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니픽셀 조성준 개발자

[인벤게임컨퍼런스(IGC) 발표자 소개] 고등학생 개발자로, 중학생 시절부터 게임 개발을 해왔다. '디자이어'와 '작은 광부들'을 구글 플레이스토어에 출시한 것에 이어 최근에는 '세이크리드 스톤(Sacred Stones)'가 스팀 그린라이트를 통과한 바 있다.


학창 시절, 패키지 게임을 플레이할 때면 자주 드는 생각이 있었다. 바로 "나도 게임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것. 기나긴 줄거리를 따라가며 도달한 게임의 끝에서, 흰색 배경에 'Fin'이란 단어만 떠오르는 엔딩 화면을 보며 느낀 여운을 나의 창작물로 타인에게 공유하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게임을 만드는 쪽'이 아니라 '즐기는 쪽'에 가까웠기에 게임 제작은 깨끗하게 단념해야 했다.

이와 달리 미니픽셀 조성준 개발자는 '게임을 만드는 쪽'이 더 좋았다고 한다. 중학 시절부터 게임 개발을 시작한 그는 다양한 경험을 쌓으며 현재는 고등학교 3년생의 1인 개발자로 활동 중이다. 어린 나이부터 쉼 없이 꿈을 좇고 있는 그가 바라본 게임 개발은 어떤 것이었을까. 미니픽셀 조성준 개발자는 연단에 올라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천천히 풀어놓기 시작했다.



■ 강연주제 : 꿈만 보며 시작한 게임 팬의 게임 개발 이야기

⊙ 1. 무작정 시작한 1인 게임 개발

게임 개발을 처음 시작하게 된 때는 초등학교 6학년 때였다. 당시 '스크래치'라는 프로그램을 알게 되었는데, 거기에 재미가 들려 게임을 하는 것보다 만드는 것이 더 좋아하게 되었다. 그 덕분에 남들이 다 한다는 메이플스토리나 서든어택 같은 온라인 게임은 해보지도 못했던 것 같다. '스크래치'를 활용해 '닷지' 같은 간단한 게임을 개발하며 초등학교 6학년 시절을 보냈다. 그 당시에 만들 수 없었던 부분은 공책에 그리면서 설움을 해소하기도 했다.

그리고 중학교 2학년이 된 후, 잊었던 게임 개발의 꿈을 되찾게 해준 게임을 만났다. 바로 2004년 발매된 런앤건 게임 'Cave Story'다. 우연히 친구의 소개로 'Cave Story'를 접하게 되었는데 칩튠음악과 거칠면서도 섬세한 느낌을 주는 도트 그래픽, 그리고 게임 속 숨겨진 요소 등을 접하면서 큰 충격을 받았다.



"이런 게임을 만들고 싶다"는 꿈을 심어준 'Cave Story'에서 영감을 받아 친구를 설득해 게임 개발을 제대로 시작했다. 그림 실력이 아주 나쁘진 않았던 내가 그래픽을 담당했고, 기획을 담당하는 친구와 '게임메이커'라는 아마추어 툴을 사용하며 개발 경험이 약간 있던 다른 친구와 함께 어린 나이에 무작정 게임 개발에 도전했다.

처음 목표는 작은 게임 개발 커뮤니티 카페의 게임 잼이었다. 우승상품이 비빔면 2박스였는데, 어린 마음에 비빔면을 위해 열심히 개발했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내가 원하는 기준치는 친구의 기대보다 높았고, 또 이를 타협하는 것도 성미에 맞지 않았다. 결국, 함께 개발을 진행하면서 의견 충돌이 잦아지며 게임 개발이 무산되었다. 이때부터 친구와의 게임 개발을 그만두고 1인 개발의 길로 들어섰다.

1인 개발을 시작하면서 늘어난 작업량 등 어려운 점이 많이 생겼다. 하지만 다른 누군가와 타협할 필요가 없고, 게임에서 표현하고 싶은 만큼 표현할 수 있으며 게임에서 말하고 싶은 것을 다른 누구의 간섭 없이 말할 수 있다는 것이 큰 매력으로 다가왔다.

이후 '게임메이커'라는 툴을 공부하며 만든 첫 번째 게임이 바로 'OCTOPUS BOOM'이다. 위에서 떨어지는 폭탄을 피하는 단순한 방식의 게임으로, 그 당시 'Cave Story'의 영향을 받아 그런지 따라 하려고 한 흔적이 많이 보인다. 이런 간단한 게임도 그때는 머리를 싸매가며 개발했다. 개인적으로도 첫 작품이라 많은 의미가 담겨 있다.




⊙ 2. 모바일 게임을 만들다.

얼마 지나지 않아 '게임메이커 스튜디오'라는 툴이 개발되면서 안드로이드나 iOS, Mac OS 등등 더 많은 플랫폼으로 게임을 포팅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돈이 문제였다. 중학생이었던 나에겐 큰 금액이었지만, 모바일 게임을 꼭 개발해보고 싶어서 용돈을 닥치는 대로 모아 겨우겨우 툴을 구매했다. 그렇게 모바일 게임 개발을 시작할 수 있었다.

중학교 2학년부터 개발을 시작해 중학교 3학년이 되는 해 '디자이어'라는 이름의 첫 모바일 게임을 구글 플레이스토어에 무료로 런칭했다. 화면의 상하좌우가 연결되어 있어서 점프하지 못하는 캐릭터를 좌우만 이동시켜 클리어 지점에 도달하는 플랫포머 게임이다. 하지만 컴퓨터 정리과정에서 개발 파일이 삭제되는 바람에 서비스를 그만두게 되었다. 아쉬운 마음에 '디자이어'를 기반으로 만든 '임포시블 스퀘어'라는 스코어링 게임을 출시하기도 했다.

'디자이어'를 출시하고 서비스하면서 고등학생이 되었다. 처음엔 내가 만드는 게임으로 돈을 벌 수 있을 거라곤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그런데 하단에 광고를 다는 방식으로 광고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용돈 벌이라도 해보자는 심정으로 방치형 육성게임 '작은 광부들'을 만들었다.



요즘은 방치형 육성게임이나 클리커류가 정말 많은데, 그 당시에는 이런 류의 게임이 많이 없어서인지 생각보다 인기몰이를 했다. 게임은 광부와 광물을 업그레이드하고, 광부를 융합시켜 더 좋은 광부를 만들어 화면에 쌓인 광물을 수집하는 방식이었다.

밸런스 조정 실패로 결국 스토어에서 내리게 되었지만, '작은 광부들'은 유저와 가장 많이 소통한 게임이기도 했다. 유저들과 소통하며 가장 크게 와 닿은 점은 바로 '유저는 항상 개발자의 머리 위에 있었다'는 점이다. 개발자의 입장에서 생각지도 못한 의견들을 전해 들었고, 게임이 점점 좋아지는 것을 보며 많은 것을 느꼈다. 유저분들 덕분에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이후 '작은 광부들'을 그리워하는 유저가 많아 후속작으로 '미니마이너'를 출시했다. 이 게임은 클리커 장르로 가장이 된 작은 광부가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게임이다. 캐릭터의 체력 조절에 실패하면 과로사로 사망하기도 하고 각종 세금을 내지 못하면 가족들이 사망하는, 어떻게 보면 좀 극단적인 게임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이 게임도 밸런스 조정의 실패로 스토어에서 내리게 되었다.

이 계기를 통해 처음으로 기획이란 부분을 다시 생각하게 됬다. 사실 게임을 개발할 때 기획을 따로 하지 않고 즉흥적으로 개발하면서 무작정 콘텐츠를 추가하고 이것저것 생각하는 방식이어서 그런지 완성된 게임을 보면 뒤죽박죽인 느낌이 항상 들었다. '작은 광부들'에는 업데이트 과정에서 게임 속에 다른 게임이 또 들어갈 정도로 뒤죽박죽일 정도였으니 말이다.

기획 없이 하는 게임 개발은 '코인 스파이'라는 스코어링 게임을 끝으로 하지 않았다. '코인 스파이'는 여러모로 아쉬운 게임이다. 추격해오는 적을 피해 돈 가방을 탈취하고 돈을 벌어 주인공을 강화해 더 높은 점수를 노리는 방식인데, 기술력이 부족해 적의 패턴이 단조롭고 조작감도 조잡했다. 여러 가지 추가 계획이 있었으나 게임 외적으로도 부모님이 게임 개발을 반대하는 시기라 어려웠다.




⊙ 3. 전환점이 되어준 우송대학교 게임 공모전

앞서 말했다시피 부모님은 전부터 게임 개발을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항상 게임 개발은 대학교에 가서 해도 늦지 않는다고 하셨다. 그러다 보니 고등학교 2학년이 되면서 불투명한 미래가 걱정되기 시작했다. 게임 개발에만 열중하다 보니 공부에 소홀해졌기 때문이다. 그런 와중에 고등학교 2학년 방학 때 우송대학교 게임 공모전을 알게 되었다. 공모전에서 입상하면 우송대학교 진학 시 가산점을 받을 수 있어서 장려상이라도 받으려는 마음으로 공모전 준비를 시작했다.

하지만 공모전 소식을 알게 된 것이 불과 마감 한 달 전이었다. 결국, 지금까지 게임을 개발하며 얻은 경험을 토대로 하루 만에 밤을 지새우며 '세이크리드 스톤'을 기획하게 되었다. 시간이 정말 촉박했기에 개발에 있어서 막힘없이 진행할 수 있도록 작은 부분 하나하나까지 기획에 넣었다.

'세이크리드 스톤'은 4가지 월드에서 20여 종의 보스를 사냥하는 1:1 보스 레이드 게임이다. 기획을 잘 짰던 덕분인지 1~3개 정도의 패턴을 가진 보스를 하루에 하나씩 만들어갔다. 그리고 남는 시간에는 월드를 제작했다. 개발 막바지 무렵 '인디라'라는 인디게임 커뮤니티에 잠깐 개발 중인 게임을 소개할 기회가 있었다. 커뮤니티에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우송대학교 게임 공모전에 출품한 게임은 저작권이 우송대로 넘어간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도 그때였다.

결국, 게임을 좀 더 많은 이들이 플레이했으면 하는 마음에 부모님의 질책에도 불구하고 게임 공모전을 포기했다. 만약 그대로 '세이크리드 스톤'을 공모전에 출품했다면 지금 이 자리에 있지도 못했을 것이다.




⊙ 4. 타협하지 않은 세이크리드 스톤

'세이크리드 스톤'을 출시하기 위해 게임을 더욱 다듬었다. 빠른 시간 안에 잘 만든 것 같아 플레이스토어 외에도 스팀이나 iOS에도 출시해보고 싶은 욕심도 생겼다. 알아보다 보니 텀블벅이라는 크라우드 펀딩을 처음 알게 되어 도전해보기로 했다. 텀블벅을 하는 과정에서 많은 개발자들을 알게 되었고, 그들이 아무것도 모르는 나에게 많은 조언과 응원을 해줘서 포기하지 않고 지금까지 올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텀블벅은 실패로 끝났지만, 나의 게임을 좋게 봐준 '아이들 아이디어 팩토리'란 게임 개발팀에서 개발에 필요한 모든 장비를 아무런 대가 없이 지원해주면서 다행히도 iOS 개발을 진행할 수 있게 되었다. 텀블벅을 통해 나의 게임이 많은 이들에게 알려지는 계기가 된 것 같아, 어쩌면 모든 것은 텀블벅에서 시작되었다고도 할 수 있다.

출시 막바지에 한국 모바일 게임협회에서 주관하는 한국 인디게임 어워드 2015에서 제1회 인디스타상을 수상했다. 운이 좋았는지 개발 자금과 마케팅도 지원받을 수 있게 되었다. 정말 일이 이렇게 잘 풀려도 되나 싶을 정도로 믿기지 않았고, 살면서 처음 인터뷰도 해보면서 잊을 수 없는 경험이 되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으면서 '세이크리드 스톤'을 더욱더 좋은 게임으로 완성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출시일을 잠시 미루고 보스 레이드라는 주요 콘셉트만 유지하며 다른 게임이다 싶을 정도로 계속 수정했다. 항상 다른 해외 게임과 비교하며 기준을 계속해서 높여갔다.

단조로운 타일을 마음에 들 때까지 수정하고, '우파루파'라는 보스는 모션이 마음에 들지 않아 7번 정도 지웠다 다시 그렸던 기억이 난다. 거기에 중학교 시절부터 'Cave Story'와 같은 게임을 만들고 싶다는 꿈도 '세이크리드 스톤'의 그래픽에 반영했다. 또한, 컷 신을 통해 스토리를 전달해 유저의 호기심을 유발하고, 어드벤처 요소와 퍼즐 요소를 추가해 유저들에게 조금 더 만족감을 줄 수 있도록 노력했다.

이후 인디게임 오락실에서 '세이크리드 스톤'을 전시해 다양하고 진솔한 피드백을 받았다. 게임이 상당히 어려웠다는 반응이 많아서 보스 패턴을 직관적으로 수정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9월에 열린 부산 인디커넥트 페스티벌에도 '세이크리드 스톤'을 전시했다. 많은 이들이 좋은 피드백을 남겨줘서 게임을 한층 더 업그레이드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스팀과 안드로이드, iOS 출시를 앞둔 상황이지만 가능하면 콘솔 쪽으로도 출시해보고 싶다.

이렇게 되기까지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도움이 있어서 가능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세이크리드 스톤'을 통해 느낀 점이 있다면, 1인 개발자일지라도 항상 혼자는 아니었다는 점이다. 나를 믿고 응원해주는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언젠가 한국 인디게임을 빛낼 수 있는 게임을 만들고 싶다.




⊙ 5. 고등학생이 생각하는 한국의 인디 게임

마지막으로 전하고자 하는 것은 사실 조심스러운 부분이다. 한국의 인디게임에 대해 또래 친구의 생각과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내용을 바탕으로 말하자면, PC나 콘솔은 멋진 국산 인디게임들이 많이 런칭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모바일 같은 경우는 다양성이 부족해진 것처럼 보인다. 클리커나 방치형 육성게임이 많은 인기를 끌면서 너도나도 클리커나 방치형 육성게임을 개발하고 있는 상황이다.

물론 육성 게임이나 클리커 게임이 나쁘다는 말은 아니다. 자신만의 색깔을 충분히 표현하면서도 남들과 차별화된 콘텐츠와 콘셉트로 한국 인디게임을 충분히 빛내고 있다고 생각되는 게임도 몇몇 있다. 그러나 지금의 모바일 시장은 유저가 지치고 있는 상황이 아닌가 한다. 왼쪽을 보면 요일별로 던전을 도는 대기업 게임이, 오른쪽을 보면 별별 육성 게임들이 차지하고 있다. 조금 독특하다 싶으면 해외게임인 경우가 많다.

주위 인디게임 개발자들의 말을 들어보면 근무하던 회사나 따로 하는 일을 그만두고 게임 개발을 시작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분명, 처음엔 너도나도 멋진 게임을 만들자는 큰 꿈을 안고 시작하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인해 그 꿈을 마음껏 펼치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한국 인디게임과 관련된 지원과 행사가 많아지는 지금 시점에서, '인디답게' 안전한 게임만 고집하지 말고 때로는 남들이 가보지 못한 험한 길로 가보는 것도 즐겁지 않을까. 앞으로도 예술작품 같은 게임이 많이 런칭되어서 한국 인디게임이 계속 발전할 수 있었으면 한다.





■ 질의응답

Q. 1인 개발자로서 앞으로도 혼자서 게임 개발을 하겠다고 했는데, 취직이나 창업으로 팀을 꾸릴 생각은 없는가?

= 현재로써는 없다. 원래 그래픽 아티스트 담당이라고 해도 프로그래밍을 배우다 보니 프로그래밍에 대한 새로운 재미도 있어서 혼자 해도 괜찮은 것 같다.


Q. 1인 게임 개발 시 힘들었던 점은 어떻게 극복했는지?

= 팀원이 있다면 팀원과 의견을 조율하고 팀원이 만들고 싶은 게임과 내가 만들고 싶은 게임을 타협해야 한다. 그런데 1인 개발은 그런 과정이 필요하지 않고, 힘들더라도 성취감이 있어서 계속 게임 개발을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Q. 사운드는 어떻게 해결하는가?

= 간단한 효과음은 직접 제작하고, 퀄리티 높은 배경음악은 프리 BGM으로 사용하고 있다.


Q. 부모님의 반대가 있었다고 했는데, 부모님을 어떻게 설득했는지?

= 게임으로 번 돈으로 부모님에게 용돈을 드렸다. "이만큼 벌었다"라고 하시니 좋아하시더라.


Q. 제작한 게임이 다 도트 그래픽인데 3D는 관심이 없는지?

= 어려서부터 픽셀 게임을 좋아해서, 이름도 미니 픽셀로 활동 중이다. 앞으로도 픽셀 게임을 만들지 않을까 한다.


Q. 1인 개발을 할 때 홍보는 어떻게 했는가?

= 홍보 쪽은 마땅한 방법이 없었다. 그런데 고등학생이 이런 게임을 만들었다는 식으로 알려져 흥미를 끈 것 같다. 그 전에는 홍보 방법이 없어서 카페나 커뮤니티 쪽밖엔 없었다.


Q. 초등학교 때부터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고 했는데, 입문의 계기가 될만한 것은 무엇이었는가?

= 초등학생 때 친구가 없어서 이상한 짓을 많이 했던 것 같다. 게임도 애들이 안 하는 이상한 게임을 혼자서 많이 했다. 그래서 "나도 이런 거 만들어볼까" 해서 무작정 네이버에 '게임 만들기'라고 검색해서 '스크래치'라는걸 알게 되어 입문하게 되었다.


Q. 다양한 종류의 피드백 중 개발자로서 어느 정도 선까지 수용하는지 궁금하다.

= 피드백은 적극적으로 반영하는 편이다. 기술이 닿는 데까진 최대한 반영했다.


Q. 개발 플랜은 어떻게 짜는가?

= 기획을 제대로 한 게 '세이크리드 스톤'이라 이를 기준으로 설명하자면, 공책에 모든 보스 디자인과 패턴 디자인을 러프하게 그린다. 이후 만들 수 있는 패턴 범위 안에서 디자인하는 편이다.