크 내 다른 프로그램들과의 연계에 대해 간단히 설명했다. 오랜 세월 동안 사회 전반에서 활약해온 오토데스크의 저력 덕분일까? 게임 엔진을 응용해 활용할 수 있는 산업 분야는 생각보다 더 넓었고, 활용의 효율 또한 높았다.

'VR'과 'AR'의 대두 또한 '디지털 시각화'의 측면에서 긍정적인 발전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두 새로운 시각 기기는 무언가를 설계하고 창조하는 직군에 더 현실적인 결과물을 보여줄 수 있고, 나아가 더욱 효율적인 업무를 가능케 만들어준다. 그만큼 '게임 엔진'을 전문적으로 다뤄온 게임 개발자들이 진출할 수 있는 분야도 늘어나고 있다는 뜻이리라.


게임 산업은 오랜 시간 동안 독자적으로 성장을 반복했다. 물론 다른 산업과의 연계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게임 시장은 그 안의 다른 게임을 경쟁자로 상정한 채 성장을 반복해 왔다. 처음 만들어진 이후 채 50년이 지나지 않은 지금, 게임은 모든 디지털 콘텐츠의 최전방에 서 있다. 반복된 성장과 발전의 과정이 그 나름의 금자탑을 쌓아왔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제 그 탑의 꼭대기에서 비치는 빛이 다른 산업 전반도 함께 밝힐 수 있는 순간이 되었다. 게임 엔진이 곧 건축 엔진이 되고, 건축 엔진은 또 게임 엔진이 되리라. 박종태 차장의 강연은 이 점을 상기했다. 지금 단계에서는 단순히 게임 업계 인력의 타 시장 진출이라는 다소 가벼운 소재로 여겨질 수도 있겠다. 하지만 한 걸음을 나아갈 때마다, 게임과 타 산업의 연계는 더욱 발전해 나갈 것이다. 그리고 아마 이 발전의 방향은 게임이라는 산업에서 또 다른 방향을 제시해 주는 갈림길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